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1절부터 7절은 잠언 전체에 대한 서문입니다. 저자는 먼저 이 잠언이 솔로몬에게서 나왔다는 사실을 언급합니다(1절). 이 책에 수록된 지혜의 말들은 솔로몬에게서 나온 것만은 아닙니다. 하지만 분량으로 볼 때 솔로몬의 지혜가 제일 많고, 솔로몬은 지혜의 왕으로 인정 받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쓴 것입니다.
그런 다음 이 잠언의 목적에 대해 설명합니다. 첫째,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2절a). “지혜”(호크마)는 이스라엘의 현자들로부터 전해진 인생사와 세상사에 대한 통찰을 가리킵니다. “훈계”(무사르)는 지혜에 따른 삶의 방법을 가리킵니다. 지혜가 통찰력에 관한 것이라면 훈계는 삶의 방식에 관한 것입니다.
둘째,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려는 것입니다(2절b). 잠언에 기록된 말들은 선대의 지혜가 응축된 것입니다. 그 말들 속에 담긴 진리는 묵상과 기도를 통해 깨달아야 합니다. 한글의 “깨닫다”는 “깨쳐서 이른다”는 뜻입니다. 말씀의 외피를 깨뜨리고 그 안에 담긴 진실을 알아 보는 것이 이 책의 목적입니다.
셋째, “정의와 공평과 정직“을 따라 살아갈 수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정의”는 ‘짜디크’의 번역인데, “의” 즉 “올바름”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창조 질서에 따라 모든 것이 자신의 역할을 하면서 서로 어울리는 것을 말합니다. “공평”은 ‘미쉬팟’의 번역인데, “정의”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의” 즉 하나님의 질서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정직”은 ‘메사림’의 번역으로서 “공평함” 혹은 “평등함”으로 번역해야 합니다. 잠언의 말씀을 연구하게 되면 사회 생활 중에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따라 정의롭고 공평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된다는 뜻입니다.
넷째, 잠언은 “어리숙한 사람”과 “젊은이들”을 깨우쳐 성숙하게 만들어 줍니다(4절). “어리숙한 사람”과 “젊은이”는 동의어입니다. 인생사와 세상사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여 지식도, 지혜도, 분별력도 부족한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슬기로움”은 사려 깊은 태도를 의미합니다. “지식”과 “분별력”은 지혜로운 처신을 위해 필요한 두 개의 기둥입니다.
다섯째, 잠언은 “지혜 있는 사람”과 “명철한 사람”에게도 필요합니다. 그들을 더 지혜롭게 만들어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5절).
여섯째, 잠언은 다양한 양식으로 전해져 온 지혜 전승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할 것입니다(6절). “잠언”은 선대의 지혜가 농축된 경구들을 의미하고, “비유”는 ‘마샬’의 번역으로서 수수께끼를 의미합니다. 수수께끼는 고래로부터 지혜를 전하는 유익한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이 책에 기록된 말씀들을 읽고 연구하고 묵상하면 여러 가지 양식으로 전해진 지혜 전승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일곱번째로 저자는 잠언의 궁극적인 목적이 주님을 경외하는 것에 있음을 밝힙니다(7절). “근본”으로 번역된 ’레쉬트‘는 “시작”으로 번역할 수도 있고 “최고”라고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주님(여호와)을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섬기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모든 지혜와 지식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경건한 태도에서 시작되고, 모든 지혜와 지식은 하나님께 대한 경건한 태도를 더 심화시킵니다.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는 것은 불신앙에서 나오고 불신앙을 강화시키는 어리석음입니다. 이 어리석음은 하나님을 등지고 죄악을 즐기며 살게 만듭니다. 그래서 시편과 잠언에서 “어리석은 사람”은 지능이 부족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부정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묵상: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속담, 격언 혹은 수수께끼에는 삶의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오랜 세월을 지나 오면서 사람들의 입에서 회자 되면서 공감 되었기 때문에 남겨지고 전해진 것입니다. 그것들 중에는 시대적 상황이 달라져서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이 있지만, 여전히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것들이 더 많습니다. 요즈음의 표현을 사용한다면, 속담 혹은 격언에는 인간의 ‘집단 지성’이 농축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잠언에 수록된 지혜의 말들이 그렇습니다. 솔로몬을 비롯하여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혜자들이 남긴 말들 중에 후대 사람들에게 공감이 된 지혜의 말들이 선별되어 이 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만, 세속 격언이나 속담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잠언에 수록된 지혜의 말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그분의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들에게서 나온 것이고 그런 사람들에게서 공감을 얻은 것들입니다. 다시 요즈음의 말로 하자면, 명심보감과 잠언은 ‘세계관’에 있어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지혜 중에 지혜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고, 모든 지혜는 진리의 근원이신 하나님에게서 나온다는 믿음이 잠언의 세계관입니다.
알고 보면, 그것은 너무도 자명한 세상 이치이고 인생의 진실인데, 인류의 절대 다수는 하나님을 등지고 자신의 욕망을 따라 살기를 원합니다. 그것을 지혜로운 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그것이 가장 큰 어리석음이라고 말합니다. 진정한 지혜는 하나님을 하나님 답게 섬기는 것이고, 그럴 때 우리는 이 세상에서 의와 정의와 공평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이런 까닭에 새해에 잠언을 읽고 묵상하는 것은 너무도 적절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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