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8장 1-9절: 거룩한 수동성

해설:

이삭은 아내의 말대로 야곱을 불러 하란에 있는 외삼촌의 집으로 가서 아내감을 찾아 결혼 하라고 명령합니다. 야곱에 대한 복수를 벼르고 있던 에서로부터 그를 떼어 놓으려는 리브가의 계획이 이삭에 의해 이루어진 것입니다(1-2절). 

이삭도 자신을 속인 리브가와 야곱에게 분노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것도 하나님의 섭리라고 받아 들이고는 야곱을 불러 다시 한 번 복을 빌어 줍니다(3-4절). 이로써 이삭은 야곱이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된 언약의 적통임을 인정합니다. 아버지의 축복을 받은 후 야곱은 집을 떠나 밧단아람에 있는 라반에 집에 이릅니다(5절). 

에서는 야곱이 집을 떠나고 나서야 그 일을 알게 됩니다(6-7절). 그는 어머니와 동생의 계략에 의해 맏아들의 축복을 빼앗긴 것에 대해 분노하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아버지까지 야곱을 빼돌리는 데 가담했다는 사실을 알고 격분합니다. 에서는 아버지가 자신의 두 아내를 가나안 여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싫어한다고 생각하고는 이스마엘의 손녀 마할렛을 데려다가 아내로 삼습니다(8-9절). 그렇게 해서라도 아버지의 마음을 돌리고 싶었지만, 때는 이미 늦어 버렸습니다.

묵상:

저자는, 리브가와 야곱에게 속았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이삭은 충격을 받아서 “부들부들 떨면서 말을 더듬거렸다”(27:33)고 알려 줍니다. 이삭은, 남은 축복이라도 빌어 달라고 통곡하며 사정하는 에서를 부둥켜 안고 같이 울었을 것입니다. 그 일이 있은 후, 그는 리브가도, 야곱도 대면하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믿고 의지했던 아내가 자신을 감쪽같이 속여 넘길 줄은 몰랐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계략을 그대로 따라 행한 야곱에게도 분노가 치밀었을 것입니다. 그는 한 동안 미움의 불길로 인해 고통을 겪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 모든 일의 배후에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이 있었다고 인정하게 됩니다. 그는 평생토록 다른 사람들에게 휘둘리며 살았습니다. 어렸을 때는 어마니 사라에게, 청소년 시기에는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결혼하고 나서는 리브가에게, 그랄 지방에 피난했을 때에는 아비멜렉에게 휘둘렸습니다. 워낙 유약하게 태어난 데다가 어머니의 과보호 때문에 그는 정신적으로도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태도로 살았습니다. 그는 언제나, 누구에게나 ‘을’이었습니다. 한 번도 주도적으로 무엇인가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것만 보면 그는 실패한 인생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나중에 보면 하나님의 뜻이 그에게 그리고 그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이삭이 아내의 말을 수용하고 야곱을 불러 축복하고 밧단아람으로 보내기로 마음 먹은 것은 이런 믿음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피상적으로 보면 리브가와 야곱이 자신을 속인 것이지만, 그 배후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지금은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는 자신이 알 수 없는 뜻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비록 배신으로 인한 분노의 앙금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이삭은 야곱을 불러 축복을 다시 확인해 주고는 떠나 보냅니다.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하나님의 계획이 형 이스마엘이 아니라 둘째인 자신에게 이어진 것처럼, 그것이 맏아들 에서가 아니라 둘째에게 이어지게 되리라는 사실을 그는 겸허히 받아 들인 것입니다.

현대 사조는 우리에게 “당신은 당신 인생의 주인이다. 주도적으로 인생을 계획하고 실행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가장 복된 삶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인생을 사는 다른 방법도 있다고 말합니다. “당신 인생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그분이 당신의 인생을 계획하고 실행하도록 맡기라”는 것입니다. 이삭에 관한 많지 않은 이야기들은 철저히 수동적인 인생이 오히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데 더 유익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합니다.  


Comments

3 responses to “창세기 28장 1-9절: 거룩한 수동성”

  1. gachi049 Avatar
    gachi049

    이삭은 아내 리브가와 대화가 없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리브가에게 주어진 주님의 말씀을 이삭은 알지 못하고 조상으로부터 내려오는 가족 사의 전통, 장자의 상속권을 중요시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생각과 달라 그분의 계획대로 다스리시는 분임을 믿습니다. 주님! 내 생각, 고집, 전통 등에 얽매어 사는 인생이 아니라 오직 성령님께서 동행하시고 인도하시는 대로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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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하나님 섭리를 깨닫고 그분의 계획안에서 살기를 원합니다만 자주 주님을 잊고 나의 생각대로 결정하고 행하는 불량자 입니다. 갈림길에 서있을때 먼저 기도하고 주님의 뜻을 묻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내 인생을 내 마음대로 살아왔지만 그래도 주님의 은혜인것을 깨닫게하며 감사하는 아침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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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거룩한 수동성’이라는 해설 제목이 좋습니다. 적극적으로 빠릿빠릿하게 살지 않으면 안되는 세상에서 조금 느린 듯, 모자란 듯 잠깐씩 쉬면서 살아도 된다는 조언을 담은 제목처럼 보입니다. 딸이 손녀들한테 하는 말투가 다소 거친 것 같이 느껴진 적이 있습니다. 애들보다 일찍 출근을 해야 하는 날 손녀들 등교준비 도와서 학교까지 데려다 주러 내가 갈 때가 있습니다. 할머니 눈에는 어린 애들이 그정도면 잘 알아서 하는 것 같은데도 엄마가 볼 땐 그러지 못한지 뭐라고 한마디 합니다. 말투와 음성의 톤이 뾰족한 것 같은데 저런건 나한테서 배운거겠지 싶었습니다. 애들이 어렸을 때 (지금도 여전히) 나도 그랬습니다. 한 두 번 말하면 알아듣기를 바랬고, 엄마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스스로 생각해보면 알 수 있을거라고 기대했습니다. 딸도 아들도 감성지수가 높아서 엄마의 메시지 뿐 아니라 메시지의 포장 -제스츄어, 톤, 컨텍스트 -까지 잘 파악했습니다. 그건 참 고맙고 다행한 일인데 엄마의 입장에서나 그렇지 아이들에겐 종종 버겁고 긴장되는 일이였겠다는걸 그 때는 잘 몰랐습니다. 아브라함-이삭-야곱의 3대를 볼 때 이삭은 어딘지 빠지는 듯한 인물입니다. 그에 관한 기록도 양적으로 적고, 그가 등장하는 스토리마저도 그가 주연인지 조연인지 모호하기도 합니다. 아브라함과 야곱의 색깔이 원색처럼 강렬하고 또렷하다면 이삭은 부드러운 파스텔톤이거나, 개성 없는 베이지나 브라운이라고 할까요. 그런 이삭이지만 그의 ‘사건’은 독특하고 일회적입니다. 아버지 손에 의해 제사에 쓰일 제물이 되는 인물은 이삭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 아들 둘을 헷갈려서 잘못 축복해주는 인물도 그 뿐입니다. 야곱도 나중에 늙어서 손자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축복할 때 아버지 요셉이 의도한 것과 반대로 했습니다만 이는 모르고 한 일이 아니라 그렇게 의도해서 동생 에브라임을 우선적으로 축복했습니다. 이삭은 자기가 무엇을 하기 보다 (do to), 자기에게 뭔가가 되어진 (done to) 삶을 산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래도 이삭은 알았을 것 같습니다. 엄마 사라는 자기가 태어나게 된 스토리 (origin story)를 몇 번이고 반복해 들려 주었을 것이고, 아버지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위대한 약속을 늘 상기시켰을 것입니다. 이삭은 자기 삶이 남과 같지 않다는걸 알았을 것입니다. 아버지와도 다르고, 형 이스마엘과도 다르다는걸. 아이들을 키우면서 또 보았을 것입니다. 에서와 야곱이 철저하게 다른 것을 보며 하나님의 세계가 얼마나 크고 다양한지를 깨달았을 것입니다. 내 안의 세계가 깨지고 부서지는 것은 무서운 일입니다. 일상이 어긋나고 마음이 헝크러지는 것은 불편하고 불쾌하기도 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나의 세계가 무너져야 하나님의 자리가 생깁니다. 거룩한 수동성은 이처럼 적극적이고 혁명적이기를 요구하기도 합니다.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Your will be done. To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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