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5장 15-20절: 성령 안에 충만하게 

해설: 

“그러므로”(15절)는 뒤이어 나올 내용이 앞에서 말한 내용의 결론임을 암시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 나 빛으로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언행을 늘 살펴서 “지혜로운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지혜는 처세술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얻는 지혜다. 

“세월을 아끼십시오”(16절)는 “시간을 선용하십시오”라고 풀어 쓸 수 있다. “아끼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엑사고라조’는 시장에서 좋은 물건을 발견하고 구입하는 행동을 가리킨다. “때가 악합니다”라고 덧붙인 이유는 세상 풍조를 따라 살게 되면 죄악으로 시간을 허비하는 어리석음에 빠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월을 아끼십시오”라는 말은 헛되고 악한 일에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17절)를 깨달아야 한다. 

“술에 취하지 마십시오”(18절)라고 권면한 이유는 수신자들 중에 과음의 악습을 끊지 못한 이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취하다”로 번역된 단어는 판단력을 잃을 정도의 과음을 가리킨다. 그것을 경계하는 이유는 과음이 “방탕”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과하여 좋은 것은 오직 “성령의 충만함”뿐이다.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면 가장 먼저 하나님께 대한 태도가 달라진다. “가슴으로 노래하며 찬송”(19절)하고 “모든 일에 언제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20절)를 드린다. 하나님의 은혜가 살아나기 때문이다. 또한 성령으로 충만해지면 믿는 이들이 함께 모여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서로 화답”(19절)한다. 믿음의 공동체를 하나 되게 하는 힘은 성령에게서 나온다. 

묵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십시오”(18절)를 직역하면 “성령 안에서 충만해지십시오”라고 해야 합니다. 이 말씀은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하나는, 새번역처럼, 성령으로 존재가 충만해지는 것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마음과 영혼이 성령에 의해 온전히 다스려지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다른 하나는 성령의 능력 안에서 모든 좋은 것들(9절에서 말한 “선과 의와 진실” 같은 것들)이 충만해지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사도는 두 가지 모두를 염두에 두고 이렇게 썼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성령의 날인”(1:13)을 해주셨습니다. 오래도록 소장하고 싶은 물건에 자신의 도장을 찍어 두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믿는 이들에게 성령을 주셔서 당신의 소유가 되게 하셨습니다. 성령의 임재와 활동은 오감으로 확인되지 않기 때문에 늘 깨어 있지 않으면 그분의 임재와 활동을 감지할 수 없습니다. 향기 가득한 온실 안에 오래 머물러 있으면 향기에 무감각 해지는 것처럼, 성령 안에 오래 머물러 있으면 그분의 임재와 활동에 무감각 해질 수 있습니다. 성령 안에 살고 있지만 성령과 무관하게 살게 됩니다. 

따라서 “성령 안에서 충만해지십시오”라는 권면은 그분의 임재와 활동에 예민해질 수 있도록 깨어 있으라는 뜻이며, 그분의 인도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라는 뜻입니다. 그럴 때 모든 좋은 것으로 충만해진다는 뜻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시류에 따라 살면서 소중한 인생의 시간을 허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든, 모든 일에 대해 감사하며 살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이 교회로 모일 때 온전히 하나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높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매일 가장 소중한 시간을 성별하며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하는 이유입니다.    


Comments

3 responses to “에베소서 5장 15-20절: 성령 안에 충만하게 ”

  1. 실제로 주님앞에서 셈할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은퇴후에 있는것은 시간뿐이라고 잘못 생각했던적이 있었습니다. 하루하루 의미없이 지나는 시간은 주님께서 허락하신 시간을 낭비함을 깨닫게하신 말씀에 감사를 드립니다. 항상 깨어있어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마음과 영혼을 다하여 오늘의 모든 생각과 행함과 삶이 주님께드리는 거룩한 산제물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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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achi049 Avatar

    눈만 뜨면 보고 듣는 세상풍조는 인간의 시선과 마음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특히 오감을 자극하는 세태는 더욱그렀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그랜드캐년과 세도나의 아름다움을 바라볼때 나자신이 티끌처럼 작아지는 모습을 봅니다. 이 아름다움속에서 쾌락을 즐기는 인간을 볼때 마음이 아픕니다. 예수님께서 보내신 성령님께서 동행하여 주심으로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파괴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인도하옵소서. 아멘. 하나님 아버지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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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미국인의 관용구에 선데이 베스트 Sunday Best 가 있습니다. 가진 옷 중에서 가장 좋은 옷을 입는다는 뜻인데, 교회에 갈 때는 평소에 입는 옷이 아니라 가장 좋은 (비싼, 깨끗한, 멋진…)옷을 입음으로 특별한 때에 대한 존경과 기념의 마음가짐을 보여주는 태도입니다. 언제부터 쓰게된 말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영화에서 사람들이 교회에 모여 있는 장면이 나올 때는 십중팔구 다들 옷을 잘 갖춰입은 것을 봅니다. 흑인 커뮤니티에서 처음 쓰기 시작했다고 혹은 특별히 잘 쓰는 관용구라는 말도 있습니다. 옷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합니다. 옷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인간의 세계관의 변천사이기도 합니다. 교회에 갈 때 옷을 잘 차려 입는다는 것은 자신의 베스트 셀프 best self, 베스트 버전 best version 을 챙긴다는 뜻입니다. 평소보다 나은 모습, 최선의 자기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되 가장 좋은 상태를 드린다는 뜻일겁니다. “나 주의 도움 받고자 예수님께 빕니다…내 모습 이대로 주 받아 주소서”라는 찬송가사와는 좀 다른 의미가 됩니다. 깨어지고 흩어진 상태로, 구질구질한 모습으로 주님께 나올 수 밖에 없다고 고백하지만, 그렇게 고백하기에, 가장 좋은 모습을 바라고 원하는 것입니다. 주의 도움을 받아 최악에서 최선으로 가고 싶다는거지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베스트로 살지 않았어도 일요일에는 베스트가 되고 싶다는 겁니다. 겉만 보면 요즈음엔 선데이 베스트가 없어진 것 같이 보입니다. 교회에 간다고 특별히 차려 입는 것 같지 않고, 솔직히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옷차림도 봅니다. 그렇지만 선데이 베스트의 기준은 쉽게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바울의 편지는 믿음의 공동체가 함께 이뤄나가야 할 선데이 베스트와 같습니다. 선데이에, 교회에서 먼저 이렇게 살라고 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지도록 주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자신에게 정직하고, 타인에게 평화로우며, 주님께 순전한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최상으로, 베스트로 나를 대해 주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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