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지혜”는 히브리어로 ‘호크마’입니다. 호크마는 여성 명사입니다. 옛날 히브리 사람들은 지혜를 하나의 인격체로 보았습니다. 인격체로서의 지혜는 창조주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하나님은 지혜를 통해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우주의 운행과 생명 현상을 관찰하면 하나님의 섭리와 뜻이 발견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 지혜를 요한은 ‘로고스’라고 불렀습니다. “태초에 그 말씀(로고스)이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다. 그는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으니, 그가 없이 창조된 것은 하나도 없다”(요 1:1-3)
잠언의 저자는 ‘지혜 여인’이 성을 두루 다니며 자신을 따를 사람들을 찾는다고 말합니다(20-21절). “어수룩한 사람”과 “비웃는 사람”과 “미련한 사람”(22절)은 동의적 병행법에 따른 표현입니다. “미련한 사람”은 지적으로 결함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비뚤어진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가 미숙하고 도덕적으로 부패해 진 이유는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안다는 교만에 빠진 사람들은 지혜의 말씀을 경청하지 않습니다. ‘지혜 여인’은 그들에게 돌이키기를 요구하지만 그들은 듣지 않습니다(23-24절). 그들의 선택은 결국 그들의 삶을 재앙으로 이끌 것입니다. 그 때가 되면 그들은 ‘지혜 여인’에게 구원을 호소할 것입니다만, 이미 때는 지나가 버렸습니다(25-30절).
우주의 운행과 생명 현상은 ‘지혜 여인’이 창조한 것입니다. ‘지혜 여인’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것은 우주 운행의 원리와 생명 현상 안에 스며 있는 하나님의 창조 원리를 따라 사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에게 등 돌리고 자신의 욕망과 뜻을 따라 사는 것은 멸망을 자초하는 일이며, ‘지혜 여인’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것은 평안을 불러 오는 일입니다(31-33절). 하나님의 심판이 있기는 하겠지만, 실은 우리 자신의 선택으로 우리는 스스로를 심판하거나 축복하는 것입니다.
묵상:
잠언에서 가장 경계하는 부덕 중 하나는 교만입니다. 기독교 전통은 ‘일곱가지 대죄’ 중에 교만을 첫번째로 꼽았습니다. 교만은 자신이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결과로 생기는 사고 방식과 행동 방식을 말합니다. 자신이 자기 인생의 주인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이 생각하고 아는 것이 항상 옳다고 생각합니다. 알아야 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자신합니다.
교만이 신앙과 결합하면 ‘자기의’(self-righteousness)가 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영적 교만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죄 중에 자기의의 죄를 가장 심각하게 여기셨습니다. 자신은 이미 충분히 의롭게 되었다는 착각이 하나님의 은혜를 겸손히 구하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일반 사회에서도 “teachability”를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여깁니다. 자신에게는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하고 자기 생각과 고집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unteachable person)은 공동체에 암적 존재가 됩니다. 그런 사람이 한 공동체의 지도자가 되면 그 공동체는 순식간에 분열되고 와해됩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겸손히 인정하는 사람은 늘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우리고 배울 것이 없는지를 찾습니다. 그런 마음이기에 지혜의 말씀을 찾고 경청하고 연구합니다. 그 마음이 결국 하나님 앞에 겸손히 고개 숙이고 그분의 지혜를 구하게 만듭니다.
그것이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자신을 통히 모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길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교만을 선택하는 것은 재앙을 선택하는 것이고, 겸손을 선택하는 것은 복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사람의 마음이 오만하면 멸망이 뒤따르지만, 겸손하면 영광이 뒤따른다”(18:12)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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