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2장 1-3절: 믿는다는 것

해설:

하란에 정착하여 뿌리를 내리려 할 즈음,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십니다. 1절부터 3절에 이르는 하나님의 말씀은 “가라” 혹은 “떠나라”는 명령으로 시작하고 “그러면”이라는 종속문이 따라 붙습니다. 

12장 1절은 22장 2절을 생각나게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가라”고 명령하면서 “내가 보여주는 땅”을 목적지로 제시하십니다. 정확히 번역하자면 “내가 보여줄 땅”이라고 해야 합니다. 그에게 아들 이삭을 바치라고 할 때에도 “내가 너에게 일러주는 산”으로 가라 하십니다. 이것도 역시 “내가 너에게 일러줄 산”으로 번역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네가 살고 있는 땅”과 “네가 난 곳”과 “너의 아버지 집”을 떠나라고 하셨는데, 22장에서는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 “너의 사랑하는 자”를 바치라고 하십니다. 따라서 저자는, 아브람이 하란을 떠나는 것이 아들 이삭을 바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음을 암시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그 어려운 명령을 주시면서 일곱 가지의 약속을 제시하십니다. 첫째, “큰 민족”이 되게 하겠다는 것, 둘째, “복을 주겠다”는 것, 셋째, “크게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는 것, 넷째, “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는 것(2절), 다섯째, 그를 축복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복을 베푸시겠다는 것, 여섯째, 그를 저주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저주하겠다는 것, 일곱째, 땅에 사는 모든 민족이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라는 약속입니다(3절). 일곱 가지의 약속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하나님이 그의 미래를 책임질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장차 주실 것을 기대하고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다 놓고 떠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짧은 말씀 속에 “복”에 대한 언급이 다섯 번 나옵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한 후에 3장부터 11장까지 하나님의 주된 행동은 저주하고 징계하고 심판하는 것이었습니다. 1장과 2장의 이야기에서 흘러 넘치던 복이 끊기고 화가 이어집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불러 내시면서 끊겼던 복을 회복시켜 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아브람을 택하여 제사장의 나라를 세우심으로써 제한적이나마 태초의 복을 회복하려는 것입니다. 

묵상:

히브리서 저자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확신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11:1)라고 말한 다음, 믿음으로 산 사람들에 대해 열거합니다. 그는, 아브라함이 가는 곳을 알지도 못하고 떠났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그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약속하신 분을 신실한 분으로 생각했기 때문”(11:11)이라고 말합니다. “신실하다”는 말은 “믿을만 하다” 혹은 “끝까지 변함 없다”는 뜻입니다. 약속한 것은 틀림 없이 지키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창세기 저자는, “아브람이 주님을 믿으니, 주님께서는 아브람의 그런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15:6)고 말합니다. 그런 믿음이 있었기에 아브람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믿음은 “믿는 대로 이루어진다”는 자기 확신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반드시 지키는 신실한 분이시라는 사실을 믿고 그 믿음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믿음이 좋다는 말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한결같이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즈음에는 “믿음”(faith)을 “신실함”(faithfulness)으로 번역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가집니다. 믿는다는 것은 어떤 교리를 지적으로 승인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을 한결같이, 끝까지, 변함 없이 의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신실하시므로 우리도 그분께 신실하게 의지하고 살아갑니다. 우리가 구원 받는다면 그것은 우리의 강한 의지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심 때문입니다. 

아브람의 소명 이야기는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어려운 것이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합니다. 아브람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순종한 첫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Comments

3 responses to “창세기 12장 1-3절: 믿는다는 것”

  1. gachi049 Avatar
    gachi049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피조물인 인간을 사랑하고 앞날을 예비하시며 구하는자에게 주시고 약속하심을 반드시 이루시며 죄속에서 허덕이는 우리를 독생자 예수 값으로 사신 그분을 믿고 순종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갈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동행하시고 인도하시옵소서.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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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아브람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들립니다. 지금까지 아브람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은 데라의 족보를 통해서 입니다. 데라가 70살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습니다. 하란은 우르에서 죽고, 아브람과 나홀은 각각 아내를 맞이했습니다. 나홀은 자식을 얻었는데 아브람은
    무자식입니다. 데라는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죽은 아들 하란의 손자 롯과 아브람,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우르를 떠났습니다.
    가나안까지 가기 전에 하란에 머무릅니다.이 정도 뿐입니다 아브람에 대해 아는 것은. 11장과 12장 사이에 많은 세월이 흐른 것으로
    보입니다. 4절에 보면 아브람의 나이가 75살입니다. 살고 있던 하란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는 명령을 받는 것이
    오늘 말씀입니다. ‘왜’는 모릅니다. 왜 아브람인지, 왜 살던 곳을 떠나야 하는지, 왜 그런 복들인지 알 수 없습니다. “땅 위의 모든
    백성이 너를 통해 복을 받을 것(3절)” 이라는 말씀을 상업적인 용어로 읽으면 단독 계약이고 독점권을 주신 겁니다. ‘복’이 어떤
    ‘상품’이면 이 땅에서 그 상품을 취급하는 사람은 아브람 뿐이라는 말도 됩니다. 하나님이 유명 디자이너라면 하나님의 명품은 아브람만
    구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다행히 복은 상품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복을 주는 사람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복이라는
    단어는 같지만, 같은 느낌적으로는 아브람에게 친절한 사람에겐 하나님도 친절하게 대해 주시겠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과
    사람 사이에 주고 받는 복이 동일하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하시는 말씀은, 아브람에게 나라와 땅과
    명예를 약속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브람 자신이 곧 복이라는 말씀도 하십니다. 여기서도 또, 아브람이 꼭 특정한 인물 아브람을
    뜻하는가 싶어집니다. 데라의 아들 아브람에게 하시는 말씀인건 맞는데, 아브람이라는 복을 받은 우리 (그것이 반드시 혈통을 거쳐야만 하는
    것이 아님을 나중에 알게 되지만) 역시 아브람인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새벽 5시 반부터 낮 12시까지 계속 일이 있어서 루틴이
    살짝 어긋났습니다. 묵상은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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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갈림길에 서서 방황할때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며 십자가의 길을 걷기를 원하면서도 그거룩한 길을 걷지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허락하신 재물 시간 재능 몸 마음 혼 전부를 주님발 아래 내려 놓지못하는 죄인입니다. 지금부터라도 가족과 친족과 동료들과 사회의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원합니다. 낮아저서 주님의 마음으로 가족들과 이웃을 섬기는 주님의 제자가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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