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서 26장: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다!

해설:

1절부터 6절까지는 남왕국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보호를 노래한다. “그 날이 오면”(1절)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놀라운 구원 역사를 행하실 날을 가리킨다. 그 때가 되면 “주님께서 친히 성벽과 방어벽이 되셔서”(1절) 예루살렘 성은 안전해질 것이다. 이제는 외세의 침략에 대비하여 성문을 닫아 두지 않고 활짝 열어 놓을 수 있다(2절). 

이사야는 주님께서 미래에 유다에 베푸실 회복의 은혜를 상상하면서 주님께 기도 드린다. 먼저 주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에게 평화를 더해 달라고 청한다(3절). 동시에 그는 유다를 향해,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라고 명령한다(4절). “영원한 반석”이신 주님은 교만한 자들을 비천하게 만드시며 교만한 자들의 성을 무너뜨리시는 분이기 때문이다(5절). 그 때가 되면 과거에 억압받던 사람들이 그 성을 밟고 다닐 것이다(6절).

이사야는 하나님의 의를 묵상하며 찬양의 기도를 드린다. 그는, 주님께서는 의로운 사람의 길을 평탄케 하시는 분이기에(7절) 율법을 따르며 주님께 희망을 걸겠다고 고백한다(8절). 그는 주님께서 심판의 팔을 펴실 날을 기다린다. 그 때에야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비로소 의가 무엇인지 배우게 될 것”(9절)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 이사야는 악인들에게 눈길을 돌린다. 그들은 주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데도 의롭게 살기를 거부하고 “주님의 위엄 따위는 안중에도 두지 않고” 살아간다(10절). 그들은 심판에 직면해 있지만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이사야는, 주님께서 그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보여 달라고 청한다(11절). 

이사야는 다시 자신과 하나님의 관계로 눈길을 돌린다. 그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평화를 주실 것을 확신합니다”(12절)라고 고백한다. 자신들이 행한 모든 일은 결국 주님께서 허락해 주신 일임을 알기 때문이다. 유다는 자주 강대국의 군주를 의지했는데, 그 권세자들이 모두 주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했다(13-14절). 따라서 이제는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할 것이다. 그럴 때 주님은 유다를 큰 나라로 만드실 것이다(15절). 

하나님의 심판이 진행되는 동안 하나님의 백성은 해산하는 여인처럼 주님을 간절히 찾으며 몸부림 칠 것이다(16-17절). 그러나 그들의 기도는 응답되지 않을 것이다(18절). 유다 백성도 그 심판으로 인해 멸망 당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회복하실 것이다. 심판 당한 유다가 회복되는 것은  죽어서 땅에 묻혔던 사람들이 다시 살아나는 것처럼 놀라운 일이 될 것이다(19절). 

그렇기 때문에 심판이 시작되면 끝날 때까지 견뎌야 한다(20절). 그 심판으로 인해 죽어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살아 남는다면 하나님께서 쓰실 거룩한 그루터기가 될 것이다(21절). 

묵상:  

“우리가 임신하여 산고를 치렀어도, 아무것도 낳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구원을 베풀지 못하였고, 이 땅에서 살 주민을 낳지도 못하였습니다”(18절)는 말씀은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엄중한 것인지를 알려 줍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일을 인간이 바꿀 수 없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심판 계획을 알고 진실하게 회개함으로 그 계획을 돌이킨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회개가 언제나 하나님의 용서를 불러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조차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결정입니다. 때를 지나면 마음을 찢는 회개도 무용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심판이 끝은 아닙니다. 그분의 궁극적인 계획은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것이며, 심판이 아니라 구원과 회복입니다. 인간의 눈으로는 아무 희망이 없어 보여도 하나님이 원하시면 그 일은 일어납니다. 그것은 마치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가는 것처럼 놀라운 일입니다. 새벽에 이슬이 땅에 스며들면 새 생명이 피어나는 것처럼 “주님의 이슬”(19절)이 내리면 새로운 희망이 피어납니다. 회개가 하나님의 심판을 되돌리지 못했다고 해도 믿는 이들에게는 여전히 희망할 이유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는 사람들은 심판을 당할 때 절망하지 않습니다. 거룩하고 의롭게 산 사람도 악인과 함께 하나님의 심판을 당해야 합니다. 그 고난 중에 믿는 이들은 경거망동하지 않고 골방으로 숨어 들어갑니다.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의 심판이 지나갈 때까지 잠잠히 있어 주님이 하시는 일을 지켜 보기 위함입니다. 그런 사람도 심판의 와중에 죽음을 당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영원하신 하나님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심판에서 살아 남는다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남은 자로 삼아 새로운 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 


Comments

3 responses to “이사야서 26장: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다!”

  1. 영원한 심판보다 구원을 더 원하시는 주님을 믿습니다, 비록 견딜수없는 고통과 시련과 박해를 당하더라도 신실하신 사랑의 하나님만 마지막 숨쉴때까지 꼭붙잡고 살기를 원합니다. 결국에는 천국잔치 초청의 소망으로 감사하며 살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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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성경에서 이사야서를 찾아 내가 읽는데 이사야서가 내 마음을 읽어내는 것 같은 신기한 느낌이 듭니다. 귀에 그냥 들리는 노랫말이 마치 나의 이야기인 것 같은 것을 경험하기도 하고 무심코 읽는 한 문장에 심장부터 반응하는 일도 있습니다. 종교개혁주일이라서 그런지, 대통령 선거가 며칠 남지 않아서 그런지 요즘에 느끼는 모든 감정마다 두려움이 한 바가지씩 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26장을 읽으면서 나도 18절에서 오래 머물렀습니다. 주님 앞에서 괴로워 하였어도, 산고를 치렀어도 아무 것도 낳지 못했다는 고백이 우리 시대의 고백인 것 같아, 내 마음의 우울함과 쓸쓸함을 대신 말하는 것 같아 한참 그 글자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성경에서 필요한 양식을 찾으려하건만 성경은 어느새 우리의 허기를 알아차리고 굶주린 우리 얼굴을 고스란히 비춰줍니다. 좋은 것으로 ‘치장’하려고 성경을 펼쳤으나 이사야서에 쓰인 글은 벗은 몸, 쇠약한 신경을 보여줄 뿐입니다. 루터가 커다란 교회 권력에 반기를 들기까지 시간이 걸렸습니다. 훈계와 조롱, 협박도 받으면서 속으로 끙끙 앓았을 것입니다. 그가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했다는 사실은 어쩌면 95조항으로 된 반박문을 작성한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일 수 있습니다. 말씀을 우리한테로 가깝게 끌어 당겨다 준 일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번역 성경을 읽을 수 있는 사람도, 만인제사장설의 ‘만인’도 다 성인남성에 한한다는 사실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선거를 맞이하는 마음도 무겁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긴 시간 (80년) 동안 어려운 투쟁을 해서 획득한 여성 투표권, 흑인 남성이 투표권을 행사하기 까지는 또 얼마나 많은 난관을 극복해야 했는지, 흑인 여성이 투표할 수 있게 되기 까지 걸린 세월은 또 어땠는지… 투표를 한다는 일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생각하지 않는다는건 귀한 책임과 권리 앞에 미안한 일입니다. 루터가 어렵게 시작한 종교개혁의 ‘출산’이 마치 헛고생이 된 듯 지금 교회는 세상의 빛이라기 보다 사회의 짐이 될 때가 많습니다. 어렵게 얻은 투표권, 특히 이민자의 투표 행위는 뜻깊은 사회 참여입니다. 감리교회는 민주주의에 토대한 정치적 참여를 바람직한 신앙인의 행동으로 봅니다. 이사야서 본문에서 보듯 산고 중에 주님께 절규하며 출산을 했으나 아기는 태어나지 않은 비극일 뿐인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선거의 결과가 모든 사람을 만족 시키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누가 선출되든 우리는 ‘그’를 의지하지 않습니다. 주님을 의지하는 사람 만이 주님께서 하시는 일을 볼 수 있고 깨달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어 어지러운 세상살이에서 지켜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의 자비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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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41028 이사야 26장

    “주님, 주님께 의지하는 사람들은 늘 한결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니, 그들에게 평화에 평화를 더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너희는 영원토록 주님을 의지하여라. 주 하나님만이 너희를 보호하는 영원한 반석이시다.”
    (이사야26:3-4)

    이사야 26장의 초반부는 남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을 말씀하신다. 그 중 3-4절을 읽는데, 깊은 위로와 감사의 마음이 올라왔다.
    하나님을 떠나 죄와 연합하는 자들에게는 엄중한 심판이 있지만, 주님을 의지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이 임한다. 하나님은 환난과 핍박, 어지러운 세상 가운데 하나님만 의지하고 믿음을 지킨 자들에게 평화의 평화를 주시는 분이시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엡2:14-18)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눅2:14)

    평화란 무엇인가? 예수님 자체가 평화이신 분이시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는 평화이며, 하늘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은 친히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이땅에 겸손의 왕으로 오셨다. 스스로 대속제물이 되사 인간의 죄로 인해 하나님과 막혀있던 벽을 허무시고, 화목케 하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마음에 모시는 일은 평화가 함께 임하는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일들 속해서 예수님을 놓칠 때가 많다. 그럴 때 마다 불안, 염려, 근심, 걱정, 두려움, 우울함, 낙심, 좌절 등이 나를 찾아온다. 그리고 내 안에 왕노릇하며, 나를 다스리기 시작한다. 이것이 나 개인 뿐만 아니라 가정과 교회와 나라와 세상에 확장되면, 우리에게 주신 예수그리스도의 평화가 깨어지고, 사망과 죽음의 권세가 지배하게 된다.
    그래서 늘 항상 예수님을 구해야 한다. 오직 예수님만이 나를 다스리시도록, 오직 예수님만 의지하도록 간구할 때 평화 자체이신 예수님이 내 안에 살아 역사하신다. 그럴 때 “나는 어떠한 상황속에서도 요동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다.

    지금은 그 어느때 보다도 인간 스스로 자정능력을 잃어버리고, 자신의 소견대로 행하는 죄가 넘쳐나는 것을 본다. 세상 곳곳에 예수님의 평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예수님 한분만을 영원토록 의지하는 믿는 자들이 필요한 때이다.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이 나의 삶과 이 땅을 다스리스도록…그리고 모든 이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고, 예수님의 겸손을 닮아가도록 기도하자.

    #말씀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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