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7편: 재앙의 씨앗

해설:

“식가욘”은 문학 양식에 관한 표현으로 보인다. “베냐민 사람 구시”에 대해서는 성경의 다른 곳에 언급되지 않는다. 다윗이 쫓기고 있는 상황임을 고려한다면, “베냐민 사람”이라는 말은 사울 집안 사람 혹은 사울의 신하일 가능성이 크다. 사울에게 쫓겨 다닐 때의 상황에서 드린 기도로 보인다.

먼저 다윗은 자신을 추적하는 사람들로부터 보호해 달라고 기도한다(1-2절). 6편에서 다윗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고백하면서 하나님께 도움을 호소했는데, 여기서는 자신이 결백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실제로 다윗은 아무 잘못 없이 사울의 시기심으로 인해 쫓겨 다녀야 했다. 그는 자신이 그럴 만한 잘못을 했다면 하나님께서 처분하시는 대로 벌을 받겠다고 말한다(3-5절). 

다윗은 모든 민족의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사정을 보시고 판정해 달라고 간구한다(6-8절). 주님은 “의로우신 하나님”이며 “사람의 마음 속 생각을 낱낱이 살피시는 분”(9절)이시다. 또한 그분은 “공정한 재판장이시요, 언제라도 악인을 벌하는 분”(11절)이시다. 개역개정은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번역해 놓았다. 그런 분이기에 의로운 사람은 하나님께 피신한다. 그분은 “마음이 올바른 사람에게 승리를 안겨 주시는 분”(10절)이기 때문이다. 반면, 그분은 악인들에 대해서는 심판을 준비하고 계신다(12-13절).

사실, 악인들은 스스로 화를 자초한다. 그들의 악은 마음에서 시작하여 손과 발로 표현되고 그 악행은 재앙을 초래한다(14절). 하지만 그 재앙은 그들 자신에게 가장 먼저 해를 입힌다(15-16절). 하나님께서 세상 이치를 그렇게 만들어 놓으셨기 때문이다. 

그것을 생각한다면 “주님의 의로우심을 찬송하고 가장 높으신 주님의 이름을 노래”(17절)할 수밖에 없다.

묵상:

“악인은 악을 잉태하여 재앙과 거짓을 낳는구나”(14절)라는 말은 “죄의 현상학”에 대한 결론입니다. 사회적 불의와 부정은 개인들의 악행으로 인해 생겨난 현상이고, 개인의 악행은 그의 마음 속에서 시작됩니다. 그래서 시편 1편 1절에서 악인의 꾀를 따르지 말라고 충고하고 있습니다. 마음에 악한 생각을 품는 것에서 사회적 재앙은 시작되는 것이고, 사회적 재앙은 가장 먼저 악을 행한 사람에게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불의와 부정 그리고 사고와 재난을 보면서 다른 사람을 탓하는 것은 쉽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거대한 악이 실은 개인개인의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악의 가능성은 나 자신에게도 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죽음을 낳습니다”(약 1:15)라고 했습니다. 솔로몬은 “그 무엇보다도 너는 네 마음을 지켜라. 그 마음이 바로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이다”(잠 4:23)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시 19:14)라고 기도했습니다.

이 말은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거대한 악을 보고도 모른체 하고 자기 수양만 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소시민으로서 사회의 불의와 부정을 개선하기 위해 할 일이 있다면 행해야 합니다. 하지만 외부에 있는 거악을 보느라 자신 안에 있는 거악의 씨앗이 자라도록 내버려 두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도 행해야 하지만 저것도 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길입니다.   


Comments

2 responses to “시편 7편: 재앙의 씨앗”

  1. 죄와 악이 번영하는 부조리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성도들을 멸시하고 교회를 비방하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허락하신 십자가를 지고 주님뒤를 따르기를 원합니다. 말씀을 가지고 각자의 삶의 영역에 나가서 빛과 소금이 되는 사귐의 소리 식구가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말씀이 육신이 되신 어린양 예수님이 공평의 재판관으로 오시는 대림절입니다. 오랜만에 대학 다니는 손자가 face time 으로 전화해 성경을 같이 읽고 싶다고 해서 기쁘고 축복된 시간을 갖도록 허락하신 은혜의 하나님께 영광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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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미국인 소설가면서 생활 수필도 많이 발표한 앤 라못 Anne Lamott 의 책 가운데 “Help Thanks Wow”가 있습니다. 삶이 힘들 때, 마음이 괴로울 때 이 세가지를 기억하라는 뜻에서 나온 제목입니다. 이 세 단어로 모든 기도를 설명할 수 있다는 뜻도 됩니다. 헬프(도움)는 나를 도와주소서의 뜻이지만 그것 뿐이지 않습니다. 타인을 도와주는 일,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행동은 자기 자신을 돕는 일이 됩니다. 타인을 도왔는데 기쁨은 내게 오더라는 뜻입니다. 시편의 기도 속에도 이 세가지가 들어 있는 것을 봅니다. 시인은 주님께 도와달라고 간청합니다. 시편의 거의 모든 시가 나를 구해주소서, 악을 멸해 주소서 입니다. 감사합니다, 찬양합니다 입니다. 얼마나 놀라운지요, 와우! 사람의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하는 시도 많이 들어 있습니다. 시편은 어려운 책이 아닙니다. 어려운 단어나 복잡한 수사가 거의 없습니다. 괴로운 마음으로 썼는지, 해결이 되어 가뿐해진 마음으로 쓴 시인지 읽으면 알 수 있습니다. 시 하나에 여러 감정이 들어 있지만 복잡한 구조라서 혼란스러워 지지는 않습니다. 놀라운 것은 단순하고 투명해 보이는 시인데, 몇 줄 안되는 짧은 글인데, 바닥을 알 수 없이 깊고 깊은 우리의 마음을 충분히 담아낸다는 점입니다. ‘시의 힘’이라는게 그런 건지도 모릅니다. ‘말 없이’ 해야 할 말을 다 하는 능력이 시의 능력인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흔히 듣는 말 중에 ‘살아온 이야기를 책으로 쓰면 몇 권이 될거야’가 있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몇 권 씩 되는 이야기를 안고, 지고 삽니다. 예전엔 ‘사연이 있는 여자’처럼 보인다는 표현이 다소 부정적인 뉘앙스였는데 그건 사회적 편견이기도 했습니다. 미국 대학에 내는 입학 지원 에세이는 살아온 사연을 적으라는 주문입니다. 살면서 겪은 어려움, 평범한 일이었는데 교훈으로 남은 일, 사회 인습이나 원리에 맞서야 했던 일…등등을 적으라고 합니다. 17세, 18세 학생에게 그 무슨 ‘사연’이 많겠습니까만, 대학은 그런 질문을 통해 학생에게 삶을 성찰하는 태도가 있는지를 보고 싶은겁니다. 에세이를 쓰되 몇 자 내외로 쓰라는 제약도 줍니다. 자기 얘기를 몇 권의 책으로 쓰는 게 능력이 아니라, 짧은 글로 정리하는 게 진짜 능력이라는 뜻도 됩니다. (책을 출판할 때 편집자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 그런 의미에서 시편은 정말 많은 것을 느끼게 합니다. 시를 쓴 시인은 따로 있지만 읽는 우리도 어느새 그 시의 시인이 되어 있습니다. 시인은 우리의 친구이기도 하고 대변인이 되기도 하고, 또 상담자가 되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그런 것처럼 시편의 시가 우리에게 그런 의미로 남습니다. 오늘 시에서 선과 악의 싸움을 봅니다. 타인을 향해 품는 생각은 종종 자신을 향한 생각이기도 한 것을 봅니다. 선하고 아름다운 것을 구하고 말하게 하소서. 우리를 홀로 두지 않으시는 주님, 감사합니다. 친구로, 스승으로 우리를 찾아 오시는 주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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