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4장 7-13절: 모두가 함께 자라가는 공동체

해설:

앞에서 사도는 “하나” 혹은 “한”이라는 말을 일곱 번 사용하면서 교회의 하나 됨을 강조했다. 7절 이하에서는 교회의 다른 면 즉 다양성에 대해 설명한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은혜”(7절)를 주셨다. 구원의 은혜는 모두에게 동일하지만, 은사는 각각 다르다. 그 은사는 “그리스도께서 나누어 주시는 선물의 분량을 따라서” 주어진다. 어떤 은사를 주실 지, 얼마나 많이 주실 지는 전적으로 주시는 분에게 달린 일이다.

사도는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설명하기 위해 시편 68편 18절을 자유롭게 인용한다(8절). “그분은 높은 곳으로 올라가셔서”는 승천을 가리키고, “포로를 사로잡으시고”는 사탄의 세력을 제어하신 것을 가리킨다. “사람들에게 선물을 나누어 주셨다”는 말은 성령의 은사를 나누어 주셨다는 뜻이다. 그분은 승천하시기 전에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셨다. “먼저 그분이 땅의 낮은 곳으로 내려오셨다”(9절)는 말은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셨다는 뜻으로 보아야 한다. 그분은 성육신의 사명을 완수하시고 하나님의 자리로 돌아가셔서 “만물을 충만하게”(10절) 하고 계신다. 

그분은 교회를 위해 다양한 은사를 주시어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예언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도자로 또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세우셨다(11절). “사도와 예언자”는 교회의 기초를 놓은 사람들이다. 이 직분은   더 이상 계속되지 않는다. “복음 전도자”는 여러 지역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목사와 교사”는 “목사 즉 교사”라고 번역하는 것이 옳다. 한 지역 교회에서 말씀을 가르치며 성도들을 돌보는 사람을 가리킨다. 

직분자들의 소임은 “성도들을 준비시키는”(12절) 일이다. “준비시키다”는 “갖추어 주다” 혹은 “훈련시키다”라는 뜻이다. 은사와 직분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해 섬기도록 주어졌다. 자연인은 원죄로 인해 이기적으로 굽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군림하여 섬김을 받고 싶어한다. 영적으로 훈련되어야만 비로소 다른 사람을 위해 섬길 수 있다. “그리스도의 몸” 즉 교회는 오직 섬김을 통해서만 “세워질” 수 있다. 서로가 서로를 섬길 때에야 교회는 교회 다워지는 것이다.

교회가 교회 다워지면, 교회에 속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일과 아는 일에 하나가”(13절) 된다. “온전한 사람” 즉 성숙한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경지”를 향하여 자란다. 누구도 육신 가운데 거하는 동안에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충만하심의 경지에 이르지는 못한다. 그것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그분의 부활에 참여할 때에만 가능한 일이다.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다른 신도들과 함께 꾸준히 자라가는 것이 우리가 바라는 최선이다. 

묵상:

믿음의 공동체에 참여하여 다른 신도들과 한 몸을 이루는 것은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필수적인 일입니다. 그리스도 신앙은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훈련을 받고 서로를 섬기면서 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여러가지 은사를 주셔서 그 은사에 따라 여러가지 직분으로 섬기게 하십니다. 은사는 그것을 받은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주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은사를 받고 직분을 받았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 위에 올라가 군림하고 주장하라는 뜻이 아니라 낮아져서 섬기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교육과 훈련을 통해서만 일어나는 일입니다. 우리의 본성은 원죄인 이기심에 물들어 있어서 섬기기 보다는 부리고 싶어하고 배우기 보다는 가르치고 싶어합니다. 자기 좋을 때로 살고 싶어하지, 변화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회로 모였을 때는 배우기를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배우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의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또한 교회로 모여서 우리는 배운 것을 실습합니다. 실습의 핵심은 사랑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그렇게 모든 구성원이 서로를 섬길 때, 교회는 건강해지고 교회 다운 일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다른 신도들과 연결되고, 직분자들을 통해 배우고, 배운 것을 서로에게 실습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장합니다. 우리의 성장과 성숙은 숨이 다할 때까지 지속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은 우리로서는 결코 미칠 수 없는 높은 기준입니다. 하지만 기준이 높기에 더 강한 열심을 가지고 발돋움 합니다.  


Comments

3 responses to “에베소서 4장 7-13절: 모두가 함께 자라가는 공동체”

  1. 저희들을위하여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허락하신 엄청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에 영광을 드립니다, 온갖누명과 배반과 수모와 고통을 당하시고 온세상의 죄를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다시오시는 성자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의 몸인 교회를 허락하시고 성도들끼리 서로 지지고 복으면서 주님닮아 가도록 인도하시는 성령하나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주님과 항상 동행하고 자라면서 성령의 열매를 알차고 풍성히 맺는 사귐의 소리 가족 모두가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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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achi049 Avatar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는 인간의 원죄때문에 종의 신분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의 정신을 닮아가지 않으면 그곳에서 존재 할 수 없습니다. 주님! 예수님의 끝없는 사랑과 희생을 믿음의 공동체안에서 배우고 훈련을 통해 나는 죽고 예수로 만 사는 오늘을 살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동행하시고 인도하옵소서. 아멘. 하나님 아버지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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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교회에 다니면서 오늘 본문을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모릅니다. 교회를 강하게 세워야 할 필요성이 있을 때 에베소서 4장의 11절과 12절을 읽고 묵상합니다. 직분자들을 세울 때에도 이 구절을 인용합니다. 은사의 다양성에 대해서는 고린도전서 12장도 설명하고 있고, 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우리가 받은 선물이 여러 가지인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여선교회의 양식 중에 ‘은사와 은혜 Gifts & Graces’ Form이 있습니다. 여선교회의 임원으로 자원하고 싶은 회원에게 혹은 임원이 누군가를 추천할 때 추천받은 이에게 작성해 달라고 하는 양식입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의 역할과 활동, 개인적인 신앙훈련이나 경험 등을 적게 되어 있습니다. 공식적인 임임명과 임원헌신 예배를 올리는 10월 행사일을 앞두고 연회 공천위원회는 수시로 ‘Gifts and Graces 은사와 은혜’ 양식을 살펴보고 업데이트합니다. 지난 주에 줌으로 공천위원들이 모여 몇 몇 회원의 은사에 대해 의논했습니다. 연회 임원으로 들어와서 한 텀 (2년씩 두 번 가능) 만 하고 그만 두는 임원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대개 2년이나 4년 뒤에 다른 직분을 맡습니다. 총 8년까지 임원으로 봉사할 수 있습니다. 올해 들어 임원 2명이 그만 두었습니다. 한 사람은 직분 (분야)과 자신의 적성이 맞지 않는다면서 그만 두었고, 또 한 사람은 다른 임원들과 성격적인 마찰이 잦아서 그만 두었습니다. 공천임원으로서 어려운 시간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경우 한 사람은 ‘은사’가, 다른 사람은 ‘은혜’가 토론의 주제였습니다. 적성에 맞지 않아 그만 두겠다는 임원은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맡으니까 너무 힘들더라는 고백을 했습니다. 잘 못하니까 안하게 되고, 안하니까 전체 팀에 방해가 되고, 방해가 된다 생각되니까 자신이 미워지기까지 하더라고 말했습니다. 일에 필요한 능력이 있어 보여도 본인이 판단하는 어떤 선이라는게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나 포함) 일단 ‘못한다,’ ‘나는 너무 부족하다’는 말부터 하니까 정말 그런지 아닌지 알기 어렵지만 미국 사람들은 자원하는 일에 익숙해서 예스라는 답을 쉽게 듣습니다. 그 사람이 실제로 할 수 있겠는지, 의욕부터 앞세우는건지를 가려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라도 임원을 맡은 사람이 임기 전에 그만 두거나 한 텀만 하고 마는 경우는 드뭅니다. 다른 임원들과 마찰이 잦아서 그만 둔 사람은 나와 아주 가까운 사이입니다. 본인의 성격이 ‘쉬운’ 성격이 아니라는걸 자기도 잘 압니다. 재능도 많고 여선교회를 사랑하는 마음도 누구보다 크고 깊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여러 사람과 부딪혔습니다. 본인 스스로 덕이 되지 않겠다고 판단해 한 해만 하고 그만 둔다는 어려운 결정을 내렸습니다. 앞의 임원에겐 은사의 있고 없음이, 뒤의 임원에겐 은사를 사용하는 방식이 공동체와의 관계를 결정 지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를 닮은 온전한 사람으로서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될(13절)’ 것을 꿈꾸며 삽니다. 처음 믿던 순간의 감동과 열심이 ‘초심’이요 스타트라인이라면, 성숙한 믿음을 가진 사랑 많은 그리스도인은 우리의 목표요 홈입니다. 완성, 완전 이런 것은 말은 할 수 있어도 주장하는 순간 이미 변질하는 것 같습니다. 교회 안에서 서로 섬기고 사랑하는 길을 가면서도 겉으로 표현되는 방식이 같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치고 피곤해 하기도 합니다. 상대방의 ‘은사와 은혜’를 균형있게 본다면 서로 용납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은사는 분량이나 종류로나 다를지라도 은혜는 서로 다르지 않습니다. 사랑 받은 경험이 사랑하는 능력을 키웁니다. 은혜 입은 감동이 은혜로운 관계를 가능하게 합니다. 주님께 감사한 마음을 교우를 사랑하는 일로 표현하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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