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8장: 하나님의 큰 그림

해설:

야곱은 이집트로 이주한 후 17년을 더 살았습니다. 흉년이 지난 후에도 가나안으로 돌아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야곱의 병환이 깊어져서 죽음이 가까워졌다는 소식을 듣고 요셉은 두 아들을 데리고 아버지를 찾습니다(1절). 당시에는 가장이 제사장의 역할을 했기 때문에 세상을 떠나기 전에 아버지로부터 축복 기도를 받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요셉과 두 손자를 보고 야곱은 기력을 다해 일어나(2절)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언약을 상기시키며 두 손자를 자신의 아들로 삼겠다고 말합니다(3-5절). 아들로 삼겠다는 말은 유산 상속권을 준다는 뜻입니다(6절). 야곱이 그렇게 한 것은 일찍 세상을 떠난 라헬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7절).

야곱은 두 아이를 끌어 안고 입을 맞추고는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죽은 줄 알았던 아들을 다시 만난 것도 감사한데 그에게서 나온 아들들까지 보게 되었으니, 감사의 정이 북받쳐 오른 것입니다(8-11절). 요셉은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뵙는 것임을 알고 두 아들과 함께 아버지에게 작별의 절을 드립니다(12절). 그런 다음 요셉은 큰 아들 므낫세를 아버지 오른쪽에, 작은 아들 에브라임을 왼쪽에 세워 두고는 축복해 달라고 청합니다(13절). 그런데 야곱은 두 팔을 교차하여 뻗어 오른손을 에브라임의 머리에, 왼손을 므낫세의 머리에 얹고 기도를 시작합니다(14절). 

야곱은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을 지켜 주신 하나님께서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지켜 주시기를 축복합니다(15-16절). “나의 이름과 할아버지의 이름 아브라함과 아버지의 이름 이삭이 이 아이들에게서 살아 있게 하여 주시기를 빕니다”라는 기도는 할아버지로부터 이어져 온 믿음의 전통이 대대로 이어지게 해 달라는 뜻입니다.

요셉은 큰 아들에게 왼손을 얹고 작은 아들에게 오른손을 얹은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는 손을 고쳐 얹으라고 청합니다(17-18절). 당시 관습으로는 오른편이 우선했기 때문입니다. 그 관습에 따르면 아버지의 오른손이 마땅히 큰 아들에게 얹혀져야 했습니다. 요셉은 눈 어두운 아버지가 착각한 줄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야곱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두 손자에게 손을 얹으려는 순간 에브라임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므낫세에 대한 계획보다 크다는 사실을 감지했던 것입니다(19절). 

두 손자에게 축복의 기도를 한 다음, 야곱은 요셉에게 때가 오면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예언을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칼과 활로 아모리 사람에게서 빼앗은 세겜을 요셉에게 준다는 유언을 남깁니다(20-22절).

묵상: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는 야곱의 열 두 아들에게서 나왔습니다. 하지만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을 자신의 아들로 받아 들였기 때문에 열 세 지파가 되었습니다. 나중에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정착할 때 레위 지파는 땅을 분배 받지 못했습니다. 그로 인해 땅을 분배 받은 지파는 열 두 지파가 되었습니다. 요셉의 큰 아들인 므낫세의 후손은 요단강 동편에 있는 땅을 분배 받았고, 둘째 아들 에브라임의 후손은 가나안 땅의 중심부를 분배 받았습니다. 

그 이후의 역사의 흐름 속에서 므낫세 지파는 가장 먼저 사라져 버렸고, 에브라임 지파는 나중에 북왕국 이스라엘이 멸망할 때까지 명맥을 유지했습니다. 그래서 예언서에 보면 에브라임이 북왕국 이스라엘에 대한 별명이 되었습니다. 남왕국을 유다라고 부른 것처럼 북왕국은 에브라임으로 불렸습니다. 북왕국을 형성한 열 지파 중에서 가장 오래도록 살아 남았던 지파가 에브라임 지파였고, 남왕국을 형성한 두 지파 중에 지금까지 살아남은 지파는 유다 지파였습니다.

야곱은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계획이 인간적인 관습과 계획을 넘어 선다는 것을 그는 알았습니다. 그것은 그 자신의 일생을 통해 경험한 일입니다. 그는 자신의 노력으로 인생 역전을 이루어 보려 했지만, 결국 자신의 인생과 역사를 결정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자신은 하나님의 큰 그림 안에서 움직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야망과 계획을 따라 살려는 욕망을 버리고 하나님의 큰 그림을 늘 생각하면서 그분의 손길을 따라 움직이려 했습니다.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축복할 때에도 야곱은 하나님의 뜻을 찾았고, 그 자신도 알 수 없는 이유로 팔을 교차해 뻗었습니다. 그것을 통해 야곱은 에브라임의 후손이 므낫세의 후손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짐작했을 것입니다. 야곱은 두 자손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까맣게 몰랐으나 하나님의 큰 그림이 어디로 향하는지는 알았습니다.

우리 모두도 지금 우리로서는 알 수 없는 하나님의 큰 그림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오늘 우리 하나 하나를 이끌어 가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계획과 야망대로 행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세밀한 음성과 부드러운 손길을 따라 살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럴 때 지금 우리로서는 알 수 없는 하나님의 큰 그림이 완성될 것이고, 우리는 그 그림 안에 한 자리에서 우리의 몫을 다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 안에만 있다면 내 역할이 크든 작든 상관 없습니다.  


Comments

4 responses to “창세기 48장: 하나님의 큰 그림”

  1. gachi049 Avatar
    gachi049

    만드시고 지금까지 함께하신 나의 주인 되신 하나님 아버지! 언제나 부족하고 연약하여 하나님의 나에대한 큰그림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큰 그림을 바라볼 수 있도록 영안을 열어주셔서 나의 소견을 접고 오로지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큰 그림에 합한 삶을 살아 내는 남은 여정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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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마지막 숨쉴시간이 아주 가까운 곳에서 기다리고 있는것을 감지하는 처지에 있습니다. 57년전에 홀로 이땅에와서 13명의 가족들을 허락하신 은혜와 사랑의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 세속적인 부귀영화보다 믿음의 유산을 남기지못한 처량한 신세입니다,수십년의 저의기도의 응답이 간절한 소망입니다. 지금부터라도 주님앞에 섰을때 칭찬받는 삶을 살아내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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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본문은 야곱과 요셉, 요셉의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이야기 합니다. 야곱이 이집트로 옮겨온 뒤 17년이 지났으니 므낫세와 에브라임도 청년의 나이였을 것입니다. 야곱은 요셉의 두 아들을 손자가 아니라 아들로 여긴다고 말합니다 (5절). 8절부터는 요셉이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데리고 야곱 앞에 온 장면을 그립니다. 야곱은 두 아이들에게 입을 맞추고 안아줍니다. 11절은 요셉을 다시 만나게 되어 감격하고 그의 두 아들까지 보게 되어 감사한 야곱을 그립니다. 12절은 요셉이 두 아들을 야곱의 무릎에서 떼어놓았다는 표현을 씁니다. 17년 세월이 흐른 뒤의 일이기 보다 이집트에서 요셉과 처음 만난 때를 그리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축복하는 13절 이후는 죽음을 앞둔 야곱의 행동으로 보입니다. 48장은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축복하면서 야곱이 오른손-왼손을 바꾸어 한 것으로 유명한 장입니다. 야곱의 스토리는 형 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나온 것에서 시작합니다. 장자인 형을 부러워하여 장자권을 죽 한 그릇으로 뺏습니다. 형으로 변장하여 장자 축복 기도도 뺏어 받습니다. 죽기 전에 아들 열두 명에게 축복을 해줄텐데 손자들에게 ‘먼저’ 해줍니다. 파격이랄까요. 반전이랄까요. ‘야곱다운,’ ‘야곱이기에 할만한’ 뒤바뀜처럼 느껴집니다. 손자들은 야곱의 열두 지파로 편입됩니다. 창세기 뿐 아니라 성서 전체에서 할아버지(할머니)와 손자(손녀)의 이야기는 극히 드뭅니다. 그럼에도 야곱의 므낫세와 에브라임 축복은 지금까지도 유대인 가정에서 행하는 전통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금요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유대 가정은 20절에서 야곱이 하는 기도를 반복한답니다. “하나님께서 너희를 에브라임과 므낫세같이 해주시길 바란다 May God make you like Ephraim and Menashe.” 유대인의 가족과 세대 이해도 우리 한국인의 이해와 비슷한 측면이 있는데 특히 조부모가 가문의 정신과 전통을 보존하여 다음 세대로 넘겨준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현대에 와서 가정의 단위가 부모-자식으로 단촐해지고 자녀가 없는 부부 만의 가정도 적지 않다는 점을 생각하면 조부모의 역할이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이 시대감각 떨어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만, 야곱(할아버지)이 므낫세와 에브라임(손자들)의 머리 위에 손을 얹어 복을 구하는 모습은 더할 수 없는 특권이요 영광인 것은 분명합니다. 유대인 학자들의 해석 중에는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이집트라는 타향에서 얻은 자식이라는 점에 주목하는 해석도 있습니다. 전세계에 흩어져 살게 되어도 ‘선택 받은 하나님의 백성’의 운명을 기억하며 살라는 명령이 이 두 손자를 열두 지파에 포함시키는 뜻과 연결된다는 의견입니다. 또 다른 해석에는 부모와 자녀의관계 속에는 의도하지 않은 긴장과 아픔이 들어있지만 조부모와 손자 사이에는 순수한 사랑, 조건 없는 사랑이 흐른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대를 이어 내려가는 사랑의 힘이랄까요. 끝으로,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손자는 ‘미래’를 상징한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이 해석은 ‘미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미래’에 대한 꿈을 가지는 사람은 평화 (샬롬)를 위해 일하게 되어있다는 해석으로 이어집니다. 야곱의 축복을 ‘이스라엘’의 축복으로 펼쳐서 읽으면, 조부모의 위치에 있는 세대는 보이지 않는 미래를 가슴에 품고 기도하는 세대가 되어야 한다는 결단이 됩니다. 예수님의 꿈, 예수님의 비전이 하늘나라, 하나님의 왕국입니다. 아직 오지 않은 평화 (미래), 그러나 이미 와 있는 평화 (자녀, 손주, 다음 세대) 를 위해 일하는 피스키퍼 peacekeeper 로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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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mkkim2 Avatar

    “하나님의 세밀한 음성과 부드러운 손길”을 느끼며, 그 뜻에 물이 흐르듯이 따라가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분명 그렇게 되기 위해, 더욱 분별할 수 있는 능력과 신앙적인 감수성을 허락하시길 기도합니다. 주여, 불쌍히 여겨주시고, 힘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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