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5장: 믿음으로 얻는 의

해설:

저자는 “이런 일들이 일어난 뒤에”(1절)라는 말로 시간적 간격을 상정합니다.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해 전쟁에 참여했던 때로부터 한참 후에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분은 먼저 “두려워하지 말아라”고 위로해 주십니다. 뒤이어 나오는 아브람의 응답을 보면, 이 두려움은 자식이 얻지 못한 것으로 인한 감정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자신이 그의 “방패”요 그가 “받을 지극히 큰 상급”이라고 확인해 주십니다. 

아브람은 마음 속에 숨겨 두고 있던 질문을 하나님께 꺼냅니다(2-3절).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자손을 “땅의 먼지처럼”(13:16) 많아지게 하겠다고 하셨는데, 아직 자식이 없습니다. 그는 만일 자식이 태어나지 않는다면 가장 신뢰하는 종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삼기로 마음 먹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너의 몸에서 태어난 아들”(4절)이 상속자가 될 것이라고 답하시고는 아브람을 데리고 나가 하늘의 별을 보여 주시면서 그의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많아질 것이라고 약속해 주십니다(5절). 인간적인 조건으로 볼 때는 그 약속을 믿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미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경험했기에 그 말씀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습니다(6절).

7절부터 21절의 이야기는 1-6절의 이야기와 분리하여 읽어야 합니다. 자녀에 대한 약속을 확인 받은 만남이 있은 후, 또 다른 만남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번에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7절). 아브람은 그 약속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고 여쭙니다(8절). 하나님은 여러 짐승을 반으로 쪼개어 서로 마주 보게 차려 놓으라고 명하십니다(9절). 아브람은 명령대로 행합니다(10-11절).

해 질 무렵에 아브람은 깊은 잠에 빠졌고 깊은 어둠과 공포가 그를 짓누릅니다(12절). 지금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로 인해 심리적으로 압박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장차 그의 자손들에게 일어날 일들을 예언해 주십니다. 즉 그의 자손들이 다른 나라에서 사백 년 동안 종살이를 하겠으나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그 나라를 심판하시고 아브람의 자손을 구해 낼 것이라고 하십니다(13-14절). 그 때까지는 가나안 땅에 온전히 정착하지 못할 것입니다(15절). “아모리 사람들의 죄가 아직 벌을 받을 만큼 이르지는 않았기 때문”(16절)입니다. 즉 가나안 땅의 주민들의 죄악이 커져서 심판할 때가 되면 이스라엘 백성을 그 땅에 이끌어 들이겠다는 뜻입니다. 

해가 지고 어둠이 짙게 깔리자 불길이 나타나 쪼개 놓은 짐승 사이를 지나갑니다(17절).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맺은 언약에 인을 치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아브람에게 가나안 땅을 소유로 주시겠다는 약속을 다시 확인해 주십니다(18-21절). 

묵상:

사래는 불임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만일 아브람에게 문제가 있었다면, 사래에게는 바로의 아이가 들어섰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아들을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것은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브람은 인간적인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과 능력을 믿었습니다. 지금까지 믿어 온 하나님이 진실로 살아 계시다면 그분이 어떤 방식으로든 약속을 이루실 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고 습니다.

우리의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는 것은 사래가 아기를 낳을 것이라고 믿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입니다. 2천 년 전에 흘렸던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오늘 나의 죄를 씻는 능력이 된다는 것도 이성적으로 납득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음으로써 우리가 새 사람이 되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된다는 것도 믿음으로만 알 수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가장 값지게 여기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는 것입니다(롬 4:3).

믿음의 대상은 교리가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어떤 교리를 받아 들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분께 자신의 인생을 맡기고 한결같이 그분을 신뢰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즈음에 ’믿음‘이라고 번역되었던 헬라어 ’피스티스‘를 ’신실함‘ 혹은 ’한결같음‘ 혹은 faithfulness로 번역하는 것이 옳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안 계신 것 같은 현실에서도 여전히 그분을 믿고 기다리고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믿음을 의로 여기시고, 그렇게 믿는 사람을 의롭다고 여기십니다. 

나에게 좋은 일을 많이 해주는 사람보다는 나의 선의를 한결같이 믿어주는 사람이 나를 가장 기쁘게 합니다. 때로 악의를 가진 것처럼 말하고 행동해도 “무슨 이유가 있겠지” 하고 선의를 믿어주는 사람,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을 한결같이 믿고 신뢰할 때 그분은 가장 기뻐하십니다. 그분이 안 계신 것 같거나 그분에게 버림 받은 것 같은 상황에서도 “무슨 이유가 있겠지” 하고 그분을 의지하는 것이 ‘구원할 만한 믿음’입니다.  


Comments

4 responses to “창세기 15장: 믿음으로 얻는 의”

  1. gachi049 Avatar
    gachi049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이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실까? 라는 의심을 할 때가 있습니다. 주님! 아브람과 같은 믿음을 주셔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남은 여정이 될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동행하시고 인도하옵소서.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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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mkkim2 Avatar

    저에게 있어서 믿음…

    제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언제나 저를 붙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성령님을 근심/걱정하게 만드는 어떤 일도 없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더욱 분명한 신앙의 감수성을 갖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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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아브람을 조상으로 둔 민족에게 종교가 있습니다. 아브람의 믿음을 모범으로 삼는 종교입니다. 그런데 하나가 아닙니다. 뿌리는 하나인데 몸통은 두 개, 세 개이고 몸통에서 또 가지가 나왔습니다. 이들 종교가 기억하는 ‘아브람의 믿음’이 12장에 기록된 복의 선포입니다. 오늘 본문은 여호와가 하신 말씀을 재차 확인합니다. 12장의 복을 구체적으로 ‘아들’과 ’땅’이라고 하시고, 짐승을 태워 올리는 제사를 통해 아브람에게 기억하게 하십니다. 12장에서는 여호와의 말씀만 알 수 있는데 15장은 아브람의 속 생각도 적고 있습니다. ‘(그 약속을) 어떻게 알 수 (믿을 수) 있겠습니까?’ 12장의 복의 선언이 여호와의 일방적인 말씀이라면 오늘의 제사는 양방통행의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지금까지 아브람은 돌로 제단을 쌓아 예배를 드렸습니다. 돌단은 감사의 표시였습니다. 이제부터 아브람은 자기를 이을 아들을 기다리고 또 아들의 자식들 때에 돌아와 가지게 될 땅을 상상하며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제단이 공간의 기념물에서 시간의 상징물로 확장되고 바뀝니다. ‘이곳에 하나님이 나타나셨다’를 기념하던 제단이 ‘장차 너에게서 나올 아들의 후손에게 이 땅을 주노라’ 하시는 약속이 반복해서 들리는 제단이 되었습니다. 아브람의 종교나 아브람의 전승 Abrahamic religions, Abrahamic traditions 으로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를 대표적으로 꼽습니다. 공통분모는 아브람이지만 종교의 기본틀이 되는 경전은 다릅니다. 히브리 성경, 쿠란, 성경 세 책의 내용엔 공통점도 있지만 다른점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에 대한 의견이 서로 너무 다릅니다.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믿었다’는 6절이 무슨 뜻인지 모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믿음을 보시고 의롭게 여기셨다는 뜻도 확실하게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대부분의 경우, 다 믿어지지 않고 잘 모르겠어도 그런가보다 하고 받아들이면 그게 믿는거라고 생각합니다.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잘 풀리겠지 생각하는 것도 믿음의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 같습니다. 나도 자주 그렇게 ‘믿고’ 삽니다. 그러기에 믿음은 나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 -약속을 주심, 약속을 이루심-에 대한 내 응답이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브람도 하나님을 그런 식으로 믿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브람의 아버지 데라에게 명령하신 하나님, 아브람에게 말씀하신 하나님,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 나를 부르신 하나님…의 은혜가 믿음의 출발입니다. 늘 불안하고 흔들리고 자신 없고 미숙한 걸음걸이입니다. 주님을 의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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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생각과 마음으로는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믿습니다, 문제는 모든행함과 삶이 생각과 마음의 믿음과 같지않은 위선자인것을 고백합니다. 허락하신 두 자녀가 점점 십자가 구원에서 멀어저갑니다. 제일 먼저 기도제목입니다. 오랜시간 기도를 반신반의 하며 기도합니다. 지금부터라도 그들의 구원응답을 확신하며 기도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시간에 주님의 방법으로 십자가를 거처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다는 확고한 믿음을 갖도록 도와주십시오. 믿겠습니다, 믿고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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