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3장 14-21절: 사랑이면 된다

해설:

사도는 앞에서(1:15-23) 수신자들을 위해 기도 올린 바 있다. 그는 구원의 복음을 설명한 다음, 결론으로서 또 다시 기도 올린다. 유대인들은 보통 일어서서 기도 했는데, 사도는 “무릎을 꿇고”(14절) 기도한다. 간절한 마음을 표현하는 자세다. 그가 기도하는 대상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붙여 주신 분”(15절) 곧 아버지 하나님이시다. 

사도가 수신자들에게 올리는 기도는 세 가지다. 

첫째, 하나님께서 그들의 속 사람을 강건하게 해 주시기를 구한다(16절). “속 사람”은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 안에서 새로 지어진 자아를 가리킨다. 사도는 속 사람이 강건해 지는 것이 “그분의 성령을 통하여” “능력으로” 되는 것임을 분명히 밝힌다. “그분의 영광의 풍성하심을 따라서”라는 말은 하나님의 역사에는 제한이 없다는 뜻이다. 

둘째, 사도는 그리스도가 그들의 마음 속에 머물러 계시기를 기도한다(17절a). ‘카토이케오’는 항구적인 거주를 의미한다. “마음 속”은 앞에서 말한 “속 사람”과 같은 의미다. 그것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일어난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믿는 것은 인격적인 관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내가 그분 안에 있고, 그분이 내 안에 머무는 상태를 말한다. 

셋째, 사도는 그들이 사랑 속에 뿌리를 박고 터를 잡게 되기를 기도한다(17절b). 여기서의 “사랑”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계시된 하나님의 사랑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는 말은 그분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을 안다는 뜻이다. “안다”는 말은 “경험한다”는 뜻과 같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한 없이 넓고, 한 없이 길고, 한 없이 높고, 한 없이 깊다(18절). 그것은 인간의 지식을 초월하는 것이다(19절). 믿음은 그런 사랑을 알고 그런 사랑 안에서 자라가는 과정이다.  

그들의 속 사람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강건 해지고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마음 속에 머물러 계시어 그분의 사랑 안에서 성장하게 되면, “하나님의 온갖 충만하심으로”(19절) 그들이 충만하여 진다. 하나님은 아무 것도 부족함이 없는 분이다. 이것이 사도가 수신자들을 위해 구하는 기도의 궁극적인 결과다.

이렇게 기도한 후에 사도는 하나님께 송영을 올린다.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서 일하시는”(20절) 분이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의 필요를 구한다.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응답을 상상한다. 그분은 우리가 기도하면서 상상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넘치게 응답하실 수 있다. 사도는 하나님의 그 놀라운 능력을 상상하면서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기를 빕니다. 아멘”(21절) 하고 영광을 돌린다.

묵상:

앞의 기도(1:15-22)에서 사도는 수신자들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이 충만하여 영적인 진실들을 알아보게 해 달라고 간구했는데, 여기서도 그는 그들의 속 사람이 강건해 지고 그리스도께서 그들 가운데 거하셔서 그분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 안에서 자라게 되기를 간구합니다. 십자가를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상상과 지식을 초월합니다. 그 깊이와 높이와 넓이와 깊이를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도무지 말로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각자가 체험하여 알아가는 길 밖에 없습니다. 그 사랑을 조금만 알아도 아무 것도 부족함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랑 안에서 자라기를 힘씁니다. 

사도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이 기도를 올렸다는 사실을 주목합니다. 가택 연금 상태이기는 했어도 그는 행동에 많은 제약을 받았을 것입니다. 물질적인 환경과 조건이 매우 열악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는 사람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해 “우리 가운데서 일하시는 능력을 따라,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더욱 넘치게 주실 수 있는 분”(20절)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그는 수신자들을 위해 기도하며 “하나님의 온갖 충만하심으로 여러분이 충만하여지기를 바랍니다”(19절)라고 말합니다. 물질적으로 핍절한 상태에 살면서 그는 “충만함”과 “넘침”을 말합니다. 그의 속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워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그는 “자족의 비결”(빌 4:12)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물질적으로 “충만함”과 “넘침”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만족하고 감사할 줄 모릅니다. 우리의 기도는 물질적인 것들에 대한 간구로 채워져 있습니다. 속 사람이 비어 있으면, 물질적으로 아무리 풍요로워도 만족할 수 없습니다. 반면, 속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해져 있으면, 물질적인 환경을 초월할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처럼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어도 다 가진 사람처럼 살 수 있습니다. 그 영적 비밀이 어느 때 보다도 필요한 것이 지금이 아닌가 싶습니다. 


Comments

5 responses to “에베소서 3장 14-21절: 사랑이면 된다”

  1. Chris Yoo Avatar
    Chris Yoo

    지식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기를 원합니다.

    사랑에 능력으로 속사람이 충만하여 져서 항상 만족하고 감사하며 살기를 늘 다짐합니다.

    Like

  2. 성령 충만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세상의 지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수없는 그토록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하시고 주님의 사랑안에서 자라고 주님의 사랑으로 이웃을 섬기기를 원합니다만 세속적인 교활한 유혹에 자주 흔들리는 연약한 모습입니다. 성령하나님의 세례를 항상 갱신하며 거듭나고 새로워저서 주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사귐의소리 가족 모두가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Like

  3. gachi049 Avatar

    사도 바울은 가택 연금 상태임에도 자신을 위한 기도를 하지 않고 무릎 꿇고 성도들을 위한 간절한 기도 하는 모습을 상상해봅니다. 그 포근한 모습에 나 자신을 비춰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한 없이 넓고, 높고, 길고, 깊음을 깨닫지 못하고 아직도 조금만 어려움이 있어도 좌불안석 하는 자신이 너무 부끄럽습니다.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께서 동행하심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참 사랑을 깨닫고 실천 할 수 있는 능력과 담대 함을 부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기도 합니다.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Like

  4. 보이는 것이 만족하지 못하는 오늘, 보이지 않는 것에 감사하며, 그 사랑을 본질적으로 다시 한번 곰곰히 묵상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Like

  5.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오늘은 새벽기도회 후에 목회위원회 회의가 있는 날이어서 새벽기도회 시간에 맞춰 나갔다가 일을 다 보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가게에 출근해 오픈을 하고 카운터에 앉았습니다. 카운터는 요거트 타핑들이 죽 놓여있는 카운터로, 앞은 손님들이 셀프로 타핑을 담는 공간이고 뒤로는 책과 컴퓨터를 놓고 ‘공부’도 하고 이메일도 쓰는 나의 작업공간입니다. 남편에게 여기를 ‘철학자의 카운터’라고 불러 달라고 하니 픽 웃습니다. 길이는 1미터 조금 넘고, 폭은 30센티가 안되는 ‘옹색한’ 카운터인데 여기서 보는 바깥 세상은 정겹기도 하고 지겹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하고 참 밉기도 합니다. ‘철학자 (로 살고 싶은 사람)의 카운터’에 앉아 컴퓨터를 여니 ‘사랑이면 된다’는 멋진 제목의 묵상 말씀이 뜹니다. 제목부터 아멘!이 나옵니다. 사람들의 사랑이면 안 될 것이 없고, 하나님의 사랑이면 안 되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과 사랑을 주고 받으며 살면 일이 잘 안되어도 참을 만하고, 하나님 안에 있다고 느끼면 일이 되고 안되는게 문제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사랑의 힘이 그런것이겠지요. 에베소의 공동체들을 위해 바울이 하는 기도가 세 가지 입니다. 사랑 안에서 – 그리스도 안에서 –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세 가지를 구합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의 우리를 위해서도 같은 것을 구할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 안에 새로 지어진 자아가 튼튼하게 잘 성장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늘 계시기를 기도합니다. 혹여 예수께서 우리 마음을 떠나실까봐 걱정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예수님을 잊거나 내 안에 계신 주님을 못 느낄까 우려하는 기도일 지 모릅니다. 끝으로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 속에 뿌리를 내리고 터를 잡게 되기를 바라며 기도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나의 집이 지어지는 것을 상상해 봅니다. 주님이 내 집의 터이시니 이보다 더 좋은 집 터가 없습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짓는 집이니 안전하고 튼튼하고 아름다울 것입니다. 오늘 교회에서 중보기도 사역을 성심껏 감당하시는 권사님께 저의 기도를 부탁 드렸습니다. 미국 여선교회 (United Women in Faith) 에서 제가 앞으로 감당해야 할 일들을 위해 세 가지로 정리해 부탁했습니다. (오늘 묵상을 읽기도 전에 바울의 스타일을 카피…) 가게의 종업원들이 성실하고 꾸준하게 일했으면 좋겠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을 정확하고 진실되게 잘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영어로 소통하는 것부터 큰 부담이지만, 한국교회의 여선교회원들과 마음을 주고 받는 일에 성령님이 도와주시기를 원합니다. 끝으로는 거룩한 재정적인 부담을 잘 감당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어떤 단체도 ‘좋은 뜻’ 만으로 세상을 바꾸기는 어렵습니다. 사건 사고가 터지면 정치인들은 ‘thoughts and prayers’를 보내지만 감리교회는 사람과 물자를 보냅니다. 여선교회의 선교와 교육이 잘 펼쳐지려면 펀드레이징이 잘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사랑이면 되는데, 사랑의 능력을 믿으면 되는데, 그걸 아는데도 두려움이 떠나지 않습니다. 나의 속을 주님의 사랑으로 채워주시기를 간구합니다.

    Like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