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6장 18-24절: 항상 기도해야 하는 이유

해설:

성령 충만한 상태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안에 든든히 서서 영적으로 완전 무장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기도다. 사도는 “온갖 기도와 간구로 언제나 성령 안에서 기도하십시오”(18절)라고 말한다. “기도”(프로슈케)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행하는 모든 일(찬양, 감사, 고백 등)을 가리키고 “간구”(데에시스)는 우리의 필요를 구하는 것을 가리킨다. “성령 안에서”라는 말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도를 위해 대신하여 간구하시는”(롬 8:27) 성령께 의지하라는 뜻이다. “언제나”, “늘 깨어서”, “끝까지 참으면서”라는 말들을 덧붙임으로써 사도는 기도 역시 영적 싸움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믿는 이들의 기도는 자기 자신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사도는 “모든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십시오”라고 요청한 다음 “또 나를 위하여”(19절) 기도해 달라고 청한다. 믿음의 형제 자매들과 직분 맡은 이들을 위해 중보하는 것은 모든 믿는 이들의 책임이요 영예다. 사도는 자신을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셔서 담대하게 복음의 비밀을 알릴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해 주기를 청한다. 감옥에 갇혀 있다는 현실로 인해 주눅 들지 않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20절). 

이어서 사도는 두기고에 대해 소개한다(21-22절). 두기고는 마케도니아에서부터 사도의 전도 여행에 참여했었다(행 20:4). 아시아(지금의 터키) 출신인 그는 바울이 가장 신뢰하는 동역자 중 하나였는데, 그가 이 편지를 아시아의 여러 교회에 전달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는 이 편지를 전할 뿐 아니라 사도의 형편을 소상히 알려 그에 대해 걱정하고 염려하던 교인들을 위로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도는 유대인들의 인사법인 “평화”(샬롬, 23절)와 그리스-로마인들의 인사법인 “은혜”(24절)을 묶어서 수신자 모두에게 인사를 건넨다. 진정한 평화와 은혜는 오직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온다.

묵상:

기도에 대해 말할 때 사도는 자주 “기도와 간구”(엡 6:18; 빌 4:6)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기도”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프로슈케’로서 하나님 앞에서 엎드린 자세를 묘사합니다. “간구”에 해당하는 헬라어 ‘데에시스’는 “요구하다”를 뜻하는 헬라어 동사 ‘데오마이’의 명사형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기도를 “요구하는 행위”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사도는 “기도와 간구”라는 표현으로 그들의 편협한 기도 이해를 수정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간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것은 믿는 이들이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여러가지 일들 중 하나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다면, 우리는 그분 앞에서 찬양하고 감사를 드리고 사랑의 고백을 하게 됩니다. 죄에 대한 회개와 고백 그리고 성령의 충만을 구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기도는 “요구”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사귐”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도는 기도에 대해 말하면서 “항상” 혹은 “쉬지말고”라는 부사를 덧붙입니다. 믿는 이들의 기도는 계속 되어야 합니다. 하루 종일 눈 감고 앉아서 하나님께 요구만 하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깊은 인격적 사귐 안에서 살라는 뜻입니다. 늘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머물라는 뜻입니다. 매일 충분한 시간을 성별하여 기도에 전념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일상을 살면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뜻을 따라 행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 모든 과정이 기도입니다. 앞에서 사도는 “어떤 경우에든지 믿음의 방패를 손에 드십시오”(16절)라고 했는데, 그것은 “항상 기도하십시오”라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그럴 때 “모든 일을 끝낸 뒤에 설 수 있을 것입니다”(13절).

사도는 다른 사람들을 위한 중보기도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편지를 쓸 때마다 교인들을 위해 항상 기도하고 있다고 말하고, 다른 교인들을 위해 그리고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영적 전쟁터에서 끝까지 서 있기 위해서는 자신을 위한 기도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믿는 이들의 전투는 각개전투가 아닙니다. 모든 믿는 이들이 연합하여 싸워야만 합니다. 중보기도는 모든 믿는 이들을 묶어주는 영적 힘입니다. 


Comments

3 responses to “에베소서 6장 18-24절: 항상 기도해야 하는 이유”

  1. 기도시간은 십자가의 은혜로 주님의 지성소에 나아가는 시간이라고 고백합니다, 성령의 인도로 주님과 깊고 귀하고 긴밀한 사귐을 갖고 주님닮아가고 말씀순종하게 하는 시간입니다. 매일의 일상을 기도로 시작하고 모든 생각과 언어와 삶이 주님께 드리는 향기(기도)가 되는 삶을 살아내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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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기도는 하나님께 아뢰고 청하는 일입니다. ‘말’로 기도하는 경우가 거의 전부겠지만 때론 침묵하면서 간절하게 집중하며 마음을 드리기도 합니다. 말로 시작한 기도를 끝맺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주여, 주여 하는 자가 되기 싫은데도 그저 주여, 주여 하다 말 때도 있습니다. 나 자신의 기도를 하는데 다른 사람과 여러 일들도 같이 고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땐 나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라는걸 확인하게 됩니다. 자식을 위해 기도하다 보면 이 세대와 시대를 위한 기도가 됩니다. 페이스북에 올라온 추천 책들을 살펴 보다 우연히 한 경제학자의 짧은 강연을 보게 되었습니다. 몇 해 전에 했다는 강연인데 ‘당신 연봉의 절반은 태어날 때 이미 결정이 된다’는 흥미로운 제목을 달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8할은 ‘운’ 즉 랜덤한 일들의 집합이라는 내용인데 강연자가 하고 싶은 말은 그러니 따로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게 아니라 그러니 서로를 돌보아야 한다, 약자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경제학의 관찰과 연구에 따르면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는가와 어떤 부모에게서 나왔는가가 삶의 80퍼센트를 결정한다고 합니다.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나 부자가 된다 해도 부자 나라에서 태어나 부자가 된 사람의 부의 수준이 되지는 않습니다. 부모에게서 받는 것은 유전자와 환경입니다. 그러니 나머지 20퍼센트도 순전히 자신의 노력으로 채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적으로 취약한 환경에 있는 아동과 청소년에게 관심을 기울여 돕는 것이 사회를 유익하게 하는 일이라는 것이 강연의 본론입니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회적인 성공이 자신의 노력의 결과라고 보는 사람일수록 세금을 내는 일과 가난한 계층을 돕는 일에 소극적이라고 합니다. 성공하지 못하는 것은 노력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강연자는 취약층, 저소득층에서 ‘보석’이 나오도록 -옛날 표현으로 하면 개천에서 용이 나오도록 – 지원하는 일이 좋은 사회를 만드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기도에 대한 해설 말씀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복음을 전한다’는 뜻을 경제학자의 강연으로 풀이해 봅니다. 경제학과 신학의 거리가 생각보다 짧구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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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achi049 Avatar

    사도 바울의 눈물 어린 마지막 유언이 나의 마음을 짠하게 합니다. 자신에게 다가올 불행한 일을 눈앞에 두고 자신에 대한 기도는 뒷전으로 미루고 예수님께서 주신 하나님의 사역을 먼저 챙기는 진정한 하나님의 종입니다. 믿음의 공동체가 기도와 찬양과 이웃을 도움으로 하나님과 사귐을 통하여 성령님과 동행하는 남은 여정이 될 수 있도록 도와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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