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6장 9-22절: 위로자로 살기

해설:

저자는 5장 28-32절에서 라멕과 노아에 대해 간단히 소개 합니다. 라멕은 힘들여 노동해야 하는 인간을 위로해 달라는 뜻으로 아들의 이름을 ‘노아’라고 짓습니다. 노아는 오백 살이 지나서야 자녀를 낳기 시작합니다. 6장 8절에서 저자는 인류의 타락상을 묘사하면서 “그러나 노아만은 주님께 은혜를 입었다”고 적습니다. 그런 다음 저자는 9절 이하에서 노아에 관한 이야기를 자세히 기록합니다.

먼저, 저자는 세 가지 단어로 노아를 소개합니다. 그는 “의로웠고” “흠 없었었으며”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9절). “의로움”(짜디크)은 그의 존재 상태에 대한 묘사이고 “흠없음”(타밈)은 그의 행동에 관한 묘사입니다. 의롭고 흠 없는 삶이 가능한 이유는 하나님과 동행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에녹의 삶의 방식이기도 했습니다(5:22). 그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습니다. 

이어서 저자는 6장 1-8절에서 간단히 묘사한 인류의 죄악상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사실을 밝힙니다(11-12절). 여기서 저자는 “썩었다”는 단어를 세 번 반복하여 타락성의 정도를 묘사합니다. 썩어 있는 주체에 대해 저자는 세 개의 단어들(세상, 땅, 사람들)을 사용함으로써 총체적으로 부패했다는 사실을 전합니다. 하나님의 피조 세계는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으므로 인간의 타락은 다른 피조물에게 악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심판의 계획을 알려 주시고(13절) 방주를 만들라고 하십니다. 길이는 대략 140미터, 폭 23미터, 높이 14미터의 크기로, 삼층의 통배(지붕 덮힌 배)를 지으라고 하십니다(14-16절). 하나님은 노아에게 가족 모두를 데리고 방주 안으로 들어가라고 하십니다. 그 외의 모든 인류를 홍수로 멸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17-18절). 또한 모든 종류의 동물들을 한쌍씩 데리고 들어가고(19-20절), 그 짐승들이 먹을 음식도 준비하게 하였습니다(21절). 

마지막에 저자는 “노아는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다 하였다. 꼭 그대로 하였다”(22절)고 써서 노아가 하나님의 명령을 정확히 지켰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묵상:

인간 사회에 죄가 들어온 이후, 하나님을 예배하며 동행하기를 힘쓰는 사람들은 언제나 소수였습니다. 에노스가 그랬고, 에녹이 그랬으며, 노아가 그랬습니다. 절대 다수가 하나님을 외면하고 자신의 욕망을 따라 죄를 즐기고 있을 때, 세상의 한켠에서 잠잠히, 차분히 하나님을 예배하며 그분의 뜻을 따라 거룩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들에게도 죄성이 있어서 때로, 자주 죄를 즐기고 싶은 유혹에 흔들립니다. 또한 “죄 권하는 세상”은 다르게 사는 사람들을 그냥 두고 보지 못합니다. 온갖 압력과 회유로 거룩한 삶을 방해합니다. 그 모든 유혹과 압력에도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는 이유는 그렇게 사는 것이 진실로 복된 삶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힘쓸 때 우리 존재의 모든 영역은 올바른 상태로 자리 잡습니다. 그것이 ‘의’(짜디크)입니다. 그렇게 될 때, 위로 하나님을 섬기고 옆으로 이웃을 사랑하며 아래로 모든 생명을 돌보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것이 ‘흠없음’(타밈)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창조의 원상태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몸은 “에덴의 동쪽”에 살고 있지만 실제로는 에덴의 삶의 방식을 회복한 것입니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인간은 진정한 위로와 안식을 얻습니다. 그 위로와 안식은 그 사람을 통해 이 세상으로 흘러 나갑니다. 노아가 세상을 위로하는 존재가 된 것은 홀로 외로이 하나님과 동행하며 의롭고 흠없이 살기를 힘썼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노아처럼 그분과 동행하며 삶으로써 이 세상을 위로할 사람들을 찾으십니다. 그러기 위해 먼저 매일 하나님과 신실하게 동행해야 합니다. 그분 안에서 위로와 안식을 얻으면 그 위로와 안식이 세상을 흘러 나가게 됩니다. 


Comments

3 responses to “창세기 6장 9-22절: 위로자로 살기”

  1. 이땅의 모든 가정과 교회가 방주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부조리와 죄악이 점차적으로 심해지고 있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은혜의 십자가 언약을 꼭 붙잡고 살기를 원합니다. 질병과 전쟁과 자연재해로 거듭해서 경고하시는 주님을 깨닫고 십자가의 길을 남은여생 동안 우직하게 걸으며 구원의 하나님을 세상에 알리는 사귐의 소리 가족들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심판의 날이 멀지않은 곳에서 기다리고 있는것을 깨닫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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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믿음 생활을 하면서 한 번씩 돌아보는 부분이 개인의 성화와 공동체의 성숙입니다. 처음 교회에 나가고 신앙에 입문할 때는 개인의 성장이 가장 크게 보입니다. ‘나의’ 신앙이 올바르게 자라기를 원해서 신앙이 좋은 사람을 모범으로 삼고 그의 언행에 주목합니다. 어릴 때 교회를 다니기 시작해서 그랬는지 공동체로서의 교회나, 사회와 교회의 관계 같은 것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사고는 꽤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나의’ 자리를 튼튼히 하는 것이 당면과제라는 생각에서 자유롭게 되기까지 오래 걸렸습니다. 한국 사회의 가치와 문화적 유산이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 속에 깔끔하게 정리되는 시대에 학교를 다니고 성장기를 거쳤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아이를 기르면서 비로소 ‘남의’ 아이가 눈에 들어 왔습니다.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자 비로소 학교라는 아이의 사회가 우리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직장 일로 미국으로 옮겨오니 사회가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나의 자리를 튼튼히 하려니까 사회부터 파악하고 공부하는 일이 필요했습니다. 나의 편리와 권리보다 사회의 룰을 먼저 떠올리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수퍼마켓에서 줄을 길게 서 있는 중에도 카트 안에 몇 개 안되는 물건을 담은 사람이 있으면 내 앞에서 먼저 계산하라고 양보하는 ‘미국사람’을 보고 나도 다음엔 저렇게 해야지 생각했습니다. 익스큐즈 미, 쏘리, 댕큐, 해브어 나이스데이…다 타인에게 하는 말입니다. 노아가 방주를 짓던 시대와 방주에서 나와 다시 땅을 밟던 시대는 어떻게 달랐을까 생각해 봅니다. 노아와 홍수 사건은 사건 자체도 크지만, 읽는 사람에게도 사고의 전환을 요구합니다. 스토리의 구조는 군데군데 구멍이 뚫려 있는 것처럼 보여도 홍수라는 대재앙을 통해 이루려고 한 창조주의 마음을 묵상하면 개인과 사회의 유기적 관계가 이 스토리의 큰 축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노아라는 개인이 새로운 사회를 다시 엽니다. 희망이 없어진 것 같은 세상에 노아는 희망의 씨앗이었습니다. 노아의 자격이 충분해서 그와 그의 자녀들만 살아남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격이 아니라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그를 선택했고, 그는 하나님께 순종할 것을 선택했습니다. 믿음 생활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자기부정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받들기 위해 자기를 부인하고 부정하고, 죽는 일은 평생의 싸움입니다. 자기 자리가 있는 사람이 타인을 위해 자리를 만들어주며 같이 앉게 할 때 사회는 정화된다고 생각합니다. 나만 잘되는 세상은 좋은 세상이 아닐 것입니다. 겸손과 감사를 잊지 않으며 살기를 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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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achi049 Avatar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는 따로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음을 다시한번 말씀을 통해 깨닫게됩니다. 만물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칭찬을 아끼시지 않으셨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창조물들을 다스리는 인간들이 사랑과 화평속에서 누리는 삶을 타락하게 만들어 결국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가 아니라 창조하심을 후회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당대에 의롭고 흠이 없는 노아를 택하여 재창조하실 준비를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재창조를 위해 노아를 택하신 이유는 썩은 세상속에서 홀로 외롭게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지키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노아 같은 사람을 택하여 함께 일하시기를 원하심을 깨닫습니다. 점점 악해져가는 세상 속에서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으로 믿음의 형제들과 이웃과 사귐을 통해 부활하신 하나님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나의 삶을 주관하여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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