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6장 1-8절: 예수 다시 사셨다!

해설:

“안식일이 지났을 때”(1절)는 오늘로 치면 토요일 저녁 이후를 말합니다. 유대인들은 해가 진 시간부터 다음 날 해 지기 전까지를 하루로 계산 했습니다. 그런 계산법에 의하면, 예수님은 “사흘 후”가 아니라 “사흘만에” 혹은 “사흘째 되는 날에” 부활하신 것입니다. 안식일 예비일 오후 세 시에 운명하시어 안식일을 지나 그 다음 날에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안식일에 어떤 장례 행위도 할 수 없도록 규정해 놓았습니다. 그래서 여인들은 안식일이 끝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시신에 바를 향료를 사 두었는데, 향료를 시신에 바르는 것은 죽은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였습니다. 안식일이 지난 다음 날 새벽에 무덤으로 가면서 여인들은 무덤을 막아 놓은 돌을 어떻게 옮길 수 있을지 걱정합니다(2-3절). 그들의 힘으로는 돌문을 옮길 도리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그냥 있을 수 없었습니다. 

무덤에 도착해 보니 놀랍게도 무덤 입구를 막아 놓은 돌문이 옮겨져 있었습니다(4절). 여인들은 적잖이 놀랐을 것입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조심스럽게 무덤 안을 보니, 흰 옷을 입은 어떤 젊은 사람이 오른쪽에 앉아 있습니다. 무덤 안에서 기대할만한 일이 아니었기에 여인들은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그러자 그 청년은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으니(6절) 제자들에게 갈릴리로 가서 그분을 만나 보라고 이릅니다(7절). 예수님은 마지막 만찬을 나누실 때 제자들에게 그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14:28). 

이 일로 인해 여인들은 극심한 혼란과 충격에 휩싸이고 “벌벌 떨며 넋을 잃었”(8절)습니다. 그들은 한 동안 두려움에 질려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왜 안 그랬겠습니까? 여인들은 무덤문이 옮겨진 것을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 듯한 충격을 받았을 것이고, 무덤 안에서 “사람인 듯 사람 아닌” 존재를 보고 머리가 하얘질 정도로 놀랐을 것이며, 그 사람의 말을 들었을 때는 충격과 두려움이 감당할 양을 넘어섰습니다. 그 여인들은 부활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는 했지만 그것이 어떤 것인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이 모든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습니다.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고 한 번도 기대한 적이 없는 사건을 경험한 것입니다. 그래서 여인들은 한 동안 숨어서 서로 부둥켜 안고 벌벌 떨기만 했을 것입니다. 

학자들은 마가복음이 원래 8절에서 끝났을 것으로 봅니다. 지금까지 남겨진 사본들(마가복음의 원본은 사라졌습니다. 지금 남아 있는 것은 필사한 것들입니다. 그것을 사본이라고 부릅니다) 중에 가장 믿을만한 사본들은 8절에서 끝나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경에서 9절 이하는 후대에 첨가된 것으로 판단됩니다. 

묵상: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가 믿고 있던 세계관을 부정합니다. 물질이 전부가 아니고, 육신이 전부가 아니며, 목숨이 전부가 아님을 증명합니다. 1차원 시간을 넘어서는 영원의 차원이 있으며, 3차원 공간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있음을 증언합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을 통해 증언 하셨던 하나님의 나라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입니다. 역사의 흐름 가운데서 일어난 이 한 번의 사건은 역사 전체를 새롭게 보게 만듭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보다 믿지 못하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믿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에 눈 뜨고 보면, 그 차원을 알지 못하고 사는 것이 얼마나 큰 불행인지를 알게 됩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먼저 갈릴리로 가셔서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갈릴리는 주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전도를 시작하신 곳입니다. 갈릴리는 또한 당시 유대 사회에서 가장 낮은 곳이었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되고 밀려난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습니다. 절망과 불만과 증오가 가득한 땅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곳에서 전도를 시작하셨습니다. 그곳에서 제자들은 예수님을 만나 그분과 함께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끝까지 주님을 오해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땅의 나라를 얻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야무진 야망은 십자가로 인해 산산히 깨어졌습니다. 

인간적인 꿈이 무너진 자리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다면 그들은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갈릴리로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3년 전에 예수님이 그렇게 하신 것처럼 그들도 이제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들고 전도를 시작하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다시 시작된 복음 전파의 역사가 이어져 오늘 우리에게까지 그 복음이 들려졌습니다. 그래서 구원자이신 주님께 감사 드리는 것이고, 그 복음이 우리에게 전해지게 한 수 많은 믿음의 조상들에게 감사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복음의 종착역이 아닙니다. 그 복음은 우리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퍼져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 나라를 알고 구원의 복음을 믿는다면, 그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전해야 할 영예와 의무가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Comments

3 responses to “마가복음 16장 1-8절: 예수 다시 사셨다!”

  1. 변하지 않는 강직한 믿음을 가지기를 원 했습니다, 그러나 위험한 상황에서 제자들과 같이 낙심하며 도망간것이 한두번이 아닙니다.끝까지 주님을 따른 여인들의 유연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십자가도 옳게 지지도 못하면서 십자가를 지겠다고 장담하며 살아왔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죽음을 물리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마음속 깊히 각인하고 부활의 증인으로 담대히 살아가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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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achi049 Avatar
    gachi049

    할렐루야!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역사가 없었다면 기독교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인간의 모든 언어로도 이 부활의 기쁨을 표현 할 수 없습니다.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오늘 부활의 기뿜을 남은 여정가운데 간직할 수 있도록 말씀 묵상과 기도와 복음 전파가 중단되지 않토록 성령께서 동행하시고 도와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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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무덤에 가서 예수님의 시신에 향료를 바르려고 여인들이 부지런히 움직입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아픈 마음으로 금요일, 토요일을 지내고 일요일 새벽에 미처 동이 트기도 전에 무덤으로 갑니다. 어렸을 때 기억인데 어떤 큰 일이 나면 (어른들이 ‘큰 일’이라고 하는게 대개 사고나 병, 사망 같은 비극적인 일, 혹은 아주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경사였습니다)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더 많은 일을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이니까 집 안에서 움직이는 사람들만 봤기 때문 같습니다. 어른 여자들이 무섭거나 힘든 일을 척척 하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남자 어른들은 아주 무거운걸 옮겨 달라거나, 높은 데서 뭘 내릴 때 도와주었습니다. 왜 여인들만 무덤으로 갔을까 생각하면서 떠올린 기억입니다. 무덤 안에 있는 청년이 여인들에게 하는 말에 “자, 이제 가서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말하십시오 (7절)” 라는 부분이 눈에 확 들어옵니다. 베드로를 ‘콕 집어’ 말합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이 별개처럼 들립니다. 제자들 있는 곳에 베드로가 같이 있지 않다는 말 같습니다. 제자들에게 말하고, 또 베드로에게도 꼭 말하라는 뜻입니다. ‘베드로도 꼭 갈릴리로 가서 거기에서 기다리시는 예수님을 만나라’는 메시지입니다. 올해 사순절엔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 중에서 빌라도와 구레네 사람 시몬을 묵상했습니다. 오늘은 베드로를 생각합니다. 잡히시는 예수님을 보면서도 어쩌지 못하고 도망부터 간 제자들, 그냥 도망친 게 아니라 부인까지 한 베드로. 자기경멸과 수치심, 미안함과 절망감이 대단했겠지요. 제자들의 감정이 어떻든 베드로는 그 감정의 두 배 세 배를 느꼈을겁니다. 이제 부활하신 예수께서 그런 제자들 플러스 베드로를 부르십니다. 처음 예수님이 부르셨던 그 곳으로 부르십니다. 오랫동안 못 만난 연인이 재회의 장소로 ‘우리가 처음 만났던 데서 만나자’라고 정하는 것처럼…베드로의 행동을 비난하기는 쉬운데 막상 나라면 달랐을까 생각하면 자신이 없습니다. 제자들의 비겁함도 평소 그들의 모습과 완전히 다른 것도 아닙니다. 그만그만한 사람들, 어디서나 보는 사람들, 특별한 구석이 없는 사람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데이트를 청하십니다. 청년을 통해 부활의 소식을 전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갈릴리로 가서 기다리시는 예수님이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먼저 부르시고 청하시는 분이 우리 주님이십니다. 여러 사람 중에서 키가 크거나, 얼굴이 잘 생겼거나, 공부를 제일 잘하거나, 집안이 좋든가, 착하든가, 부지런하든가, 목소리가 좋거나, 잘 웃든가…이런 사람을 골라 부르시지 않는 분…. 은혜라고 밖에는 할 말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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