잠언 9장: 왕비와 음녀 

해설:

9장은 1장부터 이어진 서언부의 종결부입니다. 10장부터는 솔로몬의 잠언이 시작됩니다.

1절부터 6절까지는 지혜의 초청을 전합니다. 지혜는, 궁궐을 을 잘 짓고 좋은 음식을 장만한 후에 시녀들을 내보내어 사람들을 초청하는 왕비와 같습니다. 왕궁에 차려진 음식을 먹으면 큰 즐거움과 힘을 얻는 것처럼, 지혜와 더불어 살면 명철의 길을 걷게 되며 생명을 얻습니다.  

7절부터 9절까지는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을 대비시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훈계를 달게 받고, 어리석은 사람은 훈계를 거부할 뿐 아니라 훈계를 준 사람을 미워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혜로운 사람은 더욱 지혜로워지고, 어리석은 사람은 더욱 어리석어집니다. 10-12절까지는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며, 지혜를 따르는 것이 복된 길이라고 말합니다. 

13절부터 18절까지는 어리석은 여인에 대해 말합니다. 앞에서 지혜를 왕비에 비유한 것처럼, 어리석음을 음행하는 여인에 비유한 것입니다. 그 여인은 아는 것이 없으면서도 말이 많고, 달콤한 말로 사람들을 유혹합니다. 사람들은 그 부정한 쾌락에 함정이 숨겨져 있음을 짐작하면서도 그 여인의 집을 찾습니다. 그것처럼 지혜를 외면하는 것은 곧 파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지혜는 정숙한 여인처럼 손님들에게 기쁨과 생명을 안겨 주지만, 어리석음은 손님들을 쾌락으로 끌어들여 멸망에 이르게 합니다.

묵상:

왕비가 궁궐에 좋은 음식을 차려 놓고 부르는데 사람들은 별 관심이 없습니다. 반면, 음란한 여인에게는 자기 발로 찾아가 유혹해 주기를 바랍니다. 그것처럼, 사람들은 지혜에 대해 관심이 없습니다. 그것을 부담 되는 것으로 여기고 자신을 불편하게 하고 불행하게 만드는 것으로 여깁니다. 반면, 어리석고 악한 일에는 곁눈질을 하면서 침을 흘립니다. 자신을 유혹해 주기를 바랍니다. 

왜 우리의 본성은 바르고 선하고 아름다운 것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으면서 거짓되고 악하고 추한 것에 대해서는 흥미를 보일까요? 그것은 우리 존재가 죄성에 속속들이 전염되어 있다는 증거입니다. 욕망은 중립적이지 않습니다. 그냥 두면 어리석은 길로 기울게 되어 있습니다. 그 길의 끝에는 파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생명의 길을 걷기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욕망의 움직임을 잘 관찰해야 합니다. 거짓되고 악하고 추한 것들이 잡아 당기는 힘을 거부하여 진실되고 선하고 아름다운 것을 추구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형제자매 여러분, 무엇이든지 참된 것과, 무엇이든지 경건한 것과, 무엇이든지 옳은 것과, 무엇이든지 순결한 것과, 무엇이든 사랑스러운 것과, 무엇이든지 명예로운 것과, 또 덕이 되고 칭찬한 만한 것이면, 이 모든 것을 생각하십시오”(빌 4:8)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생각하십시오”에 사용된 헬라어는 “마음에 품다”라는 의미이고 현재 시제로 쓰였습니다. 이런 것들을 늘 마음에 두고 살라는 뜻입니다. 이런 것을 마음에 품고 사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궁궐에 사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Comments

3 responses to “잠언 9장: 왕비와 음녀 ”

  1. 나의 생각과 마음에서 생명으로 향하는 지혜와 죽음으로 향하는 어리석음
    이 서로 항상 대치하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먼저 말씀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승리의 삶을 살수 없는것을 고백합니다. 임마누엘 주님을 항상 깨닫고 피부로
    느끼고 어느곳 에서나 항상 섬기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말씀이 육신이되신
    예수님을 내중심에 모시고 승리의 삶을 살아내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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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achi049 Avatar

    여자가 그 나무의 열매를 보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을 슬기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였다. 여자가 그 열매를 따서 먹고,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니, 그도 그것을 먹었다.(창 3:6)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사탄의 꿀맛 같은 꼬임에 넘어가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죄성을 같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인간은 죄성 때문에 어여뿐 여인처럼 변장하고 다가서는 사탄의 꼬임에 빠져서 사망의 구렁텅이에 빠져들고 있고 앞으로도 믿음의 공동체에게는 더욱 강력한 미혹과 유혹이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지혜의 하나님 말씀을 하루라도 먹지 않고는 살아 갈 수 없기에 오늘도 말씀을 먹고 영적 긴장 속에서 살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동행하시고 인도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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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아이를 키우다 보면 ‘지혜’를 좀 더 잘 이해하게 됩니다. 아기 때는 무슨 행동을 해도 다 예쁘기만 하지만 어느 때부터 자아가 드러나기 시작하면 아이의 성정, 특징, 취향 등도 같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자아가 빠르게 형성되는 시기에는 ‘고집’도 생깁니다. 아무리 어린 아이라고 해도 자기의 주장이 있습니다. 고집을 부리는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 타인이 (어른이) 하자는대로 다 따르기만 하지는 않습니다. 어른의 설득과 가르침을 잘 수용하는 아이가 있고 자기 하고 싶은대로 해 보고 난 뒤에야 고치는 아이도 있습니다. ‘지혜’는 나침반과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 나침반은 언제나 잘 작동하는 완성품일 수도, 혹은 잠언에서 말하듯 계속 구하고 가꿔 나가는 능력에 따라 정밀도가 향상되는 나침반일 수도 있겠습니다. 아이가 기특하게 보일 때, 흔히 철이 났다는 말을 할 때는 아이가 주변을 살필 줄도 알게 되었을 때입니다. 남 생각도 할 줄 알 때, 배려할 줄 알 때 철이 났다고 합니다.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 곧 철이 났다는 말입니다. 잔치에 대한 묵상의 시작이 여기까지 왔습니다. 성서에는 잔치 이야기가 여러번 나옵니다. 상징과 비유이기도 하고 이야기의 배경으로도 잔치가 등장합니다. 오늘 9장에서 지혜의 왕비는 잔치를
    준비하고 여러 사람을 초대합니다. 미련한 여인은 훔친 물, 몰래 먹는 음식이 더 맛있다고 말합니다. 지혜는 스스로를 여는 일입니다. 자기만 있던 곳에 타인을 들이고, 자기도 타인에게 나가는 일입니다. 겸손은 자신을 낮춰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을 덜 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Humility is not thinking less of yourself. It is thinking of yourself less. 몰래 몰래 자기만 생각하는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 내 생각을 좀 덜 하는, 나에 관해 골몰하지 않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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