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3장: 용서의 능력

해설:

야곱이 보니 멀리서 형이 사병들을 데리고 오는 모습이 보입니다(1절). 하나님에게 약속을 받았으나 야곱에게는 여전히 형에 대한 두려움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는 맨 앞에 서고 만약을 대비하여 자신의 뒤로 두 여종과 그 자녀들, 그 뒤로 레아와 그 자녀들이 따라오게 하고 라헬과 요셉은 맨 나중에 세웁니다(2절). 형이 다가오자 야곱은 그 앞에 가서 일곱 번이나 땅에 절을 합니다(3절). 그것은 당시 백성이 왕을 알현할 때 행하는 관례였습니다. 야곱은 형에게 최대의 존경을 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서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그는 달려와서 동생을 끌어 안았고 입을 맞추어 반가움을 표했고, 두 사람은 부둥켜 안고 울었습니다(4절). 에서가 이미 야곱을 용서하고 반기러 나온 것인지, 라반의 경우처럼 복수하러 오던 중에 하나님의 역사로 인해 용서하게 되었는지, 저자는 말하지 않습니다. 사병 사백 명을 거느리고 왔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후자가 더 사실에 가까웠을 것 같습니다. 야곱은 아내들과 자녀들을 불러 에서에게 인사를 시킵니다(5-7절). 에서는 왜 자신에게 가축 떼를 미리 보냈느냐고 묻습니다. 야곱이, 형님께 드리는 선물이라고 답하니, 에서는 그런 선물을 받을 이유가 없다고 사양합니다. 하지만 야곱은 자신의 선물을 받아 달라고 간청했고 에서는 마지 못해 받아 들입니다(8-11절). 이 대화에서 야곱은 계속하여 형을 “나의 주인”으로, 자신을 “당신의 종”으로 부릅니다. 하지만 에서는 “아우야”(9절)라고 부름으로써 형제의 우애를 드러냅니다. 

반가운 해후를 한 후에 에서는 야곱에게, 자신이 사는 세일로 가서 같이 살자고 제안합니다. 세일은 에돔 민족이 살던, 가나안 땅의 동남부 지방을 가리킵니다. 엄밀히 말하면 아브라함이 약속 받은 가나안 땅의 경계 바깥에 있습니다. 야곱은 가나안 땅에 정착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밧단아람에서 돌아 왔으므로 형의 제안을 따를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형의 호의를 거절할 수도 없고 따라 갈 수도 없었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일행은 에서의 일행과 같은 속도로 행군할 수가 없다는 핑계를 대면서 형에게 먼저 떠나라고 청합니다(12-14절). 실제로 야곱은 어린 자녀들과 많은 가축 떼를 몰고 가야 했기에 에서와 사병들의 행군 속도에 맞출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자 에서는 장정 몇 사람을 호위대로 남겨 두겠다고 제안합니다. 야곱은 그럴 필요 없다고 사정했고, 결국 에서는 사병들을 데리고 세일로 돌아갑니다(15-16절).

야곱은 에서의 일행을 보낸 후에 숙곳에서 잠시 머뭅니다(17절). 숙곳은 요단 강 동편에 있는 지역입니다. 그런 다음 야곱은 가솔을 이끌고 요단 강을 건너 세겜에 이릅니다(18절). 드디어 가나안 땅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야곱은 세겜 성의 성주인 하몰에게 은 백 냥을 주고 땅을 매입합니다. 그리고 그곳을 ‘엘엘로헤이스라엘'(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이름 짓습니다. 

묵상:

에서의 상황을 상상 해봅니다. 야곱이 하란에 머물러 사는 이십 년 동안 그는 분가하여 세일로 이주합니다. 오늘의 요르단 남부 지방의 옛 이름입니다. 페트라 유적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이삭이 그에게 기도하면서 “네가 살 곳은 땅이 기름지지 않고, 하늘에서 이슬도 내리지 않는 곳이다”(27:39)라고 했는데, 그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에서는 그곳에서 크게 번성합니다. 앞에서 거듭 보았지만,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는 말은 그분의 축복에서 배제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선민으로서의 적통이 야곱으로 이어졌지만, 에서를 향한 하나님의 축복은 제외되지 않았습니다. 야곱이 돌아온다는 소문을 듣고 사백 명의 사병을 이끌고 올 정도로 그의 세력은 크게 불어났습니다. 

야곱을 향한 그의 원한이 언제 어떻게 풀어졌는지, 저자는 분명히 밝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에서가 사병 사백 명을 데리고 세일에서 마하나임까지 달려 왔다는 사실은 그의 분노가 아직 풀리지 않았었다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그는 야곱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세일을 떠났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의 갑작스러운 마음의 변화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 단서를 우리는 바로 앞에 나오는 라반의 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전격적인 개입으로 인해 라반이 야곱에게 선대한 것처럼, 에서도 하나님의 개입으로 인해 야곱을 용서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웬만한 분노는 스스로 마음을 고쳐 먹음으로 풀 수 있습니다. 혹은 세월이 약이 되어 시간과 함께 풀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마음을 돌리려 할수록 더 커지는 원한도 있습니다. 그런 원한은 세월이 지나도 풀리지 않습니다. 에서가 야곱에게 가지고 있던 원한과 앙심이 그랬을 것입니다. 그런 감정의 덩어리는 하늘로부터 임하는 은혜가 아니고는 풀어지지 않습니다. 야곱이 밤새도록 씨름하며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낼 때 하나님은 에서의 마음을 만지시지 않았을까 상상하는 것이 지나친 일일까요?

분노와 원한은 과거에 붙들려 살게 만드는 일입니다. 과거의 상처에 붙들려 살면 현재를 망치고 미래를 어둡게 만듭니다. 용서는 가장 먼저 용서하는 당사자를 위한 일입니다. 과거의 유령으로부터 해방되게 만드는 일입니다. 야곱에게서 받은 상처를 마음에 품고 늘 끙끙대고 살았을 에서를 생각해 보고, 야곱을 용서하고 품어 안는 에서를 생각해 보면, 용서가 얼마나 사람을 달라지게 만드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Comments

3 responses to “창세기 33장: 용서의 능력”

  1. 지난날을 생각해보면 인간 관계가 그리 단순치 않고 너무 복잡합니다, 기쁨과 감사는 곳 잊고 어굴한것과 원한은 항상 기억하는 가련한 존재입니다. 다행히 예수님의 누명과 배반과 수모와 십자가의 고난을 생각하게 하시는 성령께 감사를 드립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그를위해 기도하라고 분부하신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죄에서 방황했던 자신을 먼저 사랑하신 은혜에 영광을 드립니다. 지금부터라도 무조건 사랑하고 용서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지난날의 부끄럽고 더러운죄악을 용서하시고 앞으로도 주님의 품안에 거하게하시는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리는 사귐의 소리 식구 모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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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한 때 예배 시간에 목사님이 주변에 앉은 이들과 인사를 하라면서 인사말도 가르쳤습니다. “성도님의 얼굴을 보니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듯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빌린 말입니다. “형님 얼굴을 다시 뵙게 되어 너무나 기쁩니다. 형님이 저를 받아주시니 마치 하나님 얼굴을 뵙는 듯 합니다. (10절)” 장인 라반의 집을 나와 고향으로 가는 도중에 밤새도록 천사와 씨름하는 이야기를 읽었기에 이 인사에 담긴 야곱의 진심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치열한 싸움으로 밤을 새우지 않았다면 야곱의 인사는 달랐을 지 모릅니다. 형과 동생이 20여년 만에 다시 만납니다. 안타깝게 헤어진 사이가 아닙니다.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운 동생이고, 모든 걸 두고 도망가게 만드는 무서운 형입니다. 두 형제의 재회는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일어납니다. 야곱은 이 순간을 수백번 상상했을 것입니다. 에서 또한 수도 없이 머리 속에 그려 봤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번도 본문의 장면처럼 상상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내가 생각한대로 일어나지 않아 실망할 때가 많은데 그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머리 속에 그리는 시나리오대로 가지 않는 현실이 야속하기도 했는데 그건 내가 참 어리석다는 고백과 같습니다. 에서와 만나는 야곱은 상당한 규모의 선물을 준비하고 바칩니다. “그것은 형님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8절).” 야곱이 자기 목숨을 지키려고 시간차로 선물(뇌물)을 준비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설교도 들어 봤습니다. 재력과 힘의 과시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랍비 조나단 색스는 이삭의 장자 축복 기도와 연결해 해석합니다. 에서가 받았어야 할 축복을 다시 돌려주는 행동이라고 봅니다. 야곱이 받은 복은 이스라엘 -유대 민족-의 복이며 그 복은 에서를 부러워하지 않는 삶, 옛 사람 야곱을 넘어서는 (씨름하는) 삶입니다. 묵상을 통해 주님의 뜻을 살피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말씀을 읽고 생각하는 이 시간을 달게 여기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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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achi049 Avatar
    gachi049

    창조주 이신 하나님은 피조물인 인간의 일거수 일투족은 물론하고 마음까지 감찰하시며 앞날에 행할 일을 아시는 주님이시기에 야곱이 형 에서의 장자권을 팥죽 한그릇으로 빼앗은 상황을 아시고 앞으로 형제간의 우애가 사라질 것이라는 것을 주님은 아시고 인간이 정한 전통대로 축복하시지 않고 에서에게도 축복하셔서 많은 재산을 갖게하셔서 이미 동생 야곱을 용서하였을 것입니다. 야곱에게는 시험을 통해 형 에서의 마음을 이해 하도록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변하기 쉽기에 일시적으로 서로 만나기 전에 옛날의 감정이 되살아나서 에서는 4백명의 군사를 이끌고 복수하려고 왔고 야곱은 형에게 지난날의 잘못을 사죄하기 위해 가축 떼를 보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들 두형제의 마음을 만져셔서 형제의 우애를 회복하게 하셨음을 믿습니다. 인간의 부모도 형제끼리 싸우면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 같은 동족, 같은 형제 자매가 남과 북으로 분단된 대한민국을 주안에서 하나가 될 수 있도록 지도자들의 마음을 만져주시기를 간절히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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