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9장 15-30절: 건기를 지내는 믿음

해설: 

야곱이 기약 없이 한 달의 시간을 보내자, 라반이 고용 계약을 제안합니다(15절). 야곱이 냉큼 돌아갈 것 같지 않았고, 겪어 보니 일도 꽤 잘 했습니다. 라반은 그를 잡아 둘 속셈으로 얼마의 보수를 주면 좋겠느냐고 묻습니다.

야곱은 이미 라헬을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우물가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반했는지 모릅니다. 저자는 큰 딸 레아는 “눈매가 부드러웠고” 작은 딸 라헬은 “몸매가 아름답고 용모도 예뻤다”(16-17절)고 소개합니다. 개역개정에는 “레아는 시력이 약하고”라고 번역해 놓았습니다. 히브리어 ‘라콧’은 “약한”으로 번역할 수도 있고 “부드러운”으로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한 남자와 여자의 만남에서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눈빛입니다. 따라서 부정적인 의미라면 레아의 눈빛이 강렬하지 않았다는 뜻일 수 있고, 긍정적인 의미라면 부드러운 눈매가 레아의 유일한 장점이었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야곱은 라헬과 결혼하고 싶었지만 결혼 지참금이 없었습니다. 그는 칠 년 동안의 노동이면 결혼 지참금을 치루고도 남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18절). 라반은 그 제안을 받아들입니다(19절). 야곱은 라헬을 너무도 사랑했기에 “칠 년이라는 세월을 마치 며칠같이 느꼈다”(20절)고, 저자는 기록합니다.  

저자는 곧바로 칠 년 후의 일을 전합니다. “이제 장가를 들게 해주십시오”(21절)라는 말을 직역하면 “같이 자게 해주십시오”라는 뜻입니다. 라헬에 대한 강렬한 열정을 표현한 말입니다. 라반은 날을 잡고 성대한 결혼 잔치를 베풉니다(22절). 저녁이 되자 라반은 큰 딸 레아를 라헬로 변장 시켜 신방으로 들여 보냅니다. 그 사실도 모르고 야곱은 초야를 치룹니다(23절).

아침이 되어 야곱은 레아가 곁에 누워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야곱은 라반에게 가서 항의합니다(25절). 라반은 관습을 핑계로 대면서, 칠 년을 더 일하겠다고 약속하면 라헬까지 아내로 주겠다고 제안합니다(26-27절). 라반은 야곱의 머리 꼭대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라반은 두 딸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용할 물건처럼 취급하는 사람이었으니, 조카를 속이고 착취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야곱은 어쩔 수 없이 라반의 제안을 받아 들였고, 또 다시 칠 년의 노예 아닌 노예살이를 계속해야 했습니다. 그는 관습대로 일 주일 동안 레아와 지냈고, 그 후에 라헬을 아내로 맞아 들였습니다(28-30절). 레아는 아버지의 욕심으로 인해 원치 않는 결혼 생활을 하게 됩니다. 

묵상:

야곱은 흥정의 명수요 속임수의 귀재였습니다. 태생적으로 주어진 한계를 극복하여 인생 역전을 이루려고 몸부림 치다 보니 흥정의 능력과 속임수가 발달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발휘했던 흥정과 속임수와 꼼수는 그의 인생을 역전시키기는 커녕 더욱 꼬이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손으로 판 그 구덩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원치 않는 이민의 길을 떠났는데,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자신과는 비교할 수 없이 악하고 교활한 외삼촌이었습니다. 그는 속임수와 꼼수로 외삼촌과 겨뤄 보려 했지만 당해 낼 수가 없었습니다. 임자를 만난 것입니다. 

첫 칠 년 동안 야곱은 신나게 살았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인을 아내로 맞아 들이기 위해서 감당하는 것이므로 그 어떤 고생도 달게 받았습니다. 자신의 인생이 술술 풀리는 것 같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외삼촌이 자신을 처음부터 속여 먹을 계획이었다는 것을 알고 통탄해 마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칠 년 전에 아버지와 형을 속였던 일을 기억하며 심히 회개했을 것입니다. 

유대 문헌에 보면, 아침에 일어나 레아가 있는 것을 보고는 야곱이, “당신이 어떻게 나를 이렇게 감쪽같이 속일 수가 있지요? 간밤에 내가 라헬 맞느냐고 물었을 때 그렇다고 답하지 않았습니까?”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레아가 “당신이 칠 년 전에 아버지에게 한 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 때 당신도, 아버지가, 에서가 맞느냐고 물었을 때 그렇다고 거짓말 하지 않았습니까?”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 칠 년 동안 야곱은 원치 않는 여인을 위해 원치 않는 노예 노동을 계속해야 했습니다.

첫 칠 년 동안 야곱은 베델에서 만난 하나님이 약속대로 자신을 지키시고 돌보시고 인도하신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매일 감사의 기도로 살았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라반에게 속아서 원치 않는 결혼을 해야 했고, 그로 인해 칠 년의 노예 노동을 계속해야 했을 때에는 하나님의 돌보심에 대해 의문이 들었을 것입니다. 악한 자의 마수에 사로잡힌 자신을 하나님께서 내 몰라라 하시는 것 같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삶에는 이렇게 ‘건기’(dry season)가 있게 마련입니다. 때로는 하나님이 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지는 것 같다가도, 때로는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후에 돌아보면 건기에 하나님은 더 은밀하게 일하고 계셨음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으로 빚어지는 것은 대개 건기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Comments

3 responses to “창세기 29장 15-30절: 건기를 지내는 믿음”

  1. gachi049 Avatar
    gachi049

    라반은 자신의 욕망으로 귀한 조카를 노예 아닌 노예처럼 부려 먹고 야곱이 사랑하는 라헬을 주겠다는 약속까지 헌신짝처럼 버렸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너무 사랑하는 라헬을 얻기 위하여 기나긴 세월을 보내고 같이 살았습니다. 주님!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그 사랑 때문에 긴세월도, 어떤 고난도, 어떤 모욕도 감수하면서 살아가는 남은 여정이 될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동행하시고 도와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 합니다.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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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세상에서 사는 날이 길어야 90년 입니다. 긴 세월같지만 짧은 시간에 본향을향해 걷는 순례자인것을 깨닫지 못하고 횡재를 했을때 교만하였고 억울한일을 당했을때 분한것을 참지못하는 쫄보이었습니다, 세상의 온갖 계략과 음모로 살아온 교활한 자입니다. 지금 부터라도 예수님이 걸으신 발자취를 항상기억하며 십자가의 길을 걷기를 원합니다. 보이는것을 찾아걷는것보다 보이지않는 억울해보이는 길이 진정한 축복의 길인것을 세상에 알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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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아버지 이삭과 형 에서를 속인 죄를 외삼촌 라반에게 갚게 되었습니다. 사기꾼이 사기를 당한 셈입니다. 야곱이 ‘뛰는 놈’이면 라반은 ‘나는 놈’인 셈입니다. 옆에 누운 사람이 레아인 것을 보고 깜짝 놀랐을 야곱을 상상하면 내가 다 기가 막힙니다. 그래도 야곱의 반응은 점잖습니다. 독자는 야곱이 얼마나 놀라고 황당했을까 싶은데 성경은 야곱의 항의를 담담하게 기록합니다. 라반은 ‘강적’ 다운 답을 합니다. “우리 지방에서는 큰딸보다 작은딸을 먼저 시집 보내는 일이 없네 (26절).” 나는 잘못한게 없다, 너가 문제다 라는 답입니다. ‘우리 지방’이라는 표현이 매섭습니다. 외가에서 사는 조카를 남 취급합니다. 너는 외지 사람이야, 이방인이야 라고 하는 말과 같습니다. 야곱과 레아, 라헬의 구도는 매우 친숙합니다. 형보다 동생이 사랑받는 것은 에서와 야곱, 이스마엘과 이삭, 가인과 아벨의 관계에서 이미 보았습니다. 레아와 라헬을 묘사하는 부분도 어딘지 모르게 익숙합니다. 레아는 눈이 곱다/눈매가 부드럽다고 그립니다. 예전 번역에는 안력이 약하다라고 해서 시력이 안 좋다, 눈에 힘이 없고 잘 못본다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해설에서 짚은 것처럼 부드러운 눈빛을 가진 것이 장점이라는 뜻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제 묵상에서 참고했던 조나단 색스 랍비의 글에서도 비슷한 언급을 합니다. 리브가가 임신했을 때 기도 중에 들은 음성은 ‘형이 동생을 섬길 것이다 the elder will serve the younger’ 였는데 이 말은 ‘동생이 형을 섬길 것이다 the younger will serve the elder’라는 말과 비슷하게 들리는, 분명하게 구분되지 않는 단어가 사용되었다고 말합니다. 혼돈할 수 있는 말, 티미하고 ambiguous 한 표현을 한 이유는 누가 누구를 지배하느냐가 중요하기 보다 둘이 싸운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뜻이라고 봅니다. 레아의 눈매를 표현하는 부분도 그렇고 성경을 읽다보면 수면 위만 봐서는 모르겠는 부분이 많습니다. 스토리 자체도 몇 겹으로 되어 있습니다. 야곱의 일생도 그냥 봐서는 모릅니다. 베델에서 꾼 꿈으로 처음 7년을 견뎠는데 이제 또 라헬을 아내로 맞기까지 참고 견뎌야 합니다. 베델의 꿈은 모든 것이 순탄하리라는 뜻이 아니라 어떤 일이 와도 너에겐 견뎌낼 힘이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야곱의 굴곡진 인생을 따라 가며 내게도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기울이기를 원합니다. 주님을 의지합니다. 인도해 주소서. 두려워말고 나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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