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1장 10-26절: 포기를 모르는 하나님의 사랑

해설:

저자는 바벨탑의 이야기에 후에 셈의 족보를 다시 기록합니다. 셈의 족보는 10장 21-31절에도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서 다시 기록합니다. 같은 내용을 반복적으로 기록한 것은 저자에게 그만한 의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10장의 족보와 11장의 족보는 에벨에게서 달라집니다. 에벨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10장의 족보는 에벨에게서 욕단의 가계를 따라가는 반면(25절 이하), 11장의 족보는 에벨에게서 벨렉의 가계를 따라갑니다(16절 이하). 저자는 12장에서부터 시작될 족장의 역사를 전역사와 연결시키기 위해 셈의 족보를 다시 쓴 것입니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아브람은 셈 가문의 벨렉 지파의 후손인 셈입니다.

학자들은 ‘에벨’이라는 이름에서 ‘히브리’라는 이름이 나왔다고 봅니다. 저자가 10장의 족보에서 에벨에 대해 두 번(21절, 25절) 언급한 것은 히브리 사람들에게 에벨이 그만큼 중요한 조상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10장의 족보에는 사람들의 수명에 대한 언급이 없는데, 11장의 족보에는 각각의 수명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가인의 족보(4:17-24)에도 수명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반면 5장에 나오는 셋의 족보에는 각각의 수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족보에 수명을 기록한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에게서 받은 장수의 축복을 상징합니다. 5장의 족보와 비교할 때 11장의 족보에 나오는 인물들의 수명이 절반 이하로 줄어듭니다. 인류의 수명을 백이십 년으로 제한하겠다는 하나님의 계획(6:3)이 서서히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묵상:

창세기의 전역사(1-11장)에 기록된 이야기들에는 거듭 반복되는 패턴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어떤 일을 행하시면, 인간은 죄를 선택하여 하나님의 계획을 그르칩니다. 그 죄에 대해 하나님은 벌을 내리시지만, 하나님은 실패한 인간을 위해 또 다른 일을 하십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까닭에 에덴에서 쫓겨나지만, 하나님은 그들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십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벌로 에덴의 동쪽에서 유랑하면서 살아야 했는데, 하나님은 그가 사람들에게 살해 당하지 않도록 보호해 주십니다. 인류의 집단적인 죄로 인해 홍수로 심판하시지만, 노아의 자손들을 통해 인류의 역사가 이어지게 하십니다. 시날 평야에서 일어난 인류의 집단적인 반역에 대해 하나님은 언어를 분화시켜서 흩어지게 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에벨의 자손 아브람을 택하여 선민의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그 이후의 이스라엘의 역사에서도 이 패턴은 거듭 반복됩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뜻을 그르치고, 하나님은 인간의 죄가 한도에 이를 때마다 징계 하십니다. 하지만 징계는 하나님의 마지막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징계의 목적은 관계를 끝내기 위함이 아니라 관계를 회복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징계 후에 또 다시 새로운 일을 행하십니다. 

그 패턴이 수 없이 반복된 끝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은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실 때 시작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절정에 이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이 장구한 구원의 역사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다함 없는 사랑을 보게 합니다. 아무 것도 부족함 없는 하나님께서 왜 나 같은 존재를 이토록 사랑하시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오직 하나, 우리의 하나님은 사랑 밖에 모르시는 분, 사랑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에 힘 입어 오늘도 호흡하고 있는 것이고, 내 호흡이 끝나도 나를 향한 그분의 사랑은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Comments

3 responses to “창세기 11장 10-26절: 포기를 모르는 하나님의 사랑”

  1. gachi049 Avatar

    끝이 없으신 하나님의 사랑때문에 온 인류가 지금까지 목숨을 이여가고 있으며 그중에 내가 있게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은총에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나는 알파며 오메가, 곧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시작이며 끝이다.(계22:13)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가슴이 두근 거립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희생제물로 삼으시고 죄악 세상에서 허덕이는 인간을 구원하시고 예수님을 영접하는자 마다 하나님의 백성이되어 영생의복을 허락하셨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는 자들에게 경고를 하십니다. 분명히 기회는 마지막이 아닌가 싶습니다. 주님이 심판주로 오시기전에 아직도 믿지 않는 자들에게 사랑의 주님을 전하는 여정이 될 수 있도록 성령께서 믿음의 공동체와 동행하시고 인도하옵소서.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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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선민의식은 좋지 않지만 선민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싶습니다. 히브리 사람들의 의식 속에 하나님은 선명하게 자리를 잡고 계십니다.
    조상의 이름을 기억하여 남긴 이유는 조상이 잘나서가 아니라 그들이 있어 지금 내가 있다는 의식이 끊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사람의 눈에 잘 난 조상이 있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조상의 공보다 앞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잊지 말라는 뜻 같습니다. 받은 지
    몇 달 되었는데 이제야 읽기 시작한 책이 있습니다. 경제학자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입니다. 머리말에 경제학에 대한 소개가 있습니다.
    “경제학 이론은 서로 다른 특징을 인간성의 본질로 추정한다. 그 시대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는 경제학 이론은 동시대인들이 무엇을 가장
    중요한 ‘인간의 본질’로 생각하는지에 영향을 준다. 인간은 이기적 존재라 추정하는 신고전학파 경제학이 지난 몇십 년 동안 세계를
    주름잡으면서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행동이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행동주의나 제도주의 경제학 이론이 제일 주목받는
    세상이었다면 인간이 더 복합적인 동기를 지닌 존재고, 이기적인 동기는 그중 하나일 뿐이라는 믿음이 팽배했을 것이다…경제학은 사람들이
    무엇을 정상으로 보는지, 서로를 어떤 식으로 보는지, 그런 사회에서 받아들여지기 위해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행동하는지에 영향을 준다.”
    경제학, 정확하게는 주요 경제학파의 기본 사상에 대한 이해가 없으니 현대사회를 굴리는 경제의 바퀴를 알아볼 수는 없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시대가 -지구촌 어디에 살든 현재라는 시대성 속에 있는 – 인간의 본질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는지의 답이 경제학적인 체계와
    정책에 달려 있다는 저자의 말이 침침하던 방에 불을 켜준 듯 했습니다. 창세기는 인간이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만들어졌다고 말합니다.
    성경 속의 인간 이야기는 일차적으로는 인간들 사이의 일입니다. 그리고 그 일들을 하나님과의 관계로 재해석한 이야기입니다. 구약은
    ‘하나님에게서 나왔으나 하나님을 떠난’ 존재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된 우리는 ‘하나님을
    떠났으나 하나님께 돌아가려는’ 사람들입니다. 주께로 돌아가는 길이 있다고 믿으며, 그 길이 예수님이라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이기적인 선택을 정당화하는 시대 정신과 정치 철학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그런 선택으로는 하나님께로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기적인
    선택을 하는 이유는 ‘세상에 나 혼자 뿐’ 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 삶에서 여러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람간의 일들입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며, 주님 앞에서 그 일들을 분석하고 해석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길이
    되어주시는 주님을 의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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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여호와 하나님의 본체는 사랑 그자체이신것을 고백합니다. 끝없이 깊고 넓고 높고 크신 위대한 사랑을 혼란과 곤고와 박해 굶주림과 헐벗음과 위협과 칼날로 때어 낼수없다고 성경이 알립니다. 삶과 죽음도 천사들과 권세자들도 능력으로도 오늘과 미래에도 십자가의 사랑을 떼어내지 못하는 한결같은 위해하신 사랑의 주님께 영광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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