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서 39장: 히스기야 왕의 실수

해설:

39장은 히스기야 왕이 죽을 병에서 회복된 후에 있었던 사건의 기록이다. 이 소식을 듣고 바빌로니아 왕이 친서와 선물을 보내 온다(1절). 당시 바빌로니아는 여러 나라들 중 하나로서 경계의 대상이 아니었다. 므로닥발라단은 앗시리아와의 전쟁에서 패하여 잠시 망명 생활을 하다가 다시 왕권을 잡았다. 그는 히스기야 왕의 환심을 사서 자기 편으로 만들려 했고, 히스기야 왕은 바빌로니아와 연합하여 앗시리아를 맞서기 위해 그와 사신단에게 궁궐과 나라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보여 준다(2절). 

사신단이 다녀 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이사야가 히스기야 왕에게 찾아가 어느 나라 사절단이 다녀 갔는지 그리고 그들에게 무엇을 보여 주었는지를 묻는다(3절). 히스기야 왕이 바빌로니아의 사절단에게 국가의 모든 기밀을 보여 주었다는 사실을 알고서(4절) 이사야는 장차 바빌로니아에 의해 멸망 당할 것이라고 말한다(5-7절). 그제서야 히스기야 왕은 자신이 실수한 것을 깨닫고 자신이 다스리는 동안만이라도 평화와 안정이 계속되기를 소망한다(8절). 그의 바램 대로 유다는 히스기야 사후 약 백 년 후에 신흥강자로 등극한 바빌로니아에 의해 멸망 당한다.

묵상: 

히스기야 왕은 죽을 병에 걸려 벽에 얼굴을 향하고 “제비처럼 학처럼”(38:14) 통곡 하며 기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15년의 수명을 연장 받습니다. 그 병에 걸리기 전에도 주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기 위해 노력했던 그는 병에서 회복되면 더욱 진실하고 거룩하게 살겠다고 약속합니다. 그의 통절한 기도는 하나님을 감동시켰습니다. 

그런 히스기야 왕이 바빌로니아의 사절단이 보여 준 호의에 이성이 마비되어 버립니다. 한 나라의 임금으로서 그는 해서는 안 될 일을 한 것입니다. 죽을 병에서 회복되었다는 기쁨 그리고 바빌로니아 사절단이 보여 준 호의에 마음이 풀린 것입니다. 바빌로니아는 사절단이 본 것을 기록해 두었다가 백 년 후에 예루살렘 공략을 위한 전략의 기초 자료로 사용합니다. 

38장과 39장을 연속하여 읽으면서 우리는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자각합니다. 그토록 바르고 신실했던 히스기야 왕이 이토록 어리석은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그러므로 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고전 10:12)라는 바울의 말씀이 기억 납니다. 우리에게 위험한 것은 고난이 아니라 번영이요 성공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합니다. 죽을 병의 위협 앞에서 살아남은 히스기야 왕은 융숭한 환대에 판단력을 잃고 미끄러졌습니다. 그의 실수는 나라 전체의 운명을 결정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Comments

3 responses to “이사야서 39장: 히스기야 왕의 실수”

  1. 기도 응답이 없다고 지나치게 낙심하지않고 오직 신실하신 주님만 기리며 살아가고, 기도 응답을 받았다고 들뜬 마음으로 허황하게 살지않고 계속해서 주님만 바라보고 살기를 기도합니다. 영적 분별력을 원합니다. 항상 생각과 언행과 삶이 주님 경외하고 영광을 오로지 주님께만 드리도록 인도하여 주십시오, 믿음의 유산을 믿음의 공동체인 가정과 교회에 남기도록 성령의 인도하심을 간절히 기도하는 아침입니다. 아멘.

    Like

  2. 241112 이사야 39장

    “너에게 태어날 아들 가운데서 더러는 포로로 끌려가서, 바빌론 왕국의 환관이 될 것이다.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말하였다.
    “그대가 전하여 준 주님의 말씀은 지당한 말씀이오.”
    히스기야는, 자기가 살아 있는 동안만이라도 평화와 안정이 계속 되면 다행이라고 생각하였다.”
    (사39:7-8)

    히스기야가 병에서 나았다는 말을 듣고, 바빌로니아의 왕 므로닥발라단이 그에게 친서와 예물을 보냈다. 히스기야는 그의 편이 되어주는 바빌로니아에게 마음을 열고, 보물창고에 있는 보물과 무기고 등 국가권력 안보에 중요한 것들까지도 모두 다 보여주었다.
    이를 이사야 선지자가 듣고, 그에게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예언하게 되는데, 결국 유다는 바빌로니아에게 넘어가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유다가 바빌로니아에게 정복될 뿐만 아니라 히스기야왕의 후손들도 그들의 환관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었다.
    여기서 히스기야왕의 반응이 놀랍다. 이사야의 예언을 모두 인정하면서,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만이라도 평화와 안정이 계속된다면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동안 히스기야왕은 앗시리아로 부터 협박을 받을 때, 질병으로 인해 죽을 위치에 처했을 때 모두 간절함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다. 그리고 그는 유다 역사에 남을만한 하나님의 도움을 받은 인물로 기록되어있다. 그랬던 그가 앞으로 유다가 바빌로니아에 넘어가고, 후손들까지 그들의 환관이 될 것이라는 이사야의 예언 앞에서는 “내가 사는 동안만이라도 평안하면 되었다.”라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히스기야의 이런 반응과 태도들을 통해 철저히 자기 중심적인 태도로 하나님과 관계했음을 보게 되었다. 여러차례 하나님의 도우심과 기적과 같은 일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선은 하나님이 아닌 자기 자신안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니 유다왕국의 멸망소식을 듣고도, 내가 사는 동안 평안하면 됐다 말하며 거기에 위안을 삼는 것이 아니였을까?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도우심과 기적을 경험하길 원한다. 실제로 성경에서는 죽었던 자들이 살아나고, 아픈 사람들이 나으며, 소망 없던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내용이 나온다. 그리고 이는 굉장한 임팩트로 다가온다.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역사하시는 분이시다.”라는 진리를 몸소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그 기적을 통해 하나님과 사귐이 있는 관계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면, 적이 코 앞에 다와도 분별력을 잃게 된다. 병도 낫고, 평안해보이는 그 때를 살아간 히스기야왕이 자신의 눈 앞까지 적이 다가오는 줄도 모르고, 그들의 친절함에 넋을 놓고 저지선마져 스스로 무너뜨린 것 처럼 말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기적과 은사를 주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인간의 창조목적에서 부터 기적과 이사는 모두 ‘하나님과의 사귐’을 위한 것이다.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알고, 그분과 깊은 관계 안으로 들어가는 것. 온전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아는 축복을 누리는 것이 이 모든 일의 목적인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경험한 기적과 이사는 모두 나를 교만한 자리로 데려가 스스로 파멸하게 되는 불행을 초래할 것이다.

    얼마나 많은 은사적 체험과 기적을 경험했느냐 보다 나의 시선이 하나님과 맞닿아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엡3:16-19)

    ”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빌립보서 3:7-9)

    그리스도를 아는 것 외에는 모든 것을 해로 여긴다는 말씀이 와 닿는다. 그리고 내게 주어진 모든 것으로 부터 날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가길 간절히 소망한다. 더불어 히스기야 왕처럼 수많은 은헤과 기적을 체험하고도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안타까운 이들을 위해 기도한다.
    다른 어떤 것 보다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것이 내 안에 가장 귀한 가치임을 잊지 말자.

    #말씀묵상

    Like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미국 대선 이야기를 또 하고 싶지는 않지만, 민주당의 패인 분석 중에는 바이든 대통령이 경선 포기를 너무 늦게 해서 – 후보를 정하는 타이밍이 너무 촉박해서 – 지고 말았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트럼프 재집권 시나리오는 지난 4년 동안의 일을 다 무효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으니 바이든 정부의 유산 legacy 은 결국 트럼프라는 기이하고 애석한 결론을 내리는 분석도 있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바빌론 사절단에게 무기고를 보여 주고 보물 창고도 열어 제치는 만용을 부립니다. 이사야는 이 일이 종말의 시작 the beginning of the end 인 것을 봅니다. 히스기야에게 실수의 댓가가 어떨 지 알려줍니다. 자식들에게 일어날 어려운 일들을 듣는 히스기야의 심정을 헤아리기도 성서는 곧바로 히스기야의 ‘체념’ 섞인 반응을 전합니다. 자기 살아 있는 동안 만이라도 평화와 안정을 누린다면 다행이라고 말합니다. 이 부분을 읽는데 무기력한 바이든 대통령이 떠올랐습니다. ‘당신 때문에…!’라는 비난에 자유로울 사람은 없습니다. 랍사게의 요사스런 말을 듣고도 흔들리지 않던 히스기야인데, 죽을 병에 걸려 괴로운 지경에도 면벽기도를 하며 하나님께 매달리던 히스기야인데 ‘뭐에 씌여서’ 바빌론 사절단에게 과잉친절을 베풀었는지요. 이사야의 예언을 듣고서 그는 또 다시 벽을 마주하고 간절히 기도했어야 했겠지요. 자기가 방심했노라고, 살아났다는 기쁨에 겨워 세상의 모진 바람을 잊었노라고, 하나님 밖에는 의지할 데가 없노라고 울며 매달렸더라면…아쉽고 슬프고 아프지만, ‘트럼프에게서 뺨을 맞고 히스기야한테 푸는’ 식이 되었지만 세상은 참 냉혹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더더욱 은혜가 넘친다는 고백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아픔과 슬픔의 파도 앞에서도 하나님의 따스한 사랑의 빛을 느낄 수 있으니 감사합니다. 죽을 병에서 살아나고 생명이 연장되는 기적의 드라마를 살면서도 때때로 하나님의 손을 놓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이해하시고 품어주시는 예수님의 연민 덕분에 또 고비를 넘기며 계속 걸어갈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Liked by 2 people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