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장 1-17절: 땅에서 났으나 하늘에 속한 존재

해설:

2장 1절부터 3절까지는 1장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엿새 동안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이레 되는 날에 쉬셨습니다(1-2절). 여기서 “쉬셨다” 혹은 “모든 일에서 손을 떼셨다”라는 말은 하나님의 창조가 완성되었다는 뜻입니다. “완성되었다”는 말은 “끝났다”는 뜻이 아닙니다. 정원을 가꾸는 사람이 자신의 계획대로 땅을 일구고 온갖 나무를 심고 씨앗을 뿌리는 작업을 마친 것과 같은 완성을 의미합니다. 이제 온 우주와 모든 생명체는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대로 자라고 꽃피고 열매 맺도록 준비가 완료된 것입니다.

그런 다음 하나님은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셨다”(3절)고 말합니다. 이미 창조된 것들을 축복하고 감사하고 즐거워 했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창조의 목적이었습니다. 나중에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일곱째 날을 안식일로 지키라고 명하십니다(출 20:8-11).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으로 만족하고 감사하며 서로 축복하고 나누며 즐거워 하는 날입니다.

2장 4절부터 25절까지의 내용은 앞의 내용과 여러가지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두번째 창조 이야기’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창세기의 저자의 손에서 두 본문은 서로 보완적인 역할을 하도록 통합 되었습니다. 1장부터 2장 3절까지는 창조 이야기를 거시적 관점에서 그린 것이고, 2장 4절부터 25절까지는 인간을 중심으로 카메라의 앵글을 좁혀서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창조되기 전에 이 세상은 관리자가 없는 정원처럼 황량한 상태에 있었습니다(5-6절). 하나님은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십니다”(7절). 히브리어로 “사람”은 “아담”이고 “흙”은 “아다마”입니다. 인간 존재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에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흙덩어리가 “생명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생명의 기운” 즉 하나님의 영이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인간 존재의 본질은 하나님께서 불어 넣으신 영에 있다는 뜻입니다. 인간과 다른 생명체와의 근본적인 차이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이라는 곳에 동산을 일구시고 아담을 그곳에 두셨습니다(8절). 하나님은 그 동산을 아무 부족함 없는 낙원으로 조성하시고 아담에게 관리하게 하셨습니다. 그곳에는 수 많은 과실 나무가 있었는데 그 중에는 “생명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었습니다(9절). 에덴 동산에는 강 하나가 흘렀는데, 그 강은 에덴을 흘러나와 네 지류로 갈라져 흘렀습니다(10-14절). 

하나님은 아담에게 에덴 동산의 관리를 맡기시고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따 먹지 말라는 조건 하에서 모든 자유를 허락하십니다(15-17절). 하나님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17절)고 엄중히 경고하십니다. 그것은 피조물로서의 한계를 넘지 말라는 경고였습니다.

묵상:

어거스틴에게 어떤 청년이 찾아와서 “천지를 창조하기 전에 하나님은 무엇을 하셨습니까?”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 질문을 받고 어거스틴은 잠시 생각하더니 “바로 자네 같은 사람을 위해 지옥을 짓고 계셨네”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창조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가 알고 싶은 문제를 캐묻지 말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창세기의 이야기는 하나님에 대해, 피조 세계에 대해, 인간 존재에 대해 저자가 전하고 싶어 했던 것만을 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창세기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을 캐묻지 말고 저자가 전하고자 했던 진실을 찾아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해 그리고 인간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창조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부여하신 특별한 지위를 생각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특별한 방식으로 지으십니다. 다른 생명들은 말씀으로 명령하여 존재하게 하시는데, 사람은 직접 공들여 지으십니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의미합니다. 또한 인간은 모든 생명체 중에 하나님의 영을 부여 받은 유일한 존재입니다. 다른 생명체들은 전적으로 땅에 속해 있지만, 인간은 땅에 속해 있으나 동시에 하나님께 속해 있는 존재로 지어졌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인간에게 당신의 창조 세계를 맡아 관리하는 임무를 부여하셨습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 세계에서 하나님의 대리자로 세워진 것입니다. 

일찍이 다윗은 인간의 무한한 무가치성에 눈 뜨는 동시에 하나님이 부여하신 특별한 지위를 생각하면서 하나님 앞에 무릎 꿇었습니다(시편 8편).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 이야기를 읽으며 눈 떠야 할 사실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무한히 작은 존재입니다. 하지만 그 하찮은 존재에게 하나님은 영원하고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 하셨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그 가치를 발견하고 그런 존재로 회복될 때까지 인간은 아직 온전히 창조되었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께서 주신 형상은 깨어지고 존재의 근거로부터 떨어져 나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여 존재의 근거이신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되고 깨어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도록 길을 열어 주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Comments

3 responses to “창세기 2장 1-17절: 땅에서 났으나 하늘에 속한 존재”

  1. gachi049 Avatar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한 무한한 무가치한 인간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 해 주심으로 유한한 유가치한 인간으로 재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회복된 하나님의 형상을 소멸하지 않토록 성령님께서 동행하시고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Like

  2. 티끌보다 못한 인간을 손수 만드시고 성령을 허락하신 전지전능하시고 사랑과 은혜의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지난날 그토록 귀한 은혜를 등지고 세상의 지혜로 살아온 어리석은 죄인에게 십자가와 부활을 깨닫게하시고 새나라와 새땅의 소망을 보여주신 주님과 마지막 숨쉴때까지 동행하는 삶을 원합니다. 영생과 새나라와 새땅의 소망을 어둡고 힘든 세상에 알리는 사귐의 소리 가족 모두가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Like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다정하고 섬세한 하나님, 자상하고 친밀한 하나님을 봅니다. 해와 달 바다와 산 나무와 벌레를 만드실 때 “… 있으라!”시며 말씀으로 만드셨습니다. “땅은 온갖 생물을 내어라. 가축과 기어다니는 것과 들짐승을 각기 그 종류에 따라 내어라 (1:24)” 말씀하시니 그대로 되었습니다. 손으로 빚으시는 것을 상상하며 참새와 벌레, 들풀과 꽃을 빚으시는 하나님의 섬세하고 가녀린 손가락을 상상했는데 다시 읽어보니 땅에게 명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세기의 창조 과정을 토론할 때 닭이냐 달걀이냐 처럼 꽃이냐 꽃씨냐를 구분하고 싶은 마음을 알 것 같습니다. 사람은 특별하게 만들어진 것이 보입니다. 사람을 제외한 다른 모든 것을 만드시고 나서 쉬신 뒤에 (2절) 땅에서 올라온 안개가 표면을 적셔 부드러워진 흙으로 사람을 지으십니다. 사람의 코에 숨을 불어넣으십니다. 그러자 생명체가 되었습니다. 바로 가까이에서, 코에 숨을 불어 넣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숨결에 사람의 혼과 감성, 이성, 의지, 본능 이런 것의 근본이 되는 것들이 실려 들어 갔을 것입니다. 사람을 지으시고 나서 에덴에 동산을 만드십니다. 사람은 그곳에서 지냅니다. 동산지기를 시키십니다. 세계가 아니라 동산을 맡기십니다. 처음 사람의 세계는 에덴동산입니다. 엘에이는 올해 겨울이 춥고 길었습니다. 겨울에도 반팔 입고 다니는 엘에이라는 말은 택도 없는 말이었습니다. 비도 많고 바람도 센 날들이 계속 되었습니다. 4월이 지만 봄은 여전히 먼 것처럼 느껴집니다. 4월에는 문득 문득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싯귀를 입술에 올립니다. 무슨 뜻인지, 시인은 왜 그렇게 말했는지 알고 싶어지지요.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memory and desire)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snow)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dried tubers) 약간의 목숨을 대어 주었다 (‘황무지’ 황동규 옮김)” 황무지의 시인은 제프리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 첫 줄에 나오는 사월은 달콤한 소나기로 삼월의 가뭄을 뿌리 깊숙이 뚫는다라는 표현을 비틀어서 자기 시의 첫 문장으로 썼다고 합니다. 영국 남부의 캔터베리 대성당으로 순례를 가는 여행자들 (The Canterbury Tales)에겐 달콤한 4월이었을지라도 1차 세계대전을 겪고 살아남은 사람들에겐 잔인한 4월로 비친 것입니다. 오히려 겨울이 따뜻했다는 고백은 기억의 불완전성에서 나온 모순입니다. 봄비로 잠든 대지를 깨워 라일락을 키워내는 수고는 창조주의 감성과 인내를 본받지 않으면 따라할 수 없는 일이라는걸 이제는 압니다. 겨울을 지냈기 때문에, 죽음이 지나간 자리를 보았기 때문에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에덴 동산의 첫 사람은 우리의 조상입니다. 우리의 공통 아버지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 아버지보다 나은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에덴 동산은 낙원으로 남지 않았습니다. 낙원을 황무지로 만든 첫 사람 이후의 첫 사람을 우리는 압니다. 창조의 이야기는 다시 태어남의 이야기도 되는 것 같습니다. 대지의 모든 생명체에 숨을 넣어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Like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