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앞(2장 1-10절)에서 하나님이 각 개인에게 베푸신 구원에 대해 설명한 사도는, 그 구원이 믿는 사람들 사이에 만들어 내는 변화에 대해 설명한다.
수신자들은 이방인으로 살 때 할례를 특권으로 여겼던 유대인들로부터 무시 당했다(11절). 그들은 이스라엘이 받은 “약속의 언약”(12절)과 상관이 없었다. 그들은 하나님 없이 살았고, 따라서 그리스도(유대인들이 기다렸던 구원자 메시아)는 그들에게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런데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졌고,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되었다(13절). 하나님에게 멀어져 있던 그들이 이제는 가까워지게 되었다. 이 표현은 이사야서 57장 19절의 말씀(“이제 내가 말로 평화를 창조한다. 먼 곳에 있는 사람과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에게 평화, 평화가 있어라”)에서 나왔다.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해진 사건을 두고 사도는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14절)라고 선언한다. 여기서의 “평화”는 “원수 된 것”의 반대 개념이다. “화해”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낫다.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는 율법이라는 담이 가로막고 있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구원의 유일한 통로로 간주한 까닭에 이방인들을 정죄하고 배척했고, 이방인들은 유대인들을 혐오했다. “원수 된 것”은 그런 상황을 가리킨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인류의 죄값을 치루셔서 “원수 된 것”을 허무셨다. 이로써 예수님은 모든 인류를 하나님과 화해시키셨고(16절), 당신 안에서 새로운 인류를 창조하셨다(15절).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즉 이방인)과 “가까이 있는 사람들”(즉 유대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고(17절), 누구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게” 된다(18절).
결론으로서, 사도는 두 가지의 비유를 사용하여 그들의 달라진 신분을 설명한다. 과거에 그들은 “외국 사람”이었으나 이제는 “성도들과 함께 시민”이 되었고, 과거에 “나그네”였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다(19절). 여기서 사도는 신도 개인 개인이 아니라 신도들의 연합체인 교회를 생각하고 있다.
계속하여 사도는 성전 건축물을 비유로 사용하여 교회의 성격을 설명한다. 교회는 “사도들과 예언자들이 놓은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며, 그리스도 예수가 교회의 “모퉁잇돌”이시다(20절). “예언자들”인 구약의 예언자들이 아니라 신약 시대의 예언자들을 가리킨다. “모퉁잇돌”은 건축을 할 때 기준으로 세우는 첫번째 돌을 가리킨다. 그 이후로 쌓아 올리는 모든 벽돌은 모퉁잇돌을 기준으로 삼는다. 교회는 사도들과 예언자들이 전해 준 믿음의 전통 위에 서서 예수 그리스도를 기준으로 지어져 가는 성전이라는 뜻이다(21절). “주님 안에서 자라서 성전이 됩니다”라는 표현으로 사도는 믿음의 공동체는 언제나 완성을 향해 자라가야 하는 존재임을 암시한다. 그럴 때, 교회는 “하나님이 성령으로 거하실 처소”(22절)가 된다.
묵상:
앞에서 사도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시고 그분을 만물 위에 세우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께 모든 것을 맡기셔서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분”(1:23)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습니다.
알고 보면, 이 말은 “바울이 제 정신일까?” 싶은 의문을 가지게 합니다. 이 편지를 쓸 때 교회들은 집에서 모이던 가정 교회였습니다.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하층민들이었고, 모임의 규모도 보통 삼십에서 오십 명 정도였을 것입니다. 교회 직제도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고, 교회로 모여서 행하는 일들도 제 각각이었습니다. 주변 사회에서는 그들의 ‘이상한 신앙’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사도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1:21)을 가지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교회의 머리이시며 교회는 그분의 몸이라는 대담한 주장을 한 것입니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현상을 분석하여 얻은 결론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일어난 사건의 흐름을 보고 얻은 결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오직 믿음으로만 그분의 자녀로 회복되는 길을 여셨습니다. 과거에 인류는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구분 되어 있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으로 인해 그 구분이 허물어지고 새로운 인류가 탄생했습니다. 그것이 교회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통한 하나님의 계획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통일시키는 것”(1:10)인데, 그 계획이 어떤 것인지를 교회를 통해 미리 보여 주셨습니다.
1장에서 교회를 몸에 비유했던 사도는 2장에서는 성전에 비유합니다. 교회는 “사도들과 예언자들이 놓은 기초 위에”(20절) 세워진 성전과 같습니다. 그 신앙 고백이 사도신경 안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 예수가 성전 건물의 모퉁잇돌이십니다. 건물을 지을 때 모퉁잇돌을 기준으로 벽돌을 쌓아 올리는 것처럼, 교회도 예수 그리스도를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21절과 22절에서 사도는 현재 수동태 동사를 사용하여, 교회를 지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짓는 일은 계속된다는 사실을 전합니다. 교회를 단순히 건물이라 하지 않고 성전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교회에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교회에 대한 우리의 시각과 관념에 충격을 안겨 줍니다. 교회로 모인 수가 아무리 적고 모인 사람들이 세상적으로 아무리 부족해도 사도들과 예언자들이 전해 준 기초 위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기준으로 서로 연합하여 건물로 지어져 간다면,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 그 공동체 안에 거하시어 성전이 되게 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통해 마지막 날에 모든 것을 하나로 통일시키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미리 보여 주십니다.
이런 점에서 교회는 대체 불가입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교회를 대할 때 경외감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속한 교회가 더욱 거룩한 몸, 거룩한 성전이 되도록 기도하고 헌신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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