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3편: 우울의 늪에서 

해설:

원수들에게 당하는 고난으로부터 구원해 달라는 탄원의 기도가 계속된다. 1절과 2절에서 다윗은 “언제까지?”라는 말을 네 번 사용한다. 고난은 지속되고 있는데 하나님의 구원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상황에서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을 잊은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1절). 원수들로부터 받는 모함과 폭행보다 하나님께로부터 외면 당했다는 느낌이 그에게는 더 고통스럽다(2절).

그는 속히 웅답해 달라고 간구한다. 그렇지 않으면 “죽음의 잠”(3절)에 빠질까 두렵기 때문이다. 다윗은 지금 무거운 우울감에 짓눌려 있다. 혹시나 절망감 때문에 스스로 생명줄을 놓아 버리지나 않을까 두려워 떤다. 만일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의 원수들은 기고만장 할 것이 분명하다. 그 광경을 상상하니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아서 그는 뜨거운 심정으로 간구한다(4절).

4절과 5절 사이에는 시간적인 간격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1-4절에서 다윗은 절망감 가운데서 간절한 기도를 드렸고, 그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회복했다. 그는 결국 “주님께서 구원하여 주실” 것을 믿게 되었고, 그래서 그는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헤세드)을 놓지 않는다(5절). 그는 이미 구원을 받은 것으로 여기고 주님께 찬양을 올리겠다고 결단한다(6절).

묵상:

우리가 신앙의 위인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 우울증에 시달렸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종교 개혁자 마르틴 루터,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를 작사한 윌리엄 쿠퍼, 부흥 설교자 찰스 스펄전, 마더 테레사, 마르틴 루터 킹 주니어 등이 그랬습니다. 이들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거대한 싸움을 치뤘던 사람들입니다. 치열한 외적 싸움으로 인해 그들은 우울증이라는 내상을 입었습니다. 그로 인해 그들은 때로 하나님의 부재를 경험하기도 했고, 정서적으로 깊은 우울의 늪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마음의 질병(우울증, 조현병, 정신분열증 등)을 믿음이 없어서 생기는 병이라고 판단하고 정죄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에게 버림 받은 것 같은 ‘영혼의 어두운 밤’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다윗은 이 짧은 시편에서 ‘영혼의 어두운 밤’을 경험하면서 우울의 깊은 늪에 빠졌던 경험을 적어 놓았습니다. “언제까지입니까?”라는 절규를 거듭 반복할 정도로 그는 깊은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3절의 표현은 그가 생명줄을 놓고 싶은 지경에까지 이르렀었다는 사실을 짐작하게 합니다. 

다행히 그는 간절한 기도를 통해 우울의 늪에서 헤어 나왔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헤세드’의 사랑을 계속 붙들기로 다짐합니다. 그를 에워싸고 있는 문제보다 하나님이 더 크신 분임을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도 ‘영혼의 어두운 밤’을 지난 적이 있는데, 그 어둠 가운데 하나님께서 같이 계셨음을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질병은 믿음이 없어서 생기는 병이 아니라 믿음을 흔드는 병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내가 흔들릴 때에, 나의 대적들이 기뻐할까 두렵습니다”(4절)라고 고백했습니다. 믿음이 흔들릴 때가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더욱 단단히 붙잡을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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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responses to “시편 13편: 우울의 늪에서 ”

  1. 온세상과 많은 지인들과 친족들이 주님을 등지고 세속의 탐욕과 쾌락과 권세를 따르고 있습니다, 더 번영하고 교활한 시험과 유혹이 점점더 심해저갑니다. 악인이 형통하고 성도들이 멸시 천대를 받는 세상에 살고있습니다. 저희들의 믿음의 기도가 탈진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신실하신 사랑의 주님을 꼭 붙잡고 항상기뻐하고 쉬지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여 근심 걱정 두려움 우울증에 빠지지않게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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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시편의 주요 저자로서 다윗왕을 볼 때와 사무엘상과 열왕기상이 그리는 다윗왕을 읽을 때의 느낌이 좀 다릅니다. 역사책의 다윗의 행적이 다 사실인지 혹은 과장 섞인 계도성 목적의 편집인지 모르겠지만 그의 시를 읽을 때 드는 느낌은 커다란 숲속에서 길을 잃은 여행자, 엄마 품을 그리워하는 어린 아이, 고단한 짐을 짊어진 노인을 보는 듯한 쓸쓸함과 서글픔입니다. 모든 독서는 자전적이어서 어떤 글이든 독자의 일인칭적 시각과 해석을 피할 수 없습니다. 다윗의 시를 읽는 중에도 나는 여전히 나인겁니다. 다윗의 언어와 감정을 담은 시 속에서 나의 언어와 감정을 발견하는 일은 문학의 힘이고 역할입니다. 예술이 인류의 공통 언어가 되는 까닭입니다. 조선시대의 산수화를 보며 고향이 떠오르는 것이나, 피카소의 기이한 얼굴 그림을 볼 때 느끼는 불편함은 각각 동의와 반대의 뜻이 담긴 독자의 반응입니다. 이게 뭐지? 왜 삼각형이지? 얼굴 안에 다른 얼굴이 있네? 피카소의 초상화를 보고 나면 우리 안에는 초상화에 대한 자료가 하나 더 늘어납니다. 자료가 늘어난다는 것은 지식이 늘어나는 것이고, 경험과 해석도 그만큼 늘어납니다. ‘다다익선’의 덕을 보는 분야가 예술입니다. 그래서 창작의 정신은 보호 받아야 합니다. 문학과 예술의 경험이 부실해질수록 우리의 내면도 같이 얄팍해집니다. 다윗의 삶은 – 성서 속 여러 인물이 그러하듯 – 굴곡이 많은 삶입니다. 극에서 극으로 치우친 삶입니다. 아들이 여덟인 집안의 막내로 태어나 열 두 지파를 통일한 통일국가의 왕이 됩니다. 사울 왕이 아플 때 곁에서 노래 연주로 달래주었다는 다윗을 상상하면 비엔나 소년 합창단 소리가 떠오릅니다. 풀과 이슬 만 먹고 살았을 그런 소년도 끝에는 추운 몸을 데워줄 소녀가 필요한 늙고 쇠약한 노인이 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칭송을 받으면서도 죄악의 화염에서 피하지 못한 실패한 인간입니다. 우리 독자에겐 그의 실패가 위안이 될지 모르지만 본인은 살았으나 죽은 것 같은, 스올의 시간이었습니다. 다윗의 시에 완전히 동화되거나 공감하지 못한다면 그건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릅니다. 그만큼 상처가 깊지 않다는 뜻일테니까요. 다윗은 ‘언제까지’ 냐고 네 번씩이나 물었는데 나는 조금 빨리 도움을 받은 것 같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내 아픔이 다윗보다 덜 한 것 같으니 감사한 일입니다. 시편이 있는 이유가 이걸까요. 독서에 대해 C.S. Lewis 가 남겼다는 명언이 있습니다. “We read to know we are not alone.” 우리는 혼자가 아니란걸 알기 위해 책을 읽는다. 다윗의 자전적 시와 나의 자전적 읽기가 ‘우리’를 만들고, ‘우리’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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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fully39f6bbe2e9 Avatar
    fully39f6bbe2e9

    241228 시편13

    “그러나 나는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의지합니다. 주님께서 구원하여 주실 그 때에, 나의 마음은 기쁨에 넘칠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너그럽게 대하여 주셔서, 내가 주님께 찬송을 드리겠습니다.”

    ‭‭시편‬ ‭13‬:‭5‬-‭6‬ ‭RNKSV‬‬

     시편13편에는 고통 가운데에 있는 시편기자가 간절히 하나님을 찾는 모습이 나온다. 자신의 상황이 나아지지 않고, 지속되는 어려움으로 인해 원수가 승리의 개가를 부르게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마져 있게 되는 것을 본다.

     미국에 살고 있지만, 내 나라의 어려운 상황를 보고 있으면 시편 기자의 마음이 어떠한 것인지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정의와 법치를 수호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또 얼마나 많은 희생을 통해 이루어지는지를 깨닫게 된다. 악과 거짓이 득세하고, 그것이 점차 상식이 되어가는 것은 아닌가 두려운 마음이 엄습해오기도 한다. 

     그러나 시편 기자는 어려운 상황에서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의지’한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그의 기쁨은 ‘주님의 구원’으로 부터 온다고 말한다. 

     누구나 어려운 상황속에서 그 문제가 해결되고, 바른 길로 가기를 간절히 원할 것이다. 그러나 잘 되어가는 것 같을 때도 문제는 언제든 발생하기 마련이다. 아무 문제 없이 평탄해보여도 그 속을 들여다보면 썩어있는 곳이 한두군데가 아니다.

     우리 사회도 단기간내에 이룬 경제성장과 국제사회에서의 높아진 위신이 우리의 상태를 대변해 준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부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부정부패는 결국 공든탑을 무너뜨리게 되었다. 썩고 고름난 부분을 도려내기 보단 적당히 덮어두고 괜찮다고 말한 결과이다. 따라서 보여지는 현상에 믿음을 두게 되면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을 내 문제를 해결해주는 해결사 정도로만 믿는다면, 내 안에 해결되지 않은 근본적인 문제와 죄성이 결국 발목을 잡게 될 것이다.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유일하신 하나님.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은 변하지 않는 분이시다. 그분은 늘 한결같은 사랑으로 나를 붙드시고, 인도하시는 분이시다. 그 사랑안에 거하며, 구원의 기쁨을 회복할 때, 우리의 상황과 환경을 뛰어넘어 일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나의 어려움의 상황, 조국의 어려움의 상황 속에서 손을 높이 들고 주님을 찬양하자. 한결같은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시도록,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오늘도 나와 이 땅을 다스리시도록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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