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장 14-19절: 실낙원

해설:

창조 질서를 깨뜨린 죄에 대해 하나님은 뱀에게 세 가지의 저주로 벌을 내리십니다. 첫째는 배로 기어 다니게 될 것이고, 둘째는 흙을 먹고 살 것이며, 셋째는 여자의 자손과 원수가 될 것이라는 저주입니다(14-15절). 뱀을 징그럽게 여기는 인간의 집단 무의식이 뿌리가 여기에 있다 싶습니다. 뱀이 사탄을 상징한다고 해석하는 사람들은 “여자의 자손”을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으로 해석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사탄의 세력에 치명상을 입히시지만 그로 인해 그리스도 역시 “발꿈치를 상하는” 피해를 입습니다.

하나님은 여자에게 두 가지의 저주를 내리십니다. 하나는 해산의 고통입니다(16절). 남녀 간의 성적 연합과 자녀의 출산은 원창조의 원리였습니다. 그것이 없으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라”(1:28)는 명령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따라서 죄로 인해 여인이 받은 벌은 해산하는 과정에서 겪어야 하는 고통입니다. 다른 하나는 두 사람의 사랑의 관계가 지배권을 다투는 관계로 왜곡되는 것입니다. “남편이 너를 다스릴 것이다”라는 말씀은 가부장적 문화에 대한 성서적 근거로 오용되어 왔습니다. 그것은 성서의 의미를 왜곡하는 것입니다. 남성 우위의 가부장적 문화는 죄로 인해 생겨난 창조 질서의 왜곡입니다. 싸움은 언제나 강한 쪽의 승리로 끝나게 되어 있습니다. 힘은 상대방을 섬기는 도구로 주어진 것인데, 죄가 그것을 부리는 도구로 왜곡시킨 것입니다.  

남자에게도 두 가지의 저주가 내려집니다. 하나는 노동의 고통입니다(17-18절). 노동은 저주가 아닙니다. 타락 이전에 노동은 놀이와 같았습니다. 하지만 죄로 인해 피조 질서에 균열이 발생했고, 그 균열은 피조 세계를 왜곡시켜 놓았습니다. 그로 인해 인간은 땀 흘려 가꾸어야만 땅에서 먹을 것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죽음의 운명입니다(19절).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지 말라고 명령하시면서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2:17)고 경고하셨습니다. 그 경고는 으름짱이 아니었습니다. 비록 당장 죽게 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국은 죽음의 운명을 당해야 했습니다. 

묵상: 

창세기 1장과 2장은 하나님의 원창조의 원리가 무엇이었고 우주와 모든 생명 그리고 인간이 어떤 존재로 지어졌는지를 알게 합니다. 창세기 3장의 타락 이야기는 하나님의 피조 세계와 인간이 왜 지금과 같은 실존의 상태로 전락되었는지를 알게 합니다. 

그 모든 것은 죄에서 시작됩니다. 아담과 하와의 죄는 우선적으로 하나님의 명령에 거역한 것이고, 의미적으로는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고 스스로 하나님이 되어 살려는 선택이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만이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를 아실 수 있는데, 피조물 주제에 그것을 스스로 분별하고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은 후에 아담과 하와는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지극히 자기 중심적인 좁은 시각으로 세상을 보면서 선과 악을 분별했습니다. 그들이 택한 선은 다른 사람에게는 악이 되었고, 그들이 선택한 악은 다른 사람에게 선이 되었습니다. 결국 세상 모든 사람들이 신이 되어 자신에게 유익한 것을 택하며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인간 사회입니다. 

인간의 죄는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완전한 조화와 평화를 깨뜨려 버립니다. 사랑으로 하나 되었던 부부가 갈라지고, 인간과 피조 세계가 깨어지고,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불화가 발생합니다. 타락 이전에 놀이였던 노동이 고역이 되고, 자신을 낮추어 섬기는 도구였던 힘은 다른 사람을 강제하고 지배하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인간과 모든 생명체는 생로병사의 굴레 안에 갖혀 버리게 되었습니다. 지난 세월 동안 인류가 혁파해 온 모든 제도들–남성중심의 가부장적 문화, 왕정제도, 계급제도, 노예제도 등–은 죄의 결과로 생겨난 왜곡 현상들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저주를 풀어 주시어 태초의 창조 질서로 회복시켜 주십니다. 예수께서 죄에 주목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로마의 정치적 억압이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질병과 장애가 제일 중요한 문제였다고 생각했고, 어떤 사람은 가난의 문제를 가장 크게 여겼습니다. 예수님은 그 모든 문제들에 관심을 두기는 했지만, 결국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자신을 던지셨습니다. 그 모든 문제들의 뿌리가 죄에 있다고 믿으셨기 때문입니다. 죄로 인해 우리가 갇혀 버린 온갖 저주와 불행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풀어 나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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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responses to “창세기 3장 14-19절: 실낙원”

  1. 아담과 하와가 사탄의 달콤한 유혹에 걸려 너머진것뿐만 아니라 내자신부터 전 인류가 창조 질서를 무너트린 불상한 사형수들입니다. 마땅히 스올에 들어가야 할 인생들을 십자가를 통해 구원의 길을 마련하신 한없이 크고 놀라운 사랑과 은혜에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지금부터라도 주님의 창조질서를 회복하시는 계획에 쓰임받는 도구가 되는 사귐의 소리 식구 모두가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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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아담과 이브가 뱀의 꼬임에 넘어가 선악과를 먹는 사건을 좀 더 생각해 봅니다. 완벽한 상태였던 에덴이 더 이상 낙원이 아닌 곳으로 변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 선악과 사건입니다. 선악과를 먹지 않았다면 에덴에는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 하필 선악과 – 이름부터 심상치 않습니다 – 였는지, 왜 동산 구석진 곳이 아니고 중앙이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아담과 이브에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시는 하나님의 명령은 사실 좀 불친절합니다.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심리를 생각할 때 ‘먹으면 죽는다’라고만 하시니 호기심이 일어날 여지가 있습니다. 여기서 ‘반드시 죽는다’고 하신 것도 무슨 뜻일까 생각하게 만듭니다. 아담과 이브는 죽음이 뭔지 알고 있었겠지요? 짐승이나 식물이 생명이 다해 사라지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뱀이 이브에게 말을 걸어올 때 뱀은 처음부터 ‘헷갈리는’ 소리로 시작합니다. “어떤 나무의 열매도 먹지 말라고 하시더냐?” 완전 왜곡입니다. 궁금해서 묻는거라면 “여기 있는 과일들은 다 먹어도 되는거야?”라고 물어야 했습니다. 뱀의 간악한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이브는 순진하게 답을 합니다. “동산 한가운데 있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마라”고 명하셨다고 답합니다. 어떤 목사님은 이 부분에서 이브가 말을 지어냈다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신 것은 아닌데 없는 말을 덧붙였다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나는 이브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 알 것도 같습니다. 한가운데 있는 나무 옆에는 아예 가보지도 않고 만져 보지도 않겠다는 결심, 명령을 지키려고 아예 쳐다 보지도 말고 손 대지도 말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했을 겁니다. 뱀은 이브에게 이제 마음 놓고 거짓말을 합니다. 죽지 않을 거라고 안심을 시킵니다. 나무의 진짜 효능은 선악을 알게 하는 비밀의 힘이라고 거짓말을 합니다. 하나님은 이 비밀을 감추기 위해 먹지 말라고, 먹으면 죽는다고 엄포를 하신 것이지 실은 죽지 않는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이브는 이 때 잘 생각했어야 합니다. 전화를 끊었어야 합니다. 버튼을 클릭하지 말았어야 합니다. 뱀이 노린 것은 하나님을 의심하게 만들고, 선과 악을 아는 지혜가 하나님과 같이 되는 지름길이라고 헛짚게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처럼 되고 싶다는 욕심이 죄된 욕망인 것은 맞는데, 뱀과 이브의 대화로 볼 때 이브에게 그만한 야심이나 계산 능력이 있었던 것 같지 않습니다. 이브를 위한 변명은 아닌데, 창세기의 선악과 이야기는 아담과 이브의 실수로 끝나지 않고 사람이 (우리가) 계속해서 반복한다는 것이 비극입니다. 선악을 구별하는 일은 시간이 걸리는 일입니다. 선악을 구별하는 능력이 선악과를 먹으면 저절로 생길 것처럼, 마술같이, 손 닿는 곳에 있는 일이라고 약을 판 뱀이 참으로 간교합니다. 하나님이 애초에 먹지 말라고 하신 명령은 선악을 구별하지 말라는 명령과 같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에덴 동산에, 하나님이 저녁 서늘할 때 거니시며 아담과 이브를 찾기도 하시는 에덴 동산에 ‘악’이라는 게 있었을까요. 선과 악을 구별해야 하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상황과 마주할 일이 있었을까요. 동산 가운데 있는 나무는 분리의 나무였습니다. 그 열매를 먹음으로써 아담과 이브는 자기들이 벗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서로의 몸이 다르다는 것을 보게 되었고, 하나님과 자기들이 분리되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생명으로부터 분리되는 날이 올 것을 알게 되었고, 만남과 떠남의 분리도 겪게 되었습니다. 슬픈 이야기입니다. 아담과 이브의 죄도 슬프고, 쉽게 가려고 하는 나의 성향도 슬픕니다. 하나님이 보여 주시고 가르쳐 주실 것을 기다리거나 믿지 않고 나의 생각대로 하려는 고집이 얼마나 불쌍한지요. 잃어버린 뒤에야 참 가치를 깨닫는 인간…깨진 뒤에야 참 보물을 알아보는 인간…하나님 (낙원)과 분리된 우리를 찾으러 오신 예수님을 묵상합니다.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분리와 소외가 있는 곳, 후회와 눈물이 있는 곳에 다시 오셔서 회복의 능력을 나누어 주신다고 믿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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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achi049 Avatar

    창세기를 읽을때마다 아담이 가장으로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 모든 인류에게 원죄라는 족쇄를 채워놓은 것을 원망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으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제물 삼아 십자가에 달리게 하시고 부활의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영생을 누리게하심에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매일 부활의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남은여생을 살면서 3중 사귐을 통하여 복음이 전파 되도록 성령께서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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