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1장 12-18절: 주님 안에 머물러 산다

해설:

12절부터 편지의 몸말이 시작된다. “내게 일어난 일”(12절)은 감옥에 갇힌 일을 가리킨다. 그 사건이 알려지면 많은 신도들이 전도의 문이 막혔다고 생각하고 낙심할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사도는 자신의 투옥이 “도리어 복음을 전파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는 말로 그들을 안심시킨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감옥에 갇혔다”(13절)는 말은 그가 그리스도 예수께 대한 믿음과 헌신 때문에 감옥에 갇혔다는 뜻이다. 그의 투옥은 그가 얼마나 그리스도께 헌신된 사람인지를 반증해 주는 사건이 되었다. “친위대”(프라이토리온)는 식민지에 파견된 황제의 직속 부대를 가리킨다. 그의 투옥 사건은 “친위대와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저 사람이 투옥을 감수할 정도로 자신을 희생하며 전하려는 예수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저 사람은 왜 예수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는 일에 목숨을 걸었는가?”라는 의문을 가지게 만들었다. 그것이 복음 전파에 유익이 되었다는 뜻이다. 

그뿐 아니라, 사도는 자신이 투옥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겁 없이 더욱 담대하게”(14절)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고 말한다. 그들은 “주님 안에 있는 형제자매들”이다. 믿음이 약한 사람들은 바울의 투옥 소식에 두려워 떨며 뒷걸음쳤지만, 주님 안에 든든히 서 있던 신도들은 오히려 자극을 받았다. 자신들이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도가 구금 되었으니, 자신들이라도 그가 했던 일을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사도의 태도를 보며 자신들이 믿고 전하는 복음에 대해 더욱 확신을 가졌을 것이다. “과연, 이 복음은 목숨을 바칠만한 것이구나!”라는 확신이 그들로 하여금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게 했다. 그들은 바울이 진실한 사도임을 알아보고 “좋은 뜻으로”(15절) 그리고 “사랑으로”(16절) 복음을 전했다.  

하지만 그의 투옥을 기뻐하면서 “시기하고 다투면서”(15절) 더욱 열심을 내어 전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다투면서”는 “경쟁심으로”라고 번역하는 것이 좋다. 그들은 3장 2-4절에 언급된 “유대주의자들”(이방인들도 예수에 대한 믿음에 더하여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들)을 가리키는데, 그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가르친 바울 사도의 전도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바울이 투옥 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그들은 더욱 열심을 내어 전도했다. 그것은 시기심과 경쟁심에서 나온 열심이었고, 바울을 낙심하게 하려는 의도에서 나왔다(17절).

사도는, 자신에게는 그들과 경쟁하려는 의도가 없으며, 불순한 동기와 목적으로 행해진 일이라 해도 그리스도만 전해지면 자신은 기뻐할 것이라고 말한다(18절). 이 말로써 사도는 불순한 동기로 복음 전하는 것을 두둔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불순한 전도 행위에 대한 은밀한 비판이다. 바울은 어느 누구보다 동기의 순수성을 강조했다. 

묵상:

그리스-로마 사회의 통념은 사고, 불행, 실패, 질병 등을 그 사람의 업보로 보고, 평안, 성공, 승리, 건강 등을 그 사람의 영광으로 여겼습니다. 섬김, 헌신, 희생 같은 것은 미덕으로 간주되지 않았습니다. 강해지고 높아지고 커져서 많은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누리는 것이 미덕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이러한 영향 때문에 믿는 이들도 사고나 불행이나 실패나 질병을 불신앙 혹은 죄로 인해 받는 보응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믿는 사람들 중에는 하나님의 능력을 힘 입어 만사형통 하고 승승장구 하며 무병장수 해야 한다고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바울이 복음 전하는 일로 인해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를 믿고 의지했던 이들 중에는 “능력의 사도”인 바울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로 인해 혼란스러워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과연, 그가 전한 그리스도 예수가 진짜인가?” 혹은 “성령의 능력 안에 있다면 왜 저런 불행이 일어나는가?” 하고 질문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바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해 더욱 용기를 내어 복음을 전했습니다. 복음을 위해,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 목숨까지 아끼지 않는 바울의 열심을 보고 “사도가 전하는 복음은 진짜구나! 사도에게는 그리스도가 목숨보다 더 중요하구나!” 하고 생각 했기 때문입니다. 그를 체포하고 감금했던 황제 친위대들도 “저 사람이 목숨까지 바치려는 그리스도 예수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하고 질문했을 것입니다. 그런 생각이 그들로 하여금 복음에 대해 마음의 문을 열게 만들었습니다.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동일한 사건을 두고 정반대의 해석을 한 것입니다. 그 차이는 “주님 안에 있느냐?”(14절)에 있습니다. 믿는다고 하지만 주님 안에 머물러 살지 않으면 세속적인 사고 방식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주님 안으로 온전히 자리를 옮기지 않으면 사탄의 지배력 아래에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온전히 믿는다는 것은 포도나무 가지가 줄기에 붙어 있는 것처럼 항상, 늘 주님 안에 머물러 사는 것입니다.    


Comments

3 responses to “빌립보서 1장 12-18절: 주님 안에 머물러 산다”

  1. 주님은 포도나무이시고 저희들은 포도나무가지라고 고백합니다고 알차고 풍성한 열매를 맺기위해서는 가지치기를 당해야하는데 당하기를 싫어하는 모습입니다. 주님이 내안에 내가 주님안에 온전히 거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믿음의 공동체가 많은 열매를 맺는 밑거름이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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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오늘 본문은 감옥 안에 있는 바울이 감옥 밖에 있는 신자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예수를 전하다 여러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동족 유대인들로부터 공격을 받았고, 이방인들은 그를 경계했습니다. 전도를 위해 여러 도시를 다니는 중에 가정 교회가 생기는 ‘성공적인’ 결과도 있었지만 반대로 비난과 모략으로 상처를 입는 일도 많았습니다. 지금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로마에 있는 감옥일겁니다. 로마로까지 끌려가 감옥에 감금되어 있는 그의 상황이 바깥의 신자들에게 영감과 열정을 불러 일으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신비롭습니다. 누군가를 감옥에 넣는 것은 ‘저렇게 하면 안된다’는 걸 가르치기 위해서인데 바울의 경우는 반대가 되었습니다. 감옥에 간다고 해도 꼭 해야 하는 영광스러운 일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사회의 체제를 붕괴 시키라고 선동하지 않았지만 예수님을 믿게 된 신자들 마음엔 다른 나라, 다른 사회를 동경하는 의식이 생겨났고, 그렇게 되니 지금 눈에 보이는 권력과 질서는 더이상 두려운 대상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민주당 전당대회가 연일 화제입니다. 남다른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뉴스의 하일라이트를 드문드문 볼 뿐인데도 참 대단하다 싶습니다. 대회 첫날부터 오늘 마지막 날까지 스케쥴과 프로그램을 디자인한 사람들의 실력이 놀랍습니다. 무대에 올라오는 사람들의 연설 수준이 놀랍습니다. 현장에 참여한 대의원들의 반응도 대단합니다. 어제 부통령 후보 월즈의 연설을 들었습니다. 설교를 듣는 것 같았습니다. 마음이 뜨거워지기까지 했습니다. God, Jesus 이런 단어가 나오지 않아도 자기가 자라난 네브라스카의 뷰트라는 작은 동네를 이야기하면서 이웃 neighbors 이야기를 할 때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웃이 저 이웃이구나 싶었습니다. “전체 인구 400명, 고등학교 졸업생은 24명이던 고향에서 나와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기도하고, 다르게 사랑해도 저들은 나의 이웃이었습니다. 나는 그들을 챙겼고 그들은 또 나를 챙겼습니다.” 전당대회는 정치적인 행사입니다. 정치적 성향과 가치가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정치적 정체성을 확인하고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만든 자리입니다. ‘정치적’이라는 단어를 빼면 교회와 다를게 없습니다. 전당대회의 프로그램은 음악과 연설로 채워집니다. 연설이 끝난 뒤 군중은 ‘결단’합니다. Do Something! 미셸 오바마의 호소에 군중은 화답했습니다. 바울은 감옥에 있는 자신의 형편이 오히려 복음 전파에 도움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죄 없음을 아는 경비대와 사람들이 그의 지원자가 되었고, 감옥 밖에 있는 신자들은 담대함을 얻었으며, 자기를 시기하는 사람도 이유가 어찌 되었든 복음 전파에 앞장 서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자신을 속상하게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지만 그리스도가 전파된다는 것 만으로도 자신은 기쁘게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바울의 편지에서 전당대회의 분위기를 느낍니다. 상대가 누구든, 상황이 어떻든 우리의 할 일은 정해져 있다고 말합니다. 세속의 자유와 복음의 자유는 일치하지 않습니다. 정치인의 구호와 예수님의 가르침은 일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목표를 향해 달리는 싸움이라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달리고 또 달립니다. 감옥 안에서, 감옥 밖에서 달리고 달립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달립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주님을 보고 달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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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achi049 Avatar

    복음 전파는 하나님 아버지를 주인으로 모시고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의무이자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느 목사는 전도를 하면 벌금을 부과 받는다고 하면서 전도 이야기를 한번도 말한 적이 없습니다. 결과는 교회의 규모는 점점 작아지고 있슴을 보고있습니다. 주님!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믿음의 공동체가 의무를 성실히 감당 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동행하시고 용기를 부어주시옵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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