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서 4장: 심판과 구원

해설:

1절은 3장 13절부터 이어지는 심판 예언의 일부다. 전쟁으로 인해 남자들이 희생 당하여 여성들이 배우자를 찾기 어렵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심판의 “그 날”(1절)은 회복의 “그 날”(2절)로 이어진다. 하나님에게 있어서 심판은 마지막이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새로운 시작을 위한 준비다. 

2절부터 6절까지는 심판 후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유다에게 행하실 회복에 대한 예언이다. 이 예언이 선포될 때 북왕국 이스라엘은 이미 패망한 상태였다. 이스라엘은 폐허가 되었고, 대다수의 주민들이 사로잡혀 앗시리아 제국의 여러 지역으로 흩뿌림을 당했다. “그 날이 오면”(2절)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결정적인 구원 행동을 시작하실 때를 의미한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살아 남은 사람들”을 통해 그 땅을 회복시키실 것이다. 

또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는 날에 하나님은 남왕국 유다도 회복시키실 것이다. 3절 이하의 예언은 유다가 장차 멸망할 것이라는 사실을 전제한다. 멸망 당한 후에 유다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있을 터인데, 하나님은 그들을 “거룩하다”고 부르실 것이다(3절). 그들이 거룩하여 심판에서 살아 남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의인에게나 악인에게나 동일하게 온다. 심판에서 살아 남은 사람들은 고난의 풀무불 속에서 거룩하게 변화 받는다(4절). 하나님은 저 옛날 광야에서 낮에는 구름기둥과 밤에는 불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신 것처럼 남은 자들을 인도하실 것이며(5절) 당신의 영광으로 덮어 주실 것이다(6절).

묵상:

심판은 두렵습니다. 하지만 그 심판이 정의와 사랑의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 심판 앞에 겸허히 설 수 있습니다. 그분이 정죄하시면 변명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분이 옳다 하시면 반박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분의 판결은 언제나 정당합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진실 되게 믿는 사람은 그분의 심판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 심판은 실로 두렵고 고통스럽지만 심판자를 믿기 때문입니다. 심판은 지나가지만 심판자는 영원하십니다. 심판은 두려운 것이지만, 심판자에게는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심판의 불이 휩쓸고 지나가면 하나님은 심판의 풀무불 속에서 살아 남은 사람들을 통해 새로운 일을 시작하십니다. 우리가 심판의 불 속에서 악인들과 함께 타버린다고 해도 우리에게는 할 말이 없습니다. 다만, 심판의 불에서 살아 남아 우리가 하나님의 새 역사를 시작하는 그루터기로 사용된다면 큰 영예일 것입니다. 심판에서 “살아 남은 자”가 되는 것은 우리의 어떤 장점이나 공로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택입니다. 왜 어떤 사람은 멸망에 처하고 어떤 사람은 살아남게 하시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멸망 당하는 것과 살아 남는 것 중에서 어떤 것이 더 나은 운명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이렇거나 저렇거나, 중요한 것은 심판자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분의 은혜 안에 사는 것입니다. 어떤 처분, 어떤 운명을 허락하시든 순명하며,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심판자는 또한 구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Comments

2 responses to “이사야서 4장: 심판과 구원”

  1.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해설을 읽으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심판의 날, 회복의 날에 우리가 뭔가를 할 수 있는게 아니겠습니다. 본문은 그 날이라고 표현하지만 우리의 삶을 놓고 생각하면 어느 날에, 그 날에 국한되는 것은 아닐겁니다. 회복이 과정이듯 심판도 축적일지 모릅니다. 심판을 받아 사라지든지, 심판의 풀무에서 살아남든지 하나님의 결정에 따라 일어날 것입니다. 살면서 크게 ‘착각’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 분량이 엄청 많다는 생각입니다. 개인주의가 존중되는 사회에서 독립성과 자율성의 권리는 매우 중요하고 필요합니다. 민주사회라는 공동체의 건강은 시민의 책임과 의무와 직결됩니다. 그렇게 생각해서인지 하나님의 주권은 추상적인 어떤 개념으로 물러나 있고, 나의 열심과 성실함, 도덕성 등이 공동체를 형성하는데 한 몫을 하는 실질적인 힘(엔진)이라고 믿습니다. 우리 각자의 그런 자각과 의지 덕분에 사회가 잘 굴러가는지 모르지만,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 할수록 나는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존재, 내가 사는 이 시공은 하나님의 세계 안에서 점 하나 만도 못한 것임을 보게 됩니다. 착각했던거죠. 또 계속 착각하기도 합니다. 나의 것인줄, 내가 하는 줄 착각합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회복이 나에게 어떻게 임할 지 알 수 없습니다. 미래의 ‘그 날’은 모르지만, 살아온 여러 순간들 안에 심판과 회복이 내렸었던 것을 압니다. 죽었다! 생각했는데 살아나기도 했고, 정말 이건 아니다 후회하며 뉘우쳤지만 어떻게 손을 쓸 수 없던 일도 있습니다. 거룩하신 분을 찾으며 기도하게 하시는 이 순간의 은혜보다 더 큰 은혜는 없구나 다시 또 깨닫습니다. 이사야의 말씀은 어렵습니다. 읽기도 어렵고 이해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예언자의 시선과 언어는 우리의 일상 경험 너머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땅만 보고 사는 인생이 아니기를 바라기 때문에 예언자의 말씀을 경청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어느 시대, 어느 공동체에 있든 그분의 얼굴을 구하며 살고 싶어 예언자의 눈을 빌리고자 합니다. 주님, 심판은 두렵지만 ‘의사’이신 주께서 나의 상한 데를 고쳐 주신다고 믿으니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수술에서 깨어나든 못 깨어나든 이미 맡기기를 정했으니 담대하고 의연할 수 있도록 도와 주세요. 감사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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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공의로 심판하시는 주님이신것을 알기에 심판을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으로 부터 받는것은 은총인것을 고백합니다. 저주보다 구원을 원하시는 긍휼의 하나님을 항상 기억하고 힘들고 좁은길을 걸을때에도 기뻐하는 믿음을 원합니다. 십자가의 속죄를 깨닫고 멀지않은 시간에 사랑과 기쁨과 화평의 소망을 갖고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사랑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믿음의 공동체안에 할례와 율법을 주장하는 교인들을 위해 기도하며 이소동을 통해 더 살아있고 힘이 있는 교회가 되는것을 믿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께 영광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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