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서 48장: 이름 뿐인 경건

해설:

1절부터 11절까지는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의 불신앙에 대한 책망의 말씀이다. 그들에게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 즉 진실과 공의는 찾아 볼 수 없다(1절).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고 의지한다고 말하지만 그분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2절, 4절).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이루실 일을 예언자들을 통해 알려 주셨고 이제 그 일을 이루셨다(3절, 5절)). 하나님은 이미 알려 준 일뿐 아니라 그들이 전혀 들어 본 일이 없는 새로운 일도 행하실 것이다(6-7절). 그들에게 듣고 깨닫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당신이 하실 모든 일을 알리지 않으셨다(8절). 하나님께서 약속대로 구원을 행하시는 이유는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에게 그럴 자격이 있기 때문이 아니다. 당신의 이름과 영광을 더럽히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9-11절).  

이어서 하나님은 당신만이 유일한 신이며 창조주이심을 확인하신다(12-13절). 그 능력으로 주님은 곧 바빌론을 심판하실 것이다(14절). 그 일을 위해 하나님은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을 불러내어 그를 형통하게 하실 것이다(15절). 그것은 이미 예언자들을 통해 예언한 바와 같다(16절).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이며 그들의 “속량자”이시다(17절). 그들이 진작에 그분의 말씀을 알아듣고 순종 했더라면 바빌론에 의해 멸망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18-19절). 그러나 이제 하나님은 약속하신 대로 바빌론을 심판하실 것이다. 그러면 유다 백성은 바빌론으로부터 나와 주님께서 구원하셨다는 사실을 땅끝까지 전하게 될 것이다(20-22절).

묵상: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에 대한 책망의 말씀이 뼈를 때립니다. 그들은 “주님의 이름을 두고 맹세를 하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섬긴다고는 하지만, 진실이나 공의라고는 전혀 없는 자들”(1절)입니다. 또한 그들은 “스스로 거룩한 성읍 백성”이라고 자처하고 “그의 이름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자랑합니다(2절). 

하지만 그들의 목 힘줄은 쇠붙이와 같고 이마는 놋쇠와 다름이 없었습니다(4절). 본다고 하나 눈은 어두워져 있었고 듣는다고는 하나 마음의 귀는 어두워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거짓과 불의를 일삼았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얼마나 더럽히는 것인지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 말씀이 2천 5백년 전의 유다 백성에 대한 말씀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 대한 말씀처럼 들립니다. 지금 하나님의 영광을 더럽히고 있는 사람들은 불신자나 무신론자 혹은 다른 종교인이 아닙니다. 믿음 좋다는 사람들, 스스로를 모범적인 신자로 자처하는 사람들이 분별 없는 언행을 일삼기 때문입니다. 

나도 그들 중 하나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습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네가 나의 명령에 귀를 기울이기만 하였어도, 네 평화가 강같이 흐르고, 네 공의가 바다의 파도같이 넘쳤을 것이다”(18절)라는 말씀이 이루어지기를!


Comments

3 responses to “이사야서 48장: 이름 뿐인 경건”

  1. 어려서부터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입고 죄사함받고 주님의 자녀가 됐다고 고백하면서도 십자가를 지고 주님뒤를 따라야 하는것을 알면서도 이방사람들과 다른것이 없습니다. 말과 행동이 같지않습니다. 믿음의 모양은 그럴듯했습니다.그러나 내용은 너무나 허술합니다. 주님의 자비를 간절히 구합니다, 다시 십자가밑에서 무릎을 꿇습니다. 주님의 자비를 구하는 아침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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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oung mae kim

    어제부터 3일동안 줌으로 미국여선교회 (United Women in Faith) 임원 교육이 있습니다. 미국내 모든 연회의 임원들을 대상으로 매일 예배와 성경공부, 소그룹 토론, 네트워킹, 소울케어 등을 합니다. 1,000명 이상이 등록을 했고, 미국의 여러 시간대를 아우르는 생활시간에 진행해야 하니 동부는 정오부터 밤 9시, 서부는 아침부터 저녁 6시에 줌으로 만납니다. 올해 교육의 주제는 ‘revive and lead empowered by resurrection’ 이고, 성경본문은 요한복음서 20장과 21장입니다. 어제 예배와 말씀은 20장의 막달라 마리아의 증언을 중심으로 펼쳐졌습니다. 여선교회가 예배 때 하는 ‘성경봉독’은 조금 색다릅니다. 칼팩 연회의 행사에선 보통 5-6개의 다른 언어로 성경본문을 읽습니다. 칼팩 연회 안에 있는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존중하고자 합니다. 영어, 수화, 스패니쉬, 필리피노 타갈로그, 코리안, 비엣나미즈, 사모안, 통간, 재패니즈, 만다린 차이니즈, 타이… 어제 예배는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가서 겪은 일들을 드라마타이즈하고 해석해서 마치 유튜버들이 자기 컨텐츠를 올리듯 줌 참석자인 우리들에게 무덤에서 예수님을 만난 이야기를 들려 주는 방식이었습니다. 마리아가 자기를 별로 달가와하지 않는 제자들의 반응을 말할 때는 슬그머니 웃음도 났습니다. 마리아는 제자들이 평소에 자기 이야기를 귀담아 듣지 않지만 예수님은 자기를 이해하셨다는 말도 하고, 왜 자기에게 나타나셨는지 모르겠지만, 또 제자들이 자기 말을 믿으려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자기는 예수님의 부탁을 들을 것이라고, 이것은 자기에게 주신 일이라고 할 때는 듣는 우리도 아멘으로 받았습니다. 여성의 교회내 역할이 대체적으로 축소되어 있는 현실은 한국교회 만이 아니라 미국의 여러 교회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유교 문화권인 아시안 커뮤니티 교회들 뿐 아니라 ‘백인’ 혹은 주류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에 연회 행사를 주관했던 샌디에고의 한 교회는 LGBTQ+ 이슈 극복을 목표로 하는 ‘화해사역 reconcilliation ministry’ 교회였는데 여기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습니다. ‘소수자’에 대한 관심이 교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여성의 참여와 역할을 격려하는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어제 경험한 성경 봉독은 말씀을 좀 더 입체적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활자를 읽어 머리로 이해하고 받아 들이는 방법이 아닌 읽기였습니다. 마리아의 자리에 나를 세워보는, 제자들 사이에서 가끔 외로운, 그러나 예수님의 특별한 이해와 사랑을 받는 그 마음을 충분히 공감하게 하는 봉독이었습니다. 이 아침에 이사야서 48장을 읽는데 10절이 마음을 끌어당깁니다. ‘내가 너희를 단련시켰으나, 은을 정련하듯 하지 않고 오히려 너희를 고난의 용광로에서 단련시켰다.’ 고난의 풀무질, 고난의 불이라고 한 성경도 있습니다. 은의 정련과 우리의 단련이 어떻게 다른지 모르지만, ‘고난의 용광로’라는 말이 주는 강렬함이 따로 있습니다. 우리를 단련시키셨다는 것은 우리를 시험하셨다는 뜻입니다. 학교 시험이나 인생 시험이나 공통점이 있습니다. 시험으로 실력이 드러난다는 점입니다. 학교 시험은 불완전하기 짝이 없고, 시험을 위한 시험일 때가 더 많지만, 인생 시험은 그렇지 않습니다. 인생의 풀무질, 고난의 용광로를 거친 사람은 다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값없이 받는 사랑이지만, 고난의 역경을 거친 사람은 그 사랑을 공짜로 여기지 않습니다. 고난과 아픔을 겪은 사람은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부활의 소망을 가진 사람에겐 굿뉴스지만 아무 것도 잃고 싶지 않은 사람에겐 귀에 들리지 않는, 들어도 알 수 없는 소리입니다. 엄중한 심판의 선고가 페이지마다 가득한 이사야서를 읽으면서 괴롭고 두려운 중에도 희망을 놓지 않는 이유는 주님 사랑의 값을 알기 때문입니다. 정금 같은 사랑, 불에서 달궈진 순수한 사랑의 힘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매일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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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41115 이사야 48장

    “네가 나의 명령에 귀를 기울이기만 하였어도, 네 평화가 강같이 흐르고, 네 공의가 바다의 파도같이 넘쳤을 것이다.”(사48:18)

    “주님께서 그들을 사막으로 인도하셨으나, 그들이 전혀 목마르지 않았다. 주님께서는 바위에서 물을 내셔서 그들로 마시게 하셨고, 바위를 쪼개셔서 물이 솟아나게 하셨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신다. “악인들에게는 평화가 없다.””(사48:21-22)

    이사야 48장에서는 바빌로니아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과 페르시아 고레스왕을 선택하심, 그리고 이스라엘과 유대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유다백성이 하나님의 명령에 귀를 기울이기만 했어도, 평화가 강같이 흐르고 공의가 파도처럼 넘쳤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듣지 않았기에, 스스로 멸망을 자초한 지경에 이른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의지하는 것으로는 그들이 원하는 평화와 번영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48장 22절에서 “악인들에게는 평화가 없다.” 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을 묵상하시 생각나는 시편 말씀이 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시편 1:1-6)

    시편1편은 복있는 사람과 악인을 대조하여 언급한다.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는다.
    -죄인의 길에 서지 않는다.
    -주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한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시절을 따라 과실을 맺는다.
    -그 행사가 형통하다.

    그러나 악인은 그렇지 않고, 망한다.

    오늘 이사야서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자는 의인, 그렇지 않는 자는 악이라고 명확하게 규정한다. 그리고 악인의 결국은 모두 패망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악인들에게는 평화가 없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이 진정한 평화가 오는 길 임을 보게 된다.
    나는 어느편에 서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적으로 나의 뜻에 맞게 이용하는 태도로 있지는 않은가?
    오늘 말씀처럼 죄를 떠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길이 진정한 ‘평화’의 길임을 믿자. 그리고 다시한번 내 안에 있는 불순물들을 제거하셔서 하나님의 말씀에만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도록 기도하자. 모든 순간 주님 앞에 깨어있지 않으면 나는 쉽게 넘어지는 자임을 잊지 말자. 모든 감각을 동원해 하나님께 집중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삶을 다스리시길 간절히 기도한다.

    #말씀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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