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사도는 성령으로 충만하여 주님의 뜻을 따르는 삶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를 세 가지의 관계(부부 관계, 부모와 자식 관계, 주인과 종의 관계)에 적용하여 설명한다.
각각의 관계에 대해 설명하기 전에 그는, 믿는 이들이 맺고 있는 모든 인간 관계에 대한 대원리를 천명한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두려워 하는 마음으로” 서로에게 “순종하는” 것이다(21절). 일반적으로 누군가에게 순종(혹은 복종)하는 이유는 그 대상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사도는 그리스도인들의 순종의 동기가 다른 데 있음을 분명히 한다. 믿는 이들이 다른 사람에게 “종 노릇” 하는 이유는 우리를 위해 죽기까지 복종하신 주님의 본을 따르기 위함이다.
사도는 먼저 부부 관계에 이 원리를 적용한다. 그는 아내들에게, 남편에게 순종(혹은 복종)하라고 권한다(22절). 사도가 살던 시대는 남성 우위의 가부장적 문화가 지배하고 있었다. 따라서 아내들에게 순종하라는 권면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당시 아내들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을 당연한 의무로 생각했다. 하지만 사도는 “주님께 순종하듯”이라는 말을 더하여 당시 사회에서 통용되던 관습에 작은 변화를 준다. 믿는 아내들은 남편에 대한 복종의 의무로부터 해방 된다. 더 이상 의무 때문에 혹은 두려워서 복종하지 않아도 된다. 이제는 주님께 순종하듯 자원하여, 기쁨으로 남편에게 복종한다. 그것이 주님께서 그들에게 보여 주신 모범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사도는 아내와 남편의 관계를 교회와 주님의 관계에 비유한다. 사도는 여기서 당시 가부장적인 질서를 그대로 수용한다. 남편이 아내의 “머리가 된다”(23절)는 말은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다는 뜻이 아니라 가장으로서의 권위가 주어졌다는 뜻이다. 교회가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리더십에 순종하는 것처럼, 아내도 가장인 남편의 리더십에 순종해야 한다는 뜻이다(24절).
당시 사회적 통념에 의하면,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혹은 복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다스려야” 했다. 하지만 사도는 남편에 대한 권면에 있어서도 중요한 변화를 가한다. 남편은 아내를 “사랑”해야 한다(25절). 여기서 사도는 ‘아가파오’라는 헬라어 동사를 사용한다. 또한 그는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셔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내주심 같이 하십시오”라고 덧붙인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이고 무제한적인 사랑으로 아내를 사랑하라는 뜻이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여 교회를 거룩하고 아름답게 세우신 것처럼(26-27절), 남편도 아내가 거룩하고 아름답게 세워지도록 모든 것을 바치라는 뜻이다.
그것은 아내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실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28절).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책임지고 돌보시는 것처럼 남편도 아내에게 그렇게 해야 한다(29-30절). 그렇게 할 때, 그리스도와 교회가 사랑과 순종으로 한 몸이 되는 것처럼, 남편과 아내도 사랑과 순종으로 한 몸이 된다(31-33절).
묵상:
바울 사도의 편지를 읽고 묵상할 때, 그 편지가 이천 년 전에 그리스-로마 문화권에 살고 있던 교인들을 위해 쓰여진 것이라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그는 당시의 문화와 관습과 제도 아래에 살고 있던 교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계시된 진리를 따라 살게 하려고 편지를 쓴 것입니다. 따라서 원독자들이 처해 있던 사회적 상황을 무시하고 오늘의 기준으로 읽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부부 관계에 대한 사도의 권면은 원독자들이 처해 있던 남성우위의 가부장적 문화를 전제 하고 읽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바울 사도가 남성우월 사상과 가부장적인 문화를 지지하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습니다. 사도는 이제 막 발아하는 새 종교의 전도자로서 기존의 문화와 관습과 체제 아래에서 의롭고 거룩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인 제도를 안으로부터 개혁하려 했던 것입니다.
당시 부부 관계에 있어서 남편이 강자였습니다. 절대 다수의 여성들이 남편들에게 짓눌려 살았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죄성이 만들어낸 악입니다. 그 악한 체제가 변화되기 위해서는 아내 보다는 남편의 태도가 먼저 달라져야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는 아내에 대한 권면(22-24절)보다 남편에 대한 권면(25-29절)에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합니다. 그는 아내들에게 남편에 대한 복종을 요구했지만, “의무로서의 복종”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주님께 하듯”(22절) 자원하는 마음으로 행하게 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인 것처럼 남편이 “아내의 머리”(23절)라고 말합니다. 당시의 관습대로 가부장적인 제도를 수용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한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라고 요구함으로써 가부장 제도를 무력화 시킵니다. 강자인 남편에게 약자인 아내를 위해 전부를 희생하여 사랑하고 요구한 것입니다. 강자의 순종은 자신을 내어 주는 사랑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보면, 부부 관계에 대한 사도의 가르침 안에 혁명의 씨앗이 담겨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는 남편이 아내 위에 군림하는 굴종적인 질서를 부정합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부부로 결합되는 것은 사랑 안에서 서로에게 종노릇 하라는 부름입니다. 가부장적인 문화 안에서 이렇게 새로운 질서가 세워지려면 강자인 남편 쪽에서 희생해야 합니다. 사회적 관습이 부여해 준 모든 힘을 내려 놓고 아내를 거룩하고 아름답게 세우도록 헌신해야 합니다. 그럴 때, 교회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것처럼, 부부도 한 몸이 될 것입니다. 그것이 결혼 제도를 세우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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