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서 45장: 나는 주다!

해설:

1절부터 8절까지는 페르시아의 왕 고레스에 대한 예언이다. 이방 임금을 향해 “나 주가 기름 부어 세운”(1절) 사람이라고 표현한 것은 충격적이다. 주님께서는 그를 도와 뭇 민족들을 제압하게 하겠다고 말씀 하신다(2절). 하나님의 예언대로 일이 이루어지면 고레스는 하나님이 누구인지 알게 될 것이고(3절), 이스라엘을 회복시키기 위해 자신이 선택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4절). 고레스는 하나님에 대해 알지 못했다(5절). 하지만 하나님은 그를 아셨다. 그분은 전지전능의 창조주이시기 때문이다(6-7절). 

이렇게 예언한 후에 이사야는 하늘로부터 “의”가 비처럼 쏟아지게 하라고 기도한다(8절). 여기서의 “의”는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에서 모든 것이 온전해지는 변화를 의미한다. 고레스를 통해 이스라엘을 회복하실 때 모든 것이 온전해질 것이라는 소망을 담아 올린 기도다.  

9절부터 13절은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한다.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관계는 마치 토기장이와 진흙의 관계와 같고(9절) 부모와 자식의 관계와 같다(10절). 하나님은 토기장이가 진흙을 주무르듯 혹은 부모가 자녀를 징계하듯 이스라엘을 다루신다. 토기장이는 진흙 덩어리를 마음대로 할 권리가 있고, 진흙 덩어리는 토기장이의 선택에 대해 항변할 자격이 없다. 그런데 유다 백성은 고레스를 선택한 것에 대해 하나님께 불평하고 있다. 그것은 마치 자녀가 부모의 처사를 두고 항의하고 불평하는 것과 같다(11절). 하나님은 당신이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다시 천명하신다(12절). 그분은 무엇이든 하실 수 있다. 고레스를 “의의 도구”(13절)로 선택한 것도 그분의 주권에 따른 결정이었다. 

14절부터 19절까지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실 일에 대한 예언이다. 장차 이집트와 에티오피아 및 다른 여러 나라 사람들이 유다로 몰려 와서 “과연 하나님께서 당신과 함께 계십니다”(14절)라고 고백하게 될 것이다. 그 미래를 상상하며 이사야는 “구원자이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진실로 주님께서는 자신을 숨기시는 하나님이십니다”(15절)라고 고백한다. 그분은 눈에 보이지도, 손으로 만져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분은 분명히 살아 역사하신다.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자들은 수치를 당할 것이지만(16절) 이스라엘은 주님 안에서 안전할 것이다(17절). 하나님은 온 우주를 창조하신 분이며(18절) 예언자들을 통해 당신이 하실 일을 분명하게 알려주신 분이다(19절).

20절부터 25절은 이방 여러 나라에 흩어져 살던 유다인들을 회복시키실 것에 대한 예언이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아무 쓸모 없는 우상들을 버리고 당신에게 돌아오라고 부르신다(20절). 그분은 여러 예언자들을 통해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해 예언하셨다(21절). 하나님은 당신이 하신 말씀을 절대로 잊지 않고 틀림없이 행하신다(22-23절). 그 때가 되면 하나님의 백성은 영광을 얻을 것이고 그분을 대항하던 사람들은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다(24-25절). 

묵상:

호렙 산 떨기 나무 불꽃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난 모세는 그분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그가 이집트에서 보았던 여러 신들 중 하나가 나타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나는 나다”(에흐예 아셰르 에흐예, I Am Who I Am)라고 답하십니다(출 3:13-15). 개역성경은 이것을 칠십인역 성경(LXX)을 따라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라고 번역해 놓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알려 준 것이 아니라 그분에 대해 이름 짓지 말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만들어 섬기는 우상에는 이름을 붙일 수 있지만, 창조주 하나님은 인간이 이름 붙일 수 없습니다. 그분은 스스로 존재하는 분이며 또한 절대 주권을 가진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로 유대인들은 ‘에흐예 아셰르 에흐예’의 자음만 따서 YHWH(여호와 혹은 야훼)를 하나님을 가리키는 암호로 사용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일컫지 말라”는 계명을 따라 YHWH라고 적고 “주님”이라고 읽었습니다. 

“나는 주다” 혹은 “나 주가……”(3절, 5절, 6절, 7절, 8절, 18절, 21절)라는 말은 “나는 에흐예 아셰르 에흐예다”라는 뜻입니다. 창조주이시요 절대주권을 가진 전지전능의 신이라는 뜻입니다. 그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하여 구원 역사를 이어 오셨고 때가 찼을 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당신을 가리켜 “나다”(I AM)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나는 주다”라고 말씀하시는 그분이십니다.  

그분은 숨어서 일하시는 분입니다. 아니, 물리적 세계 밖에는 볼 수 없는 우리에게 영이신 하나님은 숨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15절). 하지만 그분은 온 우주와 모든 생명을 창조하고 다스리십니다. 사람들을 선택하여 당신의 뜻을 알리시고 행하십니다. 그것을 주목해 본다면 하나님이 살아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하나님의 손길을 볼 줄을 모릅니다. 19절의 “나를 허무하게 찾아라”는 말은 “나를 찾았으나 헛수고였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손으로 깎아 만든 우상을 섬겼습니다. 

우상은 드러나 있지만 헛된 것입니다. 반면, 하나님은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실제입니다. 볼 눈과 들을 귀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Comments

3 responses to “이사야서 45장: 나는 주다!”

  1.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느님이신가, 하나님이신가. 한 분이신가, 유일하신가, 단일하신가,초월자인가, 개입자인가…질문은 할 수 있어도 답을 알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답이라고 생각했는데도 어느새 답이 달라지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질문과 답에 매이지 않는 분이신 것 같습니다. 그분의 사랑이 먼저 도착합니다. 은혜라고 이름 붙이는 모든 것이 그분에게서 왔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질문은 늘 많지만, 내가 발견하는 답은 그저 하나, 감사일 때가 많습니다. 감사라는 답이 거저 얻어지거나 쉽게 찾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질문도 어렵고 답도 어렵습니다. 살면서, 삶을 통해, 삶 가운데서 질문과 답을 만들어갑니다. 미신은 답을 즉각 내줍니다. 하나님께 질문하면 답이 내 안에서 나오는데, 미신과 맹신이 주는 답은 어디선가 내려옵니다. 하나님이 나를 대하시는 것과 미신이 나를 대하는 것이 이렇게 다릅니다. 오늘 본문은 고레스를 택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고레스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고레스와 우리를 감싸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이 우리를 인도합니다. 지난 주일에 예배당에 앉아 있는데 내게 교회가 있다는게, 예배를 드리러 교회에 와 있다는게 참으로 감사한 일이라는 고백이 터져 나왔습니다. 매주 하는 일인데도, 교회가 이렇다, 저렇다 생각이 많아도, 예배의 자리에 나온다는 것은 아주 특별하고 아주 감사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알 수 없는 분. 알지 못해도 되는 분. 알아도 모르는 분. 모르지만 아는 분…감사합니다 주님. 주님께서 나를 아시니 그것 만으로 충분합니다.

    Like

  2. 악한자들이 나라와 온세상을 군림하고 흔들어도 배후에서 모든것을 주관하시고 영혼구원과 창조질서 회복을 이루어가시는 전지전능 구원의 하나님을 매일 아침 고백합니다. 첨단기술의 군사력과 재력이 우상인 세상에서 오직 주님만이 참된 은혜의 하나님이시고 다른 우상들은 허망한 잡신들인것을 잊지않고 오직주님만 바라보고 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Like

  3. 241119 이사야 45장

    “너 하늘아, 위에서부터 의를 내리되, 비처럼 쏟아지게 하여라.
    너 창공아, 의를 부어 내려라.
    땅아, 너는 열려서, 구원이 싹나게 하고, 공의가 움돋게 하여라.
    나 주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다.”(사45:8)

    “하늘을 창조하신 주, 땅을 창조하시고 조성하신 하나님,
    땅을 견고하게 하신 분이 말씀하신다.
    그분은 땅을 혼돈 상태로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사람이 살 수 있게 만드신 분이다.
    “나는 주다. 나 밖에 다른 신은 없다.”
    나는 어두운 곳에서 은밀하게 말하지 않았으며, 야곱의 자손에게
    ‘나를 허무하게 찾아라.’ 하지도 않았다. 나 주는 옳은 것을 말하고, 바른 것을 알린다.”
    (사45:18-19)

    페르시아왕인 고레스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돕는 자로 그를 세우신다. 하나님을 몰랐던 자를 선택하고 세우신 것은 모든 역사가 하나님께 속하여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나님이 결정하시고, 일을 시작하시기로 하시면 그분의 뜻대로 진행된다. 인간의 방법과 생각대로 세상의 일들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해있음을 이사야 45장을 통해 깨닫게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의가 하늘에서 부터 비처럼 쏟아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늘로 부터 오는 은혜, 하늘로 부터 오는 의. 이것은 인간의 어떠함으로 인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의 뜻을 따라 살고, 순종하며 경배하길 원하신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쏟아부어주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에 나는 은혜를 입고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도 마찬가지이다. 나의 죄를 스르로 해결할 수 조차 없는 자가 무슨 의를 말하겠는가? 하나님의 의는 하늘로부터 오는 것이다. 아무것도 없던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셨던 것처럼 철저하게 하나님의 영역인 것이다.
    그래서 45장에서는 계속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말씀하시면서, ‘창조주’에 대한 언급이 많이 나온다. 아무것도 없던 그 때에 홀로 계신 하나님. 그 하나님이 만드시지 않았다면 없었을 세상. 하나님이 창조하셨기 때문에 이루어진 이 세상에서 인간은 모든 삶을 통해 오직 하나님만을 경배하고 예배해야 한다.

    처음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기 전. 하나님은 세상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질서있게, 보시기에 좋게 창조하셨다. 원래 태초의 세상은 혼돈상태가 아닌 사람이 살만한 세상이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셨다. 그러나 인간의 죄로 인해 이 평온했던 세상은 혼돈의 상태로 접어든다. 지금까지도 인간세상의 모든 고통과 슬픔, 절망들은 스스로 만든 죄로 부터 오게 된다.
    죄를 해결하지 않은 인간은 어두운데서 우상을 따르며 허무하게 그 우상의 힘을 의지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옳으며, 바른 것이다.(사45:19) 그러므로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온 만물의 주관자 되시는 분이 오직 하나님 한 분임을 인정하는 일이 옳은 길로, 바른 길로, 회복에 길로 가는 유일한 통로가 되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과 중동의 국가들을 무차별하게 공격하는 것에 대하여서 그들이 하나님을 위해 마땅한 일을 하는 것이라는 꽤 많은 크리스챤들의 인터뷰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전쟁은 혼돈 그 자체이다. 이스라엘이 하마스로 인해 말할 수 없는 아픔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나, 그것이 전쟁을 정당화할 수 있는 이유가 되는가?
    유대인들은 메시야를 기다리며, 이미 오신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기에 구약 율법의 방식대로 악인에 대한 보복을 감행한다. 그러나 오늘 날 이미 예수님을 믿는 많은 개신교인들도 예수님의 복음의 방식이 아닌 구약 율법의 방식대로 보복을 응원하고, 전쟁을 정당화 하는 것을 보면서 심판자로 있길 원하는 인간의 교만함을 마주한다.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 달려드는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두번이나 있었음에도 그의 목숨을 해하지 않았다. 인간으로서 보복하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컸겠는가? 사울이 죽으면 다음 왕은 기름부음 받은 자신이 될 것이 뻔한데, 하루 빨리 불안한 도피생활을 청산하고 왕권을 탈환하고 싶지 않았을까?
    그리고 언제까지 도망다닐 것인가, 언제까지 기회를 버리겠는가 묻는 그의 추종자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을까?
    자신이 원하는 것과 복수하고 싶은 마음, 사람들의 소리로 부터 다윗이 자유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 일의 끝이 하나님께 있음을 알았다. 그는 자신의 생각과 경험대로 판단하지 않고, 모든 일에 앞서 늘 하나님앞에 먼저 기도했다. 그래서 자신은 하나님께 순복하는 자이지, 하나님 대신 누군가 심판하는 자가 아님을 알았다.

    유대인들이 믿는 구약에서 다윗을 보면 심판의 권한은 우리에게 있지 않음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이 이러한 결정을 하는 것은 보아도 보지 않기로 결정하고, 들어도 듣지 않기로 결정하며,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교만함으로 자신이 심판자가 되길 원하는 완악한 마음으로 부터 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예수님을 믿는 크리스챤들 마져도 그들과 같은 방식으로 선택하게 되니 하나님이 살 수 있게 만드신 이 세상에 혼돈이 끊이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사람들이 살만한 세상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을 거절하고, 스스로 혼돈을 선택한 사람들의 죄를대신 회개하길 원한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다 말하는 이 땅에 크리스챤들이 심판자의 자리에 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도록…모든 역사의 주인인 하나님을 인정하도록 간절히 기도한다.
    늘 옳은 것을 말하고, 바른 것을 알려주시는 성령 하나님의 음성이 믿는 자들의 영혼을 깨우길 기도한다.

    Like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