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서 50장: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

해설:

1절부터 3절까지에서 하나님은, 유다 백성이 바빌론으로 끌려 간 것은 그들의 죄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 주님은 수사적 질문을 거듭 반복하여 그들의 입을 막으신다. 그들이 멸망한 것은 그들을 보호할 능력이 하나님에게 없어서가 아니라, 그들의 완고한 고집으로 인해 일어났다(1-2절). 그것은 마치 “굵은 베로 하늘이 가려지는”(3절) 것 같은 일이 될 것이다.

4절부터 9절까지는 ‘세 번째 종의 노래’다. 앞에서 본 것처럼(42:1-9; 49:1-6), 여기 나오는 종은 이사야 자신을 가리키는 것 같기도 하고 이스라엘 민족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통해 온전히 성취 되었다. 

야훼의 종은 “학자처럼”(4절)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지친 사람들을 격려해 줄 것이다. 그 종은 하나님께 철저하게 순종하신다(5절). 그 순종으로 인해 그 종은 모욕과 박해를 당할 것이나(6절),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는 까닭에 꺾이지 않고 끝까지 주님의 뜻에 순종할 것이다(7절). 야훼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시는 사람을 고소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8-9절).  

10절에서 이사야는, 주님을 경외하며 그의 종에게 순종 하라고 촉구한다. “불을 피우고, 횃불을 들고 나섰다”(11절)는 말은 이방 종교 의식을 가리킨다. 우상 숭배로 인해 그들 자신이 재앙을 만나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묵상:

세 번째 종의 노래에서도 예수님에게 일어난 일들이 보입니다. 그분은 당신에게 기름 부어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바로 잡으시고 구원 계획을 이루실 것을 믿었기에 그분은 이 땅에서 모진 모욕과 수치와 고난을 끌어 안으셨습니다. 그 결과로 그분은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신뢰한 결과로 수치스러운 죽음을 당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분이 죽기까지 신뢰했던 하나님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분을 일으키셨습니다. 하나님이 옳았고, 그분을 죽기까지 신뢰했던 예수님이 옳았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입니다.

이사야는 묻습니다. “너희 가운데 누가 주님을 경외하며, 누가 그의 종에게 순종하느냐?”(10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종에게 순종하는 것은 예수님처럼 묵묵히 고난을 감당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사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각자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워 이기려는 것이 우리 모두의 본능입니다. 

그렇기에 이사야의 이 질문은 지금도 허공에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과연 스스로의 힘으로 강자가 되기를 사양하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믿고 신뢰하며 약자의 자리에 서는 편을 택할 믿음이 우리에게 있는지를 묻습니다.  


Comments

3 responses to “이사야서 50장: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

  1. 할머니를 통해 부모를 통해 교회를 통해 계속해서 말씀하신 주님을 믿지못하고 어둠에서 방황했던 도저히 희망이 없던 죄인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보혈을 지나 아버지 품에 안기도록 인도하신 거룩한 영께 감사를 드립니다. 지금부터라도 십자가의 길에서 벗어나지않고 허락하신 십자가를 지고 주님뒤를 따르도록 도와주십시오. 세상의 시험과 유혹이 너무나 강합니다. 도와주십시오, 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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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오늘 50장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주의 종’이 누구일까, 누구를 가리킬까입니다. 주의 종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보다 주의 종이 하는 일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는 묵상을 하기도 했지만, ‘주의 종’이라는 말이 주는 느낌이 워낙 묵직해서 잠시 또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누가복음서 1장에는 천사가 마리아를 방문해서 예수님의 탄생을 예언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기서 마리아는 자신을 주님의 여종이라고 부릅니다. 마리아 뿐 아니라 성경 곳곳에 자신을 ‘종’이라고 부르는 대목이 있습니다. 다스리는 자와 다스림을 받는 자의 관계가 주종의 관계입니다. 종교적 색채가 짙으면 하나님과 백성의 관계로 주-종을 이해하고, 정치 형태를 기초로 하면 지배자-피지배자로 이해합니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는 국민 (유권자)이 국가의 주인이라고 말합니다. 선거철이 되면 유권자들에게 큰 절을 하면서 자기를 ‘종,’ ‘머슴,’ ‘일꾼’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선출되면 주인인 국민의 뜻을 따르겠다는 서약도 하지만 정말 그렇게 하는지…입이 쓰기만 합니다. 교회 안에서는 목사님을 ‘주의 종’이라고 부릅니다. 이의를 달지 않습니다. 목사님을 하나님처럼 생각한다는 말이 여기서 시작했나 싶기도 합니다. ‘누가 주의 종에게 복종하느냐?’ 묻는 50장 10절에서 목사님을 받들고 순종한다는 일상적인 표현이 나온걸까 싶습니다. 누가는 천사와 마리아의 대화를 왜 기록했을까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 처녀 – 연령적으로도 미숙했을-였으나 천사에게 한 답을 보면 매우 성숙했습니다. 천사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고 답한걸까, 싶게 선선히 답을 합니다. 순종하는 여종의 이미지가 각인되는 순간입니다. 주의 종은 누구일까요. 이 시대에 주의 종은 누구이고,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이디오피아 환관이 이사야서를 읽던 중에 빌립을 만납니다. 그는 이사야서 53장에 나오는 주의 종이 누구에 관한 이야기인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이사야 본인이냐고, 아니면 제3자를 뜻하냐고 묻습니다. 빌립은 예수님이라고 답했을 것입니다. 환관은 세례를 받고 자기 나라로 돌아가 예수님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예수님의 새 나라를 꿈꾸고 나누었을 것입니다. 주의 종이 누구냐고 물었던 그가 이후로는 주의 종으로 살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주의 종이 누구인가를 묻는 질문은 또 다시 주의 종이 하는 일은 무엇인가로 돌아갑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을 사는 사람. 주님을 주인으로 고백하고 그렇게 사는 사람. 예수께 곁을 내주지 않는 세상을 정죄하고, 미워하고 무시하라면 좋겠는데 오히려 용서하고 사랑으로 품으라시니 참 어렵습니다. 손해도 보고 억울함도 당할거라고 하시니 더더욱 싫습니다. 그렇게 살기가 어렵다는 걸 아시는 주님, 그렇지만 매일 조금씩이라도 순종하기를 원하시는 주님, 도와주세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이끌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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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41125 이사야 50장

    “주 하나님께서 나를 학자처럼 말할 수 있게 하셔서, 지친 사람을 말로 격려할 수 있게 하신다.
    아침마다 나를 깨우쳐 주신다. 내 귀를 깨우치시어 학자처럼 알아듣게 하신다.
    주 하나님께서 내 귀를 열어주셨으므로, 나는 주님께 거역하지도 않았고, 등을 돌리지도 않았다.”
    (사 50:4-5)

    이사야 선지자는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고, 깨달을 수 있는 것이 하나님께서 깨우쳐 주시기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한나가 주님 앞에서 계속 기도를 드리고 있는 동안에, 엘리는 한나의 입술을 지켜보고 있었다.
    한나가 마음 속으로만 기도를 드리고 있었으므로, 입술만 움직이고 소리는 내지 않았다. 그러므로 앨리는, 한나가 술에 취한 줄로 생각하고, 그를 꾸짖었다.
    “언제까지 술에 취해 있을 것이오? 포도주를 끊으시오”.”(삼상1:12-14)

    사무엘상에서는 ‘한나’의 이야기가 나온다. 아이가 없던 한나는 남편의 또 다른 아내인 브닌나로 부터 업신여김을 당했다. 남편 엘가나에게 사랑받는 아내였지만, 매번 브닌나로 부터 아이가 없다는 이유로 무시를 받는 설움은 한나가 하나님 앞에 간절하게 나아가는 통로가 되었다. 그렇게 간절히 성전에 기도할 때에, 그녀를 본 엘리 제사장은 한나가 술에 취해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금주할 것에 대해 제안한다.
    한나와 엘리 제사장이 한 두해 보아온 상황도 아니였을텐데, 엘리 제사장은 지금 한나의 영적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가 무엇을 위해 간구하는지는 모를 수 있으나 한나가 술해 취한 것인지 기도하고 있는 것인지도 분별하지 못하는 엘가 제사장을 보면서 그가 얼마나 타락했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아니다 다를까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을 보면, 이 때 당시 엘리 제사장과 그의 가정의 영적상태를 알게 된다.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빴다. 그들은 주님을 무시하였다.
    제사장이 백성에게 지켜야 하는 규정이 있었는데, 그들은 그것도 무시하였다. 누군가가 제사를 드리고 그 고기를 삶고 있으면, 그 제사장의 종이 살이 세개 달린 갈고리를 들고 와서,
    냄비나 솥이나 큰 솥이나 가마솥에 갈고리를 찔러 넣어서, 그 갈고리에 걸려 나오는 것은 무엇이든지 제사장의 몫으로 가져갔다. 실로에 와서 주님께 제물을 바치는 이스라엘 사람이 모두 이런 일을 당하였다.” (삼상2:12-14)

    “엘리의 아들들은, 주님께서 보시는 앞에서 이렇듯 심하게 큰 죄를 저질렀다. 그들은 주님께 바치는 제물을 이처럼 함부로 대하였다.”(삼상2:17)

    “엘리는 매우 늙었다. 그는 자기 아들들이 모든 이스라엘 사람에게 저지른 온갖 잘못을 상세하게 들었고, 회목 어귀에서 일하는 여인들과 동침까지 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래서 그는 그들을 타일렀다.”(삼상2:22-23)

    엘리의 아들들은 하나님께 바쳐지는 제물을 함부로 손대고, 하나님을 무시했다. 그리고 서슴치 않고, 음란한 죄를 짓기를 반복하는데도 그저 타이르기만 하였다. 부모로서 아들들을 하나님 말씀을 따르도록 가르치지 않은 엘리 제사장은 자식들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하여 지고 있어도 그저 타이르는 것에만 그쳤다. 엘리 제사장이 이미 하나님 경외하는 마음이 없었기에, 그의 행실을 아들도 따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한나의 기도의 열매인 아들 ‘사무엘’을 세우시기로 작정하셨다.
    “한편, 어린 사무엘은 커 갈수록 주님과 사람들에게 더욱 사랑을 받았다.”(삼상2:26)

    엘리의 아들들인 홉니와 비느하스와 다르게 사무엘은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자라갔다. 그리고 하나님은 어린 사무엘을 부르셨다. 그는 이전에 한번도 그런 경험을 하지 못했기에 처음엔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사무엘을 세번이나 부르시며 말씀하셨다.

    “그런 뒤에 주님께서 다시 찾아와서 곁에 서서, 조금 전처럼
    “사무엘아, 사무엘아!” 하고 부르셨다. 사무엘은 “말씀하십시오. 주님의 종이 듣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삼상 3:10)

    엘리 제사장과 홉니와 비느하스는 ‘제사장’이라는 부르심 앞에 누구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깨어있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악한 길을 선택했다. 귀와 눈을 막고,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한 자들이었다.
    그러나 사무엘은 이전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던 사람이었으나, 하나님이 말씀하셨을 때 그 음성을 들었다. 그리고 사무엘이 제사장이 된 이후에도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며 살았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을 얼마나 많이 듣느냐 보다 얼마나 ‘진실되게 반응하느냐’ 이다. 귀로 많이 듣는다고 해도, 순종하지 않고 죄로부터 돌이키지 않는다면 그것은 듣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더라도 하나님 앞에 진실됨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언제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수 있다. 그리고 성령님은 이 때에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깨닫게 하신다.

    자신의 수단과 목적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은 죄이다. 하나님은 그것을 ‘악하다’고 말씀하신다. 우리의 의지와 노력으로는 다 알 수 없는 비밀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성령님께서 가르쳐 주셔야 한다. 그러하기에 어린 사무엘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고, 반응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거나, 등을 돌리지 않을 것이란 것을 아셨다. 그래서 그의 귀를 열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듣게 하셨고, 학자처럼 지혜있게 말하게 하였으며, 지친 사람들에게 격려할 수 있는 말을 하게 하셨다.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었던 비결은 그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마다 ‘아침마다 깨우쳐 주시는 하나님’을 만난 것으로 부터 왔다.

    나는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든 순종할 준비가 되었는가?
    그리고 나는 아침마다 깨우쳐주시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오늘도 이 묵상을 통해 말씀하시고, 깨닫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이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고백한다.

    아침마다 깨우쳐 주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자.
    그리고 오늘도 부족하지만, 들을 자격 없는 자이지만 하나님을 찾는 나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만나주시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감사하자.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저를 바라리라 하도다 무릇 기다리는 자에게나 구하는 영혼에게 여호와께서 선을 베푸시는도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
    (예레미야애가 3: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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