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9장 1-28절: 누가 제사장인가?

해설: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에게 축복의 기도를 한 다음, 야곱은 열 두 아들을 불러 하나씩 기도해 줍니다(1-2절). 야곱은 “너희가 뒷날에 겪을 일을, 내가 너희에게 말하겠다”고 말합니다. 그의 기도는 예언적인 축복 기도였던 것입니다.

야곱은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를 위해 기도하면서 그들이 장자권을 상실한 이유를 밝힙니다. 르우벤은 아버지의 첩을 범한 일 때문에 장자권을 상실했고(3-4절), 시므온과 레위는 누이 다말의 일로 인해 세겜 사람들을 살륙한 것 때문에 장자권을 이어 받지 못합니다(5-7절). 

유다에 대한 기도는 축복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8-12절). 야곱은 장자권이 유다에게 옮겨질 것이며 그 후손에서 왕들이 나올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일어난 일들을 마음에 두고 유다에 대한 기도를 읽으면 메시아에 대한 예언처럼 들립니다. 

이어서 야곱은 스불론(13절), 잇사갈(14-15절), 단(16-17절), 갓(18절), 아셀(20절), 납달리(21절)에게 예언의 기도를 올립니다. 그는 요셉에 대해서는 가장 많은 말을 동원하여 풍성한 복을 빌어 줍니다(22-26절). 마지막으로 그는 베냐민을 위해 예언의 기도를 드립니다(27절).  

묵상: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세상을 떠나기 전에 자녀들에게 축복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제사장 제도가 생겨나기 전에 가장이 그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유교의 제사 의식에서 호주가 제주(祭主) 역할을 했던 것과 같이, 가장의 지도 하에 가정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모세가 율법을 따라 아론의 자손들을 제사장으로 세운 이후로 가장의 제사장직이 약화 되었습니다. 한 공동체를 위해 제사장을 세우는 것은 필요한 일이었으나, 가장의 제사장직을 완전히 아웃소싱 한 것은 큰 잘못이었습니다. 가정은 가장 작은 단위의 신앙 공동체이며, 가장이 가정 공동체의 제사장이 되어야 합니다. 

남성 중심적 문화에서 가장은 남성 호주를 가르키는 말이었지만, 이제는 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가정 공동체의 가장은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며 가정 공동체의 운명에 대해 가장 마음 쓰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아버지일 수도 있고, 어머니일 수도 있으며, 자녀일 수도 있습니다. 믿지 않는 가정에서 자녀 한 사람이 믿게 되었다면, 그는 그 가정의 제사장으로 세움 받은 것입니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신실한 믿음 안에 있다면 모두가 가정에 대해 제사장의 역할을 맡은 것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공동체 사이에서 서서 중보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공동체를 위해 대변하고, 공동체 앞에 나아가 하나님의 뜻을 대변합니다. 그러기 위해 제사장에게 가장 필요한 일은 하나님과 깊은 사귐을 나누고 공동체를 뜨겁게 사랑하는 일입니다. 때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공동체를 위해 간절히 빌고, 때로는 공동체 앞에 나아가 하나님의 뜻을 전합니다. 공동체 전체가 하나님의 뜻 안에 살아 그분의 계획이 이루어지기를 힘씁니다. 하나님과 깊은 사귐을 나누고 공동체를 뜨겁게 사랑할 때 공동체를 위해 드리는 기도는 예언이 되고 약속이 됩니다.


Comments

4 responses to “창세기 49장 1-28절: 누가 제사장인가?”

  1. 많은 친족들이 주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저 있는 형편입니다, 그러나 왕과 같은 제사장, 거룩한 백성 택함을 받은 민족이라고 여기시는 말씀을 붙들고 한 사람씩 이름을 불려가며 축복의 기도를 드립니다, 언젠가는 주님과 이웃을 섬기는 귀한 주님의 일꾼이 태어날것을 믿고 감사하며 간절히 기도하는 아침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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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achi049 Avatar
    gachi049

    부족합니다. 연약합니다. 지혜도 부족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도우심을 믿고 교회, 가족과 조국, 세계평화, 복음 전파를 위해 드리는 기도를 숨이 멈출 때까지 중단하지 않도록 성령께서 동행하여 주시고 도와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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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야곱의 아들 12명이 아버지의 축복기도를 받습니다. 열두 아들이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가 되고 그들의 이야기가 구약의 기둥이 됩니다. 야곱은 아들에게 각각 구체적인 기도를 해줍니다. 기도의 순서는 태어난 순서를 따르지만 기도 내용은 각자의 과거를 토대로 미래를 그리고 있습니다. 태어난 순서가 운명이라면 살아온 자취는 선택입니다. 르우벤이 좋은 예입니다. 태어나기는 첫 아들로 태어났으나 살아온 자취를 보면 큰아들의 삶이 아닙니다. 시므온과 레위의 경우 세겜 성에서 나타난 그들의 잔인성은 미래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세겜 성의 살육 사건을 잊을 수 없었던 야곱은 유언을 하는 때가 오자 고스란히 되갚아 줍니다. 야곱은 “뒤끝 작렬”의 “끝판왕”인 셈입니다. 시므온과 레위가 한 짓 중에 ‘장난삼아 소의 다리를 못 쓰게 (6절)’ 만든 일도 야곱은 기억합니다. ‘노여움이 심하고 지나치게 잔인해서 (7절)’ 그들에겐 복 대신 저주를 내립니다. 현대인이 진단하면 그들의 동물학대는 사이코패스의 특징이라고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레위 지파에서 모세와 아론이 태어나고 결국 제사장 라인이 됩니다. 복과 저주, 운명과 선택이 명명백백하게 구분되지 않는 것을 봅니다. 선천적으로 받은 것 (given)이 내 삶의 주요 조건이긴 하지만 삶에서 남기는 열매 (what I give)는 다를 수 있다는 가능성도 열어줍니다. 르우벤에서 베냐민에 이르기까지 야곱은 한 명 한 명에게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지 (1절) 말해 줍니다. 성경은 아버지(야곱)는 모든 아들에게 ‘알맞은’ 복을 빌어주었다(28절)고 기록합니다. 사실 야곱 곁에 모여든 아들들도 다 노인입니다. 이 아들들의 미래라기 보다 후손의 일을 예언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미래를 알고 싶어합니다. 결코 알 수 없기에 더더욱 알고 싶어합니다. 희망은 알 수 있어서 품는 것이 아닙니다. 희망도 믿음처럼 모르지만, 모르기 때문에, 필요합니다. 하루씩 밖에 살 수 없는 우리는 오늘을 살면서 어제와 내일을 동시에 품고 삽니다. 경험의 자아 experiencing self 와 기억의 자아 remembering self 를 작동하며 삽니다. 오늘의 경험이 감사의 기억을 만들게 하소서. 감사의 기억이 오늘을 사는 힘이 되게 하소서. 주님 감사합니다. 우리를 알맞은 복으로 기도해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주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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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mkkim2 Avatar

    가족을 위한 제사장의 역할을 온전히 감당하지 못한것 같아, 마음이 아프기도 하지만, 먼저는 회개로 저의 잘못을 뉘우쳐야 할 것 같습니다.

    주여, 가장으로서,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그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못한 저를 용서하여 주시고, 그들이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설 수 있도록 구하는 기도가, 그들을 축복하는 기도가 되게 하시옵소서. 또한 저도 바르게 하나님 앞에서서 그들에게 보일수 있는 축복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이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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