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7장: 고난은 하나님의 손이다

해설:

이제 창세기의 마지막 주인공인 요셉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는 아버지의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 됩니다. 일찍 세상을 떠난 라헬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아버지의 편애로 인해 요셉은 열일곱 살이 되도록 철없는 아이였습니다. 요셉에 대한 편애는 형제들의 분노를 샀습니다. 열일곱이나 되었으면 이제 다른 형제들과 함께 일해야 했는데, 요셉은 늘 아버지 그늘에서 놀고 먹습니다(1-4절). 

그러던 어느 날 요셉이 꿈을 꿉니다. 꿈 속에서 보니, 형들이 묶은 곡식단이 자신이 묶은 곡식단에게 절을 했습니다. 철없는 요셉은 좋아라 하면서 그 꿈 이야기를 형들에게 말해 줍니다. 그 일로 인해 형들은 그를 더욱 미워합니다(5-8절). 얼마 후에 그는 또 다른 꿈을 꿉니다. 해와 달과 별 열한 개가 자신에게 절하는 꿈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아버지 야곱이 그를 나무랍니다(9-10절). 이 일로 인해 형들은 그를 더욱 미워하게 되었지만, 야곱은 “그 말을 마음에 새겨 두었다”고 되어 있습니다(11절). 

얼마 후, 야곱의 아들들이 양 떼를 데리고 세겜 근처로 나갑니다. 세겜이라는 지명이 불길한 느낌을 줍니다. 유목민들은 목초지를 찾아 때로 장기간 먼 곳으로 가곤 했습니다. 야곱은 아들들의 안부가 궁금하여 요셉에게 심부름을 시킵니다(12-14절). 세겜에서 양을 치던 형제들은 도단으로 옮겨 갔고, 요셉은 물어 물어 형들이 있는 곳으로 갑니다(15-17절). 

형들은 요셉이 멀리서 다가오는 것을 보고는 그를 해치기로 모의합니다. 그들은 요셉을 죽여서 구덩이에 던져 버리고 아버지에게는 짐승에게 잡혀 먹었다고 보고 하기로 합니다(18-20절). 형들이 요셉을 얼마나 미워하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큰아들 르우벤이 그 이야기를 듣고는, 죽이지는 말고 스스로 헤어 나올 수 없는 깊은 구덩이에 넣어 굶어 죽게 하자고 제안합니다. 나중에 그를 구해 줄 생각이었던 것입니다(21-22절). 형제들은 그 말을 좋게 여기고 요셉이 다가 오자 옷을 벗기고 구덩이에 던져 넣습니다(23-24절). 

요셉을 구덩이에 던져 놓고 형들은 그 구덩이 주변에서 밥을 먹습니다. 형들의 비정함을 느끼게 해 주는 장면입니다. 그 때 한떼의 상인들이 여러 가지 물건을 싣고 이집트로 내려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들이 지나가자 유다가, 요셉을 죽이느니 노예로 팔아서 몇 푼이라도 건지자고 제안합니다(25-27절). 얼마 후 다른 상인떼가 지나가자 그들은 은 스무 냥에 요셉을 팝니다(28절). 은 스무 냥은 남성 성인 노예의 몸값이었습니다. 

이 모든 일은 르우벤이 자리를 뜬 사이에 일어납니다. 그는 요셉이 사라진 것을 알고 옷을 찟으며 형제들에게 화를 냅니다(29-30절). 형제들은 요셉의 옷에 짐승의 피를 묻혀 가지고 가서 야곱에게 보입니다. 야곱은 요셉이 짐승에게 물려 죽었다고 생각하고는 여러 날 동안 애도 합니다(31-34절). 그가 너무 슬퍼하니 온 가족이 그를 위로하려 합니다. 하지만 야곱은 “위로받기를 마다하면서”(35절) 슬퍼합니다. 한편 요셉은 이집트로 팔려가 바로(이집트의 왕)의 경호대장인 보디발의 집에 노예가 됩니다(36절).

묵상:

창세기를 처음 읽는 사람들은 ‘노예로 팔려간 요셉이 장차 어떻게 될까? 요셉이 꾼 꿈은 일장춘몽에 불과한 것일까? 아니면 이 꿈이 실제로 이루어질까?’라고 물으면서 다음 장을 넘길 것입니다. 창세기를 이미 읽은 사람은 앞으로 요셉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결국 꿈이 이루어지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요셉의 나중 이야기를 마음에 두고 이 이야기를 읽으면 하나님이 한 사람의 운명을 만들어 가시는 손길의 신비를 새삼스럽게 느낍니다. 요셉은 형들의 손에 깊은 구덩이에 내던져지고 미디안 상인들에게 노예로 팔려 낯선 나라에 종으로 팔려 가면서 얼마나 낙심하고 절망 했을까요? 자신이 꾸었던 꿈은 모두 개꿈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요셉이 짐승에게 찢겨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야곱도 마음에 두었던 그 꿈이 모두 일장춘몽이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수 많은 고난과 절망과 우여곡절 끝에 요셉은 결국 어릴 적 꿈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요셉은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분투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노예로 팔려 가면서 그 꿈을 잊어 버렸는지도 모릅니다. 그는 연이어 닥치는 고난을 헉헉대며 감당하기에 급급했을 것입니다. 그 꿈을 그에게 이루어 주신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철부지 요셉이 수 많은 고난을 통해 충분히 연단되고 준비되었을 때 그 꿈은 이루어졌습니다.

만일 요셉이 아버지 집에서 편애를 받으며 계속 자랐다면 이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만일 그 꿈이 이루어졌다 해도 그것은 요셉에게 복이 아니라 재앙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 축복을 감당할 그릇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지나고서 하는 말이지만, 요셉이 재앙이요 불행이요 고난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이 그를 하나님의 축복을 감당할만한 그릇으로 만드셨던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한, 모든 불행과 재앙과 고난은 우리에게 유익이 된다는 사실을 여기서 다시 확인합니다. 고난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롭게 빚으시는 손길입니다. 지금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어떤 일을 위해 지금 나를 새롭게 빚으시는 것입니다.   


Comments

4 responses to “창세기 37장: 고난은 하나님의 손이다”

  1. 지난날 주님의 은혜를 받으면서도 이웃을 손가락질하는 고자질 쟁이였고 속마음에는 교만한자이였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어려움을 감수하더라도 주님께서 허락하신 소명을 책임있게 감당하는 주님의 일꾼이 되기를 원합니다. 정욕과 탐욕에 요동되지않고 우직하게 십자가의 길을 걷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자비를 구하는 아침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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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야곱의 스토리는 야곱과 에서, 야곱과 이삭, 야곱과 라반, 야곱과 아들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스토리입니다. 요셉으로 넘어 오자 스토리는 요셉과 형들 사이의 스토리가 됩니다. 그러나 요셉이 이집트로 팔려 가게 되면서 그의 무대는 이집트로 바뀌고 그의 스토리는 이집트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이야기로 확대됩니다. 국내 뉴스에서 국제 뉴스로 넘어간 것입니다. 37장을 읽으면서 우리는 당연히 요셉에게 주목합니다. 열 두 아들들 중에 끝에서 두번째, 11번 요셉입니다. 라헬에겐 맏이입니다. 야곱이 요셉을 가장 많이 사랑하는 이유를 그가 늙어서 낳은 아들 (3절)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실은 베냐민이 더 나이들어 얻은 아들입니다. 그러나 베냐민은 엄마 라헬이 출산 직후에 숨을 거두었기 때문에 야곱에겐 슬픔을 안겨준 아들이기도 했습니다. 야곱의 요셉 사랑은 그에게 입혀주는 옷에서도 표시가 납니다. ‘소매가 긴 좋은 옷’을 입혀 줍니다. 노동하기에 불편한 옷이라고 금방 알아 들을 수 있습니다. 문득 대학생 때 알았던 태국공주가 생각 납니다. 아버지가 태국 정부의 일로 한국에 와있는 동안 그도 대학에서 수업을 들었는데 유난히 길고 뾰족한 손톱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지금에야 인공 소톱을 붙여서라도 길게 만드는 것이 쉽고 흔한 일이지만 당시 그녀의 손톱은 눈에 확 띄게 신기했습니다. 다 자기 손톱이었는데 부러지지 않도록 엄청 공을 들여 가꾸고 신경을 썼습니다. 제스츄어도 조심조심, 손을 사용하기 전에 손톱부터 생각하는 듯 했습니다. 긴 손톱은 신분의 상징이라고 했습니다. ‘양반’ 중의 양반, 중요한 귀족이라는 표시랍니다. 일을 할 필요가 없는 -일을 할 수가 없는- 신분이라는 뜻입니다. 요셉이 입은 긴 소매의 좋은 옷 (뮤지컬도 있지요 Joseph and the Amazing Technicolor Dreamcoat)도 요셉의 위치를 말해 줍니다. 그런 요셉이 이집트로 팔려 갔습니다. 인신매매단에 납치되었거나 유혹에 넘어가 그리 된게 아닙니다. 형들이 작당하고 모의해서 일어난 일입니다. 충격적입니다. 요셉의 형들은 아예 그를 죽일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맏이 르우벤은 다른 동생들 몰래 요셉을 살려 집으로 보낼 생각이었습니다. 그런 르우벤의 생각에 아랑곳 하지 않고 다른 동생들은 요셉을 죽여 버리려 했다가 노예 상인에게서 돈을 받고 요셉을 팝니다. 요셉은 이렇게 목숨을 겨우 건지지만 채 열일곱살 철부지는 낯 선 땅 이집트로 끌려갑니다. 아들들은 아버지 야곱을 속입니다. 염소의 피를 요셉의 옷에 묻혀 짐승에게 잡아먹힌 것처럼 생각하게 만듭니다. 야곱의 숙적 ‘속임 deceit’ 이 여기서 재등장합니다. 야곱이 얼마나 상심했을지 상상할 수 있습니다. 위로를 받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울다가 죽어서 아들에게 가겠다고 할 정도입니다. 이렇게 야곱은 사랑하는 요셉과 이별을 합니다. 성경은 요셉의 이집트살이에 초점을 맞춥니다. 집을 떠난 요셉이 겪는 고난이 남은 창세기를 채웁니다. 우리는 그동안 고향/집을 떠나 낯선 땅으로 이주한 인물들을 여럿 보았습니다. 아담과 이브부터 카운트 해도 그렇고, 데라와 아브라함, 롯, 하갈과 이스마엘, 야곱…그러나 요셉은 조금 다릅니다. 강제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으로 이주를 당합니다. 열일곱살이라는 것도 마음에 걸립니다. 일본군 성노예 (comfort women) 여성의 스토리를 읽는 것 같습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고난’에 대한 해석이 더더욱 신중하고 민감하게 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야곱의 세월이 머리 싸움, 기 싸움의 세월이었다면 이제 펼쳐지는 요셉의 시간은 어린 소년과 노회한 세상의 싸움이기도 합니다. 약자의 하나님께서 요셉을 그냥 두실리 없습니다. 요셉의 편을 드실 것입니다. 아버지 야곱의 집에서는 야곱이 요셉의 편이었는데 이집트에서는 하나님이 편 들어 주십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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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achi049 Avatar
    gachi049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스라엘, 요셉 등 공통점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주셨던 언약을 붙잡으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언약을 붙잡아도 3가지 시험을 받을 수 있습니다. 즉 Test, Tria(Suffering), Temptation 입니다. Test는 우리의 믿음의 정도와 수준을 증명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확인하기 위해 기꺼이 우리에게 내려주시는 말 그대로의 시험을 의미합니다(창22:1,출16:4). Tria은 시험에 부딪히면 기뻐해야 합니다. 시험을 우리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목적에는 우리가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약1:2~4, 12. 롬5:3~4). Temptation은 유혹 또는 미혹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이 시험은 인간의 욕망을 이용하여 우리를 파괴시키고 멸망시키고자 하는 사탄의 목적을 위해 사용되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사탄의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탄의 시험(Temptation)을 받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①우리는 모두 시험을 당합니다.-‘시험에 들게 마옵시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시험을 이길 때, 천사가 와서 수종 듭니다. 그의 앞길이 환하게 보입니다. 그러므로 시험이 없기를 바라지 말고, ‘하나님이여 이 시험을 넉넉히 이기게 하옵소서!’ 그렇게 기도할 것입니다. ②시험을 통해서 기독교의 교리, 교회의 순결성 모든 것이 정립됩니다. ③예수님 시험의 핵심은 ‘십자가’ vs ‘경제, 명예, 권력 추구’에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우리 성도들에게 시험은 ‘십자가’를 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대신에 손쉬운 ‘떡, 인기, 권세’를 택하라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회피하는 것은 시험에 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가리켜 주신 주 기도문을 다시한번 성령께서 기억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늘도 성령께서 동행하셔서 사탄의 시험에 넘어가지 않도록 인도하옵소서.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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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mkkim2 Avatar

    저에게 있어서의 고난/역경 – 고난과 역경을 통해, 더욱 아버지 앞에 나가게 됨을 알면서도, 지금은 상황이 너무나 어렵게 다가올때가 많습니다. 아직도 제 마음이 욕심과 욕망에 사로잡혀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고요.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은 것들은 모두 다, 철저히 버릴수 있는 지혜와 결단을 허락하게 하시고, 지금 주어진 상황에서 그 빛을 밝하기 위해 해야할것을 온전히 찾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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