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바울은 계속하여 믿는 자에게 주어진 상속자로서의 신분에 대해 설명한다. 어떤 사람이 일찍 죽어서 어린 자녀에게 유산을 물려 주었다면, 그가 성인이 될 때까지는 유산의 소유권을 행사할 수 없다. 그 유산은 법정 보호자의 관리 아래에 둔다. 그 아이는 그 유산에 대해 아무런 권리가 없기 때문에 종과 다름이 없다(1-2절).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어릴 때”)에 우리도 같은 입장이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기한이 찼을 때”)가 이르자 당신의 아들을 보내셨다. “여자에게서 나게 한” 것은 완전한 인성을 가진 분으로 오셨다는 뜻이고, “율법 아래 놓이게 한” 것은 죄성을 가진 인류의 자리로 내려 오셨다는 뜻이다(3-4절). 그분은 요단 강에서 회개의 세례를 받으심으로 율법 아래에 들어가셨다. 그것은 율법 아래에 사는 인류를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하기 위함이었다(5절). “속량하다”는 말은 노예의 몸값을 대신 지불하고 자유민이 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자녀였다가 율법의 노예가 된 사람을 다시 자녀로 회복시키기 위해 예수께서 노예의 몸값을 치루셨다.
“여러분”(6절)은 갈라디아 교인들을 말한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그 아들의 영” 즉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여 하나님께 “아빠”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다(6절). 미성년 상속인이 성인이 된 후에 자신에게 주어진 유산에 대해 온전한 소유권을 가지는 것처럼, 믿는 이들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완전한 상속자가 된다(7절). 과거에 그들은 “하나님이 아닌 것들”(8절)에게 예속되어 살았다. “하나님이 아닌 것들”은 그들이 섬겼던 모든 것들 즉 이방 종교 전통과 유대 종교 전통 모두를 가리킨다. 하지만 이제는 그들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이 그들을 알아 주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일어난 일이다.
갈라디아 교인들은 자신들의 신분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를 잊고 다시 과거에 섬겼던 것들(“유치한 교훈”)을 섬기려 하고 있다(9절). 그들은 이교 풍습에 따라 절기를 지켰고 유대교 절기까지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10절). 그로써 사도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담당했던 수고가 허사가 될 지경에 이르렀다(11절).
묵상: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을 도우려면 그 사람의 상황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초등학교 어린이에게 공부를 가르치려면 그 아이의 수준으로 내려가야 하고,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 주려면 물 속으로 들어가야 하고, 화재에 갇힌 사람을 구하려면 불 속으로 뛰어 들어가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죄와 사망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자리, 죄인의 자리, 저주의 자리에 내려 오셔야 했습니다. 그 목적을 위해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시도록”(요 1:14)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여자의 아들로 오신 것입니다. 완전한 인성을 가지신 그분은 “모든 점에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는 없으신”(히 4:15) 분입니다.
그분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십니다. 요한이 세례 베풀기를 사양하자 “지금은 그렇게 하도록 하십시오. 이렇게 하여, 우리가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옳습니다”(마 3:15)라고 답하십니다. 여기서의 “의”는 하나님의 뜻을 의미합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이루기 위해 인류를 대신하여 회개의 세계를 받으십니다. 인류가 율법으로 인해 받아야 할 저주를 당신 몸에 받으십니다. 십자가에서의 죽음은 세례 때에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 씨앗 하나에 수 많은 생명이 담겨 있는 것처럼, 예수님 한 분 안에 인류가 들어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는 것은 그분 안에 자신도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자신이 받아야 할 율법의 저주를 대신 받으셨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셔서 그 사람을 자녀로 회복시켜 주시고 당신의 영을 부어 주십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은 그 사람을 알아 주십니다. 히브리어 개념에서 “안다“는 말은 인격적인 친밀한 관계를 의미합니다. 사랑의 사귐이 시작되고, 그 관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 “아빠”라고 부르게 됩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이 땅에서 회복된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을 누리고, 하나님 나라에서는 약속 대로 영원한 생명을 유산으로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그 나라의 상속자들입니다. 이 신분과 이 소망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주 잊고 눈에 보이는 것에 휘둘립니다. 갈라디아 교인들이 지금 그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런 일은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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