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7장: 지혜를 연인 삼아

해설:

1절부터 5절까지에서 화자는 지혜를 누이처럼, 친구처럼 여기고 친밀한 사귐을 나누라고 권합니다. 그러면 그 지혜가 음행하는 여자로부터 그 사람을 지켜 줄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지혜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호크마’는 여성형 명사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지혜는 인격입니다. 따라서 “너는 내 누이” 혹은 “너는 내 친구”라고 부르라는 말(4절)은 단순한 비유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연인 삼아 친밀한 사귐을 나누라는 뜻입니다.  

이어서 화자는, 지혜를 가까이 두지 않음으로 인해 한 청년이 음란한 여인에게 속절 없이 유혹 당하는 광경을 목도 했노라고 말합니다(6-7절). 그 청년을 유혹하는 음란한 여인도 문제이지만, 그 청년에게도 문제는 있습니다. 음란한 여인이 있는 곳에서 서성 거렸기 때문입니다(8-9절). 부정한 성적 쾌락을 향한 욕망이 그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그 때 한 여인이 나타나 그를 유혹합니다. 여인은, 화목제를 드리고 받아 온 고기가 집에 있으며 쾌락을 즐길 만한 모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하면서 그 청년을 유혹 합니다. 남편은 오래도록 집을 비울 것이라고 덧붙입니다(10-20절). 청년은 그 여인을 따라 갑니다. 화자가 볼 때 그는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와 같고 그물에 걸린 새와 같았습니다(21-23절).

이렇게 목격담을 말한 후에 화자는 그런 유혹을 받지 않도록 경계하라고 권면합니다. 그 여인의 집은 쾌락의 향연장이 아니라 “죽음의 안방”(개역개정 “사망의 방”)이기 때문입니다(24-27절).

묵상:

5장과 6장에 이어 7장에서도 음란한 여인에 대한 경고의 말씀이 이어집니다. 여기서 음란한 여인은 실제이기도 하고 비유이기도 합니다. 실제 생활에서 지혜를 따라 사는 사람은 성적으로 문란한 사람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것이 패망의 원인이 되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비유적으로 본다면, 음란한 여인은 지혜를 떠나 자신의 타락한 욕망을 따라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혜를 누이처럼 여기고 사랑하면 어리석은 길에 가까이 가지 않습니다. 

여기서 화자는 죄에 대해 두 가지의 중요한 통찰을 보여 줍니다. 첫째, 우리가 죄악을 행하는 이유는 일차적으로 우리 내면에 있는, 죄를 향한 욕망 때문입니다. 화자가 본 그 청년이 음란한 여인의 집 근처에서 서성대지 않았다면 유혹도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던 부정한 욕망은 구실을 찾아 음란한 여인의 동네에서 서성대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지혜자는 “네 마음이 그 여자가 가는 길로 기울지 않게 하라”(25절)고 말합니다. 둘째, 죄는 우리에게 행복감을 안겨 줄 것처럼 속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환멸감과 낭패감 그리고 죽음의 맛을 느끼게 해 줍니다. 쾌락을 찾아 음란한 여인의 집에 들어가는 것은 곧 죽음의 안방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믿는 이들은 드러내 놓고 죄악을 범하는 것을 두려워 합니다. 하지만 죄 된 욕망은 은밀하게 부정한 만족을 탐합니다. 유혹이 있는 곳으로 슬금슬금 다가가 자신을 흔들어 주기를 바랍니다. 유혹을 빌미로 은밀한 욕망을 만족시키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선악과를 따 먹은 후에 아담은 하와에게, 하와는 뱀에게 핑계를 댄 것처럼 말입니다. 아담은 하와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 같지만 실은 그 책임을 하나님께 돌립니다(“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짝지어 주신 여자, 그 여자가……”, 창 3:12). 죄는 인간을 가장 비겁하고 비열하게 만듭니다. 


Comments

3 responses to “잠언 7장: 지혜를 연인 삼아”

  1. 지난날 그칠줄 모르는 탐욕으로 살아온 비천한 존재에게 십자가의 은혜를 깨닫게
    하신 사랑과 구원의 하나님께 영광을 드립니다. 세상의 쾌락이 죽음인것을 깨닫는
    하늘의 지혜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귀한 지혜가 영원한 축복인것을 깨닫는
    믿음을 원합니다. 그토록 귀한 믿음을 마지막 숨쉴때 까지 지키고 실천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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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욕망이 먼저인가, 죄가 먼저인가 묻습니다. 죄란 유혹하는 자와 유혹을 당하는 자가 합작으로 만드는 일의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유혹을 해도 넘어가지 않으면 (행동으로 연결되지 않으면)죄가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뱀이 여러가지 말로 꼬드겼어도 이브가 사과를 베어 먹지 않았으면 무죄입니다. 그 후에 이브 마음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아닌지는 따로 생각해 볼 일이겠지요. 예수님은 간음에 대해 아주 높은 스탠다드를 주십니다.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을 너희가 들었다…누구든지 음란한 생각으로 여자를 바라보는 사람은 이미 마음속으로 그 여인과 간음한 것이다 (마태 5:27-28).” 계명을 지키는 데 급급한 것과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사는 것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경고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유혹이 그만큼 흔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오늘 해설에서 처럼 내면의 욕구가 외부의 유혹을 만나 죄를 짓게 되니 투웨이입니다. 본문을 묵상하는데 저자(목격자)는 역할이나 책임이 없을까 하는 질문이 생깁니다. 저자는 밖을 내다보다가 젊은이와 여인의 만남을 목격합니다. 여자의 집 쪽으로 걸어가던 젊은이가 잘 몰라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닙니다. 달콤한 말로 유혹하는 여자를 ‘선뜻’ 따라갔다는 걸 보면 원해서 (willingly) 하는 행동입니다. 목격자가 개입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황소와 같은 (22절)’ 젊은이를 구할 수 있었을까. 고대 사회나 현대 사회나 ‘남의 일’에는 끼여 들지 않는 것이 상책인지 모릅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참견을 했다가 더 안 좋은 결과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7장의 메시지는 제3자의 책임에 관한 것이 아니기도 합니다. 게다가 우리는 죽은 사람이 돌아와 이야기 해 줘도 듣지 않을 정도로 고집스러운 존재입니다. 그쪽으로는 길이 끊겼다고, 심지어 낭떠러지가 나온다고 말해줘도 계속 걷겠다는 사람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내 안의 욕망을 다스리는 것도 어려운데 타인 생각까지 한다는 건 어리석고 무모한 일이겠지요. 그러니 우리는 자기 생각만 해야할까요. 뱀은 이브가 혼자 있을 때 말을 걸었습니다. “지혜를 연인 삼아”라는 오늘 묵상의 제목이 참 좋습니다. 지혜를 벗삼고 친구삼아 가까이 하는 것이 유혹을 이겨내는 길입니다. 주님께서 함께 해 주실 것을 믿고 감사 드립니다. 지혜를 보내시어 힘을 보태 주시고, 이끌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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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achi049 Avatar

    하나님께서 주신 욕망을 인간의 욕심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을 망각한채로 소견에 옳은대로 삶을 살아 온갖 역겨운 삶, 동물과 다름없는 삶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파괴하는 행위등으로 성령님을 근심하게 하고 있습니다. 주님! 어서오셔서 동물보다 못한 삶을 살아가는 이 세상을 새하늘과 새땅으로 바꿔 주시옵소서. 마라나타!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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