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4장 32-42절: 겟세마네에서의 공포

해설:

예수님은 제자들을 이끌어 올리브 산 계곡에 있는 겟세마네라는 숲에 이릅니다. ‘올리브 기름틀’이라는 의미인데, 그곳에는 올리브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숲 입구에서 제자들에게, 기도하면서 기다리라고 하신 다음 세 제자만 데리고 더 깊은 곳으로 가십니다. 야이로의 딸을 살리실 때(5:40)와 변화산 사건 때(9:2)에도 예수님은 세 제자만 따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모든 진실이 밝혀진 다음에서야 그 사건들의 의미가 드러날 일이기에 그 증인들의 수를 제한하신 것입니다. 

얼마쯤 걸어 들어가 다른 제자들과 분리되자, 예수님은 “매우 놀라며 괴로워하기 시작”(33절) 하셨습니다. “놀라며 괴로워하다”라는 표현은 시편의 기도를 생각나게 합니다(시 42:5, 11; 43:5). 환난을 당할 때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정서적 변화입니다. 이 때 예수님은 인성으로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대면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 마음이 근심에 싸여 죽을 지경이다”(34절)라고 고백 하십니다. 제자들은, 의지하고 따르던 스승께서 그렇게 약한 말씀을 하시는 것을 듣고 적잖이 놀랐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 제자를 따로 두고 더 깊이 들어가 홀로 기도하십니다. “아빠”는 예수님이 성부 하나님을 부를 때 사용했던 애칭이었습니다. 그분은 전능하신 분이니 원하기만 하시면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렇게 해 달라고 청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자신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입니다. 아버지의 뜻이 그 잔을 마시는 것이면 그렇게 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니다(35-36절). 마가가 그분의 기도를 한 문장으로 기록하고 있지만, 실은 긴 시간 동안 치열하게 기도 하셨을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하고 제자들이 있는 곳으로 와 보니 모두가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37절). 예수님은 그들을 깨워 일으키시면서 “깨어서 기도하여라”(38절)고 당부하십니다. 예수님은 다시 가서 홀로 기도 하셨고 돌아와 보니 제자들은 또 자고 있었습니다(39-40절). 세 번째도 동일했습니다. 예수님은 “남은 시간을 자고 쉬어라. 그 정도면 넉넉하다”(41절)고 말씀하십니다. 기도를 통해 죽음을 직면할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일어나서 가자. 보아라, 나를 넘겨줄 자가 가까이 왔다”(42절)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후로 예수님은 흔들림 없이 묵묵하게 십자가에 오르십니다. 

묵상:

예수님은 죽을 것을 뻔히 알고 예루살렘으로 오셨습니다. 죽음의 위험을 알면서도 피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성경의 예언대로 죽어야 한다는 것도 아셨습니다. 죽은 지 사흘만에 하나님께서 부활시키실 것도 알았습니다. 그런데 겟세마네 동산 깊은 곳에 이르자 갑자기 심한 공포에 짓눌리십니다. 

예수님 같은 분도 “죽을 것 같은 공포”에 사로잡힌 적이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위로를 받습니다. 또한 그분이 그 감정을 제자들에게 고백하고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청했다는 사실에서도 큰 위로와 교훈을 얻습니다. 시편의 사람이 그랬던 것처럼, 환난과 시험을 당하여 두려워하고 낙심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반응입니다.

그렇기는 한데,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고백한 공포감은 유별난 데가 있습니다. 그분이 인성으로 고난을 직면하셨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분의 이 유별난 공포감은 그가 직면한 죽음이 그분 개인의 죽음이 아니라 모든 인류의 죽음이었다는 사실로만 설명될 수 있습니다. 그분이 마실 잔에는 온 인류의 죄값이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 고통은 그분에게 주어졌던 신성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그분은 한 유대 청년으로서가  아니라 온 인류의 구원자로서 죽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할 수만 있으면 그 잔을 피하게 해 달라고 간구했던 것입니다. 그 잔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 들이고 그 잔을 마실 수 있도록 자신을 준비시키는 데 이토록 치열한 기도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그분은 당신의 몸을 드려 완전하고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희생이 오늘 나의 죄를 속하기에 충분하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Comments

3 responses to “마가복음 14장 32-42절: 겟세마네에서의 공포”

  1. gachi049 Avatar

    십자가의 죽음을 눈앞에 놓고 육신을 입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땀방울이 핏방물이 되기까지 처절한 기도를 상상해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원하면 면할 수 있지만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인류구원에대한 사명을 감당해야 하겠기에 아버지의 원대로 하시기를 기도하신 예수님의 결단의 기도는 오늘날 믿음의 공동체들이 본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온전히 영과 육을 입고 연약한 인간은 따라갈 수 없지만 성령께서 강권하시면 가능합니다. 오늘도 성령님께서 동행하셔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여정이 어렵고 힘들고 고통 스럽더라도 끝까지 견디어 승리하는 인생이 되게 하여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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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ull9707 Avatar

    잠 들지 않고 기도해야 하는데 육신이 너무 약합니다, 유혹에 너머지지 않게 기도해야 하는데 그러하지 못한 죄인입니다, 내 모든삶이 기도가 되기를 원합니다. 나의 소원보다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면서—- 온세상과 나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존귀와 영광을 높이 올려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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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예수님과 제자들은 겟세마네 동산에 같이 갔지만 같이 있지는 않은 셈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을 따로 데리고 산 속으로 더 들어가십니다. 나머지 제자들에겐 여기 앉아 있으라 -기도하면서 기다리라고 하지 않고- 하십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 앞에서 예수님은 근심하고 괴로운 모습을 보이십니다. 내 영혼이 심히 괴롭다는 말씀도 하십니다. 속마음을 보이십니다. 머무르면서 깨어 있으라고 하시는데 기도해 달라는 뜻으로 읽힙니다. 괴로운 중에 절절하게 기도하는 모습이 느껴집니다. 목소리도 떨렸을 것 같고, 신음과 한숨 소리도 들리는 듯 합니다. 제자들에게 잠시 들리시는데 다들 자고 있습니다. “영은 원하지만 몸이 연약하구나” 이 말씀은 잠을 이기지 못한 제자들에게만 해당되는게 아니라 당신의 마음을 보여 주시는 듯 합니다. 영으로는 이길 수 있는 고통이지만 사람의 육신으로 당하려니 피하고 싶고 어서 지나갔으면 싶구나 하는 말씀으로도 들립니다. 예수님은 기도의 자리로 돌아가 같은 기도를 올리십니다. 제자들은 여전히 자고 있습니다. 겟세마네 산속의 장면 전체를 펴서 보면 제자들은 자고 있고 예수님은 기도하고 계십니다. 같이 있지만 같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이미 여러번 예고하셨고 또 여기 동산에서도 괴롭고 두렵고 복잡한 심경을 말씀하셨는데도 제자들은 알아 듣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위로하거나 도우려는 마음 조차도 없는 사람들처럼 이 시간을 보냅니다. 예수님은 많이 실망하셨을 겁니다. 기운이 빠지는 일입니다. 욥의 세 친구 만도 못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입니다.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건 무슨 뜻일까요. 괴로와하고 아파하는 친구 옆에선 무엇을 해야할까요. 세 제자의 입장에서 보면, 도저히 이겨낼 수 없는 육신적 피곤감이 엄습했을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지낸 며칠이 무척 힘든 시간이었고, 자기들 중에서 누군가가 배신을 할 것이라는 말씀이 충격적이었을 수 있습니다. 대제사장 그룹의 압력도 심상치 않고, 예수님의 말씀도 점점 더 비장하고 심각하기만 합니다. 마지막, 죽음을 말씀하십니다. 잠에 취해 졸다가 깨니 예수님은 일어나 가자고 하십니다. 나를 넘겨줄 사람이 와 있다고 하십니다. 깨어 있지 않으면 우리 사는 삶도 이렇게 될까요. 어쩌다 보니 막바지, 일어나 보니 끝…당황하고 놀라는 순간과 맞닥칠까요. 예수님의 기도는 단순합니다. 복잡하고 괴로운 마음으로 기도하지만 기도의 내용은 놀랍도록 단순합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이것이지만 당신이 하실 일은 저것이지요. 당신의 일을 하소서. 나는 당신을 따를 뿐입니다…예수님께 겟세마네는 참 외로운 곳이었겠지요. 당신 편은 아무도 없습니다. 당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비켜갈 수 없는 죽음 앞에 오직 예수님 혼자 섭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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