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4장 43-50절: 기도로 산다는 것

해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의 죽음에 준비되었을 때, 기다렸다는 듯이 가룟 유다가 성전 경비병들을 데리고 나타납니다(43절). 마가는 유다를 소개하면서 굳이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인 유다”라고 씁니다. 스승을 배신한 사람이 다름 아닌 제자 중 하나라는 사실을 통해 이 사태의 비극성을 강조하려는 의도입니다. 그래서 다음 문장에서 마가는 유다를 “예수를 넘겨줄 자”(44절)라고 표현합니다. 여기서 다시 ‘파라디도미’(넘겨주다)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유다는 예수님을 권력자들에게 넘겨 주었습니다. 하지만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오랜 기도를 통해 예수님은 당신을 하나님의 뜻에 넘겨 주셨습니다.  

어둠 속에서 유다가 나서더니 예수님께 다가가 입을 맞춥니다(45절). 볼에 대고 입을 맞추는 것은 중동 지방의 오랜 예법입니다. 유다는 사랑과 존경의 입맞춤을 배신의 행위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는 성전 경비병들에게, 자신이 입맞추는 사람을 체포하라고 미리 알려 놓았습니다. 그러자 경비병들이 일제히 달려 들어 예수님을 결박합니다(46절). 

그러자 제자들 중 하나가 칼을 꺼내어 휘둘렀고, 그 칼에 한 경비병의 귀가 잘려 나갑니다(47절). 요한복음에 보면 칼을 휘두른 사람은 베드로이고, 귀가 잘려 나간 사람은 말고입니다(요 18:10). 예수님은 자신에 대한 성경의 예언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순순히 결박을 당하십니다(48-49절). 그분은 이사야 53장과 스가랴 13장의 예언을 염두에 두셨을 것입니다. 그러는 사이에 제자들은 모두 사라져 버립니다. 불과 몇 시간 전에 목숨을 걸고 장담하던 이들이 종적을 감춘 것입니다(50절).

묵상:

어떤 사람이 나에게 도움을 청한다면 그 사람이 나를 그만큼 신뢰하고 의지한다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움을 요청 받을 때 기쁨을 느낍니다. 그 사람이 나를 그만큼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고, 나에게 그 사람을 도울 능력이 있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합니다. 

피조물인 우리는 창조주요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기도로써 하나님 앞에 나아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구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지 않아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시는 분이지만, 우리가 그분께 나아가 기도로써 구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기도로써 구하는 행동은 그분에 대한 우리의 믿음과 사랑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 기도의 전부는 아닙니다. 기도에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차원이 있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분의 뜻에 우리의 마음을 조율시키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런 기도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으면 내려 놓게 만듭니다. 우리가 대면해야 하는 일에 대해 우리의 마음과 태도를 준비시켜 줍니다. 이렇듯 기도는 영이신 하나님과 우리의 영이 사귐을 통해 연합하는 과정입니다. 

가룟 유다가 성전 경비병들을 이끌고 들이닥쳤을 때, 기도로써 준비되었던 예수님은 저항 없이 당신을 내어 주십니다. 그분은 거침없이 십자가를 향해 걸어 나가십니다. 반면, 깨어있지 못하고 잠에 빠져 있던 제자들은 혼비백산 하여 모두 도망 쳤습니다. 기도로써 준비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극명하게 대조 됩니다. 


Comments

3 responses to “마가복음 14장 43-50절: 기도로 산다는 것”

  1. bull9707 Avatar

    기도를 쉬는 죄인입니다. 세상의 복만 구하는 탐욕자입니다. 세속적인 안위만 추구하는 비겁한 위선자입니다. 세상의 모든 향락을 포기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주어진 상황이 힘들고 위험하더라도 기도로 시작해서 기도로 주님과 같이하는 사귐의 소리 식구 모두가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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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achi049 Avatar

     기도는 하나님과 영적대화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과 대화하기를 기뻐하십니다. 또한 자신을 위한 기도보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기도를 원하십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맞게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기쁠때나 고통과 고난과 어려울때에 기도는 인생이 살아가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주님! 때를 막론하고 하나님과의 대화를 통해 영혼이 잠들지 않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늘깨닫고 그뜻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동행하시고 인도해 주시옵소서.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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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몇 년 동안 ‘사귐의 소리’ 묵상을 하다 보니 목사님의 해설과 일치(?)하는 날도 있나 봅니다. 어제는 제자들이 잠에 취해 예수님의 곁을 지키지 못하던 것이 안타까왔는데 잡혀가게 되자 자기만 살겠다고 도망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의 준비가 없으면 이 꼴 밖에 안되는구나 싶습니다. 어제의 기도가 오늘의 나를 든든하게 세워 준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모양새 빠지는건 유다가 더합니다. 떳떳하지 못하니까 무기를 든 무리들과 같이 나타납니다. 신호까지 정하는데 하필 존경의 키스입니다. 그 뒤에 일어나는 일은 다소 혼란스럽습니다. 누군가 예수님한테 손을 대면서 체포하려고 하자 제자 중 한 사람이 칼을 뽑아 그의 귀를 자릅니다. 잡으려고 내놓은 손을 치기가 쉽지, 팔을 들어서 상대의 귀를 친다는 것은 칼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면 시도하기 어려운 일일 것 같습니다. 마가복음서는 예수님이 이 귀를 다시 붙여 주셨다는 설명이 없습니다.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을 떠나 도망갑니다. 기도와 거리가 먼 삶의 누추함과 비겁함을 봅니다. 지금까지 누구를 따라 다녔는지, 누구에게서 뭘 보고 배웠는지 묻고 싶어집니다. 정치에 크게 관심이 없는 사람도 선거철이 되면 이런 저런 소식을 듣게 됩니다. 한국의 총선이 몇 주 남지 않았습니다. 나를 뽑아 달라고 악수하고, 인사하고, 웃고, 아기 볼에 얼굴도 대고 (이건 무슨 ‘신호’일까요), 주는 음식 받아 먹고…평소에 하는 일이 선거 때는 의미가 달라집니다. 과거에 한 말과 행동 때문에 출마하지 못하게 된 사람들도 있습니다. 시민을 대표하는 자리에 서겠다는 사람이 공부도, 예의도, 성찰도 없이 살아 오고도 뻔뻔합니다. 사람이 어디를 보고 살았는지 드러나는 순간이 있습니다. 진심이 무엇인지 선명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기도할 때가 그런 순간입니다. 묵상이 에세이라면 기도는 시입니다. 묵상할 때는 나의 발자욱을 보는데 기도할 때는 주님의 발자욱이 보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예수님이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싶었는데 제자들의 기도가 필요해서 외로운게 아니었겠습니다. 당신과 마음을 합치지 못하는 친구들이 불쌍해서 외로웠겠습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기도로 살고, 기도로 드러내고, 기도로 걷기를 원합니다. 주님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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