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서 33장: 평화의 도시

해설:

33장에서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유다와 예루살렘에 베푸실 구원의 은혜를 노래한다. 먼저 이사야는 앗시리아가 심판 당할 것을 예언한다(1절). 지금 유다는 앗시리아에 의해 초토화 된 상태다. 그런 상태에서 바랄 것은 하나님의 심판 밖에 없다. 그래서 그는 구원을 베풀어 주시기를 간구한다(2-3절). 기도 후에 그는 하나님이 행하실 미래의 일을 상상하며 민족들에게 심판의 미래를 예언한다(4절). 그분이 구원을 베푸실 때가 되면, 주님께서는 “공평과 의”로 유다를 충만하게 하실 것이며(5절), 백성은 펑화와 번영을 누릴 것이다(6절). 그러나 지금은 앗시리아의 때다. 이집트를 통해 앗시리아의 위협을 막아보려는 히스기야 왕의 계략은 허사가 되어 벼렸다. 앗시리아의 침략으로 유다 땅은 사막처럼 황량해져 버렸다(7-9절).   

10절부터 16절까지에서는 타락한 유다 백성과 강대국들에 대한 심판의 예언이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것처럼 보이지만 때가 되면 그분은 전능의 손을 펼쳐 심판하실 것이다(10절). 앗시리아나 바빌론 같은 강대국들이 도모하는 일들은 모두 허사가 될 것이고,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때는 “불에 탄 석회같이” “찍어다가 태우는 가시덤불같이”(12절) 될 것이다. 그 때가 되면 먼 데 있는 사람이나 가까이 있는 사람들 모두가 하나님의 권능을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13절). 그 심판은 유다 백성에게도 임할 것이다(14절). 

유다 백성과 예루살렘 주민들은 자신들은 하나님의 심판에서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돌로 쌓은 견고한 산성”(16절)이 그들의 은신처가 되어 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을 안전하게 지켜 주는 것은 산성이 아니라 의와 공평을 실천하는 삶이다(15절).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17절부터 24절까지는 회복된 시온의 영광에 대한 예언이다. 그 때가 되면 “네가 다시 한 번 왕의 장엄한 모습을 볼 것이며, 백성은 사방으로 확장된 영토를 볼 것”(17절)이다. 다윗 시대의 영광이 회복된다는 뜻이다. 그 때가 되면 이방 민족으로부터 억압 받던 일이 과거의 추억이 될 것이다(18-19절). 예루살렘은 이름 뜻 그대로 ‘평화의 도시’로 회복 될 것이며(20절), 예루살렘은 주님의 다스림 아래에서 풍요룰 누릴 것인데, 그 평화와 번영을 해칠 민족은 존재하지 않는다(21절). 주님이 예루살렘의 왕이시고 재판관이시기 때문이다(22절). 만일 외국 군대가 침략해 온다면, 오히려 탈취 당하게 될 것이다(23절). 그 때가 되면 예루살렘 안에 사는 모든 백성이 죄 용서함을 받고 온전해질 것이다(23절).

묵상:

“시온에서는 죄인들이 공포에 떨고 경건하지 않은 자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힌다“(14절)는 말씀에서 잠시 멈춥니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 “시온”과 “죄인”이 결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시온”이라는 말은 “의인”이라는 말과 짝을 이뤄야 마땅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예루살렘에 당신의 이름을 두신 이유는 그 도시를 통해 온 세상에 의의 빛을 비추기 위함이어습니다. 이스라엘을 제사장의 나라로 세우시고 모든 민족으로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들의 “재판관”이시며 “법을 세워 주시는 분”이시고 “왕”이시며 “구원하실 분”(22절)이신 주님은 그들을 안전하게 보호하셔서 거룩하고 의롭게 살게 해주셨습니다. 

하지만 유다 백성은 제사장의 나라로 세워지기를 거부하고 죄악을 따라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돌이키기 위해 예언자들을 보내셨으나, 그들은 귀를 막고 죄악의 길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살면서도 하나님은 자신들을 보호해 주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제사장의 나라로 선택 받은 책임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하나님이 자신들을 보호하실 의무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그들을 그들의 죄에 넘겨 주셨고, 그 끝에서 그들을 앗시리아의 손에 붙여 심판하십니다. 그제서야 유다 백성은 그들을 보호해 주는 것이 높은 산성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의롭게 사는 사람, 정직하게 말하는 사람, 권세를 부려 가난한 사람의 재산을 착취하는 일은 아예 생각하지도 않는 사람, 뇌물을 거절하는 사람, 살인자의 음모에 귀를 막는 사람, 악을 꾀하는 것을 보지 않으려고 눈을 감는 사람, 바로 이런 사람들이 안전한 곳에 산다”(15-16절)는 말로써 이사야는 우리의 참된 안전 지대가 어디에 있는지를 암시합니다. 우리가 의지할 것은 군마도, 기병, 높은 산성도, 깊은 은신처도 아닙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능력이 되시는”(21) 곳이 진정한 안전 지대입니다. 

그 안전 지대는 지도 상에 나오는 어느 지역이 아니라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에서 의롭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평화의 도시’ 즉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분께 의지하고 공의와 공평을 행하며 살아가는 자리입니다. 그렇게 살고 있다면, 지금 내가 선 자리가 예루살렘이 됩니다. 그럴 때 나는 “시온에 사는 의인”이라 불릴 것입니다. 


Comments

3 responses to “이사야서 33장: 평화의 도시”

  1. 석상과 목상이 아니라 재물과 권세와 쾌락과 명예가 궁극의 우상이된 세상에 살고있습니다. 헛된 우상들을 얻을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고 살아온 가련한 존재입니다. 지금부터라도 허락하신 시온,가정과 교회를 위해 전심전력하는 믿음을 원합니다. 멕크린에서 마나사스로 만나사스에서 센터빌로 센터빌에서 훼어옥스로 옮기는 사귐의 교회가 다음절기를 즐기고 다시는 옮기지않는 우리의 도성 시온, 살기에 안락한 장막이 되는 소망으로 간절히 기도하는 아침입니다. 제가 원하는 선거결과가 아니더라도 모든것을 주관하시는 사랑과 전능,주님의 창조질서 회복의 한 chapter로 믿고 감수하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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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지도자는 적극적으로 선을 행해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공공의 선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성서의 배경은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지만 민주주의적 사고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성서가 놀랍도록 앞서가는 책이라는걸 보게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가히 ‘급진적’입니다. 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온 뒤에 일어난 사회적 변화는 대단합니다. 여성의 입장에서 보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사람의 인식에 변화가 일어나면 사회에도 변화가 일어납니다. 한 번 깨어난 인식은 뒤로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경험 이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선을 행하는 것은 하나님을 닮아가는 연습이기도 합니다. 이사야를 통해 보여 주시는 하나님의 분노가 이해가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전혀 닮지 않았을 때 하나님은 실망하실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은혜를 경험한 지도자가 은혜를 베풀지 않을 때, 용서 받은 사람이 용서에 인색할 때 하나님은 침묵하실 수 없을 겁니다.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는 심정으로 오늘을 맞이합니다. 우리의 악함과 하나님의 선하심의 상징인 십자가를 바라보며 묵상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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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41105 이사야 33장

    “우리가 마음껏 절기를 지킬 수 있는 우리의 도성 시온을 보아라. 옮겨지지 않을 장막. 예루살렘을 보아라. 우리가 살기에 얼마나 안락한 곳인가? 다시는 옮겨지지 않을 장막과도 같다. 그 말뚝이 영원히 뽑히지 않을 것이며, 그 줄이 하나도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거이에서는 주님께서 우리의 능력이 되시니, 그곳은 마치 드넓은 강과 시내가 흐르는 곳 같겠지만, 대적의 배가 그리로 오지 못하고, 적군의 군함이 들어올 엄두도 못낼 것이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재판관이시며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법을 세워주시는 분이시며, 주님께서는 우리의 왕이시니, 우리를 구원하실 분이시다.

    그리로 들어오는 배마다, 돛대 줄이 느슨하여 돛대를 똑바로 세우지 못하고, 돛을 펴지도 못할 것이다.
    우리는 많은 탈취물을 얻을 것이다. 다리를 저는 사람들까지도 많이 탈취할 것이다.

    거기에서는 아무도 “내가 병들었다”고 말하지 않겠고, 거기에서 사는 백성은 죄를 용서받을 것이다.”(사33:20-24)

    유다를 향해 회복을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그들의 도성 시온을 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예배받으실 도성 시온은 다시 옮겨지지 않을 장막이며, 말뚝은 영원하고, 줄이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 말씀하신다. 그리고 모든 공격으로 부터 보호받고, 승리하는데- 그들로 부터 탈취한 탈취물들을 다리를 저는 사람들까지도 탈취한다고 하신다. 연약하고, 소외되고, 인정받지 못하는 자들까지 하나님의 은혜가 미치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누구도 병들었다 말하지 않고, 그곳에서 사는 모든 이들이 용서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 나라. 그곳이 이런 모습이 아닐까?
    현대사회를 살아가다보면 육체의 질병 뿐만 아니라 마음과 영혼까지 아픈 사람들을 많이 본다. 분명 겉으로는 멀쩡해보여도, 그 사람의 행동과 말을 보면 도움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현실적인 방법으로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너무 중요하다. 그러나 본질적인 도움도 함께 수반되어야 한다.
    바로 하나님 안에서의 정체성을 찾는 일이다.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내가 어떤 존재인지 너무 잘 아신다. 그래서 하나님께로부터 정체성을 찾는 일이야 말로 문제의 근원을 해결하는 중요한 열쇄가 된다.

    그리고 그 정체성을 찾는 과정은 하나님을 예배할 때 시작된다.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예배할 때, 하나님을 마주하게 된다. 그러면 성령께서 나의 죄를 들춰내신다. 그 죄를 회개하고 용서받을 때, 나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문제들로 부터 해방되어 하나님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누구도 병들었다 말하지 않는 곳.
    그곳은 하나님이 계시는 도성. 시온산이다.
    그곳에서 하나님을 예배할 때, 완전한 보호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스물스물 걱정과 근심이 올라올 때-
    다시 나의 시선을 하나님께 두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주님을 예배할 것이다.
    다리 저는 자에게도 탈취물을 허락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자는 누구도 병들었다 말하지 않을 것이다.

    생수의 근원이 되시는 주님 앞으로 나아가자.
    그리고 이 세대와 이 땅을 위해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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