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잠언에서 가장 자주 사용되고 있는 수사법은 “동의적 병행법”(synonymous parallelism)입니다. 같은 의미를 다른 단어로 반복하여 표현하는 히브리적 수사법입니다. “아버지의 훈계“와 ”어머니의 가르침“(8절)은 부모 혹은 조상에게서 전해져 내려 온 지혜를 가리킵니다. “아이들”은 4절에 나오는 “어수룩한 사람” 혹은 “젊은이”와 같은 뜻입니다. 지혜가 부족한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8절부터 19절의 잠언은 부모가 자녀에게 주는 당부로 읽을 수도 있고, 스승이 제자에게 주는 당부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잘 듣고”라는 말은 순종과 실천을 포함하는 의미입니다. 9절의 비유는, 지혜를 따르는 것이 아름다운 관을 쓰고 목걸이를 목에 거는 것처럼 그 사람을 빛나게 만들어 준다는 뜻일 수도 있고, 지혜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그것을 가장 귀한 보물로 여긴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10절부터 14절은 악인들이 어리숙한 사람을 죄악의 길로 유혹할 때 사용하는 속임수를 보여 줍니다. 그들은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을 공격하여 목숨을 빼앗고 그가 가진 물건들을 약탈하여 나누어 가지자고 말합니다. 그런 유혹에 휘둘려 그들의 악에 가담하면 걷잡을 수 없이 죄악을 범하게 됩니다(15-16절). 정말 어리숙한 사람은 그들입니다. 그들의 악행에 대해서는 반드시 심판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17-18절). 그들은 더 많은 재물을 얻으려고 폭력을 사용하지만, 그들이 얻으려는 그 재물이 그들을 파멸로 이끕니다(19절).
묵상: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 가지고 있는 큰 오해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분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자신을 구속하는 일이고 불행해지는 길이라는 오해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려는 사탄의 속임수요, 타락한 욕망을 따라 살아가고 싶어하는 우리의 고집 때문입니다. 죄악을 탐하고 즐기는 것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불행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또한 그것은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불러 오는 길입니다.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게 만드는 것은 실은 제 자신의 피를 흘리게 만드는 일입니다. 폭력으로 다른 사람의 재물을 갈취하는 것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분의 뜻을 따라 “정의와 공평과 정직”(3절)을 추구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참된 행복을 누리는 길이며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타락한 본성을 만족시키면 잠시 동안 쾌락을 맛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쾌락은 더 큰 갈증을 불러오고, 더 강한 만족을 요구하게 만듭니다. 약물 중독처럼 쾌락은 중독성이 있어서 결국 인생을 파멸로 이끕니다. 진정한 행복의 길은 타락한 본성을 다스리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가는 것입니다.
죄 된 본성의 힘이 강할 때는 그렇게 사는 것이 어렵습니다. 하지만 부단히 성령께 자신을 맡기고 그분의 뜻을 따라 살다 보면 본성의 저항은 약해지고 성령을 따라 사는 것이 즐거워집니다. 그렇게 되면 고갈되지 않는 평화와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그 평화와 기쁨은 전염성이 있어서 다른 이들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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