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7장 13-26절: 선한 의도, 악한 유산

해설:

이어서 저자는 나머지 흉년 기간에 이집트에서 일어난 일들을 묘사합니다. 가뭄이 계속되자 가나안과 이집트 주민의 모든 돈이 이집트 국고에 귀속됩니다(13-14절). 돈이 떨어지자 주민들은 가축을 내어 주고 곡물을 받아 옵니다(15-17절). 마지막 해에 이르자 곡물을 살 가축마져 떨어지자 백성은 토지를 모두 국가에 바치고 자신들을 노예로 내어주겠으니 곡물을 내어 달라고 요청합니다(18-19절). 요셉은 그 조건을 받아들여 전국토를 국유화 시키고 모든 백성을 바로의 소작농으로 전락시킵니다(20절).

전국토가 국가의 소유가 되자 요셉은 국토 전체를 재편하고 주민들을 이주시켜 균형적인 발전으로 도모합니다(21절). 다만 제사장들의 토지는 이 계획에서 제외 되었습니다. 그들은 바로에게서 충분한 곡물을 제공 받았기 때문에 토지를 내다 팔 필요가 없었습니다(22절). 요셉은 새로운 정착지에 이주한 주민들에게 씨앗을 공급해 주고 농사를 짓게 하고 수확물의 20%를 소작세로 정합니다. 백성은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라고 여기고 받아들입니다. 그것이 이집트의 오랜 전통이 되었고 바로의 전권 통치를 가능하게 해 주었습니다(23-26절).

묵상:

가뭄이 서서히 깊어지는 과정에서 정부가 저장해 두었던 곡물을 백성에게 풀면서 적정한 값을 받는 것은 정당하다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백성이 더 이상 곡물값을 지불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가축으로 대신 값을 치루도록 요구한 것은 정당해 보이지 않습니다. 이 정도의 위기 상황에 이르면 정부는 백성을 무상으로 먹여 살려야 마땅합니다. 게다가, 곡물을 내어 주는 조건으로 모든 토지를 국고로 환수하고 모든 백성을 소작농으로 만든 것은 국가의 횡포처럼 보입니다. 

요셉이 이렇게 한 이유는 차제에 이집트 국토 전체를 재편하고 주민들을 재배치하여 균형적인 발전을 도모하기 위함이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한시적인 조치로 끝나야 했습니다. 전국민을 소작농으로 만들고 20%의 높은 소작세를 징수하는 전통이 그 이후로 지속되게 한 것은 큰 과오였습니다.  

선하고 지혜로운 통치자에게 전권이 맡겨지면 백성 전체에게 유익이 돌아가지만, 악하고 어리석은 통치자가 전권을 가지면 엄청난 피해가 수 많은 사람들에게 가해집니다. 이 정도의 전권이 없이는 고대 이집트의 문명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피라미드나 스핑크스 같은 어마어마한 문명의 잔해들을 보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힘없는 민초들이 얼마나 고통을 겪어야 했을지를 상상해 보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 권력은 분산 되어야 하고 견제 장치가 마련 되어야 합니다. 권력자의 관심은 얼마나 위대한 일을 이루느냐보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자유롭고 복되게 살아가게 하느냐에 있어야 합니다. 


Comments

4 responses to “창세기 47장 13-26절: 선한 의도, 악한 유산”

  1. 우선 하나님을 경외하며 주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려고 힘쓰는 위정자가 있는 나라는 축복의 나라입니다만 그런 나라는 인류역사에서 거의 볼수가 없는 실정입니다.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민초들의 평강에 마음을 두지않고 권력을 잡을려고 온갖 중상 모략을 하고있는 실정입니다. 인간의 죄성이기 때문이지요. 새하늘과 새땅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마라나타 주님을 간절히 기다리는 아침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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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achi049 Avatar
    gachi049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집트 땅을 인류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고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 통치 하시겠다는 메세지를 바로의 꿈을 통해 보여주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 지혜를 주셔서 겸손하게 그 꿈을 해석하고 대책까지 제시하니 바로는 모든 신하들이 해몽과 대책을 좋게 여기는 것을 보고(41:37) 요셉에게 하나님께서 함께하심(41:38)을 알고 요셉에게 총리직을 주어 이집트를 다스리게 했습니다. 만약 칠년 동안 풍년이 들어 모든 백성이 흥청망청 먹고 마셔 즐겼다면  다가오는 흉년을 준비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흉년 기간에 양식과 토지와 짐승까지도 없는 민초 들에게도 동일한 규칙을 적용한다는 것은 약육강식의 사회로 변질되어 빈익빈 부익부가 되기 쉽습니다. 인간의 욕망과 욕심을 통제할 수 있는 권력의 분산과 믿음이 필요합니다. 즉 기독교 사회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오늘도 믿음이 변치않도록 성령께서 동행하셔서 나는 죽고 예수만 사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인도하옵소서.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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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가뭄이 심해지자 요셉이 고안한 정책은 파라오에겐 더할 수 없이 좋지만 백성에게는 불리했습니다. 당장 굶어 죽지 않으려면 평생 파라오에게 매인 몸으로 사는 조건을 받아 들여야 했습니다. 자유와 자율에 관한 고대 이집트인들의 생각이 우리 현대인의 생각과 같았는지 모르지만 개인 소유의 가축과 경작 토지를 국가에 내주고 백성은 소작농으로 평생 계약에 묶여 산다는 법은 악법이라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제사장은 예외라는 점도 불편합니다. 제사장에게는 이 법을 적용하지 않음으로써 ‘부’를 축적하는 길이 생겼습니다. 부의 축적은 타락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공평과 공정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모든 이에게 똑같은 것을 준다는 것이 공평이라고 말합니다. 받는 이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으면 공평이 공평이 아니게 됩니다. 공정은 공평보다 발전된 개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받는 이의 입장에서 공평한지 아닌지를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공정성을 고려한다는 뜻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복지와 사회 평등을 이야기 할 때 두 가지를 강조합니다. 기회의 평등과 결과의 평등입니다. 기회가 공평하게 주어지도록 노력해야 하고, 결과에 대한 기대도 공평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경주에 참여할 수 있도록 문을 개방하는 것과 함께 경주에 필요한 최소한의 능력도 기를 수 있는 토대를 공평하게 만들어 준다는 뜻입니다. 능력 위주의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종종 너무 큰 소득 격차를 봅니다. 능력 만능주의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다듬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요셉은 철저하게 파라오의 신하입니다. 요셉이야 말로 원조 ‘파워 엘리트’ 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파워 엘리트는 제국의 안녕을 책임지지만 그들의 제국에 백성이, 약자가, 이주민들이 포함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권력, 부, 평강, 성공, 건강…너머를 볼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신앙입니다. 신앙은 하나님 앞에 엎드린 나를 보게 합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리면 그렇게 갖고 싶은 세상의 좋은 것들이 빛을 잃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 마음으로 그리는 것은 좋은 집, 현찰, 귀한 음식이 아닙니다. 인기나 존경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한 나, 주님의 은혜로 담대한 나를 그립니다. 파라오의 백성은 가뭄을 겪고 있습니다. 혹시 나도 가뭄을 겪고 있을까요. 사랑과 은혜에 배가 고픈 것은 아닐까요. 파라오는 백성에게 먹을 것을 주고 대신 노예로 삼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양식과 물을 주시고 또한 자유를 주십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나의 사정을 아시기에 가장 공평하고 가장 공정한 길을 허락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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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mkkim2 Avatar

    여전히 기도의 내용이, 제 자신과 제 가족에 국한되어 있는 모습을 봅니다. 더 많은 손길이 필요한 이웃이나 공동체에 대해서는 항상 기도가 되지 않음은, 아직도 갈길이 먼 것이라는 반증이기도 하겠지요. 푰대를 향해 나 혼자만 전력질주 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뒤쳐지더라도 손잡고 같이 뛰어가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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