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당시 가정을 구성하고 있던 세번째 축은 주인과 노예 관계였다. 이 편지의 수신자들 중에는 노예들도 있었을 것이고 노예를 둔 주인들도 있었을 것이다. 앞에서 사도가 가부장적 문화를 그대로 둔 채 속으로부터 변화시키려 했던 것처럼, 노예 제도에 대해서도 체제를 그대로 인정한 상태에서 내용을 변화시키려 한다.
이 경우에도 사도는 약자인 종에게 먼저 권면을 한다(5-8절). 권면의 초점은 “그리스도께 하듯”(5절) 혹은 “주님께 하듯”(7절) 주인을 섬기라는 것이다. 21절에서 천명한 기본 원리(“그리스도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서로 순종하십시오”)를 주인과의 관계에 적용한 것이다. 노예 제도가 실행되고 있던 시대에 주인에 대한 복종의 의무는 당연한 것이었다. 아내와 자녀에게 그랬듯이, 사도는 당시 사회적으로 당연히 기대되었던 복종의 의무에 변화를 가한다. 믿는 이들은 사회적 신분에 상관 없이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인이 되었으므로 복종의 의무에서 해방되었다. 그리스도인이 누구에겐가 복종한다면 자원하여, 기쁨으로 복종한다.
사도는 이 권면에 여러가지 말을 덧붙인다. “두려움과 떨림과 성실한 마음으로”(5절),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들처럼 눈가림으로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답게 진심으로”(6절), 그리고 “사람에게가 아니라 주님께 하듯이, 기쁜 마음으로”(7절) 섬기라고 권한다. 사도는 또한 노예라 해도 선한 일에 대한 보응을 받는 점에 있어서는 주인과 다름이 없다고 강조한다(8절).
사도는 “종들에게 이와 같이 대하고”(9절)라는 말로써 종들에게 준 권면들이 주인들에게도 해당된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앞에서 종들에게 여러가지 말로 권면한 것은 바울의 수사적 전략이었을 것이다. 사도는 아내보다는 남편에게, 자녀보다는 부모에게, 종보다는 주인에게 더 큰 관심이 있다. 강자인 그들이 먼저 변해야만 진정한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 편지를 처음 들었을 때, 노예를 소유한 주인들은 5절부터 8절까지의 내용을 듣고 기분이 좋아져서 ‘그럼 그렇지. 그래야지!’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9절에서 “주인 된 이 여러분, 종들에게 이와 같이 대하고”라는 말을 듣고는 마음에 큰 찔림을 받았을 것이다.
“위협을 그만 두십시오”라는 말은 언어적 폭력과 신체적 폭력을 내려 놓으라는 뜻이다. 그리스-로마 문화권에서 노예는 주인에게 가축 정도의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주인이 노예에게 가하는 모든 종류의 폭력은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사도는 그리스도인에게 그런 언행이 옳지 않다고 믿는다. 주인들은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수하에 있는 노예들에게도 주님이시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사회에서 통용되는 신분 제도는 하나님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분은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대하신다. 그러므로 주인들은 노예들을 믿음의 형제 자매로 존중해야 한다. 신분도 다르고 역할도 다르지만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절대적 가치는 동등하기 때문이다.
묵상:
바울 사도는 지난 수백 년 동안 여러가지로 부당한 비난을 받아 왔습니다. 로마서 13장 1-7절의 내용을 근거로 하여 사도는 불의한 권력자와 정부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라고 요구한 사람으로 비난 받아 왔습니다. 여성과 남성에 대해 쓴 몇몇 본문 때문에 사도는 남성우월적이고 가부장적인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으로 비판 되어 왔습니다. 노예와 주인에 대한 그의 가르침을 이유로 하여 바울이 사회 정의에 대해 아무런 의식이 없던 사람인 것처럼 매도 되어 왔습니다.
그것은 바울의 편지에 대한 오독에 근거한 잘못된 비판입니다. 바울이 활동할 당시 기독교는 유대교의 한 종파로서 발아하던 시기입니다. 불의한 정권이나 사회적 불의에 대해 세를 규합하여 소리를 내고 대항하여 싸울만한 형편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불의한 사회 구조를 고치는 것이 아니라 각 개인의 불의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우선적인 관심을 두었습니다. 국가와 사회의 부정과 불의의 문제도 결국 각 개인의 죄의 문제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는 각 개인에게 복음을 전하여 회심에 이르게 하고, 그들을 믿음의 공동체로 세우는 일에 전심했습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과 믿음의 공동체가 불어나면 그들로 인해 세상이 변화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사람은 누구를 만나든지 “그리스도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21절) 서로를 섬기는 것을 원리로 삼습니다. 가족의 모든 구성원이 그렇게 행동할 때 남성우위의 가부장적 문화는 자연히 해체될 것입니다. 노예와 주인이 이와 같은 마음으로 서로를 대할 때, 노예 제도는 유명무실해질 것입니다. 빌레몬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사람들 사이에서 노예 제도가 어떻게 무력화 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사는 사람에게 권력이 주어진다면, 그 권력으로 국민을 섬기는 데 마음을 쓸 것입니다. 거듭난 사람들 사이에서 권력의 서열은 해체됩니다.
복음은 이렇게 속에서부터 희망을 일구어 갑니다. 그것은 비록 느리지만 확실합니다. 우리의 내면에서부터 시작된 그 변화는 다시 오실 주님께서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한다”(계 21:5)고 하실 때 완성될 것입니다. 그 이전까지 우리는 내면으로부터의 변화를 추구하며, 불완전한 평화와 정의를 견디며, “그 날”이 오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