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5장 12-18절: 하나님은 만민의 주님이시다

해설:

저자는 이삭의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이스마엘의 이후 역사를 족보 형식으로 요약합니다. 족보는 이름으로 축약한 역사라 할 수 있습니다. 

12절에서 저자는 “사라의 여종인 이집트 사람 하갈과 아브라함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라고 소개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이전에 있었던 일들을 기억하게 합니다. 이스마엘에게도 열두 아들이 태어나고, 그들은 나중에 열두 지파를 형성합니다(13-16절). 야곱을 통해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가 형성되는 것처럼, 이스마엘을 통해서도 큰 민족이 형성됩니다. 여기서 독자는 하갈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약속(16:10; 21:18)이 이루어져 가고 있음을 봅니다.

이스마엘은 137세에 숨을 거둡니다(17절). 그의 후손들은 가나안 땅의 남동쪽 광야 지대에서 퍼져 나갑니다(18절). 여기서도 저자는 시간적인 순서를 뛰어 넘습니다. 시간 순서로 기록했다면 이스마엘이 죽은 이야기는 한참 후에 나왔을 것입니다. 저자는 이삭과 두 아들의 이야기에 집중하기 위해 이스마엘의 역사를 간략히 요약해 놓았습니다. 

묵상:

기독교인들 중에는 오늘의 아랍인들이 이스마엘의 후손이라고 믿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스마엘이 하나님의 선택에서 배제 되었으므로 아랍인들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배제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생각 때문에 이스라엘과 아랍인들의 대결 상황에서 믿는 이들은 무조건 이스라엘 편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태도가 중동 국가들의 갈등 문제를 더욱 악화시킵니다.

이것은 성경을 오독하는 것이고 세계 정세에 무지한 소치입니다. “아랍인”이라는 말은 “아랍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그들 중 스스로 이스마엘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극소수입니다. 무슬림들은 그들의 조상이 이스마엘이라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유대-기독교 세력에 대항하기 위해서 초기 이슬람 지도자들이 만든 이야기입니다. 

설사, 자신이 이스마엘의 자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그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에서 배제되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스마엘이 선택 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배제되었다는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마엘에게 축복을 약속 해 주셨고, 그 약속대로 큰 민족이 되게 하셨습니다. 또한 조상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다고 해서 그것이 자동적으로 후손에게 전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혈통에 있어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해서 무조건 약속의 자손이 되는 것은 아닌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유대인들이 아랍인들을 적대시 하는 것은 오랜 역사적 갈등에 뿌리를 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분별한다면 아랍인들을 멸절시키려는 태도로 임해서는 안 됩니다. 하물며 그리스도인들이 그런 생각을 가지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우리는 베드로가 말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만민의 주님이십니다”(행 10:36)라고 믿고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유대인들과 아랍인들을 동등하게 대해야 합니다. 무조건 유대인들을 편 들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도 그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어떻게 그것을 아느냐고 물으신다면, 구약의 예언서들을 읽어 보시라고 답하겠습니다. 


Comments

4 responses to “창세기 25장 12-18절: 하나님은 만민의 주님이시다”

  1. 아직도 메시아 예수님을 인정하지않고 메시아를 기다리는 유대교나, 예수님을 예언자 한사람으로 생각하는 회교를 위해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루속히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 아버지 품에 드러갈수 없다”는 복음을 받아드리는 세상이 되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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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achi049 Avatar
    gachi049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 주이십니다. 홍수 이후 노아의 후손들의 믿음이 점점 식어갔습니다. 하나님 뜻은 사람들이 온 세계로 퍼져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노아의 후손들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흩어짐을 면하리라 하면서 바벨탑을 쌓아서 하늘에 닫게 하고 자신들의 이름을 내고 흩어지지 않겠다고 결심을 합니다. 그 당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 하지 않는 사람 니므롯이란 사람이 백성을 선동하여 바벨탑을 쌓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바벨탑을 쌓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믿지 않는 불 신앙의 상징이며, 노아에게 주신 무지개 언약을 믿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하나님은 바벨탑을 쌓던 사람들의 언어를 혼잡하여 세상으로 흩어지게 하셨습니다. 오늘날 지구상에 존재하는 언어는 대략 칠 천 가지라고 합니다. 현재 성경은 약 1,600가지 언어로 번역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라도 하셔서 당신이 창조한 인간이 하나님 됨을 믿게 하시려 하신 것입니다. 원 죄가 점점 악해져 가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기란 어렵고 힘이 듭니다. 나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전격적으로 맡기고 살아가는 방법은 매일 매일 말씀 묵상과 기도로 시작하고 맺는 삶임을 믿습니다. 그러나 나약하고 부족합니다. 오늘도 성령께서 동행하여주시고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기도 합니다.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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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mkkim2 Avatar

    주변에 믿지 않는 분들을 위해 기도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들도 하나님의 자녀이며, 주변에 저를 허락하신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제 주변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는 오만과 편견이 있지는 않았는지 돌아보는 하루, 있는 곳에서 주어진 상황에서, 모두를 공평하게 주님의 사랑으로 대하려고 노력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것이 저에게는 쉬운 문제가 아니기에, 더욱 힘을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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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이스마엘에게도 열두 아들이 태어났다는 기록이 새삼스럽습니다. 주께서 하갈을 위로하시며 약속하신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오늘 해설에서 지적하는 것처럼 아랍인은 다 이스마엘의 후손이라든가, 이슬람교의 창시자로 이스마엘을 꼽는 것은 ‘이스마엘 대 이삭’의 도식으로 단순화한 결과인지 모릅니다. 이슬람교에 대해 아는 것도 없으면서 이슬람교는 무조건 ‘나쁘다’라든가, 기독교나 유대교를 반대하고 핍박하는 종교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9.11 테러가 남긴 해악입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전쟁과 팔레스타인 거주민의 비극을 보면 기독교인으로서 복잡다단한 심경이 됩니다. 기독교인은 성서를 경전으로 읽기에 은연 중에 이스라엘을 종교적인 동지로 여깁니다. 성경의 세계에서 만나는 유대인들은 먼 듯하면서도 가깝고, 비난하면서도 부러운 대상이 되었습니다. 내게는 성서 속의 유대 사람과 현실에서 아는 유대인의 이미지가 따로 따로 있습니다. 이는 한국인을 보는 외국인의 시각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극동 아시아의 역사적인 배경을 고려하고 보는 한국과 현대화와 국제화를 통과하며 만들어진 문화 컨텐츠로서의 한국이 나란히 있는 것과 비슷합니다. 사람이든 나라든 하나 만 떼어 놓고 볼 수는 없습니다. 시간과 공간이라는 역사적인 틀 안에서 보아야 하고, 여러 관계들 속에서도 보아야 합니다. 사람처럼 나라도 한 줄로 요약할 수 없는 복잡하고 복합적인 주제입니다. 성경을 읽다 보면 인물과 사건의 값이 한결같지 않다는걸 알 수 있습니다. 할애된 지면이 다르고, 같은 사건이라도 언급하는 책마다 조금씩 다르게 말하는 경우도 흔합니다. 어떤 인물은 이름은 나오는데 알려진 것은 거의 없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사건은 유명한데 주인공의 정체는 알려지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이번에 창세기를 읽으면서 하갈과 이스마엘에 대한 마음이 전과 같지 않았습니다. 중동의 전쟁이 그들 모자의 삶에 오버랩 되어서겠지요. 주변에서 흔하게 보는 싱글맘 가정의 아픔이 성경책 안으로 스며들어서겠지요. 이스마엘 개인의 삶에 대해 성경은 많이 알려주지 않습니다. 본문에는 그의 아들 열두 명의 이름이 나옵니다. 독자에게 이 이름들 가지고 뭘 하라는건지 모르겠는, 낯선 이름들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에 대해서는 또 발견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스마엘을 고아처럼 두지 않으셨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하갈은 두 손으로 손자를 받을 때마다 광야에서 만난 하나님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보게 하시는 하나님을 오늘 나도 봅니다. 부서질 것처럼 연약하고 상한 마음으로 당신을 찾을 때 답해 주시는 하나님, 회복하도록 도와 주시는 하나님을 봅니다. 이스마엘에게 열두 아들이 태어난 것은 ‘그 아이의 자손으로 큰 나라를 이루게 하실’ 것이라는 약속의 성취입니다. 하갈과의 약속을 지키신 하나님께서 나와의 약속도 지키실 줄로 믿습니다. 평강의 약속, 같이 하심의 약속을 붙잡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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