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2장: 용서는 과정이다

해설:

저자는 카메라의 앵글을 야곱의 집으로 돌립니다. 칠 년 동안의 기근은 가나안 땅까지 덥쳤습니다. 견디다 못한 야곱은 이집트에 곡식이 풍성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막내 베냐민을 제외한 열 명의 아들들을 이집트로 내려 보냅니다(1-5절). 

이집트에 도착한 형들은 이집트의 총리가 된 요셉을 마주하게 됩니다(6절). 요셉은 그들을 알아 보았지만, 형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시간적으로 이십 년이나 지났고 요셉이 화려한 이집트 총리의 관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압도하고 있던 두려움도 동생을 알아보지 못하게 한 원인이었을 것입니다(7-8절). 요셉은 자신 앞에 업드려 있는 형들을 보면서 어릴 때 꾼 꿈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그 때 요셉은 전율을 느꼈을 것입니다. 자신이 의도한 것도 아닌데 그 꿈이 이십 년 후에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 앞에서 신비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요셉은 형들의 마음 상태를 알아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첩자로 몰아 세웁니다(9절). 형들은 자신들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설명합니다. 요셉은 곧이듣지 않는 척하면서 결백을 증명할 방법을 제시합니다. 아홉 형제를 인질로 잡아 두고 있을 테니 한 사람이 가서 막내 동생을 데려 오라는 것입니다(10-16절). 형들이 결정을 내리지 못하자 요셉은 그들을 감옥에 가두어 둡니다(17절). 그렇게 함으로써 요셉은 자신을 죽이려 했고 노예로 팔아 넘긴 일에 대해 형들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를 알아 보려 했던 것입니다. 

사흘 후에 요셉은 형들을 끌어 내어 한 사람만 인질로 이집트에 남아 있고 나머지 형제들은 곡식을 가지고 가서 식구들을 살린 다음 막내 동생을 데리고 오라고 명령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질로 잡혀 있는 형제가 죽음을 당할 것이라고 했습니다(18-20절). 형들은 그 제안을 따르겠다고 답한 다음, 요셉이 알아듣지 못하는 줄 알고 과거에 요셉에게 행한 일에 대해 말하며 후회를 합니다(21-22절). 큰 형 르우벤이 동생들의 잘못을 책망합니다. 그는 동생들 몰래 요셉을 살려 내려 했었습니다(23절). 

요셉은 그제서야 맏형 르우벤이 자신을 살릴 마음으로 자신을 구덩이에 넣자고 제안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 말을 듣고 요셉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으로 가서 울음을 쏟아 놓습니다(24절). 형들의 진실한 뉘우침 그리고 르우벤 형의 진심을 알고는 그의 마음에 뭉쳐 있던 분노가 녹아 내린 것입니다. 그 눈물에는 수 많은 감정이 담겨 있었을 것입니다.

감정을 추스린 다음 요셉은 형들에게 다시 와서 시므온을 인질로 잡아 두고 다른 형들에게 원하는 대로 곡식을 제공해 줍니다(24-25절). 요셉은 종들을 시켜 받은 돈을 곡식 자루에 넣어 보내게 합니다. 그들이 그 사실을 안 것은 하룻길을 간 다음의 일입니다(26-28절). 그들은 두려움에 질려 집으로 돌아가 야곱에게 자초지종을 다 말씀 드립니다(29-34절). 그런 다음 곡식 자루를 풀어 보니 자루마다 그들이 지불한 돈이 들어 있는 겁니다(35절). 

그들은 영락없이 함정에 빠졌고 첩자의 누명을 벗을 길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야곱은 요셉에 이어 시므온도 잃어 버렸다고 슬퍼합니다(36절). 야곱은, 베냐민을 절대로 이집트로 데려갈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르우벤이 두 아들의 목숨을 걸면서 베냐민을 꼭 다시 데려 오겠다고 약속합니다(37절). 하지만 야곱은 완강하게 거절합니다(38절). 

묵상:

요셉은 이십여 년 동안 형들에 대한 분노를 마음에 품고 살았을 것입니다. 그가 인생의 바닥에서 만난 하나님을 통해 그 분노를 어느 정도 치유 받았을 것입니다. 이집트에 팔려 온 이후의 요셉의 태도와 모습을 보면 그는 분노에 사로잡힌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도 인간인지라 자신을 죽이려 했고 결국 노예로 팔아버린 형들에 대한 감정의 앙금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형들에게 애증의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치유하실 분노의 분량이 따로 있고, 형들과의 화해를 통해 치유할 분노의 분량이 따로 있었던 것입니다. 

형들이 자신에게 행한 일에 대해 뉘우치는 말을 들었을 때 그리고 자신을 구덩이에 넣어 굶어 죽게 하자고 제안했던 르우벤의 진심을 알았을 때, 요셉에게 남겨져 있던 분노의 앙금에 동요가 생겨났습니다. 때로 우리는 사정을 다 알지 못하고 우리 식으로 해석하여 오해를 하고 분노를 품곤 합니다. 요셉은 참을 수 없어서 아무도 보지 않는 곳으로 가서 통곡을 합니다. 눈물과 함꼐 그 안에 남아 있던 분노의 앙금이 녹아 내렸을 것입니다. 

한참 울고 났을 때, 요셉은 납덩이처럼 늘 가슴을 짓누르고 있는 것이 사라지는 경험을 했을 것입니다. 그 응어리가 모두 풀리는 데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더 많은 눈물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얽히고 설킨 인간 관계에서 분노를 느끼는 것은 때로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문제는 분노를 품고 사는 데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숨통을 조이는 일입니다. 자신을 과거의 시간에 묶어 놓는 일입니다. 용서는 스스로 조이고 있는 숨통을 풀어 주는 일이며,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발목을 잡고 있는 손을 풀어내는 일입니다. 그것은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첫 걸음을 떼는 것이 중요합니다. 


Comments

4 responses to “창세기 42장: 용서는 과정이다”

  1. 죄인이었고 원수되었울때 먼저 십자가를 통해 용서하신 은혜의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시고 세상에서 누명과 배반과 모욕을 당하더라도 무조건 용서하는 믿음을 원합니다. 원한을 오랫동안 품고있는것이 몸과 영혼의 독이라는것을 깨닫고 오직 정의와 공평의 재판장이신 주님만 의지하고 사는 삶을 살아내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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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achi049 Avatar
    gachi049

    지나온 세월 동안 하나님께서 고난이라는 시험을 통해 훈련 시키시고 요셉에게 이국땅의 총리자리 까지 주시고 원수 처럼 여겼던 형제들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이과정을 상상하면 가슴이 뜁니다. 만약 요셉이 자신을 죽이려 했던 행제를 죽였더라면 아버지와 다른 형제를 만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성령께서 요셉의 마음을 통제하시고 형제들을 용서 할 수 있는 마음을 주셨음을 믿습니다. 주님! 남은 여정 가운데 함께하셔서 마음을 아프게 했던 자를 용서 할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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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성서는 언더독 underdog 의 책입니다. 잘하는 사람, 이길만한 사람이 잘 되는 이야기 만을 적었다면 넘버원 베스트셀러가 되었을까 싶습니다. 요즘에 묵상하는 요셉 중심의 내러티브에서 요셉은 언더독처럼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아버지 야곱의 편애를 받았기에 형제들은 도리어 그를 미워했습니다. 언더독은 미움을 받기 보다 ‘구박’을 받거나, 연민과 동정의 대상일 때가 많습니다. 요셉의 삶은 하루 아침에 탑독 top dog 에서 언더독으로 추락합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그는 탑독이 됩니다. 파라오의 꿈을 해석하고 가뭄에 대비하는 정책을 마련해 위기를 멋진 기회로 바꿉니다. 이집트는 가뭄 중에도 곡식이 있는 구원의 땅이 됩니다. 42장은 요셉의 형들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라반의 집에서 나온 뒤 세겜에 머물 때 일어난 사건을 보면 그들은 참 무서운 사람들이었습니다. 세겜 성 주민들을 도륙합니다. 죄를 지은 당사자에게만 복수한게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 남김없이 처단합니다. 요셉에 대한 질투심도 도를 넘습니다. 아버지 심부름으로 자기들을 찾아온 동생인데 깊은 웅덩이에 빠뜨린 것도 모자라 노예상한테 돈 받고 팔아 버립니다. 야곱은 이런 아들들을 보며 기가 막혔을 것입니다. 아들들을 생각하면 가슴에 돌덩이가 박힌 것 같았을 것입니다. 그러던 아들들인데 오늘 본문을 보면 달라진 것 같습니다. 20년의 세월동안 그들의 악함이 약함으로 바뀐 것 같습니다. 물론, 가뭄이 오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이집트로 곡식을 구하러 가지 않아도 되었더라면 그들이 변했는지 그대로인지 알 수 없을 일입니다. 요셉의 변화도 극적이지만, 형들의 태도 변화도 미미하지 않습니다. 동생에게 저지른 짓을 죄로 인정하고 후회합니다. 자기들이 겪는 어려움이 그 죄의 값이라고 여기고 마음 아파합니다. 무책임하게 살던 사람이 책임감을 느끼고 자신을 희생하려는 (르우벤)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집트의 실권자가 된 요셉 앞에서 형들은 언더독의 입장이 되었습니다. 몸을 낮추고 처분만 바라는 언더독의 입장에 놓인다는건 유쾌한 경험이 아니지만 필요한 일일 수 있습니다. 요셉은 삶의 코너를 돌 때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빚어지는 데 필요한 훈련을 받으며 힘을 키우고 실력이 늘었습니다. 요셉은 형들을 용서합니다. 하나님의 총애를 받는다고 느끼는 사람은 원한을 품거나 복수를 해야겠다거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 안에 자기의 의를 흘려 보내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서운함이 남아 있고 미움의 찌꺼기가 있다면 아직도 나의 의가 살아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왔다는 고백과 어울리지 않는 태도입니다. 오늘 주님의 시간을 느끼기를 원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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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mkkim2 Avatar

    용서 – 오늘 묵상을 읽으면서, 저는 로마서의 말씀이 생각이 났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과 용서를 생각하면, 그 무엇인들 못할까라는 생각이 잠깐 들더라도, 막상 용서해야 할일이나, 용서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일들이 생기면, 조금은 분통이 터지는 제 마음도 생각해봅니다. 못나서, 능력없어서, 자격이 안되서 그런것은 아닐까, 자꾸만 세상적인 기준을 대하기도 하는 제 모습… 그런 상황에서 오늘은 저의 억울함과 못남을 아시는 하나님과 함께, 그 로마서의 말씀을 다시 한번 곰곰히 생각해보는 하루가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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