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서 46장: 어머니 같은 하나님

해설:

“벨 신”(1절)은 바빌로니아 사람들이 섬기던 민족 신 마르둑의 별칭이다. “느보 신”(1절)은 마르둑의 아들이다. 바빌로니아가 멸망 당하자 벨 신과 느보 신의 우상들이 버려지게 되었다(2절).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금과 은을 모아 그 신들을 위해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경배했다(6절). 하지만 그 우상들은 페르시아의 침공으로부터 그들을 지켜주지 못했다(7절). 

반면,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자애로운 어머니처럼 당신의 백성을 보호해 주신다(3절). 그분은 이스라엘을 낳으셨고 품으셨고 기르셨다(4절). 그분과 같은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5절). 그 사실을 망각한 까닭에 그들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한 것이다(8절). 그분은 태초부터 계신 창조주이시며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다(9절). 그분은 예언자들을 통해 장차 일어날 일들을 예고해 주셨고, 약속하신 일은 반드시 이루신다(10절). 고레스를 세워 바빌론을 멸망시킨 것도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킴으로 이루어질 일이다(11절). 

불행하게도,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결국 모든 것을 다스리시고 당신의 말씀대로 이루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지 못한다(12절). 그들이 믿든 안 믿든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하실 것이다. 그분은 약속하신 일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13절).

묵상: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을 엄한 아버지가 아니라 자애로운 아버지로 대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예수께서 주신 가르침 들을 보면 그분의 성품과 행동은 아버지보다는 어머니를 더 닮았습니다. ‘탕자의 비유'(눅 15:11-32)는 ‘쩔쩔매는 아버지의 비유’라고 이름 짓는 것이 나아 보입니다. 두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태도는 우리가 아는 아버지 상과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하나님은 ‘어머니의 마음을 가진 아버지’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은 당신을 어머니에 비유하십니다(3-4절). 그분은 당신의 백성을 태중에서 키우셨고, 낳은 후에는 품고 다니셨습니다. 그 사랑은 그들이 늙어 백발이 될 때까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분이 그들을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은 그 무엇도 끊을 수 없습니다. 당신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랑이 그분으로 하여금 끝내 당신의 약속을 지키게 하실 것입니다. 백성들에게 그럴 자격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희 죄인들아, 이것을 기억하여라. 그리고 확고하게 서라. 너희 반역한 죄인들아, 이 일을 가슴 깊이 간직하여라”(8절)고 말씀하십니다. 믿음 안에 확고하게 서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낳으시고 품으시고 기르신 분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 사랑은 마지막 숨이 다할 때까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가슴 깊이 간직한다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믿고 의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Comments

3 responses to “이사야서 46장: 어머니 같은 하나님”

  1. 지금까지 지내온것 주님의 크신 은혜인것을 고백하면서도 앞으로 마지막 숨쉴때까지 지팡이와 막대기로 인도하실 신실하신 주님을 온전히 의지하지 못하고 부조리한 세상을 보고 염려하는 가련한 존재입니다. 말씀위에 굳게서고 성령충만해서 어떠한 환란과 시련과 박해가 닥아와도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사랑 이웃을 섬기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주님안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아내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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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41120 이사야 46장

    “야곱의 집안아, 이스라엘 집안의 모든 남은 자들아, 내 말을 들어라.
    너희가 태어날 때부터 내가 너희를 안고 다녔고, 너희가 모태에서 나올 때 부터 내가 너희를 품고 다녔다.
    너희가 늙을 때까지 내가 너희를 안고 다니고, 너희가 백발이 될 때까지 내가 너희를 품고 다니겠다. 내가 너희를 지었으니, 내가 너희를 품고 다니겠고, 안고 다니겠고, 또 구원하여 주겠다.
    너희가 나를 누구와 견주겠으며, 나를 누구와 같다고 하겠느냐? 나를 누구와 비교하여 ‘서로 같다’하겠느냐?” (사46:3-5)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그들에게 한결같은 사랑을 나타내셨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항상 다른 의지할 것을 찾아 하나님을 떠나기를 반복한다.
    하나님은 그들이 의지하는 우상이 헛된 것임을 말씀하신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들을 어떻게 대하셨는지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하신다. 이사야 46장 3-5절을 보면 눈물이 날만큼 절절한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진다. 태에서 10달을 자식을 품고, 출산하여 양육하는 아이의 엄마처럼 이스라엘을 태어날 때 부터 안고 다녔고, 모태에서 나올 때 부터 품으셨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백발의 노인이 될 때까지도 품고 다니시겠다고 한결같은 사랑을 말씀하신다. 어느 누가 주와 같을 수 있을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아닌 다른 우상을 선택한 죄를 범한 이유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모르거나 알려고 하지 않았음을 보게 된다. 나를 안전한 길로 인도하며, 보호해줄 수 있는 유일한 분은 하나님 한 분 이시지만, 그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도 않고 보려고 하지도 않을 때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찾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아야 한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아야 하고, 기도와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그럴 때 나를 품에 안으시고, 끝까지 책임지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품이 가장 안전하며, 가장 완벽하며, 가장 최고의 것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내 눈이 높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실로 내가 내 심령으로 고요하고 평온케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 어미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중심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찌어다’ (시편 131:1-3)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시편 131편 말씀이 생각났다.
    젖 뗀 아이가 어미 품에 있음 같이 그렇게 하나님 품 안에 잠잠하게 머무는 것. 그것이 여호와를 바라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나를 품으시고, 돌보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는가?
    그리고 나는 어떠한 상황속에서도 그 하나님 품에 잠잠히 거할 수 있는 사람인가?
    오늘도 주님은 하나님 품에 머물며 떠나지 않는 길이 사는 길이라고 말씀하신다.
    있는 모습 그대로 날 받아주시고, 늘 변함없이 사랑하시는 하나님 품에 잠잠히 머물자.
    이런 하나님과 세상의 그 누가 주와 같을 수 있을까?

    #말씀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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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성서는 읽고 또 읽어도 늘 새롭고, 어렵고, 재미있고, 무서운 책입니다. 감사한 책입니다. 기독교인들의 ‘무식함’을 지적하는 이들이 하는 말 가운데 ‘책 하나만 읽고 다 아는 듯 잘난 체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크리스찬들이 성경 만 읽는다는, 편협한 시각을 갖고 있다는 뜻입니다. 감리교인들은 존 웨슬리 목사님이 스스로를 ‘a man of one book 한 권의 책의 사람’이라고 불렀다는 말을 들어 봤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웨슬리 목사님이 다른 책은 읽지 않고 오직 성경만 읽었다고 이해하지 않습니다. 원래 ‘한 권의 책의 사람’은 토마스 아퀴나스가 한 말이었다고 합니다. homo unius libri. 그것은 경계의 뜻으로 한 말이었습니다. ‘가장 위험한 사람은 단 한 권의 책만 읽은 사람, 한 권의 책만 읽은 사람을 경계하라’는 뜻에서 독선적이고 제한적인 이해를 가질 때 일어나는 편견과 아집을 염려한 말이었다고 합니다. 웨슬리 목사님 서재에 성경책 한 권만 있었을까요. 남긴 책들이 천 권 정도였다고 합니다. 성경을 사랑하는 사람은 성경 말씀을 좀 더 잘 알고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다른 많은 책들을 읽습니다. 개인적으로 알고 존경하는 목사님들은 책읽기를 즐겨하는 분들입니다. 특히 ‘문사철’ (문학 역사 철학) 책들을 가까이 합니다. 46장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연상 시키는 구절들과 만납니다. 이사야서 초반부 (1, 3장, 4장)에 부정하고 타락한 여인의 모습이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 없는 상태를 보여 줍니다. 곱게 치장한 모습은 겉은 잔뜩 꾸몄으나 속에는 오만과 탐심이 가득한 것을 연상 시킵니다. 철저한 남성 중심의 사회인 구약의 세계에서 그 역시 남성적인 일이었던 예언과 계시의 사건을 설명하고 이해 시키기 위해 여성의 수사 (figure of women) -실제 여성이 아니라 여성적인 이미지와 의미가 필요해서-를 빌려다 썼다는 신학적인 분석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반대로 자애로운 어머니의 이미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사야서의 마지막 66장에도 자식을 위로하는 어머니와 같은 마음으로 백성을 격려하는 하나님이 나옵니다. 지난 달에 참여했던 이사야서 읽기 모임에서는 성서에 나타난 여성의 모습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관심 정도가 아니라 공부로 이어진 이들도 있었습니다. ‘한 권의 책’을 정말 잘 읽기 위해 여러 권의 책과 씨름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보고 놀랬습니다. 목회자들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어제 페북에서는 진화론이 완전히 틀렸다고 주장하는 어떤 목사에게 반박하는 크리스찬 과학자의 글을 읽었습니다. 진화론이 허구라고 주장하는 목사는 다윈의 ‘종의 기원’ 책을 읽고 글을 썼습니다. 과학자의 글을 읽고 내가 새롭게 알게 된 것은 (남들보다 뒤늦게 깨달은 것 같아 민망하지만), 진화생물학을 배우는 학생들은 다윈의 종의 기원을 읽고 그 책으로 진화론을 배우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천체에 대해 배울 때 코페르니쿠스의 책으로 배우지 않고, 중력을 배울 때 뉴턴의 책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과학은 철학이나 인문학과는 다르게 배운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학문적인 신기원을 발견한 과학자들의 이론을 바탕 삼아 그 위에 새롭게 쌓아올리는 학문이지 옛것을 보호하고 변호하고 간직하는 공부가 아닌겁니다. 과학이나 기술 발전의 속도에 따라가지 못하는 개인적인 약점을 과학과 기술을 싸잡아 비난하거나 끌어내리는 걸로 슬쩍 포장하려는 안일함이 지극히 ‘꼰대’적인 모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 권의 책 성경은 그래서 늘 신비합니다. 책을 주신 주님께 감사합니다. 책을 쓰는 사람들이 있게 하시고, 읽는 사람들이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웨슬리 목사님이 옳습니다. 이성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기둥입니다. 그러나 그것에도 묶이지 않도록 도와 주소서. 주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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