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4장 51-52절: 어떤 젊은이의 정체

해설:

경비병들이 예수님을 데리고 대제사장관저로 가고 있는데 어떤 청년이 어둠 속에서 따라 왔습니다. 경비병들이 그것을 눈치 채고 그를 잡으려고 했는데, 잡힌 옷을 벗어 두고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립니다. 그 청년은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맨 몸에 홑이불을 두르고 있었던 것입니다(51-52절). 

학자들은 이 청년이 누구이며 왜 이 이야기가 여기에 기록되어 있는지를 두고 논의해 왔습니다. 이 두 절은 다른 복음서에 없는 내용입니다. 또한 이 이야기는 예수님에 대해 어떤 의미도 가지지 않습니다. 복음서 저자들은 예수님에 관한 많은 이야기들 중에 가장 중요한 것들만을 선택하여 제한된 지면에 기록해야 했습니다. 따라서 이런 의미 없는 이야기를 이 대목에서 써 넣을 아무런 이유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일부 학자들은 마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살짝 집어 넣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히치코크 감독이 자신이 연출한 영화 마다에 은밀한 방법으로 자신을 등장시키곤 했던 것처럼, 마가는 자신이 기록한 이야기에 자신을 등장시켰다는 뜻입니다. 

묵상:

이 청년이 저자 마가였다는 확증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럴 것이라는 심증을 부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른 증거가 없는 한, 저자가 예수님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중에 자신의 이야기를 써 넣었다고 보아도 무리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마가는 왜 이 대목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써 넣은 것일까요?

마가는 이 기록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일어난 구원의 이야기에 자신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그는 전지적 관찰자의 시점에서 예수님의 이야기를 써 왔습니다. 예수님의 세계 바깥에서 들여다 보는 사람처럼 이야기를 하다가 이 지점에서 그는 그 세계 안으로 뛰어 들어온 것입니다. 

이 글을 쓸 때의 마가의 심정을 상상해 봅니다. 그는 이 사건이 있은 지 25년에서 30년 정도의 시간이 지난 다음에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 사이에 그는 바울과 바나바 그리고 베드로와 함께 여러 도시를 다니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 왔습니다. 그는 로마의 박해로 인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후대 사람들을 위해 예수님의 이야기를 적습니다. 베드로에게서 전해 받은 자료들을 기초로 하여 예수님의 이야기를 적으면서 그는 마지막 부분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적어 넣습니다. 

이 이야기를 쓸 때 그는 마음으로 “나도 이 일의 증인 중 한 사람입니다”라고 독자에게 속삭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또한 “나도 이렇게 비겁한 사람이었습니다. 나도 실패자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분이 나를 이렇게 변화시켜 주셨습니다”라고 고백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Comments

3 responses to “마가복음 14장 51-52절: 어떤 젊은이의 정체”

  1. gachi049 Avatar

    만약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면 오늘날 내가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세상놀이에 빠져 술과 담배와 같이 살다가 가정도, 자녀도 없이 사라졌을 것이며 뜨거운 불구덩이 속에서 고통에 못이겨 울부짖고 있을 것입니다. 주님!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해 주셔서 이렇게 고백할 수 있게 변화시켜 주심을 감사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부족하고 연약하여 변하기 쉬우니 성령께서 남은 여정가운데 동행하여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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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은혜를 믿는다고 하면서 강건너 큰화재를 보듯이 2000년 전의 십자가 사건을 하나의 역사로 여겼던 어리석은 존재입니다. 그토록 귀한 하나님의 사랑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은 미련한 자에게 주님의 자비와 긍휼을 기도합니다. 지금부터라도 십자가가 나의 personal Grace인것을 항상 깨닫고 감사하는 삶을 살아 내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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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마가복음서 이 부분에 등장하는 청년의 정체나 행동이 별로 튀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그만큼 예수님이 잡히자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가는 제자들의 모습이 크게 보인다는 뜻입니다. 청년의 행색이 이상한건 사실이지만 맨몸에 홑이불 (메시지 성경은 침대 시트 bedsheet) 을 걸친 채 예수님을 따라가고 있었다는 그림은 몇 개의 다른 그림을 연상 시킵니다. 무덤에서 걸어 나오는 나사렛이 떠오르고, 예수님의 무덤에 있는 흰옷을 입은 사람 (마가복음서)과 개켜져 있는 고운 베 (요한복음서)의 이미지도 겹쳐집니다. 이 청년의 정체가 기록자인 마가라는 설명도 설득력이 있습니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목격자와 증인이 앞다투어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오랜 세월 드러나지 않는 적도 많을 것입니다. 평생 가슴에 담아 두고 밝히지 않은 채 가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이번 주 월요일의 본문은 유월절 식사를 마치고 예수님이 제자들과 산으로 가신 부분이었습니다. 목사님의 해설은 “가는 길에 예수께서는 스가랴 13장 7절의 예언을 인용 하시면서 그들이 곧 당신을 버리고 달아날 것이라고 예고”하시고(27절)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 절대로 배신하지 않겠다고 장담하는 장면입니다. 그날의 묵상이 올라가지 않았는데 ‘사건’과 그 사건의 ‘해석’에 대해 묵상했습니다. 커다란 충격을 주는 사건이 일어나면 배경과 사건을 둘러싼 사실들이 끓는 물처럼 시끄럽다가 어느 정도 거품이 가라앉고 나면 나의 생각도 정리가 되면서 사건을 해석하게 됩니다. 사건의 의미는 나의 해석에 달린 것이라는 그날의 묵상이 오늘 홑이불을 벗어 던진 채 도망가는 청년의 모습을 뒤쫓아가듯 이어집니다. 청년이 마가라면 그는 예수라는 사건을 놓고 평생 씨름하고 해석했을 것입니다. 매일 일어나는 사건들과 해석이 이어져 삶을 만들어 갑니다. 어린이들은 사건을 해석하는 지혜가 부족합니다. 시야가 좁기 때문입니다. 어른들과 또래 친구들의 시야를 빌려 해석하는 방법을 배웁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잡히자 다 도망칩니다. 체포라는 사건을 해석할 줄 몰랐습니다. 예수님이 여러번 말씀해 주었지만 십자가에 달려 죽는 사건을 눈 앞에서 보면서도 이해하거나 해석할 줄 몰랐습니다. 부활을 해석하지 못한 것도 당연합니다. 성령께서 그들의 눈을 열어 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찾아 오신 뒤에야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 무슨 일인지 겨우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평생토록 예수라는 사건을 해석합니다. 여기서 내가 ‘해석’이라고 하는 말은 이성적인 활동 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를 푸는 것처럼 가정으로 시작해 이론과 실험을 거쳐 결론의 값을 취하는 풀이의 전과정입니다. 제자들처럼 우리도 인생을 다 동원해 예수를 증명합니다. 증명이나 방어가 필요 없는 하나님을 특별한 능력 없는 평범한 인간들이 연구하고 밝혀냅니다. 헛된 일 같은데 믿음의 관점에서 보면 더없이 값진 일입니다. 친구가 필요 없는 예수님이 나는 너의 친구다, 너는 나의 친구라고 하시는 것과도 같습니다. 벌거벗고 도망치는 일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나만 살겠다고 도망치는 일로 점철된 삶의 어느 순간에선가 문득 깨닫습니다. 나는 이미 죽었지, 나의 잘못은 이미 알려졌지, 예수님이 이미 다 이루셨지…마가가 자기를 여기에 인서트 했다면 독자들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초대하는 뜻인지 모릅니다. 비록 예수님을 두고 도망 가는 부끄러운 장면이지만 예수님 앞에서 언제나 모자란 모습, 늘 부끄러운 모습일 수 밖에 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정직한 등장입니다. 주님….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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