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4장 25-32절: 함께 자라가는 덕성의 공동체

해설:

이어서 사도는 몇 가지의 실제적인 지침들을 제시한다. 먼저, 거짓말을 하지 말고 진실을 말하도록 힘쓰라고 권한다(25절). “우리는 서로 한 몸의 지체들입니다”라는 말에서 사도는 믿음의 공동체를 염두에 두고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한 몸이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서로에게 진실을 말하고 행동해야 마땅하다.

“화를 내더라도, 죄를 짓는 데까지 이르지 않도록 하십시오”(26절)라는 번역은 시편 4편 4절을 약간 달리 표현한 것이다. 이 구절은 “화를 내십시오. 그러나 죄를 짓지는 마십시오”라고 번역해야 옳다. 하나님은 매일 분노하시는 분이시다(시 7:11). 인간의 죄악이 항상 하나님 앞에 있기 때문이다. 그분의 분노는 감정적인 격발이 아니라 숙고된 분노다. 마찬가지로,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은 죄와 불의를 보고 분노해야 한다. 진리와 정의를 아는 사람이라면 분노는 당연한 반응이다. 

감정적인 격발로서의 분노는 죄를 끌어 들인다. 반면, 숙고된 분노는 의를 이룬다. 그래서 사도는 “죄를 짓지 마십시오”라고 덧붙인 것이다. “해가 지도록 노여움을 품고 있지 마십시오”(26절)라는 권면도 분노의 감정을 잘 다루어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분노의 감정을 잘못 다루면 “악마아게 틈을 주는” 결과로 이어진다. 악한 영은 우리 내면에 있는 죄성을 자극하여 우리를 죄로 끌어 들인다.

다음으로 사도는 신도들의 경제 생활에 대해 주의를 돌린다. 당시 신도들은 경제적 하층민이 다수였다. 지금도 가난한 나라에서 경제적 하층민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도둑질을 행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로마 시대의 식민지 형편은 그보다 더 심했다. 수신자들은 생존을 위한 도둑질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살았다. 사도는 더 이상 그렇게 하지 말고 근면하게 일하여 돈을 벌라고 권한다(28절). 그렇게 하면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능력이 생길 수도 있다.

29절에는 다시 언어 생활에 대한 권면이 나온다. 앞(25절)에서는 “진실한 말”을 하라고 했는데, 여기서는 “유익한 말”을 하라고 권한다. 말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말하는 시점도 중요하다. 아무리 유익한 말이라도 “적절한 때에” 해야 듣는 사람에게 유익이 된다.

믿는 사람이 죄악을 범하는 것은 성령을 슬프게 한다(30절). 성령은 어떤 에너지가 아니다. 생각하고 느끼고 반응하는 인격이시다. 성령께서는 어디에서나 일하시지만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는 더욱 특별하게 일하신다. 믿는 사람에게는 성령이 임하셔서 구속의 날까지 지켜 주신다. 따라서 모든 “악한 행동”은 “악한 의도”와 함께 버려야 한다(31절). 그리고 서로 용서하고 서로 불쌍히 여기고 서로에게 친절을 베풀어야 한다(32절). 그렇게 할 때 성령께서 기뻐하신다.

묵상:

앞에서 사도는 믿는 이들이 한 몸으로 연합하여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도록 힘쓰라고 권면했고(4:1-16), 그러기 위해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하여 새 사람을 입으라고 격려했습니다(17-24). 이어서 사도는 새 사람으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몇 가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합니다. 새 사람의 행동 방식을 뒤집으면 옛 사람의 행동 방식이 됩니다. 

옛 사람으로 사는 것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 감정에 사로잡혀 분노를 함부로 표출하는 것, 자신이 받은 상처에 대해 앙심을 품는 것, 상황을 핑계 삼아 도둑질을 하는 것, 자기 기분대로 분별없이 가시돋친 말을 하는 것, 악의를 품고 해로운 말과 행동을 하는 것, 다른 사람에게 무관심 하고 무례하게 행동하는 것 등입니다. 

반면, 성령으로 변화를 받아 새 사람으로 사는 것은 진실을 말하며, 불의를 보고 분노하지만 그 감정을 선하게 승화시키며, 받은 상처를 더 큰 상처로 되갚지 않고, 근면하고 정직하게 일하며, 진실하고 유익한 말을 골라 하며, 악의에 마음을 내어 주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쓰고 친절하게 대하며, 용서하기를 힘씁니다. 

이 권면을 보면, 바울 사도가 믿음의 공동체 즉 교회를 염두에 두고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이들과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룰 정도로 친밀한 관계가 이루어져야만 이런 덕목들이 힘을 발휘합니다. 옛 사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로는 결코 한 몸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친밀해지면 상처만 증폭되기 때문입니다. 반면, 새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힘쓰는 사람들이 한 몸을 이루면, 때로 상처를 주고 받지만 그 과정을 통해 자신도 자라고 교회도 성숙해집니다. 

미국 교회에서 자주 보는 표어 중에 “We are not perfect, but just forgiven”(우리는 완전하지 않습니다. 단지 용서 받았을 뿐입니다)라는 것이 있습니다.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진실의 절반만 담았습니다. 이 표어는 “We are not perfect, but in the process of transformation”(우리는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변화되어 가고 있습니다)라고 수정 되어야 합니다. 교회란 변화의 과정 중에 있는 이들이 한 몸으로 연합하여 함께 자라가는 “덕성의 공동체”여야 합니다.  


Comments

3 responses to “에베소서 4장 25-32절: 함께 자라가는 덕성의 공동체”

  1.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은혜를 믿고 변하여서 새사람이 되었다고 주장하면서도 자주 알게 또 모르는 사이에 상대방에게 상처를 입히는 잘못을 저질러오는 비천한 죄인입니다.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은 성도로서 항상 공의로우나 만나는 모든사람들에게 선하고 친절하고 섬기므로 세상을 변화시키시는 주님의 귀한 영혼 구원 사역에 동참하는 사귐의 소리 식구모두가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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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어제는 7월에 일어난 굵직한 사건들이 가져온 변화의 분위기를 잠시 묵상했습니다. 새로와지는 것, 믿지 않는 사람들 (17절)의 생각과 행동을 벗고 마음을 새롭게 갖는 일을 묵상하는 중에 머물렀던 지점입니다. 오늘은 옛 사람의 생활 방식, 버려야 할 옛 사고와 행동의 틀을 생각하는 중에 내게 일어난 의식의 변화를 따라가 보기로 했습니다. 청년기에는 가정과 학교에서 배운 것을 기반으로 사회에서 하는 경험을 재해석합니다. 책에서 배운 것과 사회에서 보고 경험하는 것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너무 많고, 내게 소중한 원칙과 가치는 직장에 (사회 관계에) 적응하는 노력 중에 슬며시 마모되거나 깨져 버리곤 했습니다. 해설에서 지적하듯 경제적 하층민은 자기 의지와 별 상관없이 ‘죄’를 짓는 일이 많습니다. 생존에 필요한 자기보호와 보존을 위해 쓰는 트릭입니다. 사회 초년생들도 경제적 하층민과 다르지 않습니다. 사회 인프라가 부족한 나라가 후진국, 빈민국이듯 삶의 인프라가 촘촘하지 못한 젊은이들 역시 취약층이요 하층부 시민일 수 밖에 없습니다. 세상은 늘 승자와 강자 중심으로 돕니다. ‘목소리 큰’ 사람들과 이미 가진 사람들에게 결정권이 주어집니다. 최근에 올림픽 우승 선수가 협회의 훈련 방식을 놓고 의사를 표시했습니다. 금메달을 목에 건 뒤에 말하리라 다짐하고, 우승한 뒤에 비로소 입을 열었다고 했습니다. 무시하지 못할 자리에 오를 때까지 기다려 목소리를 낸 것입니다. 노장의 방식으로, 노장들에게 한마디 한겁니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 운동도 두 세계관의 싸움이 되었습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Make America Great Again’ 라는 표어로 또 한 번 대통령직에 도전하는 공화당을 향해 민주당은 이렇게 외칩니다, ‘우리는 과거로 돌아가지 않는다 We Are Not Going Back.’ 한 편에선 그 때가 좋았다, 과거엔 이러지 않았다를 주장하고, 다른 한 편에선 그 때가 뭐 그렇게 좋았는데? 과거보다 미래가 좋아야 하지, 라고 쏘아 붙입니다. 어느 한 쪽도 다 맞는건 아닙니다. 나의 삶을 살펴 보아도 사회에 적응하느라 애쓴 시간들 속엔 사회의 부조리와 불의에 저항한 순간들도 녹아 있지만 외면하고 귀를 닫은 시간도 물론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의 경험을 내면화하고 재해석하면서 성장하고 성숙합니다. 하루를 돌아보는 일, 바둑을 복기하듯 대화와 행동을 반추하는 일을 통해 속사람이 자랍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는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엔 바울의 권면을 문자적으로 보았습니다. 거짓말, 도둑질, 분노 등은 무조건 안해야 한다고 만 생각했을 뿐 세밀하게 들여다 보지 않았습니다. 해가 지기 전에 화를 풀라는 구절을 생활원칙으로 삼는다는 가정도 있습니다. ‘해가 지기 전’이 시간을 의미한다 해도 밤이 오기 전, 하루가 가기 전 만을 가리키지는 않을 것입니다. 자기 화에 자기가 빠지고 삼켜질 때까지 그냥 두지 말라는 뜻일겁니다. 화가 난 상태를 인지하고 더 큰 불화를 일으키지 않도록 유의하라는, 해가 져서 캄캄해 지기 전에, 밝을 때 잘 보고 다스리라는 뜻으로 읽습니다. 은혜로 사는 신자는 앞으로 나갑니다. 혼자 나가지 않고 같이 나갑니다. 이웃과 교회와 세대와 세상과 함께 움직입니다. 나만 새로와질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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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achi049 Avatar

    인간의 죄성은 더욱 역겹고 잔인하게 강성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이스라엘 민족이 동성애자 비율이 가장 높다는 통계를 본적이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성이 동성애자의 창궐과 쾌락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멸망한 사실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슴에도 변함이 없습니다. 죄는 미워해도 인간은 미워해서는 아니됩니다. 이러한 죄성은 오직 말씀과 예수님께서 보내신 성령님 만이 다스릴 수 있슴을 믿습니다. 주님! 믿음의 공동체에게 성령께서 동행하시고 인도하옵소서.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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