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서 21장: 바빌론이 무너졌다!

해설:

1-10절은 바빌론에 대한 심판의 예언이다. 이사야가 이 예언을 할 당시에 바빌론은 앗시리아의 패권 아래에 있었지만, 주전 612년에 앗시리아를 멸망시키고 새로운 패자로 등극한다. 그 이후로 바빌론 제국은 어마어마한 위세를 떨친다. 하지만 불멸의 제국처럼 보이던 바빌론은 주전 539년에 페르시아에 의해 멸망 당한다. 하나님께서 그 불의한 제국을 끝내기로 작정 하셨기 때문이다. 엘람과 메대는 한때 바빌론과 연합하여 앗시리아에 대항했었다. “배신하는 자가 배신하고 파괴하는 자가 파괴한다”(2절)는 말은 열강 사이에 일어날 일들을 가리킨다. 

이사야는 환상 속에서 바빌론이 멸망 당하는 과정을 보면서 극심한 고통을 경험한다(3-4절). 바빌론 사람들이 당할 고난이 너무도 심했기 때문이다. 모두가 바빌론에 대한 두려움에 눌려 있을 때, 이사야는 파수꾼을 세워 바빌론이 멸망하는 순간을 지켜 보게 한다(6-7절).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거대 제국 바빌론의 멸망은 예기치 않게, 너무도 갑작스럽게 그리고 한 순간에 일어날 것이다(5, 8-10절). 

거대 제국이 또 다른 거대 제국에 의해 멸망 당할 때 주변에 있던 작은 나라들도 피해를 입게 마련이다. 바빌론에 인접해 있던 두마(에돔을 가리키는 다른 표현, 11-12절)와 아라비아(13-17절)는 바빌론이 멸망 당할 때 같은 운명을 당하게 될 것이다.

묵상:

파수꾼이 “바빌론이 함락되었다! 바빌론이 함락되었다!”(9절)라는 외쳤을 때 그 말을 믿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밝혀진 고고학적 증거에 의하면 바빌론은 난공불락의 요새로 세워져 있었고 잔인무도한 방식으로 주변 나라들을 침공 하며 제국을 확장해 가고 있었습니다. 바빌론에게 공격 당하여 버틴 민족은 없었고, 대항하여 일어날 민족은 영영 나타나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그 불멸의 제국이 그동안 누렸던 권세와 영화를 생각할 때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졸지 간에  멸망 당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바빌론의 횡포를 그치게 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의 탄식소리를 그치게 하겠다”(2절)고 결심 하신 까닭입니다. 

지상의 권세와 영화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한에서만 지속될 수 있습니다. 그분이 손을 놓으시면 한 순간에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사야는 그것을 알았기에 아무도 상상할 수 없을 때 파수꾼을 세워 바빌론의 멸망을 증언하게 했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눈입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는다면 이 지상의 어떤 권세도, 어떤 영화도, 어떤 부귀도 물거품처럼 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아야 합니다. 그것을 믿고 기억할 때 오직 하나님 만을 신뢰하며 겸손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 갈 것입니다.  


Comments

2 responses to “이사야서 21장: 바빌론이 무너졌다!”

  1. 그토록 강한 철옹성 바빌론이 무너졌고 그토록 발달했던 로마제국이 망했습니다. 살고있는 American civilization 도 정신차리지 않으면 멸망할것입니다. 고국의 부귀 영화도 위험합니다. 너무늦기전에 십자가밑에서 회개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사귐의 소리 가족들이 회개의 기도를 시작하여 온세상이 니누웨같이 구원받기를 간구하는 말씀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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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이사야서는 약자를 위한 책인 것 같습니다. 악을 행하는 지도자들이나 분별 없이 무지하고 어리석은 백성이 다같이 벌을 받지만 살아남은 자들이 있을 것이요, 그들이 다시 하나님의 도시를 건설하고 예배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의 중심에는 멸하시는 하나님과 싸매 주시는 하나님의 이미지가 같이 들어 있습니다. 이사야서에서 ‘그 날’이라는 표현이 나오면 뒤따라 안정과 회복이 나옵니다. 망해서 잿더미로 바뀐 황무지가 주의 손길로 다시금 살아납니다.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은 회복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많이 잃었으니 다시 다 찾으려면 오래 걸립니다. 가진 것이 얼마 없었던 사람은 반대일 것입니다. 가진 것이 많으면 잃을 것도 많습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심판을 계속해서 말합니다. 태평세대에 강대국에서 권세를 누리며 살던 이들에겐 정말 듣기 싫은 소리였겠지요. 그들을 떠받들고, 그들의 처분을 바라고 살던 이들은 어차피 잃을 것이 없으니 더 나빠질 게 없다고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이사야는 경고하면서 뉘우치고 회개하라고 외쳤습니다. 공의를 행하라고 외쳤습니다. 공의는 관계에 관한 개념입니다. 나와 누군가 사이에 흐르는 물입니다. 막히지 않고 술술 잘 흐르는 물입니다. 공의를 행하는 삶은 나와 상대방이 평평한 위치에 있다고 보는겁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리지’ 않으십니다. ‘짓누르지’ 않으십니다. ‘괴롭히지’ 않으십니다. 바빌론이 무너졌다는 것은 하나님이 보고 계시다는 뜻입니다. 언제까지고 공의가 훼손된 채 약한 사람이 비명 속에서 죽어가는 것을 두고 보시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앗시리아나 바빌론이, 페르시아나 로마가 망하지 않고 영원하다면, 이 땅의 강대국들이 수백년 또 수백년 계속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정말 무서운 일일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제 아무 관심도 없다는 뜻인지 모릅니다. 도움이 어디서 올까… 막막하기만 한 이들 눈 앞에서 하나님은 빠르고 무서운 속도로 땅을 뒤엎으십니다. 새 것을 허락하실 줄로 믿습니다. 파괴가 끝이 아닌 것을 믿습니다.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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