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1장 27-30절: 고난이라는 선물

해설:

27절은 빌립보서 전체의 주제 구절이다. 사도는 석방되어 그들을 다시 볼 때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십시오”라고 부탁한다. “합당한 생활”은 사도가 즐겨 사용하는 표현이다(엡 4:1; 골 1:10; 살전 2:12). 그리스도 안에서 신분이 변화되었다면 마땅히 그 신분에 맞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들을 다시 보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그들이 복음에 합당하게 행동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달라고 부탁한다.

그렇게 하려면 성령 안에 견고하게 서 있어야 한다. “여러분이 한 정신으로 굳게 서서”(27절)는 “여러분이 한분 성령 안에 굳게 서서“라고 번역하는 것이 좋다. 헬라어 ‘프뉴마’는 인간의 영혼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성령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 바로 뒤에 “한 마음으로”라는 표현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들이 한분 성령 안에 굳게 서 있을 때, 그들은 “한 마음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함께 싸울” 수 있다. 여기서의 “싸움”은 물리적 싸움도 아니고 공격적 전투도 아니다. 에베소서 6장 10-20절에서 사도는 믿는 이들의 싸움은 “영적 방어전”이라고 했다. 방어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연합이다. 그래서 사도는 “한 마음으로” “함께” 싸워야 한다고 말한다. 

그들이 한분 성령 안에 굳게 서 있을 때, 그들은 또한 “어떤 일에서도 대적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28절). 적을 두려워하는 것은 심리적으로 패배를 자인하는 것이다. 사탄은 성령 안에 머물러 있는 사람을 흔들 수 없다. 성령의 사람과 악한 영이 만나면 두려워 떠는 편은 악한 영이어야 한다. 성령 안에 있는 사람은 이미 영원한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28절)라는 말은 담대함이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것이라는 의미다.

그 담대함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들에게 은혜로 주시는 것이다(29절).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믿을 뿐 아니라 그분을 위하여 고난을 받게 하려고 주시는 선물이다. 영적 전투에 참여하는 것은 고난을 자초하고 감수한다는 뜻이다. 사도는 빌립보 교인들이 겪는 고난이 근본적인 의미에서 자신이 겪는 고난과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30절). 이것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큰 격려가 되었을 것이다. 

묵상: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 예수를 알게 되면, 그분이 절대가 되고 전부가 됩니다. 그리스도를 보조재로 혹은 장식품으로 믿고 있다면 아직 그분이 누구신지 알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진정한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풀어 주신 구원의 은혜를 가장 값진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분의 뜻을 이루는 것을 가장 중요한 생의 목적으로 삼습니다. 그리스도의 뜻은 우리 각자가 복음을 믿어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가를 분별할 줄 알게 되어 그리스도의 날까지 순결하고 흠이 없이 살며 그분이 주시는 의의 열매로 가득 차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며(10-11절), 또한 우리에게 전해진 그 복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은 이 땅에서 자주 손해와 오해와 박해를 받게 만듭니다. 하지만 그 고난을 통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영예를 얻습니다. 그것은 불행이 아니라 특권입니다(29절). 그리고 그렇게 살다가 죽는다면 그 죽음은 우리에게 유익입니다(21절). 그리스도를 위해 살다가 죽은 것이라면 그 죽음은 그리스도와의 영원한 동행으로 우리를 인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한분 성령 안에 견고히 서서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여기에 사용된 표현들 중에 “굳게 서서”, “함께 싸우며”(27절), “대적하는 자들”(28절), “그들에게는 멸망”, “여러분에게는 구원”(28절)은 당시 독자들에게 익숙했던 군사 용어입니다. 이런 용어들을 사용하여 사도는 마치 전장에서 사령관이 병사들에게 명령하는 것처럼 권면합니다. 그는 병사들보다 먼저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겪고 있습니다. 사령관이 앞서서 고난 당하는 것은 병사들에게 큰 격려가 됩니다. 사령관이 당하고 있는 고난에 동참하는 것은 병사들에게 큰 영예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것은 이 세상에서 손해와 모욕과 거부와 박해를 불러오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값진 고난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믿음이 진짜라는 증거이며, 그리스도의 고귀한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며, 그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드러나고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Comments

3 responses to “빌립보서 1장 27-30절: 고난이라는 선물”

  1. 교활한 유혹,세상의 부귀영화에 자주 너머지는 신세입니다. 물과 불과 진리와 성령으로 매일 세례받고 새롭게되고 말씀위에 굳건히서고 성령으로 매일 충전하기를 원합니다, 죄에 물든 세상에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오직 십자가의 사랑밖에는 딴길이 없기 때문인것을 압니다. 성령 하나님의 인도를 간구합니다, 영적 싸움에 승리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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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고난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무엇이 고난인지, 어떤 상황을 고난이라고 여기는지 생각해 봅니다. 나라에 변이 일어나 생명에 위협을 받는 상황은 고난입니다. 자연재해나 전쟁으로 인해 기본적인 생활 여건이 무너지는 것이 고난입니다. 일자리가 없어져서 생계가 막막해지는 것이 고난입니다. 병이 들어 일을 할 수 없게 되는 것도 고난입니다. 여기까지만 봐도 고난은 잃는 것 loss 과 연관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가지고 있던 것을 잃으면 우리는 그것을 고통스럽게 여기고 고난을 만났다고 여깁니다. 스트레스를 수치화한 도표가 있습니다. 인생에서 일어나는 여러 상황을 100점 기준으로 값을 매겨 놓았습니다. 배우자 사망이 100점으로 가장 스트레스가 높습니다. 이혼은 75점이고, 이혼의 전단계인 별거나 불화는 65점입니다. 감옥에 가는 것, 가족의 죽음, 질병 등의 스트레스 지수도 60점대로 높고, 결혼을 하는 것은 ‘좋은 일’인데도 직장을 잃는 것보다 스트레스를 더 받는걸로 나와 있습니다. 개인마다 스트레스를 받는 정도가 달라 체감과 후유증의 폭도 다르기는 하지만, 도표를 보면 삶은 마치 지뢰밭과 같아 우리의 일상 곳곳에 묻혀 있는 위험과 슬픔이 언제 터질지 모른다는 무서움이 들기도 합니다. 살고 죽는 일에 흔들리지 않는 바울의 모습을 보며 나도 그렇게 의연하고 싶다, 주님만 생각하며 살련다 하면서도 고난을 미리 미리 골라내어 피할 수는 없을까 하는 헛된 궁리도 합니다. 고난은 관계의 일그러짐입니다. 가게를 하면서 여러 어려운 일들을 겪었는데 도둑이 든 일, 수도 파이프가 새서 물난리가 난 일, 코로나로 문을 닫고 장사를 못한 일…스트레스가 가장 심했던 때는 못된 종업원들 때문에 속상했던 몇 달입니다. 처음부터 못된 애가 아니었는데, 약아지고 잔머리를 굴리기 시작했습니다. 알아도 모르는 척 넘어갔는데 더 이상 봐줄 수 없는 때가 왔습니다. 살면서 겪는 고난의 종류나 무게로 사람의 인생을 평가할 수는 없을 겁니다. 대의와 명분을 위해 받는 고난은 고결하고, 자기 한 입, 가족 먹이자고 애쓰면서 겪는 아픔은 고난 축에 들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보이는 싸움은 쉽고, 보이지 않는 영적 전쟁은 어렵다고 하는 말도 당사자에겐 서운합니다. 복이 관계와 인연의 통로를 타고 우리에게 오듯 고난과 여러움도 사람을 통해 도착할 때가 많습니다. 억압과 무시, 무례, 비난, 억울함, 부정, 불의…사람을 통해 내게 가해지는 고통이 사회적 악행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힘이 없어 그저 받아 내고 참아 내야 하는 일들이 여기 저기서 일어나면 사회악이 되고 시대악이 됩니다. “여러분을 대적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이 모든 것은 여러분이 구원받았다는 증거 (28절)”라고 하는 바울의 위로를 가슴에 담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구원이라는 고백은 고난의 면제, 고난의 부재를 약속하지 않습니다. 스트레스 없는 인생의 보험약관이 아닙니다. 고난을 고난으로 두지 않고 별처럼 빛나는 보석으로 만들어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고난에 대한 나의 두려움을 힘으로 바꿔주신다는 약속입니다. 고난은 여전히 무섭습니다. 임마누엘의 주님께 고난의 무게를 옮기겠습니다. 여기 이미 계신데도 몰랐던 베델의 주님을 기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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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achi049 Avatar

    전쟁터에서 사령관이 나를 따르라고 외치며 적진을 향하여 전진할 때 사령관이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과 병사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다고 믿으면 목숨을 아끼지 않고 그명령을 따를 것입니다. 영적 전투에서도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사탄의 종으로부터 구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당신의 전부를 화목제로 바치신 것처럼 믿음의 공동체도 그분의 명령에 목숨을 다하여 순종 해야 합니다.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로 주님의 마지막 유언을 이루어드리는 남은 여정이 되게 하옵소서.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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