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5장: 고난은 있다

해설:

아들들이 벌인 일로 인해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던 야곱에게 하나님이 찾아 오셔서 베델로 올라가라고 말씀하십니다(1절). 그곳은 야곱이 하란으로 도피하던 중에 처음으로 하나님을 만났던 곳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난 다음 야곱은 자신이 가는 길에서 지켜 주시면 그곳에 하나님의 집을 짓겠다고 약속했었는데, 그 약속을 잊고 있었습니다. 그는 베델로 돌아가는 대신에 세겜에 정착 했다가 끔찍한 사건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처음 하나님을 만났던 자리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제서야 야곱은 그 모든 일이 영적인 문제에서 나왔음을 깨닫습니다. 그는 베델로 떠나기 전에 식구들을 불러 가지고 있던 이방 신상을 모두 버리라고 명령합니다. 야곱은 자녀들이 가져 온 온갖 이방 신상과 장신구들을 세겜의 상수리나무 밑에 묻습니다. 귀고리를 특정한 이유는 신상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디나의 일로 세겜 사람들을 약탈하는 과정에서 그것들을 소유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야곱은 그들에게 “몸을 깨끗이 씻고, 옷을 갈아입어라”(2절)고 명합니다. 과거와의 완전한 단절을 요구한 것입니다. 가족들은 야곱의 말에 순종했고, 그는 모든 것을 세겜에 묻어 두고 베델로 떠납니다(3-4절). 

야곱의 가족과 종들 그리고 가축들의 규모를 생각해 볼 때 이것은 대규모의 이동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여러 성읍을 거쳐 가야 했는데, 그 과정에서 공격 받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돌보심으로 인해 그들은 안전하게 베델에 이릅니다(5-6절). 야곱은 그곳에서 단을 쌓아 제사를 드립니다(7절). 하나님은 다시금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축복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이름을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로 부르겠다고 다시 한 번 확인해 주십니다. 그리고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주셨던 축복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십니다(9-15절). 

그 즈음에 야곱은 세 가지의 마음 아픈 일을 겪습니다. 하나는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를 잃은 것입니다(8절). 드보라는 하란에서부터 리브가를 충실히 돌본 유모입니다(24:59). 그는 리브가를 따라 이삭의 집으로 와서 같이 살았습니다. 앞뒤 내용을 보면, 리브가는 이미 세상을 떠난 것 같습니다. 그 이후로 드보라는 이삭에게 아내 역할을, 야곱에게 어머니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야곱이 하란으로 갈 때 드보라가 동행했는지도 모릅니다. 어쨋거나, 야곱은 드보라를 깊이 의지하고 따랐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야곱은 드보라를 베델 아래쪽 상수리나무 밑에 장사를 지냅니다. 

얼마 후에 야곱은 사랑하는 아내 라헬을 잃습니다. 그것은 베델을 떠나 에브랏(베들레헴)에 이르기 전의 일입니다. 라헬은 이동하는 동안에 둘째를 낳고 숨을 거둡니다. 그 아들이 베냐민입니다(16-18절). 야곱은 라헬의 시신을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 가에 장사를 지냅니다. 

그런 다음에 에델 망대 건너편에 자리를 잡고 정착 했는데, 얼마 후 큰 아들 르우벤이 라헬의 몸종 빌하를 범하는 참담한 일이 일어납니다(21-22절). 저자는 “이스라엘에게 이 소식이 들어갔다”고만 적어 놓았는데, 이 일로 야곱이 겪었을 심적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일로 인해 르우벤은 장자로서의 권리를 상실합니다(49:3-4). 시므온과 레위는 디나의 일로 인해 잔인한 살륙을 행합니다(49:5-7). 이런 까닭에 장자의 권리가 유다로 넘어오게 된 것입니다. 

저자는 요셉의 이야기로 전환하기 전에 야곱의 열두 아들에 대해 소개하고(23-26절), 이삭의 죽음을 전합니다(27-29절). 

묵상:

야곱은 하란으로 가는 길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하란에서의 이십 년 동안 믿음의 연단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섬기며 살아가는 법을 충분히 익혔을 때, 그는 가나안 땅으로 돌아 옵니다. 그 길에서 그는 하나님에게서 새로운 이름과 새로운 사명을 받습니다. 형 에서와의 감격적인 화해를 경험하면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 가신다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이 정도면 “고생 끝, 행복 시작”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세겜에서 그는 일생일대의 불행을 만납니다. 그 일로 인해 더 이상 세겜에서 발 붙이고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그에게 나타나셔서 베델 즉 그가 처음 하나님을 만났던 곳으로 가서 제단을 쌓으라고 하십니다. 베델에서 처음 만났을 때, 야곱은 가는 길에서 자신을 지켜 주셔서 안전하게 고향으로 돌아오게 해주시면 그곳에 하나님의 집을 짓겠다고 약속했습니다(28:22). 그 약속을 잊고 있었는지 아니면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는 세겜에서 얻은 모든 것을 땅에 묻어 두고 베델로 올라가 새출발을 했고,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을 다시 확인 받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야곱은 계속 상실의 아픔을 겪습니다. 어머니처럼 의지했던 유모 드보라를 잃었습니다. 어머니 리브가는 그토록 아꼈던 야곱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상실의 아픔이 채 치유되기도 전에 라헬을 잃어 버립니다. 라헬을 향한 그의 사랑이 얼마나 컸는지를 기억한다면, 그의 상실감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큰 아들 르우벤이 빌하를 범하는 패륜을 행합니다. 빌하를 범했다는 말은 아버지의 침상을 더렵혔다는 뜻입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고, 야곱의 인생은 참으로 드라마틱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축복의 약속을 받는다는 것은 인생 여정에서 당해야 하는 모든 풍상으로부터 면제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세상에 나 혼자만 산다면 나만 잘 하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깨어진 세상에서 상처난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그분의 축복을 받았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과 얼키고 설켜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라반이나 세겜 같은 악한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식구들로부터 심한 상처를 입기도 합니다. 인생이라는 선물 보따리에 들어있는 생로병사의 불행을 제거할 수도 없습니다.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사용하여 자신을 만들어 가시고 역사를 만들어 가신다는 것을 믿고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받아 들이는 것입니다. 상실의 아픔과 불행 중에도 여전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회복탄력성’(resilience)의 원천입니다. 


Comments

4 responses to “창세기 35장: 고난은 있다”

  1. 어렵고 힘들때 주님을 잊고 세속적인 방법으로 타협하는 비겁하고 교활한 존재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환란과 시련과 박해가 자신을 인내하게하고 인내는 인격을 인격은 절대로 낙심하지 않는 소망을 허락하시는 주님께서 주시는 예고편인것을 깨닫고 감내하는 믿음을 원합니다. 어디를 가던지 함께하시는 주님을 깨닫고 먼저 제단을 쌓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자신을 부인하고 허락하신 십자가를 지고 주님뒤를 감사히 따르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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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achi049 Avatar
    gachi049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만사 형통 한 것은 아닙니다 . 하나님은 시험을 통해 인간을 사용하십니다. 첫번째 시험을 받은 아브라함이 그렀습니다. 주님! 보잘것 없고 아침 안개처럼 잠시 있다가 사라질 몸을 지금까지 지켜주시고 인도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남은 여정도 어떤 환난과 고난이 올지라도 하나님을 향한 시선이 바뀌지 않도록 성령께서 동행하시고 인도하옵소서.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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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세겜 성 근처에 천막을 치고 묵었다가 그 밭을 은돈 백 개에 산 걸 보면 야곱은 그곳에 머물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딸 디나가 끔찍한 일을 당하고 맙니다. 디나의 비극을 보복한다며 시므온과 레위는 무자비하게 살인을 하고 약탈을 합니다. “세겜 성과 들에 있는 것을 닥치는 대로 (34:28)” 빼앗고, 성 안의 여자들과 아이들, 값비싼 물건들까지도 다 빼앗았습니다. 야곱은 어쩔 줄 몰라 합니다. 그 땅에 사는 부족들이 미워하여 공격을 하면 꼼짝없이 멸문을 당할 것이라고 크게 근심합니다. 그럴 즈음에 하나님께서 벧엘 성으로 옮겨 가서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야곱이 벧엘을 기억한 것입니다.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던 꿈이 생각났습니다. 이방 우상들을 다 모아서 나무 밑에 묻습니다. 아들들에게 느낀 분노,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도 같이 묻었을 것입니다. 벧엘 (루스)로 간 야곱은 그곳에 제단을 쌓습니다. 어머니 리브가의 유모인 드보라가 죽자 벧엘의 상수리나무 밑에 묻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유년의 추억도 같이 묻었을 것입니다. 창세기는 여기서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다시 기록합니다. 강가에서 천사/남자와 씨름한 뒤에 받은 새 이름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자녀를 많이 낳아 많은 나라와 왕들의 조상이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야곱과 야곱의 자손에게 주겠다 (11-12절)는 약속도 하십니다. 그 뒤로 야곱의 스토리는 이어집니다. 라헬이 베냐민을 낳다가 숨을 거둡니다. 베들레헴 (에브랏)에 돌기둥을 세우고 라헬을 장사합니다. 얼마 뒤에 야곱은 아들 르우벤이 빌하와 잤습니다. 빌하는 라헬의 몸종이었습니다. 라헬을 보내고 슬픔에 잠겨 있을 야곱에게 깊은 상처가 되는 일입니다. 열 두 아들들의 이름과 어머니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아버지 이삭이 180살까지 살다 눈을 감습니다. 에서와 야곱이 함께 아버지 장사를 지냅니다. 이삭의 쌍둥이 에서와 야곱도 나이 많은 노인입니다. 야곱의 드라마가 이쯤에서 정리되는 듯 합니다. 그러나 이후에도 야곱의 ‘고난’은 이어집니다. 나이를 먹고, 재산을 모으고, 자식들이 성장해 자기 집안을 꾸리고…그런데도 인생의 파도는 여전합니다. 밤새 씨름을 하고, 새 이름을 받고, 앞날에 대해 걱정하지 말라는 좋은 꿈을 꾸며 여기까지 왔는데도 인생은 여전히 힘들고 괴롭습니다. 야곱이 이런데 나는. 야곱도 이런 정도라면 나는…어느 목사님이 설교에서 이런 말을 하십니다. 구약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이야기가 많다, 하나님을 떠나고 우상을 섬긴다. 회개하고 돌아왔다가 또 그런다. 왜? 하나님이 백성이 원하는 것을 주시지 않기 때문이다. 백성은 안심과 형통을 원하는데 하나님은 주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백성이 하나님으로만 만족하기를 원하는데 백성은 하나님 만을 원하지 않는다. 안심하기를 바라고 만사가 형통하기를 바란다…목사님의 지적이 내 마음에 울림을 주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도 결국은 안심과 형통을 바라기 때문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것도 거래가 아닌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순종과 희생, 신의는 아브라함-이삭-야곱의 스토리를 볼 때 ‘고난’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지, 고난 밖에서 고난과 무관하게 빚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합니다. 성경의 진리를 붙잡습니다. 고난을 없애 주시는 하나님, 고난의 잔을 치워 주시는 하나님을 구하지 않고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고 기다릴 것입니다. 집안에 드리운 먹구름을 거두어 달라고 기도하지 않고, 먹구름과 폭풍 속에서도 주님을 의지한다는 기도를 올리렵니다.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나를 아십니다. 그것이 복입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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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mkkim2 Avatar

    하나님과 함께하는 꽃길 – 세상적인 기준으로 꽃길 만을 걷고 싶어하는것은 제 욕심임을 알지만, 때로는 세상을 걸어간다는 것이 버거울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 의지하며,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는것 자체가 성화와 영화에 이르는 꽃길이 됨을 제 마음에 다시금 담습니다. 어렵고 버거울 때마다, 무너지지 않고 버티는 것 (resistance)이 아니라, 무너지고 갈아지고 정금같이 변화해서, 목사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빠르게 회복할 수(resilience) 있는 힘을 갖기를 소망합니다.  주여, 힘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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