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서 42장: 종의 사명

해설:

1절부터 9절까지에서 이사야는 “주님의 종”(에베드 야훼)에 대해 예언한다. 이것은 이사야서에 나오는 네 개의 “종의 노래” 중 첫번째 노래다. 두번째 종의 노래는 49장 1-12절이고, 세번째 종의 노래는 50장 4-9절이며, 네번째 종의 노래는 52장 13절-53장 12절이다. 여기 언급된 “주님의 종”이 누구를 가리키는지에 대해 많은 논의가 있었는데, 이 노래는 예수님의 공생애에 대한 매뉴얼이 되었다. 

하나님은 당신의 종에게 영을 부어 줄 것이며, 그는 하나님의 영으로 뭇 민족에게 공의를 베풀 것이다(1절). 예수님은 세례 받으실 때 “내가 마음으로 기뻐하는 사람이다”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셨다(마 3:17). 그는 드러나지 않게, 섬세하고 부드럽게 그 일을 행하실 것이다(2-3절). 그는 거부와 박해를 받겠으나 자신의 사명을 끝까지 이룰 것이다(4절). 그 종을 보내신 창조주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5절). 그 종은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6절)이 될 것이며, 사람들을 질병과 억압으로부터 해방시켜 줄 것이다(7절). 이 모든 일들이 종을 통해 이루어질 때 하나님은 모든 민족에게 영광 받으실 것이다(8-9절). 

이어서 이사야는 모든 피조물에게 하나님께 찬송을 불러 영광을 돌리라고 권한다(10-12절).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안다면, 생명 있는 것들도, 생명 없는 것들도, 문명인도, 야만인도 찬양에 참여해야 한다. 지금까지 “조용히 침묵을 지키며 참았던”(14절) 하나님께서 “용사처럼 나서시고, 전사처럼 용맹을 떨치”(13절)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분이 행동하시면 천지가 개벽하는 것과 같은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이다. 그 때 하나님의 백성은 회복될 것이고, 우상을 섬기던 자들은 수치를 당할 것이다(15-17절).

18절부터 25절에서 이사야는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을 책망한다. 1절에서 언급된 “주님의 종”이라는 표현이 여기서 다시 나오는데(19절), 이것은 이스라엘을 가리킨다. 그들은 귀가 먹고 눈이 멀었다(18절). 많은 것을 보았으나 마음에 새기지 않았고, 많은 것을 들었으나 귀담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20절). 주님은 그들에게 “율법과 교훈”을 주어 이 세상에 “의를 이루려고”(21절) 하셨으나, 그들이 듣지 않고 순종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이스라엘은 하나님으로부터 참혹한 심판을 당하게 되었다(22-24절). 하지만 이스라엘은 심판의 풀무불 가운데서도 자신들의 죄를 깨닫지 못하였다(25절).

묵상:

이스라엘은 주님의 종으로 구별된 민족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선택에 대해 이사야는 “주님은 백성을 구원하셔서, 의를 이루려고 힘쓰시는 하나님이시다”(21절)라고 말합니다. 그 목적을 위해 이스라엘에게 율법과 교훈을 주셨습니다. “뭇 민족에게 공의를 베풀”(1절) 뜻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영을 받아 조용히, 섬세하고 부드럽게 진리와 공의를 세상으로 흘러 보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종에게 주어진 사명에 실패했고 그로 인해 심판에 직면해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주님의 종에게 부여된 사명을 이루는 것이 메시아로 보냄 받은 자신의 사명이라고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분에게 가장 중요했던 성경은 이사야서였고, 그 중에서도 네 개의 종의 노래는 메시아로서 그분의 삶에 대한 매뉴얼과 같았습니다. 한 민족으로서 이스라엘에게 주어졌던 사명이 당신 개인에게 주어졌다고 믿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첫 번째 종의 예언에 나오는 대로 요단 강에서 하나님의 영을 받으셨고, 온유와 겸손의 삶을 통해 진리와 공의를 알리셨습니다. 그분은 눈 먼 사람을 보게 하고 걷지 못하는 사람들을 걷게 하셨습니다. 그분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백성의 언약”(6절)이 되셨습니다. 이사야가 “영원한 언약”(사 61:8)이라고 불렀고 예레미야가 “새로운 언약”(렘 31:31)이라고 부른 그 완전한 언약을 맺어 주셨습니다. 또한 그분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이방의 빛”이 되셨습니다.

우리는 그 언약으로 구원 받았고 그 언약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역시 그분처럼 주님의 영을 받아 뭇 민족에게 공의를 베푸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이스라엘이 실패했던 그 사명에 우리도 실패하지 말아야 합니다. 


Comments

3 responses to “이사야서 42장: 종의 사명”

  1. 그토록 놀라운 은혜를 80대 후반까지 받아왔으면서도 맺은 열매가 없습니다. 때마다 말씀과 소명을 주셨는데도 귀담아 듣지않았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너무나 가볍게 생각한 죄인입니다. 그럼에도 내자녀 내백성이라고 부르시는 구원의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드립니다. 비록 쇠약해가는 육신이지만 마지막 숨이 코에서 떠날때까지 믿음의 공동체 가정과 친족들과 교회를 위해 온몸과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주님앞에 섰을때 칭찬받기는것이 나의 궁극의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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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이스라엘이 자신을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선민의식’을 때론 부러워하고 또 때론 못마땅해 하는데 이 새벽에 42장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부인할 수 없는 부러움입니다. 자신을 위대한 창조주의 백성으로 여긴다는건 엄청나게 앞 선 자각이고 인식입니다. 막연하게 신이 있다, 우주를 만든 창조자와 주관자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그 신이 자신을 불러 백성으로 삼았다, 자녀라고 부른다고 믿고 고백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일입니다. 그러니 그들은 남들과 똑같은 일 – 해가 뜨고 지고, 꽃이 피고 지고, 사람으로 한평생 살다 가는 모든 일 -도 남들처럼 해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봅니다. 물론 현대 국가인 이스라엘을 보면서 갖는 우리의 느낌은 복잡다단합니다. ‘유대인’은 이상과 실체가 맞지 않는 단어와도 같습니다. ‘다 좋기만 하거나 다 나쁘기만 한 것은 없다’는 말이 정말 잘 어울리는 사람들입니다. 따라하고 싶은 이상적인 면이 그리도 많은데, 또 비난 받을만한 못된 짓도 (좋은 머리를 잘못 쓰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책 제목에 “유대인의 (교육, 상술, 리더십, 창의력, 신앙, 가정…)”이라고 붙이면 더욱 잘 팔리는 이유도 그들의 선민의식에서 나온 자신감과 관계가 있다고 봅니다. 며칠 전에 운전을 할 일이 있었습니다. 늘 남편이 운전하고 한 차로 출퇴근을 하는데 그날은 나 혼자 일을 보러 나갔습니다. 오랫만에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로 노래들을 고르다 ‘사이몬 앤 가펑클’을 골랐습니다. 내게 그들은 첫번째 유대인입니다. 중학생 때 들었던 그들의 노래는 노래 이상이었습니다. 시였고 소설이며, 철학 (이 뭔지 모른채) 길잡이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들의 가사로 영어를 배웠고 넓은 세계를 상상했습니다. 미디어크리티 mediocrity 라는 단어를 처음 배운 것도 그들 덕분이었습니다. ‘평범’이라는 번역으로는 굳이 부정적인 면이 안 보이지만 영어적인 느낌은 노력하지 않아서, 게을러서, 포기해서 ‘중간만 가는’ 평범한 상태라는 뉴앙스가 있습니다. 그들의 노래에 나오는 ‘뉴저지 턴파이크’는 도대체 어디일까, 턴파이크라는건 대체 뭘까…미국에서 처음 뉴저지 턴파이크를 운전할 때 사진이라도 찍어 두었어야 했는데요. 대중가수의 위상이 지금과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던 시절이라 역설적으로 더 깊은 울림을 주었는지 모릅니다. 이사야서가 예수님의 생애에 있어 매뉴얼과 같았다는 해설을 읽으니, 내겐 사이몬 앤 가펑클이 그런 책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42장이 보여주는 종의 길은, 받은 은혜에 응답하는 길입니다. 선민으로 받은 은혜를 이방인에게 전하는 것이 종이 할 일입니다. 조용히, 차분히, 자상하게, 진실되게 주님의 사랑을 나누는 것이 종의 도리일 것입니다. 어제 묵상할 때 엄마의 평소 모습을 되짚어 봤습니다. 자기 생각과 중심이 없이 여기저기 기웃 거리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엄마는 미신에라도 의지하려는 가련한 마음을 이해 못하거나 나쁘다고 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줏대 없이’ 흔들리는건 믿음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믿는 사람은 곧고 바르게 살아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말부터 앞서가면 안된다는 말도 자주 했고, 말도 중하지만 행실이 더 중하다고도 했습니다. 하나님이 늘 지키시는데 무슨 걱정을 하느냐는 말도 늘 했습니다. 나는 그런 말 하는 엄마가 믿음직했습니다. 주의 종이라면 엄청난 일을 하는 사람 같은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일상의 언어와 행실도 남다른 데가 있는 것 같습니다. 바빠도 바쁘지 않고, 힘들어도 힘들지 않은 사람. 조용히 흐르는 냇물처럼 꾸준하며, 피는 때와 지는 때를 아는 꽃처럼 겸손한 사람. 하나님의 자녀, 예수님의 친구. 코리아 사람이라 코리언이듯 크리스트 사람이라 크리스찬인 나는 주의 종입니다. 여호와께 새 노래를 불러드리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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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41115 이사야 42장

    “나는 주다. 이것이 나의 이름이다. 나는 내가 받을 영광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 주지 않고, 내가 받을 찬양을 우상들에게 양보하지 않는다.
    전에 예고한 일들이 다 이루어졌다. 이제 내가 새로 일어날 일들을 예고 한다. 그 일들이 일어나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일러준다.”(사42:8-9)

    요즘 이사야를 묵상하면서 사사기 말씀과 룻기, 사무엘상을 함께 읽고 있다. 예전에는 말씀을 읽을 때, 말씀의 내용이 무엇인지와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에 대해서 집중했던 것 같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어떻게 나타나시는지 더 주목하게 된다.
    그러면서 한결같이 발견하는 공동된 내용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것이다. 도무지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말씀 가운데 많이 나타난다. 그 중, 죄악 가운데 거한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선택은 그럼에도 늘 한결같이 사랑으로 품으시고, 기다리시는 것을 보게 되었다. 흔히들 구약에서는 하나님을 심판자로 묘사하며 두려운 존재로 인식한다. 하나님은 죄와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단호하게 말씀하시며, 여러번의 기회를 주신다. 그러나 여전히 듣지 않고, 보지 않고 악한 길로 행하는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 하나님은 심판을 꺼내신다. 그리고 다 쓸어버리지 않으시고, 회복을 한결같이 말씀하신다.
    이렇게 말씀을 묵상하다보면, 되묻게 된다. “이렇게 까지 죄를 짓는데…또 죄를 짓는데, 왜 기다리실까? 왜 또 기회를 주실까?”. 나의 성품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인간이라면 마땅이 죄에 상응하는 댓가를 치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정의이고 공의이며,하나님은 그것을 실현하는 분이시라고 믿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끝까지 기다리고, 용서하시며, 회복을 말씀하신다. 그런 하나님의 입장을 유일한 길은 “예수님”에게 있다. 하나님 사랑의 최절정. 독생자 예수님을 나를 위해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 예수님은 나를 위해 이 땅에 오셨다. 왜? 하나님이 보내셨기 때문에…그러면 하나님은 왜 예수님을 보내셨는가? 이것에 대한 대답도 결국 “사랑하기 때문에…”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면서 성경속에 나오는 답답하고, 이해되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가 나의 죄와 다르지 않음을 본다. 매일 하나님 말씀을 통해 나를 비춰보고, 기도한다고 하지만… 내 안에 여전히 남아있는 자기 의와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 판단자로 서고 싶어하는 마음은 나의 죄 역시 그들의 죄와 같다는 것을 보게 하신다. 그렇게 나의 죄를 직면하게 되면, “사랑하기 때문에…”이 땅에 오신 예수님. “사랑하기 때문에…” 오늘도 인내하시며 돌아오기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숨이 멎을 만큼의 감격과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보게되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게 된다. 이것이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지는 예배가 아닌가 생각된다.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는 분. 주님이시다. 그분은 하나님의 영광을 다른 우상들에게 주지 않으셨다. 죄와 우상을 미워하시는 분이시며, 오로지 홀로 영광받기 합당한 분이시다. 그리고 우리는 마땅히 받으셔야만 하는 영광과 찬송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오늘 이사야서 말씀을 읽으면서, 다시한번 나의 시선을 하나님 앞에 두게 된다.
    자격없는 자를 택하셔서 구원으로 이끄시는 분. 상한 갈대를 꺽지 않으시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시는 분. 진리로 공의를 베푸시는 하나님.
    쇠하지 않으며, 끝내 세상에 공의를 세우실 하나님을 찬양하자.
    그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자.
    오늘도 하나님의 전적인 사랑으로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높이자.
    그리고 은혜와 긍휼을 베푸사 하나님의 일들을 우리에게 나타내시고, 온 열방과 나라를 향하여 당신의 얼굴 빛을 비추시는 주님의 은혜를 찬양하며 기도하자.

    #말씀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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