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6장 1-19절: 조금의 유혹

해설:

1절부터 19절까지에서는 크게 해로워 보이지 않아도 조심 해야 할 것들에 대해 경고합니다. 

첫째는 다른 사람을 위해 재정 보증을 서는 것입니다(1-5절). 잠언 안에는 다른 사람을 위해 재정 보증 서는 것에 대한 경고가 여러 차례 나옵니다(11:15; 17:18; 22:26-27; 27:13). 오늘날에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재정 보증 제도는 경제적 강자가 경제적 약자를 옭아매려는 덫으로 사용되곤 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 있는 지인을 도우려는 순수한 의도가 악한 자에 의해 오용되곤 했습니다. 그 덫에 걸리지 않으려면 보증을 서는 대신 다른 방법으로 도울 길을 찾아야 합니다.  

둘째는 게으름입니다(6-11절). 저자는 개미를 예로 들어 부지런히 살 것을 권면합니다(6-8절). 게으른 사람들의 핑계는 “조금만 더”입니다. “약간의 게으름”은 무해할 것 같지만 그것이 습관이 되면 가난이 도둑처럼 덮칠 것입니다(9-11절). 

셋째는 가벼운 악행입니다(12-15절). “건달과 악인”(12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가치없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절대적 가치를 부여 받은 존재입니다. 하지만 자신에게 부여된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은 가치 없는 일로 인생을 허비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우리는 “건달”이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헛된 말을 하고 다니며 갈등과 분열만 일으킵니다. 그들 자신의 인생을 허비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공동체를 분열시킵니다. 

넷째는 주님께서 미워하시는 일곱가지 악에 대해 말합니다(16-19절). 잠언에서 몇 가지의 악을 나열할 때에는 항상 마지막에 언급하는 악에 초점이 있습니다. 앞에서 열거한 여섯 가지 악(교만, 거짓말, 폭력, 악의, 악행, 거짓 증언)은 일곱번째 악(이간)을 만들어 냅니다. 새번역은 19절을 ”친구 사이를 이간하는“이라고 번역했지만 개역개정은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어떻게 번역하든, 이간은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행동입니다. 무심코 행한 작은 악들이 쌓이면 가정, 사회 혹은 국가를 분열시키는 불행을 초래합니다. 

묵상:

록펠러가 “돈을 얼마나 가지면 만족하겠습니까?”라는 기자의 질문에 “조금만 더 있으면 됩니다”라고 답했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죄 된 욕망이 우리를 타락과 멸망으로 이끄는 과정에서 우리가 가장 자주 넘어가는 속임수가 “조금만 더”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작은 악에 대해 “이 정도야 뭐!”하고 생각하며 손을 댑니다. 그리 대수롭게 보이지 않게 만들어 경계심을 놓게 만듭니다. 그 작은 악은 거대한 악으로 우리를 끌어 드리려는 미끼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합니다. 인지 하더라도 “언제라도 손을 떼면 되지”라고 생각합니다. 주체할 수 없는 욕망을 따라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서 분투하는 사람이나, 게으름의 욕망에 이끌려 “조금만 더…”라고 핑계 삼으며 나락으로 끌려 들어가는 사람이나, “이 정도야 문제 되겠어?”라고 생각하며 가지 말아야 할 곳에 발길을 두는 사람이나, 모두 죄 된 욕망에 속았다는 점에서 동일합니다. 그 방심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지점까지 그를 이끌고 갈 것입니다. 

마르틴 루터는 죄의 유혹을 뱀에 비유한 적이 있습니다. 뱀은 일단 머리를 집어 넣고 나면 결국 몸통 전체를 집어 넣고야 맙니다. 그것처럼 죄는 일단 머리만 집어 넣고 안심 시킨 후에 몸 전체를 집어 넣고 그 사람을 지배합니다. 그래서 “이 정도야 뭐”라는 생각이 들 때 화들짝 깨어 죄의 유혹을 물리쳐야 합니다.   


Comments

3 responses to “잠언 6장 1-19절: 조금의 유혹”

  1. 순간적이고 헛된 세상의 쾌락과 풍조에 끊임없이 곁눈질 하며 살아온 비천한
    존재입니다, 비록 헛된 소문을 남들에게 전하지 않지만, 비방하는 말들 듣기를
    좋아하며 어려움에서 시달리는 이웃을 무시하며 믿음의 교만을 갖고 살아
    왔습니다. 항상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를 감사하며 외롭고 소외된 이웃들과 같이
    사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세상 삶에 지친 이웃에게 위로와 소망을 안겨주는 오늘
    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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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achi049 Avatar

    사탄의 유혹에 미혹되어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선악과를 따먹으므로 인간의 죄성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인 인간을 너무 사랑하셔서 버려두시지 않으시고 지혜의 말씀을 주셔서 살게하셨습니다. 참으로 감사감사 할 뿐입니다. 주님! 오늘도 주신 지혜의 말씀대로 살기원하오니 성령님께서 동행하셔서 인도하옵소서.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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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6장은 이웃의 빚 보증 서는 일을 경고하는 말로 시작합니다. 만약 네 이웃에 빚 보증을 서고 다른 사람을 위해 증인이 되었다면 너는 네 말 때문에 덫에 걸린 것 (2절)이라고 잘라 말합니다. 무조건 덫에서 빠져 나오도록 애쓰라는 조언이 5절에 걸쳐 이어집니다. 그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뜻입니다. “네 눈이 잠들지 않게 하고, 네 눈꺼풀도 감기지 않게” 하라고 할 정도이니 죽을 힘을 다해 빠져 나오라는 말입니다. 현대인에게 채무 문제는 심각한 고통을 유발합니다. 어렸을 때 친정 어머니가 어렵게 모아둔 돈을 누군가 급하게 필요하다는 사람에게 빌려 주었다가 떼여서 괴로와하던걸 본 기억이 있습니다. 머리를 광목띠 같은 것으로 동여 매고 누워서 앓던 모습도 보았습니다. “까짓거 처음부터 없었던 셈 치고 살아야지” 이런 비슷한 말을 하며 일어나 다시 예전처럼 움직이던 것도 생각납니다. 시집 와서는 시어머님도 그런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두 어머니 다 빌려준 돈을 못 받아 괴로왔던 사람들이니 빚을 못 갚아 쪼달리거나 내몰린 형편이 아니라는 점에서 다행이라면 다행입니다. 그렇게 떼이고 나면 “절대로” 안 빌려 주게 되니 돈이 필요한 사람에겐 미안하지만 사람들과 돈으로 엮이는 일은 안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교훈을 몸으로 터득한 셈입니다. 6장은 게으름을 조심하라는 경고로 이어집니다. 조금 더 자고, 조금만 더 쉬자는 생각이 가난을 불러 온다고 경고 합니다. 프로테스탄트의 (노동) 윤리와 자본주의가 결합하는 순간을 목격하는 것 같습니다. 분명 ‘협박’은 아닌데, 은연 중에 가난을 죄악시하게 만드는 말씀으로 느껴집니다. 게으르면 가난하게 된다는 공식은 편리합니다. 그 공식을 갖고 있으면 가난한 이웃을 인격으로 보지 않아도 괜찮고, 그에게 신경쓰지 않아도 됩니다. 가난한 데는 이유가 있다, 본인이 노력하지 않는데 도와 줄 필요가 없다 등등의 논리로 정리하게 되니 편리합니다. 좀 더 묵상해 봐야 할 부분입니다. 6장은 다시 방향을 돌립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예닐곱 가지 행동이 나옵니다. 사람 사이에 분쟁을 일으키는 행동이요 사회악의 씨앗이 되는 일들입니다. 신자의 입장에선 기도 안하는 사람, 교회에 열심 내지 않는 사람, 의심 많은 사람…을 싫어 하실 것 같은데 저자는 종교색을 빼고 말합니다. 오늘 말씀은 세상에 피해야 할 함정이 많은 것을 알려줍니다. 타인과 엮이는 일에 신경을 써야 하니 피곤하게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도 주님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주님 도와주세요. 선한 의도를 갖고 시작하는 일도 어긋날 수 있고 곤경에 빠뜨릴 수 있다는 걸 압니다. 주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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