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서 49장: 종의 정체

해설:

1절부터 6절까지는 ‘두번째 종의 노래’라 불린다. ‘첫번째 종의 노래’는 42장 1-9절에 나온다. 여기서는 야훼의 종이 일인칭(“나”)으로 자신에 대해 설명한다. 그는 모태에서부터 종으로 선택되었다(1절). 주님께서는 그가 세상에 나타날 때까지 숨겨두고 날카로운 칼과 화살로 만드셨다(2절). 주님께서는 그를 통해 자신의 영광을 드러낼 것이라고 하셨으나 종 자신이 볼 때는 실패한 것 같았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해 구원을 이루셨다(3-4절). 그것은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주님께서 그를 종으로 선택하시고 그에게 능력을 주셨기 때문이다(5절). 그 종을 통해 이스라엘이 회복되는 것은 시작일 뿐이다. 그 종을 통해 땅 끝까지 구원이 미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다(6절).    

7절부터 12절까지는 포로로 잡혀 간 유다 백성이 회복될 것에 대한 예언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속량자”이며 “거룩하신 주님”이시며 “신실하신 주”(7절)이시다. 그분이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실 것이다. 그들이 구원해 달라고 간구할 때 주님께서는 응답하실 것이다(8절). 갇혀 있던 사람들은 풀려날 것이고, 메말랐던 산도 푸르게 변할 것이다(9-10절). 그 때 주님은 큰 길을 만들어 내시어 흩어진 모든 백성이 돌아오게 할 것이다(11-12절).

때로 예언자들은 미래의 사건이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표현하곤 한다. 그것을 “예언적 완료시제”라고 부른다. 13절이 그 예다. 이사야는 그토록 분명하게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지만, 유다 백성은 그 약속을 믿지 못하고 절망에 빠져 있다(14절). 하나님은, 어머니가 자식을 잊을 없는 것처럼 절대로 그들을 잊지 않겠다고 말씀하신다(15절). 우리가 어떤 사람을 잊지 않기 위해 그 사람의 이름을 손바닥에 써 두는 것처럼,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그렇게 기억하신다(16절).

주님께서 약속을 지키시는 날에 그들을 정복 했던 사람들은 모두 사라져 버리고 황폐 했던 성읍은 모두 회복될 것이다(17-19절). 그뿐 아니라, 잃은 줄로만 알았던 자녀들이 모두 돌아올 것이다(20-23절). 지금으로서는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상상할 수 없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 일을 이루실 것이다(24-25절). 그 때가 되면 주님이 이스라엘의 “구원자요 속량자요 야곱의 전능자”임을 모두가 알게 될 것이다(26절). 

묵상:

‘두번째 종의 노래’에서 “나”의 정체는 모호합니다. 전체적으로는 한 개인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3절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야훼의 종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한 사람으로 간주하여 표현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이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는 주체이면서 동시에 객체일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의 “나”는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운명을 짊어진 한 개인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 노래가 미래에 나타날 다윗같은 왕에 대한 예언이라고 해석했습니다. 마카비 같은 탁월한 지도자가 나타날 때마다 야훼의 종에 대한 예언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첫번째 종의 노래에서와 마찬가지로 두번째 종의 노래에서도 야훼의 종은 이스라엘을 회복시킬 뿐 아니라 모든 민족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는 사람으로 묘사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땅 끝까지 나의 구원이 미치게 하려고, 내가 너를 ‘뭇 민족의 빛’으로 삼았다”(6절)고 말합니다. 

이 종의 정체는 ‘세번째 종의 노래’(50:4-9)와 ‘네번째 종의 노래’(52:13-53:12)에서 더 분명히 드러납니다. 그 종은 이스라엘과 온 인류의 구원자로 택함 받아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즉 메시야를 가리킵니다. 그분은 고난의 종으로서 모든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 희생 되셔서 이스라엘에게 맡겨졌던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이루실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빌 2:6-8)라고 고백했을 때, 그는 이사야가 예언한 야훼의 종의 노래가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고백한 것입니다. 


Comments

3 responses to “이사야서 49장: 종의 정체”

  1. 창세전부터 영혼구원을 위해 온세상의 죄를 감당하실 고난의 종 예수그리스도를 허락하신 은혜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멀리 떨어져있는 백성들을 불러모으시고 회복시키시는 약속을 꼭 붙잡고 감사하며 기다리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주님은 구원자요 속량자요 야곱에 전능자 이신것을 고백하는 아침입니다. 감사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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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어제 미국 여선교회 임원수련회 강의 중에 월터 브루그만의 ‘예언자적 상상력’이 언급되었습니다. 예언자의 과제로 비판 (prophetic criticizing)과 격려 (propheric energizing) 를 꼽을 수 있습니다. 비판은 애통함으로, 격려는 희망으로 바꿔 말할 수 있겠습니다. 구약의 선지자/예언자에게는 현실의 고통, 특히 빈곤과 법적 투쟁 등으로 지친 이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애통함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다니던 교회 목사님은 예언자들의 애통함이 우리 말 ‘애간장이 녹는다, 애간장이 끊어진다’와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라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나는 그 표현을 들을 때마다 ‘어머니’를 떠올렸습니다. 자녀의 안부를 염려하는 엄마의 심정, 아픈 사람, 배곯는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엄마의 공감력이 떠올랐습니다. 예언자의 비판은 현실 세계의 불의와 악의 횡포에 대한 비판이자 체제의 수레바퀴에 깔린 사람들의 신음에 귀기울이는 행동입니다. 대안적 미래와 새 세상을 꿈꾸게 하고, 그 꿈이 현실이 될 수 있게 돕는 것이 예언자가 하는 격려일 것입니다. 브루그만은 현대 사회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소외화, 주변화를 지적하며 개인 욕망의 극대화가 일으키는 탐욕과 지배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는 예언자적인 상상력이 모든 신자들에게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예언자적 상상력은 영적 감수성이기도 합니다. 미국 전역에서 모인 임원들은 각자의 교회와 지역에서 일어나는 커뮤니티 활동을 소개하고 나눴습니다. 교회 건물의 일부를 홈리스들의 거주 공간으로 전환하는 (교인 감소로 인해 쓰지 않는 공간이 생긴 교회들) 일을 하는 데도 있고, 여성 수감자들과 그들의 자녀들을 돌보는 일에 정성을 기울이는 교회도 있었습니다. 그런 나눔을 들을 때마다 나는 특별히 할 말이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 한인교회들도 선교와 전도에 열정을 갖고 열심히 하는데, 아마 내가 잘 전할 줄 몰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49장에서 말하는 ‘여호와의 종’이 누구인가에 대한 논의는 오래된 논의입니다. 최근에 이사야서 읽기 모임에서도 그랬고, 성서비평학자들의 연구를 토대로 볼 때 여호와의 종이 누구를 가리킨다고 통일된 한 가지 해석을 내놓을 수 없겠다는 관점이 지배적인 것 같습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의 완성이요, 구약은 그리스도를 예언한다는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한 발도 물러서지 않는다면 ‘고난 받는 종’은 예수님 한 분일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고난이나, 선지자들의 대표성 등을 고려하면 여호와의 종은 이스라엘 민족일 수도 있고, 선지자 이사야 자신일 수도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하물며 고레스도 여호와의 종으로 역할을 감당하기도 했습니다. 누가 종인가? 의 질문에 답을 찾는 한편, 어제 강의에서 들은 예언자적 상상력을 동원할 때, 누구인가의 질문보다 무엇을 하는가의 질문, 즉 종의 일, 여호와의 종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를 묻는 것이 좀 더 의미 있지 않겠나 싶습니다. 예언자적인 상상력이 약간의 부담으로 느껴지는 중에 문득 창세기에서 동생 아벨을 죽인 가인이 생각났습니다. 여호아께서 가인에게 “네 동생 아벨은 어디 있느냐?” 묻습니다. 가인이 답합니다. “모릅니다. 내가 동생을 지키는 사람입니까? Am I my brother’s keeper?” 가인의 잘못은 동생을 죽인 것 뿐 아니라 자신의 의무를 전면 부인한다는 것도 꼽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지키는 사람들로 지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현실은 서로를 짐스럽게 여기도록 만듭니다. 혼자 빨리 가라고 부추깁니다. Me First 를 주장하라고 부추깁니다. 예언자적인 비판은 나는 내 형제 자매를 지키는 사람이라고 선언하게 만듭니다. 예언자적인 격려는 함께 사는 세상이 복된 세상이라고 말하게 만듭니다. 교회의 예언자적인 소명을 묵상하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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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41123 이사야 49장

    “‘주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를 구원해야 할 때가 되면, 내가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겠고,
    살려 달라고 부르짖는 날에는, 내가 그 간구를 듣고 너희를 돕겠다.
    내가 너희를 지키고 보호하겠으며, 너를 시켜서 뭇 백성과 언약을 맺겠다.
    너희가 살던 땅이 황무해졌지마는, 내가 너희를 다시 너희 땅에 정착시키겠다.
    감옥에 갇혀 있는 죄수들에게는 ‘나가거라. 너희는 자유인이 되었다!’ 하고 말하겠고,
    어둠 속에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는 ‘밝은 곳으로 나오너라!’ 하고 말하겠다.
    그들이 어디로 가든지 먹거리를 얻게 할 것이며,
    메말랐던 모든 산을 그들이 먹거리를 얻는 초장이 되게 하겠다.
    그들은 배고프거나 목마르지 않으며, 무더위나 햇볕도 그들을 해치지 못할 것이니,
    이것은 긍휼히 여기시는 분께서 그들을 이끄시기 때문이며,
    샘이 솟는 곳으로 그들을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내가, 산에서 산으로 이어지는 큰길을 만들고, 내 백성이 자유스럽게 여행할 큰길을 닦겠다. “
    (이사야 49:8-11)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회복을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통해 말씀하신다.
    비록 지금은 그들의 땅이 황무해보이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은혜를 베푸시고, 자유를 주신다고 약속하신다.

    매순간 깨어있지 않으면 황무해진 상황 그 자체에 마음을 빼앗길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다. 한정없이 부족하고, 채워지지 않은 결핍된 것에 모든 감각을 집중한 채 한없이 침몰했던 나의 어두웠던 시간들이 생각났다. 그 때 내가 어둠에서 벗어날 수 있던 유일한 길은 “예수님”을 만나면서 부터였다. 모태신앙으로 늘 교회에 다니며 예배했지만, 부모님의 하나님이 아닌 나의 하나님으로 만나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중고등학교 시절 수련회에서 기도 가운데, 강한 성령 하나님의 임재가 나를 압도했고, 나도 모르는 언어의 기도가 입으로 흘러나왔다. 그렇게 성령 하나님을 만났지만, 여전히 현실속에서 나는 하나님 없는 자처럼 상황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렸던 삶을 살았다. 내면이 불안정하고, 낮은 자존감으로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낙심하는 마음을 먼저 선택했고,남들과 비교하면서 나를 평가하고, 나 또한 그 기준으로 남들을 평가했던 시간들이 생각난다. 그 시절 나는 성령 하나님을 만났지만 내 안에 복음의 능력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 는 삶을 살며 이질감속에 괴로워했다.
    지금은 나의 마음 중심에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말뚝 박혀 있기에 문제와 상황속에서 분별할 수 있게 되었지만, 종종 다시 옛사람이 올라올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엎드린다. 그 방법이 가장 완벽한 것이자 최선의 길이라는 것을 수많은 시간들을 통해 배워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 바짝 엎드리면, 혼돈으로 갈피를 못잡는 나의 마음과 시선이 오롯이 하나님께만 고정이 된다.

    하나님은 누구신가? 예수님은 누구신가? 성령님은 누구신가?
    단 1분1초도 쉬지 말고, 그분을 바라보기를 힘써야 한다. 나의 사고와 습관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그러려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아야하고, 그러러면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야 하며, 기도하고, 예배하며,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들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하나님의 세계가 이 작고 작은 나에게 열리는 것을 경험한다.

    그럴 때 감옥에 갇혀 있는 죄수들에게 “나가거라 너희는 자유인이 되었다.”, 어둠속에 갇혀 있는 나에게 “밝은 곳으로 나오너라.”하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린다.
    사단은 끊임없이 속이고, 참소하고, 나의 어둠에 사로잡히게 한다. 그리고 선택한 그 어둠으로 하나님을 평가하게 한다. 이것에 속지 말아야 한다. 내 속에 끊임없이 올라오는 비진리들을 걷어내고, 빛 가운데로 나아와 오늘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비로서 가장 선하시고, 인자하신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황폐한 그 땅을 사람이 살만한 곳으로 바꾸시는 분은 살아계신 하나님 한 분이시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도 나는 감사할 수 있다. 혹 어그러진 부분들이 불쑥불쑥 올라와도 그곳을 살만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 작업하시겠구나 생각하며 감사할 수 있다. 아직도 세상은 황폐함으로 생명이 없어보이지만, 하나님은 그 땅에 회복을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 회복은 믿음의 눈으로 주님을 바라보는 자에게 먼저 일어나게 될 것이다.

    황폐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시겠다고 말씀하시며, 약속의 증거이자 사랑의 완성인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오셨다. 이미 약속을 이루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감사하며, 나아가자. 하나님은 항상 선하시고, 항상 인자하시며, 항상 신실하신 분이시다. 아멘!

    #말씀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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